메뉴 건너뛰기

close

'미네르바' 구속은 다음 아고라 '경방고수'들을 위축시켰지만 미네르바는 여전히 가장 큰 관심사다.
 '미네르바' 구속은 다음 아고라 '경방고수'들을 위축시켰지만 미네르바는 여전히 가장 큰 관심사다.
ⓒ 인터넷 화면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길게 보면 결국 국민이 승리합니다."

당연히 예상했단다. "어떤 형태로든 압력이 가해지거나 물리력을 이용한 입막음을 시도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경방(경제토론방)에서 '진호'라는 필명을 쓰는 한 논객의 얘기다. 물론 그가 예상한 타깃은 '인터넷 경제대통령'으로 불리는 '미네르바'였다.

'미네르바'로 지목된 박아무개(31)씨가 검찰의 '긴급체포'와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라는 일련의 시나리오에 의해 '희생양'이 되고 있는 동안 '진호'는 분개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길게 봐서 정권은 5년이다. 결국 국민의 승리다."

'경방고수' 진호 "현 정권, 진정한 보수 아니다"

'진호'는 '짱'이라는 필명을 쓰는 한 누리꾼이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라는 노래를 패러디한 '경방을 빛낸 100명의 고수들'에 '진정한 우익'이라는 수식어로 이름을 등재했다. 70년생이니까, 아직 불혹은 안됐다. 어려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영웅으로 알고 자랐단다. 박정희 전 대통령 저격 사건이 났을 때 우체국 앞에 2.5킬로미터나 늘어선 추모대열에 끼고 싶어 전날부터 꼬박 밤을 새우고 줄을 섰던 "평범한 어린이"였단다.

서울에서 중산층·보수적 성향을 지닌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역시 보수적 성향을 잃지 않고 자란 "평범한 청년"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을 가지 않고 음악을 좀 하다가 지금은 콘서트 등 각종 행사의 음향 설치 관련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를 단 한 번도 좌파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도 디지털카메라 관련 웹사이트인 '디씨인사이드(DCinside)'를 지나치지 못했다. 2007년 9월 '곁다리'라는 필명으로 처음 사이트에 가입했고, 정부관계자 등과 부동산거품·금리인상 문제 등을 두고 3일 밤낮을 토론하다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무현 정권 말기인 2007년 말에 다음 아고라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그는 "지금 정권을 잡고 있는 사람들은 진정한 보수가 아니다"며 "정통 보수의 눈으로 보자면 그들은 정치적 숙청이 되어야 할 대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아고라에서 '진정한 우익'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아고라 경제토론방의 논객 '진호'는 "미네르바로 인해 검찰이 자뻑을 한 것 아닌가"라며 "'10억 달러로 가능한 것을 20억 달러를 더 들였다'고 한 것은 환율 조작을 시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고라 경제토론방의 논객 '진호'는 "미네르바로 인해 검찰이 자뻑을 한 것 아닌가"라며 "'10억 달러로 가능한 것을 20억 달러를 더 들였다'고 한 것은 환율 조작을 시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스스로 함정 판 검찰... 조심은 하겠지만, 본질은 같다"

'진호'가 보는 '미네르바 구속' 사건은 어떤 것일까? 그는 '논객'답게 두 가지 논점에서 상황을 정리했다.

"정부에서 국제 관행에 어긋나게 연말에 환율 관리, 환율 조작을 해놓고, 그것을 공개적으로 폭로한 누리꾼에 대해 과연 구속이 적용될 수 있는가? 한국 정부의 거짓말에 대한 국제 사회의 눈, 특히 미국이나 다른 나라의 보복을 예상할 수 있다. 검찰 측에서 스스로 함정을 판 게 아닌가.

또 하나, IT 기반에 의해 많은 사용자들이 정치 현상을 논하기 시작했다. 장기적으로 보면 대의정치라는 20세기 틀을 벗어나 정치에서 IT 기반을 이용한 직접 정치와 대의정치가 혼합되는 쪽으로 가는 연속선상에서 하나의 기념비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그의 우려는 조금 더 구체적이고 심각하다. "국내 문제보다 국외에서 역풍을 맞을 것 같다"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 정부의 달러스와프 연장과 규모 확대 요청에 대해 미국이 거부할 수도 있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은 자서전에서 '환율 조작을 시도하는 국가에 대해서 철저한 응징을 가하겠다'고 썼다. 환율 조작은 그쪽에서 보면 엄청난 범죄다. 주가 조작과 마찬가지의 범죄로 본다.

'미네르바'로 인해 검찰이 (우리 정부가 환율 조작을 했다는) 자뻑을 한 것 아닌가. '10억 달러로 (통제) 가능한 것을 20억 달러를 더 들였다'고 한 것은 환율 조작을 시인한 것이다. 오바마가 인수위 기간이라 지금은 정신이 없는데, 이 문제가 더 확산되면 미국에서도 어떤 모션을 취할 것이다. 미네르바를 그냥 놔뒀더라면 증권가의 찌라시 정도로 정리됐을 텐데, 정부 관계자 입으로 스스로 (환율 조작을) 자인했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봐주고 싶어도 그냥 못 넘어간다. 그렇게 되면 우리 정부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큰 재앙을 만나게 된다."

'미네르바'의 구속은 아고라 '경방고수'들을 위축시킨 게 사실이다. '진호'조차도 "글을 올리는 입장에서 신중해 질 수밖에 없다"며 "가장 위험한 국가는 비판이 없는 국가"라고 토로했다. 그러나 '진호'가 정말 우려하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이번 사건 때문에 전혀 다른 쪽으로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역 이용한, 정치적인 목적을 띤 다른 세력들이 들어올 수 있다. 정부의 이런 방침을 좀 더 파고들어서 정부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삼으려는 세력들이 아고라 이용자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려고 시도할 수 있다."

또 다른 우려도 있다. "유신도 아니고 왜정 시대로 회귀해서, (정권이) 조작된 사건을 만들어 다른 비판의 목소리를 죽이려고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간첩단 조작 사건"이 일어날 수도 있음을 걱정한 것이다.

물론 기우일 수 있다. 어쨌든 '진호'는 그런 복잡한 우려 속에서도 "결론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는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아고라 논객들은 (지금은 위축됐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비판의 생각을 계속 견지할 것이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아고라가 아닌 다른 공간에서든. 저도 조심하게 되지만, 본질은 똑같이 간다."

"의인은 잡혀가고, 선비는 숨어 있고, 나라는 개판 되고"

'미네르바'가 구속된 후 다음 아고라 경제토론방 논객 중 한명인 '그럴수만있다면'은 게시판의 글을 모두 삭제한 뒤, '눈 감고, 귀 막고, 입 닫은' 원숭이 세 마리 상의 사진만 남긴 채 잠적했다.
 '미네르바'가 구속된 후 다음 아고라 경제토론방 논객 중 한명인 '그럴수만있다면'은 게시판의 글을 모두 삭제한 뒤, '눈 감고, 귀 막고, 입 닫은' 원숭이 세 마리 상의 사진만 남긴 채 잠적했다.
ⓒ 인터넷 화면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오마이뉴스>는 이번 '미네르바 구속' 사건에 대한 의견을 묻기 위해 '진호'를 비롯한 다음 아고라 '경방고수'들에 대한 접촉에 나섰다. 그러나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그럴수만있다면'이란 필명의 논객은 '눈 감고, 귀 막고, 입 닫은' 원숭이 세 마리 상(三猿·삼원)의 사진만 남긴 채 게시판의 이전 글을 모두 삭제하고 잠적했다.

그뿐만 아니다. '필립피셔', 'cosmic egg' 등 '경방'에서 인기를 끌었던 주요 논객들 상당수가 게시물을 삭제하고 블로그도 비공개로 바꿔놓은 채 종적을 감췄다. '나선'은 블로그에 "당분간 여행으로 몇 주 있다 뵙겠습니다"라는 글을 남기고 사라졌고, "고수 논객들의 잠적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코미디 때문인 것 같다"는 댓글만 남아 있다. 일부 논객은 아예 외국에 서버를 둔 사이트로 '사이버 망명'을 떠날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이자 '경방고수 100인' 중 한 명인 '상승미소'는 지난 11일 올린 글 끝에 "이것은 예측이고, 저의 분석입니다. 이것이 무조건 맞는다는 보장도 없고 항상 틀릴 수 있습니다"라는 '꼬리 글'을 달았다. 일종의 검찰에 대한 '항의'인 셈이다. '양원석'도 글 끝 부분에 "공익을 해할 악의적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라며 검찰에 대한 '조롱'을 잊지 않았다.

아직 '경방'에 남아 있다가 <오마이뉴스> 취재에 응한 논객들도 "검찰이 이렇게 나오는 이상 공개적으로 나서기 어렵다"며 '익명성'이 보장되는 필명조차 공개하기를 꺼렸다. 이명박 정부와 검찰이 '미네르바 구속'이라는 무리수를 통해 얻은 성과다. 단순한 '인터넷 여론 재갈 물리기' 차원을 넘어 향후 정부 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비판과 감시기능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yeda'는 고수들의 잠적에 대해 "스스로 지우신 건가, 검찰이 찍어서 협박을 한 건가"라고 물으면서, "의인은 잡혀가고 선비는 숨어들고 나라는 개판이 돼 간다"고 한탄했다. 재미있는 현상도 벌어졌다. 제2, 제3, 제4의 미네르바가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 누리꾼들이 자신의 필명을 '미네르바'로 바꿔서 사이버모욕죄 등을 추진하는 한나라당을 비난하는 한편 검찰의 '인터넷 통제'에 대해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심정적으로 치유될 수 없는 상처... 되돌려 줄 땐?"

검찰이 '미네르바'를 구속한 후, 인터넷상에는 검찰의 '인터넷 통제'에 '항의 시위'를 벌이는 제2, 제3, 제4의 미네르바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0일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마친 뒤 법원을 나서는 '미네르바' 박 모 씨.
 검찰이 '미네르바'를 구속한 후, 인터넷상에는 검찰의 '인터넷 통제'에 '항의 시위'를 벌이는 제2, 제3, 제4의 미네르바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0일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마친 뒤 법원을 나서는 '미네르바' 박 모 씨.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양원석'은 <오마이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인간의 기본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다. 당장은 그것이 통할지 모르겠지만, 국민이 네트워크상으로 다 연결된 사회에서 통제가 가능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번에 받았던 상처가 다른 것을 통해서 터져 나올 때, 반작용으로 더 크게 퍼져 나올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단기적으로는 이번 사건으로 (논객들이) 위축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제한을 받거나 위협을 받으면 위축될 수 있지만, 심리적으로는 저항하려는 마음이 깊이 내재된다. 그것이 나중에 터져 나올 수 있는 단초가 되는 사건이 만들어지면, 그때는 그 상처에 더해져서 터져 나올 수 있다. (정권이 말하는) 소통은 더 어려워질 것이고, 결국 사회 혼란을 더 부추기는 것이다."

'양원석'은 "현재 (논객들이) 충격을 많이 받은 상태"라며 "이건 심정적으로 치유될 수 없다. 받은 상처를 되돌려 줄 텐데…"라고 우려했다. 그는 자신의 글에 대해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비판의 강도가 높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올리는 글에서도 그의 안부를 걱정하는 누리꾼들의 댓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또 다른 논객 '담담당당'은 "인터넷이 가진 '정보의 자기 정화기능'을 믿지 않는다면 통제를 해야 하는 것"이라면 "그러나 그 통제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지금까지 이 부분은 사실상 '금역'으로 존재했다"고 지적했다.

'담담당당'은 소위 'MB악법'으로 불리는 사이버 모욕죄 신설 등을 두고 지난 연말과 연초 국회에서 벌어졌던 극심한 대립 양상을 떠올렸다. 그는 "정치권에서 사이버 여론의 두려움을 인식하면서부터 나타난 새로운 법리적 접근"이라며 "즉, 이번 사건은 해석의 문제를 떠나서 이미 '정치적 접근'"이라고 강조했다.

'앙맨'은 "바위가 해머로 부수어지면, 남는 건 칼날 같은 모서리를 가진 돌들"이라며 "(정권 내부에서) 누군가 이렇게 사건이 커진 것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yeda'는 이번 '미네르바 구속' 사건이 "촛불의 싹을 뽑기" 위한 조치라고 분석했다. 그의 말이다.

"지난해 촛불 집회의 열기가 이어지지 못한 것은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악천후가 한 몫을 단단히 했다. 지금도 강추위 때문에 집회의 어려움이 있지만 4~5월에는 그 규모가 어마어마해진다는 건 명약관화하다. 경제가 엉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터넷을 막는 선제적 조치를 하지 않으면 호미로 막을 것을 불도저로 밀어도 못 막는 사태가 뻔하다. 지하 벙커에 들어가는 이상한 행동을 마다치 않을 정도로 위기감을 느끼는 정부는 앞으로도 인터넷 등 여론을 통제하는데 명운을 걸 수밖에 없다고 본다."

패닉 상태 '경방'... "인터넷은 넓고 토론공간은 많다"

'흐름속에서의나'는 "결국 정부는 비판조차 듣지 않겠다는, 대화 단절이라고 본다"며 "만약 비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면 강만수(기획재정부 장관)는 자신이 말한대로 '미네르바'로 추정되는 분을 만나러 갔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어쨌든 검찰의 '한칼'에 다음 아고라 경방은 '패닉' 상태다. 하지만 '양원석'은 지금 흔적을 지우고 잠적한 고수들이 향후 모습을 바꿔서 언제, 어디에서든 다시 '재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고라 경방은 이제 (정권의) 타깃이 되었던 곳이고, 한 번 위축됐던 곳이다. 그런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꼭 아고라 경방에 들어갈 이유가 없다. 다른 곳에도 (토론) 공간은 많다."

'풍선효과'인 셈이다. 권력이 풍선의 한쪽을 강한 힘으로 누르면 풍선의 다른 쪽이 더 크게 부풀어 오른다. 부풀어 오른 반대쪽 풍선을 눌러봐야 헛수고다. 이명박 정부와 검찰이 진정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미네르바'로 지목된 한 젊은이가 아니라 '제2, 제3의 미네르바'라는 사실을 정작 그들만 모르고 있다.


태그:#경방고수, #미네르바, #다음 아고라, #검찰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