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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옥자,위정숙,이윤선씨의 설장구와 장구춤 공연
 나옥자,위정숙,이윤선씨의 설장구와 장구춤 공연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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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도 밥 한술로 대충 때우려 했는데 이렇게 불러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인근 사근동에서 오신 김복실(84·가명) 할머니는 지하 단칸 셋방에 홀로사시는 독거노인입니다.

“오늘은 음식만 먹은 것이 아니라 장구공연에 민요에 멋진 춤도 보여주고, 정말로 고마워요.”
이옥자(78·가명)할머니는 음식보다도 강구와 민요, 고전무용 등 우리가락이 너무 좋았다고 합니다.

“우리장구랑 우리민요도 좋고, 고전무용도 너무 좋아요.”
역시 인근 마장동에서 온 김순이(80·가명) 할머니는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손뼉을 치며 누구보다 즐거워했던 노인이었습니다.

12월24일 점심시간, 크리스마스 전 날인 이날 제가 나가는 서울 성동구 마장동과 사근동 사이 산동네에 있는 홍익교회 지하문화관에서 연말 노인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이 교회 교인들로 이루어진 이웃사랑회가 주관한 행사였습니다.

가난한 노인들에게 봉사하는 '이웃사랑회'

이웃사랑회는 역시 대부분 이 동네에 사는 가난한 교인들이 매주 수요일 점심시간에 인근 노인들을 초청하여 대접하는 점심초청 모임입니다. 그런데 이날은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맞아 조금 특별한 순서를 마련한 것입니다.

홍익교회 국악찬양단 '천둥'  사물놀이 공연
 홍익교회 국악찬양단 '천둥' 사물놀이 공연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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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송영자, 이윤선씨의 고전무용
 장영수, 송영자, 이윤선씨의 고전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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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째 계속되고 있는 이 행사는 주변에 가난하고 소외된 노인들이 너무 많은 것이 안타까워 초대 회장인 김승진씨가 뜻있는 교인들과 함께 만든 모임입니다. 모임은 회원들이 매월 스스로 내는 회비와 교회에서 보조한 돈으로 운영됩니다.

아침부터 교회에 나와 음식을 만들고 노인들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한 레크리에이션과 소박한 선물을 마련하는 것은 이들 회원들의 몫입니다. 그런데 이날은 연말을 맞아 작년부터 배우기 시작한 우리국악 찬양단 ‘천둥’이 자리를 함께했습니다. 더구나 이들 국악 찬양단을 지도하고 있는 ‘안효선무용연구소’의 국악인 나옥자씨와 그의 문하생들이 우정출연을 해주었지요.

며칠 전이 동지였던지라, 점심으로는 동지팥죽이 준비됐습니다. 찹쌀 새알을 넣어 끓인 달콤한 동지팥죽은 노인들에게 아주 인기가 좋았습니다. 시원한 동치미 국물에 따끈한 동지팥죽은 노인들의 입맛에 아주 잘 맞는 듯했습니다. 볶음고기도 나왔지만 팥죽과 함께 나온 떡과 과일을 노인들은 더 잘 드셨습니다.

점심식사가 끝난 후 식당 바로 옆에 있는 지하문화관에서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진행은 이웃사랑회 총무를 맡고 있으며 매주 수요일마다 노인들을 즐거운 놀이로 인도하는 박영실씨가 맡았습니다. 박영실씨는 기타를 연주하며 노인들과 함께 노래도 부르고 가끔씩 노인들의 노래자랑도 이끌곤 했었습니다.

나옥자, 위정숙씨의 부채춤
 나옥자, 위정숙씨의 부채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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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채춤을 보고 있는 노인들
 보채춤을 보고 있는 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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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순서는 홍익교회 국악찬양단 ‘천둥’의 사물놀이와 노래였습니다. 나옥자씨의 지도로 지난 6개월간 연습한 작품입니다. 둥둥둥 북소리로 시작된 작품은 길군악과 반길군악, 빠른길군악, 별달거리, 오방진, 휘몰이로 몰아가는 중간에 우리민요가사를 바꿔 부른 ‘새 뱃노래’로 이어졌습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노인들은 힘찬 박수를 보내주셨습니다.

사물놀이, 고전무용, 민요와 단가로 즐거움 나눈 공연

10명의 단원 중 특별한 사정으로 불참한 3명을 제외한 7명이 열성을 다한 공연이었습니다. 저도 ‘천둥’의 한 단원이지만 단원들이 대부분 나이든 사람들인 데다 사물놀이는 결코 만만하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걱정을 많이 했지만 공연은 큰 실수 없이 매우 성공적으로 끝냈습니다.

다음순서는 ‘안효선 무용연구소’ 문하생들인 장영수(51), 송영자(51), 이윤선(43)씨의 우리 고전무용 공연이었습니다. 3명의 무용수들은 밝은 미소와 나긋나긋한 춤사위로 우리 고전무용의 진수를 유감없이 보여주어 노인들의 환호를 받았지요.

세 번째 순서는 국악인 나옥지씨와 위정숙(54)씨의 부채춤 공연이었습니다. 부채춤은 본래 7~8명 이상의 무용수들이 함께해야 멋이 나는 춤이지요, 그러나 공연한 두 사람의 춤 솜씨가 출중하여 숫자부족의 한계를 뛰어 넘는 좋은 공연을 보여주었습니다.

네 번째 공연은 나옥자, 이윤선, 위정숙씨의 설장구와 장구춤이었습니다. 무대가 비좁아 솜씨를 마음껏 펼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역시 멋진 솜씨를 보여주었습니다. 때로는 빠른 리듬으로, 때로는 느린 리듬으로 함께 하기도 하고 주고받기도 하는 등 국악기 장구를 이용한 멋진 리듬과 춤사위로 노인들을 숨죽이며 바라보게 하는 아름답고 멋진 공연이었습니다.

백구가와 남원산성을 열창하는 국악인 나옥자씨
 백구가와 남원산성을 열창하는 국악인 나옥자씨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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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교회 이웃사랑회 회원들, 오른쪽에 서있는 남자가 회장 박진수씨
 홍익교회 이웃사랑회 회원들, 오른쪽에 서있는 남자가 회장 박진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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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공연은 나옥자씨가 단가 ‘백구가’와 남도창인 ‘남원산성’을 불러주었습니다. 스스로 북장단을 치며 부르는 노래솜씨가 역시 전문국악인다웠습니다.

백구야 훨훨 나지를 말어라.
너를 잡으러 내 안 왔다.
승상이 나를 버렸기로 너를 좇아 여기 왔다.
강산의 터를 닦아 구목위소 허여 두고,
나물 먹고 물마시고 팔 베고 누웠으니
장부 살림살이가 요만허면 넉넉허지.
일촌간장 맺힌 설움 부모님 생각뿐이로구나.
옥창앵도 붉었으니 원정부지이별이라.
송백수야 푸른 가지 높이높이 그네 메고,
녹의홍상 미인들은 이리 가고 저리 가고 오락가락 추천헐 제,
우리 벗님 어디를 가고 단오 시절인 줄을 모르는구나.
아니 놀고 무엇을 헐거나. 가끔 틈 봐 가며 놀아 보세.

조금 쉰 듯한 컬컬한 목소리로 부르는 백구가는 노인들의 정서에 딱 맞는 것 같았습니다. 곧 여기저기서 얼쑤! 하는 추임새 소리가 나오기도 했었지요. 남원산성을 부를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팥죽에 넣을 새알을 만드는 이웃사랑회 회원들
 팥죽에 넣을 새알을 만드는 이웃사랑회 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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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무 박영실씨, 이나숙회원 천둥 단원들이 노인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모습
 총무 박영실씨, 이나숙회원 천둥 단원들이 노인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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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분 동안 계속된 공연은 80여명의 노인들에게 매우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노인들은 공연이 계속되는 동안 때로는 박수를 치기도 하고 얼쑤! 추임새도 넣어주며 즐거워했습니다.

국악공연에 즐거워하고 크리스마스 선물에 고마워하는 노인들

모든 공연이 끝나고 돌아가는 노인들에게 이웃사랑회에서 정성껏 마련한 선물을 나누어드렸습니다. 비록 소박한 선물이었지만 노인들은 받아든 선물을 펴보며 매우 기뻐했습니다.

“우리 같은 늙은이들에게 좋은 공연도 보여주고, 누가 이런 선물을 주겠어? 참 고마운 사람들이지.”
노인들이 모두 돌아가고 공연을 마친 ‘천둥’ 국악찬양단원들과 우정출연해준 국악인들도 노인들이 드시고 남은 팥죽으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동안 이웃사랑회 회원들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기도 하고 공연장 정리를 하는 등 바쁜 모습이었습니다. 이들도 대부분 가난한 교인들이었지만 산동네 단칸방이나 지하 셋방에서 외롭게 살고 있는 노인들을 위해서 매주 수요일이면 어김없이 나와 봉사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

선물을 펼쳐보는 할머니의 손이 무척 가냘픈 모습입니다.
 선물을 펼쳐보는 할머니의 손이 무척 가냘픈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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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사랑의 실천인데요, 뭘! 교회가 할 일이 이런 것 아닌가요? 다만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는데... 쑥스럽네요.”
마침 설거지가 한창인 부엌에서 회원들과 함께한 박진수 회장의 말입니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예수탄생을 축하하고 기뻐하는 성탄절을 맞은 산동네 교회 ‘이웃사랑회’와 함께한 노인잔치가 성탄절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노인잔치, #천둥, #홍익교회, #이웃사랑회, #국악한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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