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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관은 그냥 여관이 아니다. 뒤뜰에 있는 장독대만 보아도 주인장의 손맛이 보통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 유선관 뒤뜰에 있는 장독대 유선관은 그냥 여관이 아니다. 뒤뜰에 있는 장독대만 보아도 주인장의 손맛이 보통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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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절에 가는가? 딴 방편이 있는 게 아니다. 그냥 간다. 기도를 드린다거나 신심을 가진 적도 없다. 그렇다고 마음을 비운다거나 수양을 목적하지도 않는다. 그저 마음 편안하게 그곳에 절이 있으니까 간다. 그래서 언제든 마음 내키면 쉽게 찾아가는 곳이다. 어쩌면 무시로 다가설 수 있다는 점에서 교회나 성당 쪽보다 더 좋아하는지 모른다.

나는 왜 절에 가는가?

때문에 나는 덩치가 크고, 위세가 당당한 가람보다는 야트막한 산자락에 휘감겨있는 자그마한 암자가 좋다. 그 곁에 서면 중압감을 느끼지 않을뿐더러 친근감마저 든다. 게다가 법당에서 예닐곱 살 동자승이라도 만나는 날이면 숙연해진다. 어떤 연유로 입문했는지는 모르나 전혀 구김살 없는 그 표정이 좋다. 한껏 세속에 찌든 사람의 눈으로 그것을 부러워한다는 것 자체가 경망스러운 일일 거다.

“동자스님,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그새 승복이 작아졌네요.”
  “네, 성수 처사님, 공양을 열심히 했더니 몸이 좀 자랐습니다.”
  “주지스님은 출타하셨는가 봐요. 강원에 스님 방 댓돌 위에 가지런히 놓인 검정고무님이 안 보이는 것을 보니….”
  “아침 공양하고 해인총림에 종무 보러 가셨습니다.”
  “그렇군요. 모처럼 스님 뵈러왔는데, 근데 경내 감들은 왜 그대로 두셨나요?
  “스님께서 올해는 가뭄이 심해서 산짐승들이 먹을 게 없다고 걱정하시며 하나도 손대지 못 대게 하셨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빨갛게 익은 홍시를 까치들이 파먹었는데, 지금은 아예 새까맣게 졸아버려 그냥 매달려 있어요. 그래도 스님은 그냥 두래요.”
  “암요. 스님 말씀에 옳은 헤아림이 있을 겁니다. 저들도 언젠가 바람에 떨어져 산짐승 입에 들어가겠지요. 그게 큰 스님의 뜻일 겁니다.”
  “헤헤, 이제 성수 처사님도 큰스님 말품을 닮았네요."
  “허허, 이게 면구스럽습니다. 스님!”

그 암자에 가면 해맑은 웃음을 가진 동자승을 만난다. 세상의 모든 이타행(利他行)을 다 담을 얼굴이다. 한때 불교대학에 적을 둔 적이 있다. 심란한 마음을 다스리려는 과욕 때문에 결국 중도에 그만 두었다. 사사로운 마음을 끊지 못한 탓이다. 하지만 두해 동안 절집을 오르내리면서 산문에 관한한 많은 것을 곁눈질하며 알게 되었다. 다만 계(戒)를 지키는 절제와 보시, 실천수행이 다를 뿐 절집 살림도 세간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절집 살림도 세간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짬짬이 가는 곳으로, 이번에는 해남 대흥사를 찾았다. 창녕에서 출발하기엔 하루 일정으로 빠듯한 곳이다. 하지만 순천만을 거쳐 보길도로 향하는 발치라 땅끝마을에 하루 숙소를 정했던 까닭에 넉넉한 마음으로 찾았다. 겨울에는 남도자락 어디를 가나 눈을 만난다. 막 해남읍내를 접어들 무렵부터 시야를 가릴 만큼 주먹 눈이 펑펑 내렸다. 평소 자주 눈다운 눈을 친견하지 못하는 길손에게는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유선관은 단순한 숙식을 제공하는 여관이 아니다. 영화 ‘장군의 아들’과 ‘서편제’, ‘한반도’, ‘취화선’ 등 10여 편 이상의 영화가 촬영된 보기 드문 한옥 여관이다.
▲ 유선관 간판 유선관은 단순한 숙식을 제공하는 여관이 아니다. 영화 ‘장군의 아들’과 ‘서편제’, ‘한반도’, ‘취화선’ 등 10여 편 이상의 영화가 촬영된 보기 드문 한옥 여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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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매표소에 도착하니 드세던 눈발도 멈췄다. 대흥사에 이르는 길목은 주변의 숲길이 너무도 좋아 환상적이라고 표현해야 할만하다. 얼마 전 한 텔레비전 프로에서 ‘1박 2일’을 보았는데, 강호동 일행이 눈길을 헤치며 힘들게 걷던 모습이 생각나 내친걸음으로 걸어갈까 오기도 부려봤다.

짐짓 이십 분 가량 소요되는 거리다. 그런데 매표소 직원이 평일이라 대형버스로 대흥사입구까지 올라갈 수 있으니 그냥 차편을 이용하란다. 할 수 없는 일, 시늉삼아 걷는다는 게 엄두가 나지 않아 못이기는 척 뭉그적거리는 사이 버스는 이미 유선관 여관 앞 주차장에 다다랐다.

유선관 안마당의 일부분이다.
▲ 유선관 전경(일부) 유선관 안마당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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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입구 유선관은 해남윤씨종가고택으로, 피안계곡을 동남쪽으로 끼고 아늑하게 자리 잡아 신선이 자고 갔다는 전설을 따서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400여 년 전의 고택으로 대흥사를 찾는 수행승과 신도들의 객사로 이용되다가 40년 전부터 일반인을 상대로 여관으로 운영되어 오던 중 건물이 워낙 낡아 해남군청에 의해 전통한옥 보존차원에서 수리되었다고 한다.

입구들 들어 서면 안마당 왼쪽 전경이다.
▲ 유선관 전경(일부) 입구들 들어 서면 안마당 왼쪽 전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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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2000년 6월 윤재영(54세, 해남)씨가 운영을 맡으면서 마당을 넓히고, 아궁이 온돌방을 보일러로 교체하여 10개의 방을 갖춰 민박을 할 수 있었다. 산채(고사리, 도라지, 취나물)와 한우 갈비찜, 병어찜, 젓갈류(멸치젓, 어리굴젓, 송어젓 등)를 비롯하여 토장 된장국 등 주인장이 차려주는 남도 전통 한정식은 빼어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다.     

유선관은 정원을 한가운데 두고 ‘ㅁ’자로 ‘장미꽃실’, 동백꽃실‘ 등 10개의 향토색 짙은 방들이 툇마루로 이어져 있다.
▲ 유선관 동백꽃실 유선관은 정원을 한가운데 두고 ‘ㅁ’자로 ‘장미꽃실’, 동백꽃실‘ 등 10개의 향토색 짙은 방들이 툇마루로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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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관은 단순한 숙식을 제공하는 여관이 아니라 영화 ‘장군의 아들’과 ‘서편제’, ‘한반도’, ‘취화선’ 등 10여 편 이상의 영화가 촬영된 보기 드문 한옥 여관이다. 칠년 전 전국환경교사 여름연수회 때 머물러봤는데, 정원을 한가운데 두고 ‘ㅁ’자로 ‘장미꽃실’, 동백꽃실‘ 등 향토색 짙은 방들이 툇마루로 이어져 있다. 특히 다른 곳에 위치한 여관에 비해 주변에는 상가도 거의 없고 아주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다. 특히 여름밤에는 계곡 물소리가 아주 시원하고 주변이 어두워 밤하늘에 쏟아질듯 은하수가 아름다운 장관도 볼 수 있다.

유선관은 단순한 숙식을 제공하는 여관이 아니다

유선장에서 대흥사까지는 5분정도 거리. 유선장을 나와 곧바로 피안교를 건넜다. 피안교는 두륜산 물줄기가 흐르는 계곡에 놓인 다리다. 하지만 올 같은 가뭄에는 계곡의 물이 거의 바닥을 드러내어 쉼 없이 찰찰 흐르는 계곡물의 정취를 만끽할 수 없었다. 하지만 겨울 깊은 때에 남도 여행의 백미가 대흥사인 것을 막상 대흥사에 다다르고 나서 알았다. 대흥사에 오르는 길목은 해묵은 고목들로 에워싸여 결코 지루하지 않다. 막 일주문을 지났을 뿐인데도 깊은 산속 분위기가 난다.

어느 사찰이든 일주문을 거쳐야 경내에 이른다.
▲ 대흥사 일주문 어느 사찰이든 일주문을 거쳐야 경내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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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일주문을 지나면서부터 만나게 되는 흙길은 소박하면서도 정답다. 언제부턴가 전국의 사찰이 일제히 중건을 서두르면서 맨 처음으로 흙길을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덮어 버렸다. 잦은 비와 눈발에 흙탕길이 되는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 편리함을 택한 탓이다. 하지만 변산 내소사와 대흥사는 아름드리 고목을 따라가는 옛길 그대로여서 절을 찾는 마음이 즐겁고 친근하다.

산사 흙길은 소박하면서도 정답다

일주문을 조금 지나면 곧바로 오른쪽에 부도밭이 있다. 하지만 이 곳 부도밭은 여느 부도밭과 다른 느낌을 준다. 왜 그럴까? 당시의 걸출한 선승(대종사, 대강사)과 교학승이 이 절을 거쳤고, 또 이 곳에 그들의 일부가 묻혀 있기 때문이었을까. 인근의 도갑사 부도밭과 아주 다른 느낌이다. 숙연한 기분이 들었다. 

일주문을 조금 지나면 곧바로 오른쪽에 부도밭이 있다. 하지만 이 곳 부도밭은 여느 부도밭과 다른 느낌을 준다.
▲ 대흥사 부도밭 일주문을 조금 지나면 곧바로 오른쪽에 부도밭이 있다. 하지만 이 곳 부도밭은 여느 부도밭과 다른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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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는 조선중기 이후 서산대사와 초의선사 등 수많은 선승(禪僧)과 교학승(敎學僧)을 배출하면서 한국불교의 중심도량으로 성장했다. 한국불교의 가장 대표적인 호국도량의 위상을 간직하고 있다. 대흥사는 지금도 성불(成佛)과 중생구제의 서원을 간직한 뭇 스님들의 정진이 끊이지 않는 청정수행도량이다 

한참을 오르다 보니 밑둥이에 구멍이 움푹 파여 고목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다가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곳에 돌멩이가 가득 쌓여있다. 절을 찾았던 누군가가 신심을 바라며 올려놓은 돌일 게다. 하지만 우리네 삶도 이와 같다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이 더했다.

대흥사 경내에 작은 느낌의 연못이 있다.
▲ 대흥사 안마당에 위치한 작은 연못 대흥사 경내에 작은 느낌의 연못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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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해탈문을 지나 경내 너른 광장에 서서 대흥사 경내 곳곳을 휘돌아봤다. 중앙에는 작은 느낌의 연못이 있다. 스님들이 거쳐하는 도량 뒤로 보이는 두륜산은 휜 눈을 덮어쓴 채 유유자적하다. 마치 그 모습이 부처님이 누워 있는 형상이다. 일전에 아이들과 수학여행으로 들렀을 대와 또 다른 감흥이다. 오른편에 위치한 승보박물관을 뒤로한 채 천불전에 들리고 나서 곧바로 대웅전으로 향했다.

대흥사는 중생구제의 서원을 간직한 청정수행도량

대흥사 대웅전은 특이하게 여타 가람과 따로 떨어져 있다. 그곳에 들어가자면 응진교를 지나게 된다. 두륜산 계곡물은 함께 모여 응진교를 거쳐 흐른다. 그러나 한껏 바닥을 드러낸 계곡은 다만 무수하게 쌓인 단풍잎만 가득했다. 그 때문에 고색창연한 대웅전이 더 드러나 보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종교를 믿든지 간에 내가 있어 마음이 편안한 것이 종교가 아닐까.
▲ 대흥사 대웅전 어느 종교를 믿든지 간에 내가 있어 마음이 편안한 것이 종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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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했던 지인들과 오랜만에 배례하고 공양을 드렸다. 마음이 절로 편안해졌다. 경내에 떠도는 향 내음이 기분 좋게 전해졌다. 어느 종교를 믿든지 간에 내가 있어 마음이 편안한 것이 종교가 아닐까. 근데 대웅전 앞에는 산사에서 보기 드문 열대식물 두 그루가 서 있다. 굉장히 이색적이다. 남도의 따뜻함을 얘기하고 싶은 것인지 아무튼 그 연유가 자못 궁금했다. 

대웅전 앞에는 산사에서 보기 드문 열대식물 두 그루가 서 있다. 굉장히 이색적이다.
▲ 대웅전 앞 열대나무 대웅전 앞에는 산사에서 보기 드문 열대식물 두 그루가 서 있다. 굉장히 이색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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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세찬 바람을 머금은 진눈깨비가 내렸다. 어딘들 여행하고 돌아오는 길이 아름답지 않는 길이 있을까. 좀더 둘러보았으면 하는 애틋한 미련을 남겨 둔 채 처연한 마음으로 땅끝마을 숙소로 향했다. 남도의 겨울밤은 고즈넉하게 다가왔다. 나는 왜 절집에 갔을까?


태그:#대흥사, #유선관, #종교, #청정기도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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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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