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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는 분명 외모적으로 월등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객관적인 '미추'를 떠나 분명 유달리 내 눈에 예쁜 사람이 있고, 나 같은 외모를 좋아해 주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우리 사회의 외모지상주의와 거기에 대한 여러 가지 메시지를 담은 영화 <미녀는 괴로워>의 한 장면)
 세상에는 분명 외모적으로 월등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객관적인 '미추'를 떠나 분명 유달리 내 눈에 예쁜 사람이 있고, 나 같은 외모를 좋아해 주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우리 사회의 외모지상주의와 거기에 대한 여러 가지 메시지를 담은 영화 <미녀는 괴로워>의 한 장면)
ⓒ 미녀는괴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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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끌리는 외모와 왠지 싫은 외모?'

요즘 들어서 많이 느낀 것이지만 사람들 사이에는 이른바 '외모궁합(?)'이라는 게 있지 않나 싶다. 단순히 '잘생겼다 못 생겼다'를 떠나 사람마다 선호하는 외모가 있고 거기에 따라 자신도 모르게 반응하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

남들이 다 잘생겼다(예쁘다)고 해도 내가 볼 때는 아닌 것 같고, 특출난 외모가 아님에도 눈에 확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 단순한 '미추(美醜)'의 차이를 떠난 개개인의 시각차가 아닌가 싶다. 이러한 경향은 어릴 때보다는 나이가 한 살 두 살 먹어감에 따라 더 짙어지는 것을 느꼈다. 학창시절에는 단순히 연예인처럼 예쁜 이성이 미인의 전부인 줄 알았으나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분명 내 눈과 머리를 반응케 하는 나만의 미인이 따로 존재했다.

물론 그 정도에서 그치면 다행이지만 이게 가슴으로 넘어가면 그 다음부터는 좀 골치 아파지는 것 같다. 눈과 머리에 입력된 여성은 편의상 쉽게 잊어버릴 수 있지만 심장 쪽으로 내려가는 경우에는 온몸에 흔적이 남게 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누구에게나 자신이 유달리 선호하는 외모의 상대는 있으며, 또한 이러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세상의 미남-미녀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정해져있다면 거기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은 정말 슬플 것 같다. 물론 그 슬픈 사람들 중에는 나도 포함된다.

나에게 친절한 외모와 나에게 불친절한 외모?

나만의 '착각'인지는 몰라도 이제까지 겪어온 바에 의하면 사람들 중에는 유독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외모를 가진 사람들과 반대 경우가 존재했다. 이같은 경향은 동성보다는 이성이 많았다. 동성 사이에도 이런 게 있을 수는 있겠으나 아무래도 같은 성끼리는 외모가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에게 친절했던 이성 중에는 큰 눈에 오뚝한 콧날, 갸름한 얼굴을 가진 여성들이 유독 많았다. 좀더 깊이 들어가자면 이런 외모는 조화(?)에 따라 다소 딱딱해 보이기도 하고, 굉장히 부드러워 보이기도 한다.

나에게 친절했던 여성들은 이런 외모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뭔가 부드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스타일들이었다. 병원간호사도, 레스토랑 종업원도, 아르바이트 나온 대학생까지도 이러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는데, 뭐 하나를 물어봐도 친절하게 답변해주는 것은 물론 길거리까지 따라나와 안내를 해주는 사람도 있었고, 연락처를 알려주며 모르는 사항이 있으면 전화하라는 사람까지 있었다.

언젠가 우연히 알게 된 어떤 여성과 소개팅을 한 적이 있다. 몇 번 전화통화를 한 뒤에 만나게 되었는데,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난 예감이 좋지 않음을 느꼈다. 둥글둥글한 외모에 약간은 사나워 보이는 눈매 그리고 작은 코, 이제까지 나에게 유독 불친절했던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던 것이 아닌가. '징크스는 깨지라고 있는 거야…' 난 스스로를 애써 위안하며 최대한 친절하게 그녀를 대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친절함은 분위기 자체를 썩 편하게 만들지는 않는 것 같았다. 난 그녀와 식사를 하는 시간이 그리 즐겁지 않았고, 그녀 역시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다지 만족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서로 시계 보는 횟수가 많아졌고, 그 뒤로는 누구도 연락하지 않았다. 그녀와의 식사시간을 생각하면 '째각째각'하던 시계초침 소리 밖에 기억이 안 난다.

그녀와의 지루했던 식사자리에서 난 종종 카운터 쪽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웬 예쁜 종업원이 다소곳하게 서 있었는데 내 시선을 느꼈는지 종종 나와 눈이 마주쳤다. 별 생각은 없었다. 그냥 눈이 가는 곳에 그녀가 있었고, 참 예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식사비를 계산하기 위해 카운터에 섰다. 또다시 그녀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소개팅녀와 달리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참 편한 눈길이었다. 잠시 후 우리 둘은 동시에 한마디를 했다. "우리 어디선가 본 것 같지 않나요?" 그리고는 오랜 친구처럼 "푸하하" 같이 웃었다.

그녀는 무슨 생각으로 나와 같은 질문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사실 난 그녀를 본 적이 한번도 없다. 그냥 뭔가 말은 걸어야겠고, 할 말이 없어서(?) 그런 질문을 했을 뿐이다. 우리는 학교, 사회 등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며 '우리가 어디서 봤을까(?)'에 대해 잠시동안 끼어 맞추기를 했다. 결국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는 결론을 냈고 난 "다음에 혹시 마주치면 아는 척 해요"라고 말하며 나왔고, 그녀 역시 생긋 웃으며 그러자고 했다.

 나에게 친절했던 이성 중에는 큰 눈에 오뚝한 콧날, 갸름한 얼굴을 가진 여성들이 유독 많았다.(영화 <미녀삼총사-맥시멈스피드> 중에서.
 나에게 친절했던 이성 중에는 큰 눈에 오뚝한 콧날, 갸름한 얼굴을 가진 여성들이 유독 많았다.(영화 <미녀삼총사-맥시멈스피드> 중에서.
ⓒ 미녀삼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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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그녀는 나와 길거리에서 몇 번 마주쳤고 그럴 때마다 나에게 아는 척을 먼저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난 그녀를 잘 알아보지 못했고 인사를 해올 때마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녀와 비슷하게 생긴 외모를 많이 봤던 탓도 있지만 스타일이 워낙 변화무쌍해 정말 구분하기 힘들었다.

어떨 때는 모자를 눌러쓴 채 한쪽 눈을 거의 가리는 패션을 했고, 어떤 날은 머리를 뒤로 질끈 묶고 흰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돌아다니기도 했다. 이상할 정도로 여성들을 잘 기억 못하는(초창기에) 난 몇 차례 실례 아닌 실례를 저질렀고 그 뒤로는 더 이상 마주치지도 않았다. 아깝다(?) 몇 번 더 마주쳤다면 그 다음부터는 그런 실례를 하지 않았을 텐데. 어쨌든 그런 외모를 가진 사람들은 이상할 정도로 나에게 친절하게 잘해주었다.

물론 그들은 나한테만 그러는 것이 아닌 유독 친절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비슷하게 생긴 외모에 극진한 태도는 아직도 나를 종종 헛갈리게 하며 아직까지 이러한 '패턴'은 여전히 이어진다.

반대로 나에게 유독 불친절하게 다가오는 외모를 가진 사람들도 있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목구비가 그다지 뚜렷하지 않고 눈과 코가 작으며 약간은 사나워 보이는 여성들이 많았다.

어떤 학원강사는 내가 애써 질문을 하는데도 귀찮은 듯 짜증으로 일관했고, 어떤 건설회사 경리는 아무리 내가 친절하게 웃으면서 대해도 단 한차례도 웃지도 않고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경계심 가득한 눈빛만 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대학 동기 중에도 이상하게 서로 마주칠 때마다 안 좋은 일이 벌어지는 여자 얘도 있었다. 그들이 볼 때는 내 생김새나 분위기가 되게 맘에 들지 않았나 보다.

물론 이러한 것은 나만의 '끼워 맞추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동안 이런 일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 만큼은 사실이고, '맹신'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참고가 되어 '징크스'를 만드는 것 같다. 어쨌거나 정말 다행인 것은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사람들의 외모는 나 역시 선호하는 생김새라는 것이다. 반대가 되었다면 정말이지 얼마나 끔찍했을까. 난 그야말로 항상 짝사랑만 하고 마음에 상처만 입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50살 넘은 중년 여성이 끌렸던 이유?

 내가 50대 중년 여성에게 매력을 느낀 이유는 무엇일까.(영화 <가족의 탄생> 중에서)
 내가 50대 중년 여성에게 매력을 느낀 이유는 무엇일까.(영화 <가족의 탄생> 중에서)
ⓒ 가족의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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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신 적이 있다. 처음에는 큰 병인줄 알고 깜짝 놀랐으나 다행히 조기검진을 평소에 틈틈이 했던 관계로 일주일 정도 입원치료로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어쨌거나 병원에서 하룻밤 이상을 있는다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가끔 가까운 이들의 병간호로 인해 병원을 들락거린 적이 있었지만 그곳 분위기나 냄새는 멀쩡한 사람까지도 환자로 만들어버리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다.

다행히 아버님과 같은 병실에 있던 환자들은 대부분이 너무 좋은 사람들이었다. 오랜 시간 병으로 시달리는 환자들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다들 얼굴 표정이 밝았고 찡그리기보다는 한 번이라도 더 웃으려고 노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동안 사소한 것에도 스트레스 받고 힘들어 했던 내 입장에서는 참으로 반성되는 시간이었다.

그중에서 어떤 암 환자 분의 보호자로 있었던 아주머니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나이는 아무리 적게 봐도 50살 이상으로 보였는데 잘 웃지 않음에도 얼굴 표정이 참 밝아 보였고, 인간적인 분위기가 온몸에서 뚝뚝 흘렀다. 낯을 가리는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먼저 그 아주머니에게 다가가서 이것저것 말도 걸고 친하게 지내기 위해서 노력했다. 왜 그랬을까, 순전히 아무 생각 없이 본능(?)이 시킨 행동이었다.

여자로서의 매력? 아니다. 내가 아무리 노총각이라지만 어머니뻘 되는 사람을 이성으로 느끼지는 않는다. 무엇인가 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지만 여성으로서의 그것과는 다른 의미였다. 오랜 시간 남편의 병 시중으로 지쳤을 법도 한데 아주머니는 굉장히 밝았다. 주변 사람들을 틈틈이 챙겨주는 것은 물론 검사를 위해 단식중인 아버님 옆에서 내가 밥을 먹지 않았다는 것도 알아주고, 어서 식당에 다녀오라고 등을 떠밀기도 했다.

아주머니는 젊었을 적 무척 건강한 미인이었을 것 같다. 다른 병실 아주머니들처럼 화장도 잘 하지 않고 체육복 차림이었지만 뭐랄까 생동감이 온몸에서 넘쳐흘렀다. 밝음-건강-자상함-인간미 등이 느껴졌다.

어쩌면 나는 살면서 가족들에게서 느꼈던 일부의 갈증을 그 아주머니에게 봤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바로 옆에 있는 가족들도 그렇고, 친척들도 그렇고, 우리 가족들은 대체적으로 딱딱한 편이다. 물론 무뚝뚝함 속에 인정이 숨겨져 있어 '한국정서의 정'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가끔은 대놓고 까불고, 서로 애정공세(연인의 그것과는 다른)를 원하는 내 취향과는 어딘가 모르게 다르다. 왜 나는 우리 가족들의 전체적인 대세(?)를 벗어난 스타일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성에 안찰 때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난 가끔은 아무 일이 없어도 가족들끼리 그냥 커피나 한잔 먹으면서 수다도 떨고 싶고, 잘잘못을 떠나서 가족의 일이라면 무조건 편부터 들어주고 시작하기를 바랄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 가족의 전반전인 성향은 갑작스럽게 만남을 가지려면 무엇인가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설사 가족이라고 해도 '시시비비'는 제대로 따져야 한다.

그냥 갑자기 우울해지면 아무것도 묻지 않고 토닥토닥 안아주고, 가족 일이라면 설사 잘못했어도 핏대 세워주며 편들길 바라는 내 취향과는 자주 차이점을 보이고있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나에게 가족이라는 존재는 머리보다는 가슴이 먼저 접근하는 대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물론 우리 가족 역시 여느 가족과 마찬가지로 서로를 사랑한다. 하지만 그 표현과 정도의 차이에서 나는 조금은 목말라 있다.

그래서인지 난 미래의 장모님은 다소 비합리적이라도 좋으니 억척같이 가족 편을 들고 사랑해주는 그런 스타일이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나는 병원에서 본 그 아주머니에게서 그런 향기를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너무 인간적이고, 가족애가 강한 듯한 그런 느낌 말이다.

그 아주머니를 보면서 난 '저분의 자식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혹시 딸이 있을까? 딸이 있다면 무지 예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도 나는 그분의 딸을 볼 수 있었다. 하필 아버지가 퇴원하는 날이었다는 게 조금 아쉬웠지만 자신의 어머니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 회사를 나가지 않는 주말마다 교대를 하러 병원으로 온다는 얘기를 듣고 '역시 그 어머니에 그 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결혼하기 전에 집안을 보는 것일까? 딸은 썩 뛰어난 미인은 아니었지만 기본 이상은 되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분위기 자체가 굉장히 여성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오고 몇 시간 후 아버지의 퇴원절차를 밟아야만 했고, 결국 '아주머니의 딸은 저렇게 생겼고, 저런 분위기구나…'라는 것을 잠시 느끼고는 병원을 나섰다.

나눠본 대화라고는 가기 전에 서로 인사한 것 밖에 없다. 그녀는 당시 간호사와 함께 자기 아버지의 상처를 돌보던 중이었는데, 그 와중에도 주변사람들에게 인사하고 있던 내게 먼저 다가와 환한 웃음을 지은채 허리를 깊이 숙이며 인사를 건냈다. 무척 편했다. 잘 가라는 인사가 첫 마디였다는 게 조금 아쉬웠지만 말이다.

앞으로 어떤 여자를 아내로 맞을지 처갓집은 어떤 분위기일지 모르겠지만, 그 아주머니와 그 딸 같은 분들이 사는 집으로 장가가고 싶다는 막연한 상상을 해본다.

덧붙이는 글 | ☞ 다음호 예고: 내 인생의 유일했던 '화이트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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