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옛날 옛날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수학여행을 어디로 갔을까.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언니가 중학교 때 수학여행을 경주로 다녀왔던 것을 기억한다. 중학교 때 수학여행을 가지 못했던 나야 그때의 추억의 사진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언니가 찍어 온 흑백사진에서 고분들 앞에서 사진을 찍은 것을 본 기억이 난다.

 

요즘 경주는 ‘추억의 수학여행’프로그램이 인기라고 한다. 중년에 교복을 입고 경주에 수학여행 왔던 추억을 되살려 보는 추억여행인 셈이다. 하지만 정작 요즘 중·고생들은 수학여행을 이곳 경주로 오는 것은 극히 보기 드물다는데, 제주도, 설악산, 혹은 해외로 빠지기 때문이란다. 한때 수학 여행지였던 경주는 그래서 ‘추억의 수학여행’프로그램을 통해 경주를 살려보려는 노력인 듯 하다.

 

막상 경주에 와서 보니 양산에서 경주는 가까운 곳이다. 이렇게 가까이 두고도 올 생각을 별로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오늘 하루, 나는 마치 이제 한글을 깨우치는 어린 아이처럼, 신라의 문화가 꽃피었던 경주의 문화유적지와 유물들을 둘러보며 신기해한다. 밤이 내릴 채비를 하고 있는 경주시내로 들어선다.

 

경주국립박물관

 

경주국립박물관에 도착하니 어느새 오후 5시 10분이다. 박물관은 오후 6시까지 개장하는데 주말에는 1시간 연장이라고 한다. 벌써 어둑어둑해진다. 자연히 발걸음이 빨라진다. 박물관 넓은 마당에 들어서자 저만치 오른쪽에 성덕대왕신종(일명 에밀레종)이 보인다. 성덕대왕신종 앞에서 견학 온 듯한 학생들이 한데 모여 있고 맨 앞에서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도 보인다.

 

 

성덕대왕신종은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29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높이가 3.75미터, 입지름 2.27미터, 두께 11.25센티미터이며 국립 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한국최대의 종으로 에밀레종, 또는 봉덕사종이라고도 한다. 종명에 의하면, 신라 35대 경덕왕이 그의 아버지 33대 성덕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큰 종을 만들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자, 그의 아들 혜공왕이 뒤를 이어 7712년(혜공왕7)에 구리 12만근(27톤)을 들여 완성하고 성덕대왕신종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마당 한쪽에 있는 성덕대왕신종을 둘러보고 어둠이 짙어가고 있어, 바쁜 걸음으로 박물관으로 들어간다. 늦게 온 탓에 천천히 들여다보지 못하고 대략 둘러본다. 박물관도 그렇지만 경주는 그야말로 시 전체가 하나의 살아있는 노천박물관인 듯 하다. 이곳, 경주국립박물관에는 신라 천년(992년)왕국의 역사와 문화, 유물들이 총 집합해 모아놓은 곳이다. 992년간 신라의 수도였던 역사가 살아 숨쉬는 경주는 처음에는 서라벌이라고 했다가 삼국통일 이후 금성이라 불렸다고 한다.

 

경주평야에 있던 여섯 부족의 촌장들이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면서 건국된 나라로 신라는 그 후 밖으로 주변의 여러 나라들을 통합하고, 안으로 정치체계를 발전시켜 나갔다고 한다. 그 중심에 22대 지증왕대에는 국호를 신라로 확정지었고 23대 법흥왕대에는 불교를 승인해 찬란한 불교문화의 막을 올렸고, 고구려, 백제를 병합하고 677년에는 삼국을 통일하는 성업을 달성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경주, 신라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경주국립박물관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신라의 유산들을 관람하고 있었다. 어린 자녀들과 함께 온 사람들이 많다. 박물관을 나왔다. 하루 만에 어찌 천년에 가까운 신라를 읽을 수 있으랴. 주변에는 안압지와 경주 엑스포 등이 보인다. 우리는 첨성대로 향한다.

 

박물관 맞은편에 안압지를 비롯해 중요문화유산들이 두루두루 펼쳐져 있다. 박물관에서 나와 좌회전 신호를 받고 가다보니 안압지가 보이고 조금 더 가자 첨성대 표시판이 나왔다. 주차비는 1천원이다. 천마총, 첨성대 등은 밤 10시까지 개방하고 있다고 주차 요원이 일러 주었다. 첨성대 맞은편에는 출처 없는 고분들이 여러 개 어둠 속에 드러나 보인다. 크고 높은 무덤들은 마치 제주도에서 멀리서 바라보던 오름과 흡사하다.

 

어둠 속에 불빛을 받아 드러나 보이는 커다란 고분들...이곳 경주야말로 삶과 죽음이 우리 현실 속에 공존한다는 것을 현상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곳이 아닌가. 여길 찾는 사람들은 무덤들 사이를 지나다니면서 좀더 삶에 대해 숙연해질까. 고분들 사이를 자주 걷다보면 죽음과도 친숙해질까, 궁금해진다.

 

첨성대는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천문관측대?

 

첨성대가 어둠 속에 밝게 드러나 보인다. 사실, 나는 첨성대가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줄로 상상하고 있었는데 막상 와서 보니 넓은 평지에 우뚝 솟아 있다. 어둠 속에 드러난 첨성대는 불빛을 받아 신비스러워 보인다. 첨성대 관람료는 500원, 관람료를 지불하고 안으로 들어서자 첨성대 앞 마당한쪽에 귀여운 어린 아이들이 앉아 있고 그 앞에서 설명하고 있는 선생님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늦은 저녁시간에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첨성대를 찾은 것을 볼 수 있다. 가까이 가서보니 첨성대는 밤에도 잘 볼 수 있도록 첨성대주변을 불을 밝히고 있다. 둘러싼 불빛이 첨성대를 향해 빛을 발하고 있어 태고의 신비스러움을 더하고 있는 듯 하다. 경북 경주시 인왕동에 위치해 있는 경주 첨성대(국보 제31호)는 신라 선덕여왕(632-647)때에 만든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관측대로 선조들의 높은 과학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우리 문화재다.

 

 

천문대는 화강석을 가공하여 기단 위에 27단의 석단을 원통형 곡선으로 쌓아올려 그 위에 방형의 장대석을 두 겹으로 우물정자와 같이 얹어 천문을 살피도록 했다고 한다. 꼭대기의 #(우물정)자 모양은 정확하게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다고 한다. 첨성대의 규모는 밑변의 지름이 5.17미터, 높이 9.4미터이며 석조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신라시대의 유물이다.

 

그런데 경주시내 한복판에 우뚝 솟아 있는 이 첨성대가 별자리를 관측하던 첨성대라는 주장과 하늘에 제를 올리던 제단이라는 등의 엇갈린 주장이 끝임 없이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천마총 가는 길

 

첨성대에서 나와서 바로 맞은편에 있는 대릉원으로 향한다. 경주시 황남동에 위치해 있는 대릉원은 ‘미추왕을 대릉에 장사 지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에서 딴 것으로, 신라시대의 왕과 왕비 등의 무덤 23기가 모여 있는 곳이다. 고분은 모두 평지에 자리 잡고 있는 신라시대의 독특한 무덤군으로, 신라 미추왕릉, 경주 황남의 고분군 등 크게 7개 지역으로 나뉜다고 한다.

 

무덤 발굴 당시, 신라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금관, 천마도, 유리잔 및 각종 토기 등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 출토된 문화재의 보고다. 출입문을 들어서자 어둠에 둘러싸인 호젓한 숲길로 이어진다. 잘 닦여진 길, 크고 오래된 나무들이 가로등 불빛 아래 드러나 보이고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있다. 마치 고궁산책을 하고 있는 듯하다. 얼마쯤 숲 속을 걸어가자 어둠 속에 실루엣을 드러내는 고분들이 길 양쪽에 군데군데 보인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드러나 보이는 뒷동산만한 무덤들... 이 길을 자주 걷는 사람들은 저절로 철학자가 되지 않을까 싶다. 주검들이 누워 있는 고분들, 그 사이로 난 길을 걸으면서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할까.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꽃피웠던 그 어떤 곳도 결국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 권력과 명예와 황금으로 가득한 날마다 잔치하는 날 같은 삶일지라도 모두가 놓고 간다는 것을 생각할까.

 

우리의 육신은 결국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내게 주어진 삶 그것이 한 호흡 같다는 것을 생각하며 영원에 대해 생각하게 될까. 무덤과 무덤 사이를 걷는 길엔 마음이 더 고요해지고 숙연해지는 것 같다. 한참을 더 걸어가자 천마총이 보인다. 천마총 입구 안으로 들어간다. 경주시 황남동 고분군에 속하는 제155호인 천마총은 1973년에 발굴된 고분이다.

 

천마총은 자작나무로 만든 말다래(말을 탈 때 신발의 흙이 말에게 묻지 않도록 쓴 커버)에 그려진 천마도가 나왔다고 해서 천마총이라고 하였다고 전한다. 그것과 함께 장신구류가 8766점, 무기류 1234점, 마구류 504점, 그릇류 226점, 기타 796점으로 모두 1만1500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었고 그 중 일부는 경주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한다. 천마총을 통해 신라시대의 무덤들이 어떻게 지어졌는지 그 내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어두운 터널과 같은 무덤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는 기분은 아주 묘하다. 천마총을 비롯해 신라시대의 고분 23기가 모여 있는 대릉원, 오랜 세월동안 함께 서 있는 나무들 사이로 밤에 걷는 길은 포근하고 아늑하다. 이곳은 생과 사가 함께 공존하고 있는 곳이고 친근하게 벗 하고 있는 곳이다. 어딘들 그렇지 않으랴. 다만 이곳 무덤들 사이로 걷는 것은 더 가까이, 더 실감나게 느낄 수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집으로 간다. 벌써 6시 40분, 어둠이 물컹거린다. 경주 IC를 지나고 천년의 신라 수도 경주를 뒤로하고 우리가 있을 삶의 공간으로 간다. 한 호흡과 같은 삶, 그 선물을 지금도 호흡하고 있음에 감사하면서.

ⓒ 이명화

 

덧붙이는 글 | 11.22일(토)에 경주에 다녀왔습니다. 


태그:#경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