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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끝이자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立冬) 다음날인 지난 토요일(8일), 모교인 '군산 구암초등학교 총동창회 추계 야유회'에 다녀왔습니다. 가족동반 참석을 환영한다는 말을 듣고 아내와 함께 가려고 했는데 초등학교 모임이 겹쳐 혼자 다녀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나라 소정방의 칼에 죽어간 오성인(五聖人)의 묘가 있는 오성산과 금강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백제 향기가 그윽한 구암초등학교는 1945년에 개교했으니 그리 오랜 전통과 역사를 가진 학교는 아닙니다. 하지만, 어촌과 농촌, 도시와 시골의 맛이 함께 풍기는 정겹고 아늑한 배움터였지요.

 

1963년 졸업 이후 처음 참석이라서 어색하더군요. 해서 전국의 명물이 되어버린 페이퍼코리아 철길을 따라 알아볼 수 없도록 달라진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으며 추억여행을 하다 학교에 도착하니까 함께 뛰놀던 선·후배들이 반갑게 맞아주어 즐겁고 의미 있는 하루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동기들이 많이 참석하지 않아 서운하더라고요. 하지만, 공설운동장 건너 피난민촌에 살았던 용길이, 새침때기처럼 말없이 얌전하기만 했는데 장로가 된 지금도 조용한 석인이, 어느새 의젓한 교장선생님이 되어버린 행룡이를 만나 웃고 떠들다보니 코흘리개시절로 되돌아간 착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제가 학교에 다닐 때만해도 교문을 나서면 바로 앞에 공동 우물과 미나리꽝이 있었고 담은 측백나무로 되어 있었지요. 또 농수로 역할을 했던 개울과 들녘이 펼쳐져 있어 가을 추수철이 되면 탈곡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는데 지금은 자동차 오가는 소리가 귀를 따갑게 하더군요.

 

6학년 때 교실 건너편에는 군산역에서 고려제지(페이퍼코리아)를 오가는 철길이 있었는데요. 공부시간에 기차가 기적을 울리며 지나가면 멍하니 바라보며 사색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저 기차를 끝까지 타고가면 서울도 갈 수 있겠지···"라며 서울을 동경하고 꿈을 키웠으니까요.

 

1년 만에 열린 등반대회라고 하는데, 생활에 쪼들리면서도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연령층의 동창들이 참석했더라고요. 자녀와 조카 등 가족이 참석한 동창도 여럿 있었고, 애인과 주말을 알뜰하게 즐기는 30대 초반의 젊은 동창들도 있어 보기가 좋았습니다.

 

청량산(淸凉山) 문수사(文殊寺)의 단풍숲

 

전남 장성과 전북 고창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청량산(淸凉山)은 문수산, 충령산, 영축산 등으로 불리며 문수사(文殊寺)를 감싸고 있는 산자락에 조림된 편백나무와 삼나무숲이 독특한 색깔의 단풍을 물들게 한다고 합니다.   

 

문수사(文殊寺)는 선운사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찰입니다. 그래서인지 주말인데도 한적했는데요. 공기가 맑고 경사가 원만해서 조용한 곳을 좋아하거나 공부하기에 적합한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수사는 백제 의자왕 4년(644년)에 당나라 청량산에서 수도를 하던 자장율사가 문수보살을 만나 깨달음을 얻고 돌아와 지었는데 지세가 중국의 청량산과 비슷하다 하여 도량으로 삼고자 세웠다고 합니다.

 

1천년이 넘는 문수사는 역사적으로 가볍게 봐 넘길 수 없으며 공기가 맑고 한적해서 풍경소리가 유달리 크게 들렸는데요. 운치 있는 단풍이 숲을 이루고 있는데도 관광객 발걸음이 뜸해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청량산 문수사 글씨가 선명하게 적힌 일주문을 지나면 문수사 입구까지 울창한 단풍나무가 하늘을 덮어 이곳을 찾는 이들로 하여금 오색영롱한 꽃대궐로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안내문은 청량산의 단풍숲을, "일주문에서 시작되는 단풍숲길은 지난 2005년 천연기념물 제463호로 지정해 보호해오고 있으며 주변의 단풍숲 나무들은 적게는 100년에서 많게는 400년 가까이 되었고, 500여 구루가 넘는 나무들이 자태를 뽐내며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라고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토요일의 청량산은 말그대로 만산홍엽(滿山紅葉)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오색으로 물든 이파리들은 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그대로 투과시키며 가벼운 산들바람에 춤을 추고 있었는데요. 한여름에는 싱그러운 녹색 이파리의 단풍나무가 하늘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한 터널을 이루고 있어 더위가 침입을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일주문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단풍숲이 시작되는데 문수사까지 300m 정도 걸어 올라가며 형형색색의 단풍을 감상했습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지치는지 모르고 걷다 보니 발걸음이 경쾌하고 마음이 상쾌해지더라고요.

 

문수사 입구 계단을 오르려고 하는데, 뒤따라오던 일행 중 한 사람이 "야뜰아, 저 산 단풍 징말로 끝내준다!"를 연발하며 감탄사를 터뜨리더라고요.  그의 고함소리에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 없었는데 형형색색으로 물든 단풍숲이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해발 320m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문수사 골짜기에는 내원암 터가 있어 여름에는 돌계단 옆에 있는 계곡으로 시원한 물이 넘친다고 하는데 긴 가뭄으로 낙옆만 쌓여 있고 물소리가 들리지 않아 안타까웠습니다. 70년대만 해도 어지간한 산에 오르면 겨울에도 얼음 밑으로 물흐르는 소리가 들렸거든요.

 

돌계단 좌측 경사진 길을 조금 올라가니까 문수사와 청량산 자락이 한눈에 들어왔는데, 대웅전과 문수전, 한산전, 종각 등이 들어서 있는 경내에서는 보수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습니다. 기와에 ‘친구들의 우정 영원하길···’이라고 적힌 기와를 들고 활짝 웃는 얼굴로 단체사진을 찍는 후배 일행이 무척 행복해보였습니다. 저도 따라서 행복감을 맛보았으니까요.

 

문수사로 들어가는 두 갈래 길 돌계단 좌우로 펼쳐진 단풍나무 숲은 노랗고 빨간 단풍나무들이 하늘을 덮어 꽃밭에 온 것 같다고 착각할 정도로 장관입니다.

 

청량산, 문수사 단풍은 백제 의자왕 4년에 문수사의 사찰림으로 보호되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단풍나무숲이라고 합니다. 이 숲의 단풍나무 크기는 직경 30~80cm, 높이 10~15m, 흉고둘레 2m 이상 3m에 이르는 단풍나무 노거수를 다수 포함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단풍나무 노거수 외에도 고로쇠나무, 졸참나무, 개서어나무, 상수리나무, 팽나무, 느티나무, 등의 노거수 등과 산딸나무, 물푸레나무, 동백, 박쥐나무, 작살나무 등이 혼재하고 있었습니다.

 

문수사 대웅전은 조선 고종 13년(1876년)에, 뒤편에 있는 문수전은 영조40년(1764년)에 다시 지었다고 하는데요. 대웅전과 문수전을 감싸고 있는 청량산 자락의 단풍은 탄성을 절로 나오게 했습니다.

 

대웅전에는 시도유형문화재 제207호로 지정된 목조삼세불상이 좌정하고 있었는데 세상의 번뇌와 갈등을 모두 씻어내라고 말하는 것 같았고, 문화재자료 제181호인 문수전의 석조문수보살상(석조승상)은 두 손을 모두 배 부분으로 모아 오른손을 아래로 왼손을 위로 포개고 장삼을 걸치고 있었는데 탁자에 감이 하나 놓여 있고 표정이 회화적이어서 마음을 끌었습니다.

 

가벼운 등반을 곁들인 총동창회 야유회를 주관한 1년 후배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TV 뉴스와 신문을 보며 받은 스트레스를 선홍빛으로 물든 문수사 단풍숲을 감상하며 씻어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 # 천연기념물 463호로 지정된 고창 은사리 문수사의 단풍숲에는 임권택 감독의 혼과 열정이 살아 숨쉬는 금곡영화마을이 있는데 ‘태백산맥’을 비롯한 ‘내마음의 풍금’, ‘침향’, ‘만남의 광장’ 등의 명화가 제작 촬영된 곳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 문수사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고창IC→고창 입구 사거리에서 우회전→23번 국도→고수삼거리에서 좌회전→21번 군도→문수사 


태그:#단풍, #문수사, #고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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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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