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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과서 문제로 떠들썩하지요. 또한 교원평가제로 시끌벅적하네요. 아이들 역사관과 교육 환경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는데 정작 주인공은 빠져 있어요.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잠시 제쳐놓고 보면 어른들이 자기 입맛대로 아이들을 길들이려고 하고 있지요. 아이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고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지요.

 

<아이들에게 배워야 한다 - 이오덕선생님이 우리에게 남기신 말씀>(2004, 길)은 여러모로 어른들의 시선을 돌아보게 하지요. 2003년 돌아가신 이오덕 선생님이 2002년 월드컵과 교육을 엮어서 쓴 이 책은 지나치게 줄을 세우고 입시시험으로만 내모는 현실을 따끔하게 따져요. 어떻게 아이들을 키워야할지 읽는 내내 고민하게 되네요.

 

종종 아이들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차마 소개하기 힘들 정도로 거칠고 험할 때가 많아요. 어른들은  ‘요즘 아이들은 버릇이 그르구나’라며 얼굴을 찌푸리시다가 고개를 돌리며 혀를 차곤 하지요. 그러나 결단코 날 때부터 아이들이 그렇지 않았고 학교가 그 지경으로 만들었다고 지은이는 분개하네요. 

 

오직 외우기를 경쟁시키고 시험을 쳐서 점수를 매기고 성적 차례를 매겨서 광고하고 하는 그 현장이 너무나 끔찍하기에 아이들의 몸과 마음은 황폐해지고 폭력이 난무하는 판이 되었다고 진단해요. 그런 나날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이 어떻게 고운 말을 쓸 수 있겠어요. 어떻게 상상력을 키우고 건강하게 자라겠어요.

 

일과 놀이와 공부가 하나가 된 삶

 

지은이의 주장을 옮기면 학교와 교육을 바꿔야 하지요. 학교를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고 아이들을 믿고 그들의 한없는 가능성을 믿고, 그 믿음을 바탕으로 새로운 학교를 만들어야 해요. 국민을 믿어야 민주주의가 되듯이, 아이들을 믿어야 교육이 바로잡히니까요. 아이들을 믿지 못하는 어른들이 문제지요. 어른들의 이런 생각을 바꾸지 않고서는 참된 교육이 될 수 없어요.

 

그는 온몸으로 그 무엇을 하는 게 좋은 교육이라고 하지요. ‘무엇을 만들고, 기르고 가꾸고, 살펴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이다. 일과 놀이와 공부가 하나가 된 삶을 즐기는 것이다. 그 삶을 말로, 글로, 그림으로, 노래와 춤으로 마음껏 나타내면서 자라나는 것이다. 이렇게 즐거운 삶을 학교에서 보낸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그 삶을 그대로 이어가는 행복한 시민이 되고 행복한 국민이 될 것이 틀림없다’고 말하며 책씨름만 강조하는 교육 실태를 비판하죠.

 

또한 학벌폐해를 꼬집지요. 학벌로 값을 매기고 사람을 쓰는 이 망국 풍조를 하루빨리 뜯어고치라고 하지요. 모든 이력서에 학력을 적지 않도록 하면 학벌 연줄이 줄어들 거라고 예상하며 당장 위정자들이 마음만 먹으면 고칠 수 있다고 해요. 온 국민이 깨닫고 목소리 높여 실행하면 좋겠지만 그 전에 학벌 지연 사회를 깨뜨려 나가야겠지요.

 

한국에서 교육을 받고 자란 어른들은 교육의 문제점을 얘기할 때는 너도나도 합창을 하지만 정작 바꾸지는 않은 채 그대로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있지요. 어른들이 달라지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은이는 지적하지요. 모두 너무나 오랫동안 억눌려 살아오는 동안 그 질서에 길들여져서 참된 것을 볼 줄 모르게 되었다고 해요. 어른과 아이의 관계가 억누르고 눌려있는 관계라고 얘기하며 이제는 ‘아이들을 믿고, 우리 것을 믿고, 그래서 모든 것을 바꿔나가야 한다. 아이들에게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네요.

 

2002년 한일월드컵을 따져보자

 

그는 교육과 함께 한국 현대사에 큰 변화를 가져온 2002 한일월드컵에 주목하지요. 광장에서 쏟아져 나온 붉은 물결을 45년 광복과 비교하네요. 지금껏 한 곳에 많은 사람들이 모인 적은 많았지만 광복 때 기뻐서 민중이 절로 나와 소리치던 모습이 57년 만에 다시 벌어졌다고 분석하지요. 그와 같은 해방의 소리를 다시 찾아 가지기 위해, 그 기쁜 소리를  삶에서 살려내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자고 하네요.

 

사람들이 찬탄해 마지않았던 히딩크에 대해서 그도 한마디 거들지요. 그가 히딩크에게 탄복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말한 대로 학벌, 인맥을 아주 무시해버리고 선후배의 층계에 따라 위아래를 구분하는 질서를 여지없이 깨뜨려버린 것이죠. 어떤 유력한 사람의 추천 따위는 조금도 거리끼지 않고 순전히 사람 위주로 실력만 보고 선수들을 기용한 것에 박수를 보내지요.

 

그러나 칭찬만 하지 않지요. 이런 목소리는 예전부터 있어왔는데 한국 스스로 못해서 ‘백인 남성’에게 맡겨야 했던 씁쓸한 부분을 건드리네요. 이 밖에 월드컵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살펴가며 걱정하지요. 먼저 사람들이 몇 천 번 외쳤던 대한민국이 마음에 걸린다고 하네요.

 

한국이면 그만이지, 어째서 그 앞에 대자를 붙였나. 오늘날 세계에서 나라 이름에 크다는 말 대자를 붙인 나라가 어디 있는가? 우리 밖에 없다. 우리보다 땅이 열배 백배 큰 나라도 대자를 붙인 나라는 없다. 내가 알기로 지난날 대자를 나라 이름 앞에 붙인 나라가 둘 있었다. 하나는 대일본제국이고 또 하나는 대영제국이었다. 둘 다 제국주의로 남의 나라를 침략하고 강도질을 한 나라였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큰 소리로 ‘대한민국’을 떠들며 우월감을 느끼며 뭔가 된 것 같은 모습을 돌아보게 되네요. 빈부양극화는 점점 커져 날로 살기 힘든 사회이고 서해에서는 싸움이 벌어져 사망자가 발생하는 분단된 현실에 침묵하는 ‘대한민국’이지요. 솔직하게 말해서 부끄러운 이름이지요. 강박같이 자랑스러움을 내세우는 모습은 여전히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고 민족, 국가라는 허울에 사로잡혀 있다는 증거지요. 조선이 끝날 무렵, 높은 자리에서 정치하는 사람들 손에서 만들어진 ‘대한제국’이 떠오릅니다.

 

강요한다고 자랑스러운 한국이 됩니까

 

지은이는 축구 경기 전에 나라 노래가 나올 때, 선수들 표정과 행동에 관심을 갖지요. 그는 ‘한국 애국가처럼 엄숙한 마음이 되어 불러야 하는 국가는 일본의 기미가요밖에 없는 줄 안다. 우리 아이들은 애국가를 부를 때마다 마음이 얼어붙는다’라며 걱정하지요. 한국 선수들이 꼿꼿이 서서 근엄한 태도를 보일 때 외국 선수들은 발랄함을 보여줘요. 그들의 표정은 자연스럽고 부동자세는커녕 동료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몸을 풀기도 하지요.

 

사람을 꼼짝 못하게 하고 굳어지게 하는 노래와 사람의 마음을 확 풀어주어서 기쁘게 하는 노래 가운데 어느 게 더 좋을까 그는 묻네요. 나라 사랑은 진지하게 노래 부른다고 생겨나지 않지요. 밝은 역사만 가르친다고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아요. 나라를 사랑하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어릴 때부터 자연 속에서 즐겁게 뛰어놀도록 해야 하지요. 엉터리로 애국심을 키우려는 사람들에게 그는 이렇게 반문해요.

 

산과 들에서, 논밭에서, 온갖 풀과 나무와 짐승들과 함께 어울려 노래하면서 살아보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그 땅과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방 안에 갇혀 아귀다툼만 했던 사람들에게 자라나서 참된 애국심이 손톱만치라도 생겨난다면 그것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물론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끈질기게 한국인들을 물고 늘어졌던 열패감에서 많이 벗어난 게 사실이에요. 현대사에 강대국에 치이고 일제침략을 35년 동안 겪고 한국전쟁을 치렀으며 독재정권에서 가난하게 살았던 서러운 과거가 결코 만족스럽지는 않으니까요. 그렇다고 무작정 ‘한국은 대단한 나라야, 나라를 자랑스러워하고 사랑해라’라고 할 수 없지요.

 

진실에 맞닥뜨리게 하고 절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도록 해야 하지요. 애국심은 강요할 수 없지요. 한국 교육은 진실을 덮어두면서 역주행을 하려 하지요. 얼마나 한국 교육이 심각하면 반부패지수가 아시아 4개국 가운데 꼴찌를 했지요. 국제투명성기구(TI)의 11월 7일 발표에 따르면 한국은 10점 만점에 6.1점으로 인도, 방글라데시, 몽골 등 다른 조사대상국 보다 낮았지요. 지금 한국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고 어떻게 키워내야 하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한국축구가 피나는 노력에 의해 이루어졌듯이 민주의식, 열린 사고도 많은 노력과 의지를 필요로 하지요. 가만히 시간이 흐른다고 민주의식이 자라나지는 않지요. 경쟁력만을 외치며 아이들을 암기 기계로 만드는 한국 교육은 크게 바뀌어야 하지요. 민주시민으로 키워내는 공교육, 홀로 우뚝 서서 살아가고 생각할 수 있게끔 아이들 중심으로 교육이 이뤄져야 해요.


아이들에게 배워야 한다 - 이오덕 선생이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말씀

이오덕 지음, 길(2004)


태그:#이오덕, #월드컵, #교육개혁, #교과서논란, #히딩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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