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4월 방송됐던 최진실 주연 <내생애 마지막 스캔들>의 한 장면
 지난 4월 방송됐던 최진실 주연 <내생애 마지막 스캔들>의 한 장면
ⓒ iMBC

관련사진보기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

불혹의 국민배우 최진실씨가 2일 새벽 세상을 떠났다. 두 아이를 홀로 기르던 싱글맘, 20년 연기생활에서 더 이상 나는 A급 여배우가 아니라고 당당하게 외쳤던 똑똑한 여자 최진실. 그녀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머나먼 황천길로 발길을 돌렸다. 

무엇이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했을까. 사채와 악성 루머, 이혼과 육아, 가장으로서의 버거움, 톱스타의 고독 등 온갖 분석과 추측, 억측이 난무하고 있다. 그러나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정확한 진실은 시간이 훨씬 지나야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것과 상관 없이 최진실씨의 죽음이 우리 사회에 던진 충격은 크다.

신경정신과 전문의들은 최진실씨의 죽음이 한국 사회에 무엇을 던졌는지 고민해 보라고 권한다. 별로 자살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 선망의 대상, 누구나 동경하는 꿈의 삶을 살았던 최진실씨가 자살했다는 것은 한국사회의 '쌩얼'을 드러내는 것과 다름 아니라고 지적했다.

톱스타의 자살... 한국사회의 쌩얼을 드러내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조중근 박사는 "겉으로 보여지는 것과 달리 내면이 굉장히 허한 삶이었을 수 있다"며 "한국 사회가 톱스타의 외형적인 것만 조명하는 데 급급하는 동안 정작 스타들의 속은 곪아가고 있었을지 모른다"고 진단했다.

조 박사는 이어 "유명 스타들이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은 쉽지 않다"며 "만일의 소문을 늘 경계하기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는 문턱이 굉장히 높은 편"이라고 전했다.

최진실씨가 이혼 뒤에 우울증을 앓아 왔다는 보도가 있는데, 우리 사회는 아직도 '정신적 건강'과 '긴장하는 정신력'을 혼동하고 있다는 것이 조 박사의 진단이다. 그는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모든 것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는 군사문화의 잔재"라고 지적했다.

탤런트 최진실씨가 2일 새벽 서울 서초구 잠원동 자택에서 숨진채 발견된 가운데 고인의 시신을 실은 구급차가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자택에서 빠져나오고 있다.
 탤런트 최진실씨가 2일 새벽 서울 서초구 잠원동 자택에서 숨진채 발견된 가운데 고인의 시신을 실은 구급차가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자택에서 빠져나오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혈압조절 기능이 고장 난 고혈압 환자들과 마찬가지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 있지만, 지금 앓고 있는 마음의 병쯤이야 모두 '정신력'으로 버텨내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이 한국사회에 여전히 팽배하다는 것이다.

조 박사는 "톱스타도 한국사회에서는 경쟁하지 않으면 뒤처지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살아 줘야 한다는 등의 강박이 있었을지 모른다"며 "더 이상 한국 사회가 목숨보다 돈이 더 중요한 사회로 가서는 안 된다"고 일갈했다.

와해돼 버린 한국사회의 지지 시스템을 복구해야 한다는 지적도 함께 했다. 지금보다 따뜻한 사회였다면, 최씨가 함께 고민을 나눌 누군가가 곁에 있었다면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무엇보다 조 박사는 "연예인뿐 아니라 한국에서 자살이 되풀이되는 문제에 대한 사회적 반성이 없다는 게 정말 큰 문제"라며 "언론도 톱스타의 자살 문제를 가십거리로만 다룰 게 아니라 진지한 성찰과 접근이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마를린 몬로와 최진실, 무엇이 닮았나

고 최진실씨의 동생 최진영씨가 2일 낮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일원동 삼성의료원 장례식장에 도착하고 있다.
 고 최진실씨의 동생 최진영씨가 2일 낮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일원동 삼성의료원 장례식장에 도착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민성길 연세대 의대 신경정신과 교수는 "우울하다고 모든 이가 자살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살할 확률이 높다"며 "유명하면 압박을 받게 되고 사람들의 시선이 늘 부담스럽기 마련"이라고 진단했다.

그 누구든 최고의 위치에 오른 사람이라면, 언론에 잊혀진 존재가 되면 안 되고, 톱클래스 위치를 항상 유지해야 할 것 같은 압박에 시달리며, 언젠가는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기 마련인데, 최진실씨가 그런 경우일 수 있다는 것.

민 교수는 "개인적으로 인기를 유지하려는 스트레스가 많았을 것"이라며 "인터넷 악플도 무시하기 어려운 모욕이라고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비난과 조롱, 욕설 등이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히는 계기가 됐을 거라는 견해다.

무엇보다 민 교수는 "유명인사일수록 친구 사귀기가 어렵다"며 "남편이 있다면 함께 욕도 하면서 밖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지만, 이혼한 경우라면 더욱 외로움에 시달렸을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마를린 몬로도 가까운 친구가 없었다고 한다. 민 교수는 "마를린 몬로도 아주 외롭게 지내다가 혼자 쓸쓸히 자살하고 말았다"며 "진실한 대화를 주고받은 몇이 있었으나 모두 마음적으로 믿기 힘든 동료들이었다"고 전했다.

마찬가지로 최진실씨도 맘 속에 있는 불안과 우울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상처를 내고 말았다는 것. 민 교수는 "한국사회가 자살을 권하는 건 아니지만 자살을 조장하는 경향이 심각하다"며 "OECD 비교국가 가운데 가장 자살률이 높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그는 "사회문화적으로 반성이 필요하다"며 "한국 사회 전체의 무자비성이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했다. 민 교수는 "언론이 최진실씨의 자살 방법까지 상세히 소개하는 것은 무자비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한 장면"이라며 "옛날에는 무식하지만 상대를 배려하는 예의가 있었지만 요즘에는 난폭과 무자비성이 증폭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무엇보다 분노와 폭력이 조절되지 않은 채로 거침없이 쏟아지는 언론보도를 볼 때마다 섬뜩하다는 것이다. 신문 헤드라인을 볼 때마다 한국사회의 무자비성이 드러나는 것 같아 놀라게 된다는 민 교수는 "사회가 잔인할수록 자살률은 늘어나게 돼있다"며 "염치를 갖고 배려하는 행동이 많아지는 사회적 성숙을 기대해 본다"고 당부했다.

미국 언론 "자살보도 그후 6개월 자살률 늘어난다" 통계도

서초경찰서 양재호 형사과장이 2일 오후 서울 서초경찰서에서 탤런트 최진실씨의 죽음과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서초경찰서 양재호 형사과장이 2일 오후 서울 서초경찰서에서 탤런트 최진실씨의 죽음과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하지현 건국대 의대 신경정신과 교수는 "자살은 충분히 예방 가능한 일"이라며 "괴로운 현실과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선택이라고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하 교수는 "외국에는 자살을 미디어에 보도하는 것 자체도 좋지 않게 보는 학자들이 있다"며 "유명인이나 일반인의 자살이 언론에 의해 과잉 왜곡되는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자살보도 이후 6개월~1년간은 자살률이 높아지는 통계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반드시 자살보도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돼야 한다고 전했다.

하 교수는 무엇보다 최진실씨의 죽음이 청소년들에게 미칠 파장을 고려하면서 "자살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고통을 남긴다는 차원에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로 각인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누구나 기분이 안 좋고,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서 자살을 선택하지만 결코 그런 일은 지혜롭지 못한 행동"이라며 "치유를 받고나면 훨씬 문제해결 능력이 좋아지기 때문에 혼자 끙끙 거리지 말고 누군가의 도움을 청하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충고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들은 "수다"가 자살 예방법의 좋은 수단이라는 해법을 내놓기도 했다.


태그:#최진실, #자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