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블룸>의 포스터

<인 블룸>의 포스터 ⓒ 2929프로덕션

때로 여자들의 우정은 말할 수 없이 사소한 것으로 시작된다. 여고시절 내 뒤에뒤에 앉아서 나의 뒤통수만을 보았을 친구와의 인연이 그렇다.

 

잘 써진다는 볼펜을 하루만 빌려달라는 말로 시작된 친구와의 인연은 야자시간에 몰래 교문을 빠져나와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시킨 뒤 음침한 분위기에 도망 나온 기억을, 수위 아저씨의 눈을 피해 교실에서 밤을 지새우다 온통 모기에 물린 얼굴을 보며 웃었던 기억을, 태어나서 처음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손을 꼭 잡고 낯선 사회 안으로 수줍게 발을 들여 놓았던 추억을 남겼다.

 

<인 블룸>의 그녀들도 그랬다. 담배를 문 다이에나에게 모린은 말한다. 선생님이 오시니 담배를 끄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짧은 말로 시작된 그녀들의 우정은 추억을 만들어 가는 이 세상의 모든 여고생처럼 그렇게 함께한다.

 

조금 더 자유롭고 반항적인 다이애나와 교회를 다니며 반듯한 모습으로 모범적인 생활을 하는 모린. 그들은 다르고 다르기 때문에 서로에게 있는 더 많은 것들을 공유한다. 다이아나는 더운 날 삼각함수를 공부해야 하는 것이 아닌 진짜 인생을 살고 싶어 하며 모린은 그런 다이애나에게 운전을 가르쳐주며 더 나은 미래를 살아보라고 말한다.

 

절친한 친구와 나, 둘 중에 누가 죽을 것인가?

 

그러던 어느 날 화장실에서 수다를 떨던 그녀들에게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총성과 비명 소리로 물든 교정은 공포로 물들고 그들은 자신들 중 누가 죽어야 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운명에 처해진다. 총을 들이대는 동급생 남학생은 둘 중에 한 명만을 죽이겠다는 말을 한 것이다.


과연 절친한 친구와 둘 중에 누가 죽을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인 블룸>은 그 선택의 기로에서 멈춘다. 그리고 15년 후의 미래를 보여주며 자신이 바라던 진짜 인생을 살게 하지만 그것은 허망하다. 

 

서른두 살이 된 다이애나는 자신에게 조금씩 멀어지는 남편과 어디에서든 도망치려는 아이 그리고 자신의 설득이 통하지 않는 학생을 둔 선생의 모습이 되어 미래를 살아간다. 과거의 상처는 그녀가 바라던 진짜 인생의 모습을 만들어 주지 못하며 외로움과 상실감을 안겨 줄 뿐이다.

 

과거의 사건에서 살아남은 자의 몫은 어디에든 남아있다고 말하는 듯 교내 총기 사건의 15주년을 맞이하여 다이애나의 주위에 조금씩 이상한 징후가 생겨난다. 삶과 죽음을 선택해야 했던 15년 전 그 순간의 숨겨진 진실은 무엇일까.

 

15년 전의 진실은 무엇일까


 <인 블룸>의 한 장면

<인 블룸>의 한 장면 ⓒ 2929프로덕션

감독은 다이애나를 생존자로 남겨주었음에도 관객으로 하여금 끊이지 않은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든다.

 

영화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관객은 의문을 품게 될 것이다. 다이애나의 미래가 진정한 현실이 맞는 것일까. 어느 순간부터 알 수 없는 의문을 드러내는 장면들은 심리 스릴러라는 기본 형식에 걸맞게 관객을 혼란에 빠뜨린다.

 

하지만 결국 해답은 자신의 과거 속에 있다. 아픈 기억의 과거도 슬픈 현실도 자신이 선택한 과거의 순간에 결정지어진 것이다. 친구와의 마지막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한 것일까.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불안한 현실을 살게 하는 것일까. 그 의문의 열쇠가 풀리는 순간 영화는 끝이 난다.

 

99년 콜럼바인 고교 총기난사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제작된 이 영화는 죽음을 선택하기 직전의 순간에 자신이 살아가게 될 미래를 바라보며 자신의 생을 결정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볼링 포 콜럼바인>이나 <엘리펀드>와 같은 방식으로 시작한 내용은 어느 새 삶과 죽음의 경계를 알 수 없는 <식스센스>나 <디 아더스>와 같은 분위기를 풍기지만 그 영화들과는 분명하게 다른 무엇을 지니고 있다.  

 

조금씩 천천히 깨닫게 되는 인생의 참 모습. 현실은 또 다른 미래를 기대하지만 미래는 과거의 자신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현실의 미래가 되어서 살아가게 되는 또 다른 현실. 우리에게는 때로 시간이 지난 후에나 깨닫게 되는 진실이 있다.

 

영화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 깨닫게 되는 우리의 삶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고 나와 다른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가치있는 삶을 위한 선택의 중요성

 

 <인 블룸>의 영화 속 한 장면

<인 블룸>의 영화 속 한 장면 ⓒ 2929프로덕션

<인 블룸>은 상실, 슬픔, 죽음, 기억에 대한 영상을 투명한 물이나 꽃으로 이미지화 시켜서 조금 더 아름답고 서정적인 느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배려해 주었다.

 

감독은 미래에서 알 수 없는 사실들에 대한 정답을 과거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며 열 일곱 살과 서른 두 살의 다른 시공간을 끊임없이 교차 편집하는 방식을 도입한다. 결국 과거와 미래는 같은 선상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인 블룸>은 지금 살아가는 모습과 앞으로 살아가기를 바랐던 모습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비추고 있다. 그것이 때로는 허망함 뿐이라도 내가 아닌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서 진정으로 가치있는 선택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누군가는 과거를 추억하며 하루를 살아가고 또 누군가는 알 수 없는 미래를 기대하며 지금을 견딜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선택하게 되는 삶 안에 있는 것이다.

 

<인 블룸>은 우리 모두가 덧없는 인생 가운데 있지만 자신이 선택하는 가치있는 삶에 대한 모습을 한 번쯤 그려보라고 말하고 있다.

2008.09.30 15:13 ⓒ 2008 OhmyNews
인생 선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