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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6일 창녕 부곡초등학교 가을운동회가 열렸다. 전교생 170여 명의 아담한 농촌학교다.
▲ 환한 얼굴로 경기에 참여하고 있는 6학년 아이들 지난 9월 26일 창녕 부곡초등학교 가을운동회가 열렸다. 전교생 170여 명의 아담한 농촌학교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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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 봄가을소풍, 가을운동회 등은 유년시절의 추억을 들춰내게 한다. 어느 집이나 사는 게 팍팍했던 그 시절, 봄가을 소풍은 추석이나 설 명절만큼 손 꼽아가며 기다렸던 날이었다. 군입거리라곤 그때가 아니면 맛볼 수 없었던 아린 기억이기도 하다. 몇날 며칠 잠을 설쳤다.

그러다가 소풍날 아침이면 집안은 여느 날보다 바쁘다. 하얀 쌀밥으로 김밥을 말고, 날계란을 삶는다. 잘 익은 감과 사과도 몇 알 챙겨준다. 땅콩, 고구마도 몇 개 보자기에 김밥과 함께 싼다. 자투리 김밥을 실컷 먹었건만 소풍길 십리 길을 걸으면서 머리속은 김밥 먹을 생각 뿐이었다.

수학여행도 마찬가지였다. 하물며 운동장을 팡팡 내닫으며 즐겁게 뛰노는 가을운동회의 기억은 어찌 잊을 수 있으랴. 특히 오곡이 풍성하게 익은 가을철, 으레 농촌에서는 가을운동회는 추석 다음날 열렸다. 그래야 고향을 떠나 살고 있는 일가붙이들이 운동회에 참가하게 되는 것이다. 그 당시 농촌학교에서 운동회는 아이들만의 놀이마당이 아니라, 마을 잔치였다.  

시골학교 운동회는 마을 잔치다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운동회 당일이면 청백 머릿띠를 질끈 동여맨 아이들로 학교는 드살아난다.

교문 앞에 내건 부곡 한마당 축제 알림판, 그러나 바람 탓에 "환영합니다"란 문구에 "합"자가 떨어져 나갔다.
▲ 부곡초 한마당축제 알림판 교문 앞에 내건 부곡 한마당 축제 알림판, 그러나 바람 탓에 "환영합니다"란 문구에 "합"자가 떨어져 나갔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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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인수 학교를 가진 도회지 학교의 운동회는 즐기는 재미보다 하나의 의식적인 행사에 지나지 않겠지만, 시골 학교, 특히 농촌학교의 운동회는 다르다. 농촌에서 학교는 그 지역의 문화를 공유하고, 추동하며, 주민 전체를 하나로 결속하는 공동체 이끄미 역할까지 도맡아한다. 그야말로 학교는 지역사회의 문화공동체 속에 있다.

부곡초 운동회와 놀이마당 프로그램이다.
▲ 부곡초 가을운동회 프로그램 부곡초 운동회와 놀이마당 프로그램이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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옅은 구름이 낀 하늘, 여느 날보다 살랑대는 바람결, 운동회를 펼치기에 참 좋은 날씨다. 아이들의 몸놀림이 크다. 평소 '잘 놀아야 잘 큰다'고 아이들에게 자신했는데, 그런 바람에 하늘마저도 도우는가 고맙게 생각했다. 그렇잖으면 따가운 가을 햇살에 아이들이 새까맣게 그을렸을 거다.

"정정당당하게 겨루고, 기량을 맘껏 펼치겠다"

운동회는 전교회장 정우성 어린이의 대표 선서로 시작되었다. 전체 아이들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이어서 청군으로부터 우승기 반환이 되고, 힘찬 행진으로 경기가 시작되었다. 채 두어 경기째 넘나들쯤 학부모님들이 청백 선수들을 에워싸고 있는 모습이 참 아름답게 보였다. 손에 바리바리 먹을거리를 챙겨 든 채였다. 그 많은 음식을 준비하랴 아침 시간 얼마나 바빴을까.

부곡초 한마당 잔치는 전교어린이회장 정우성 어린이의 대표선서로 시작되었다.
▲ 선서를 하고 있는 정우성 어린이 부곡초 한마당 잔치는 전교어린이회장 정우성 어린이의 대표선서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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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는 오전에는 운동회 프로그램으로, 오후는 놀이마당 프로그램으로 짜여졌다. 학년별로 트렉과 필드경기로 청백이 자웅을 겨뤘다. 그리고 경기 중간 중간에 학구 노인들과 학부모, 졸업생들이 참여하는 경기가 준비되어 다같이 참여하는 운동회로 신명을 더했다. 놀이마당은 모둠별 경기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운동회의 마무리는 전교 어린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된 교직원과 학부모 대항릴레이는 가히 압권이었다.

5학년 아이들의 장애물 경기 '산 넘고 물 건너'가 진행되고 있다.
▲ 5학년 아이들의 장애물 경기 5학년 아이들의 장애물 경기 '산 넘고 물 건너'가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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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아이들의 '맨손달리기' 출발 모습이다.
▲ 3학년 어린이들의 맨손달리기 3학년 아이들의 '맨손달리기' 출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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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달리기 경기 중 결승점에 도착한 아이들이 등위별로 앉아있다.
▲ 결승점에 도착한 아이들 맨손달리기 경기 중 결승점에 도착한 아이들이 등위별로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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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팀워크가 중요한 '긴줄넘기'가 각 모둠별로 진행되고 있다.
▲ 4,5,6학년 아이들의 긴줄넘기 전체 팀워크가 중요한 '긴줄넘기'가 각 모둠별로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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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학년의 필드경기 '청백뒤집기'가 진행되고 있다.
▲ 1,2학년들의 경기 '청백뒤집기' 1,2학년의 필드경기 '청백뒤집기'가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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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중간중간에 연만하신 할머니들이 운동장을 가로 질러 아이들이 있는 응원석으로 다가오셨다. 양손에 아이스크림을 가득 들고서, 아이들 덥다며 무작정 안긴 것이다. 이내 달리기 경기에 참가해야하는 데 아이스크림을 받아든 아이의 얼굴이 여간 낭패스러운 게 아니다. 그러나 어쩌랴. 경기를 다소 늦추는 한이 있더라도 할머니가 챙겨운 정성을 먹일 수밖에.

'아이스크림' 하나에는 할머니의 사랑이 듬뿍 담겼다

필자가 근무하는 부곡초등학교는 부곡온천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농촌지역이라도 농사일보다 온천시설내에 일을 하고 있는 맞벌이 부부가 많다. 때문에 아이들의 양육은 할머니 몫이다. 운동회 당일도 어머니들보다 할머니들이 더 많았다. 할머니들의 손자손녀 사랑은 끝이 없다. 그저 하나라도 더 챙겨 먹이려는 애틋함이 보기만 해도 정겹다. 아이들 모두 유다른 할머니 사랑으로 야무지게 커 가리라. 연방 아이들이 운동장을 방방 뛰고 있다.

운동회날 아이들의 관심은 당연히 '달리기'다.
▲ 힘껏 내닫아 결승점에 도착한 아이들 운동회날 아이들의 관심은 당연히 '달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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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 경기에 입상한 아이들 손등에 등위별로 스템프 도장이 찍혔다.
▲ 경기에 입상한 아이들의 손도장 달리기 경기에 입상한 아이들 손등에 등위별로 스템프 도장이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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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할머니 참여 경기로 물고기 낚기, 운수 좋은 날이다.
▲ 노인경기 '오늘은 운수 좋은 날' 할아버지 할머니 참여 경기로 물고기 낚기, 운수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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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축구경기 '왕년에 나도 축구 스타'가 아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되고 있다.
▲ 아버지 경기 '왕년에 나도 축구 스타' 아버지 축구경기 '왕년에 나도 축구 스타'가 아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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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축구경기에 부곡초 성낙진 교장 선생님이 골키퍼로 자원하고 나셨다.
▲ 골기퍼로 나선 부곡초 성낙진 교장 선생님 아버지 축구경기에 부곡초 성낙진 교장 선생님이 골키퍼로 자원하고 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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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휴식을 갖기 위해 부곡초 풍물패 공연이 준비되고 있다.
▲ 부곡초 풍물패 공연 잠시 휴식을 갖기 위해 부곡초 풍물패 공연이 준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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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무르 익었다. 근데 점수판을 보니 공교롭게도 동점 상황, 아이들의 환호성과 함께 경기는 더욱 달궈졌다. 예년 같으면 이 시간 쯤이면 청군이 월등한 점수로 이겨 다소 맥이 풀렸는데, 올해는 매 경기마다 막상막하로 우열를 가리기 어렵다. 그만큼 아이들이 경기에 충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전 경기 중 사이좋게 동점을 이룬 점수판 '우연의 일치'다.
▲ 동점을 이룬 점수판 오전 경기 중 사이좋게 동점을 이룬 점수판 '우연의 일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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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릉 따르릉 전화왔어요. 청군이 이겼다고 전화왔어요."
  "아니야, 아니야. 그건 거짓말. 백군이 이겼다고 전화왔어요."

경기가 무르익었다. 똑같은 점수를 차지한 청군과 백군, 이제는 백점을 놓고 겨루는 응원전에 돌입했다. 경기에 참여한 학년을 제외하면 응원석에 남아 있는 아이들도 수십 명에 불과하지만 응원의 열기는 뜨겁다.

응원석에 남아 있는 아이들은 불과 수십 명에 지나지 않지만 응원의 열기는 자못 뜨겁다.
▲ 청군 응원전 응원석에 남아 있는 아이들은 불과 수십 명에 지나지 않지만 응원의 열기는 자못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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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군 응원도 청군 못지 않다.
▲ 백군 응원 백군 응원도 청군 못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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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경기가 막바지로 갈수록 아이들의 함성은 더 크다. 직접 경기에 참가하는 것도 좋지만, 아이들은 그저 자기 편이 이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초등학교 운동회는 준비하는 과정이 어렵고 힘든다. 그래서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단순한 결과보다는 그 과정에 충실하고 있다. 숱한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운동회 당일은 학부모님들께 참 좋은 작품으로 선보이는 것이다.

운동회, 결과보다는 그 과정이 중요하다

이번 부곡초등학교 운동회는 학부모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그 이유는, 아이들 교육에 그만큼 관심이 많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다. 평소 생업에 바빴던 까닭에 아이들이 어떻게 커가고 있는지 궁금했을 터, 운동회날 만큼은 열일을 제쳐두고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서 시간을 내어 온 것이다. 고맙기 그지 없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도 평소보다는 훨씬 더 믿음직하게 따랐다.

평소에는 겨를이 없다는 핑계로 아이들 곁에 서지 못했지만, 모처럼 운동회날 시간을 내어 아이들을 격려하고 있는 학부모들
▲ 아이들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학부형 평소에는 겨를이 없다는 핑계로 아이들 곁에 서지 못했지만, 모처럼 운동회날 시간을 내어 아이들을 격려하고 있는 학부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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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딜레이 경기에 열띤 응원을 하고 있는 학부모들
▲ 아이들 이어달리기에 열띤 응원 아이들 딜레이 경기에 열띤 응원을 하고 있는 학부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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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참여 경기로 '어머니 줄다리기'가 대미를 장식했다. 물론 동심으로 돌아가 운동장 한 바퀴를 내달아보는 달리기도 있었지만, 가장 많은 참여를 보인 경기는 역시 줄다리기였다. 1, 3, 5학년에 자녀를 둔 어머니는 '청군', 2, 4, 6학년에 아이를 둔 어머니는 '백군'으로 발군의 힘을 겨뤘다. 젖 먹는 힘까지 다한 경기였다. 결과는 백군 어머니가 2:1로 승리했다.

운동회에 참가한 어머니들의 경기, '줄다리기' 푱소 비축해 둔 힘들 다 쏟았다.
▲ 어머니 줄다리기 경기 운동회에 참가한 어머니들의 경기, '줄다리기' 푱소 비축해 둔 힘들 다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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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군 어머니들이 있는 힘을 다 쏟아 붓고 있다.
▲ 있는 힘을 다 쏟아 붓고 있는 백군 어머니 백군 어머니들이 있는 힘을 다 쏟아 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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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세라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청군 어머니 모습, 정겹다.
▲ 질세라 안간힘을 다하는 청군 어머니 질세라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청군 어머니 모습,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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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경기 '줄다리기'는 백군 어머니들이 승리했다.
▲ 승리를 자축하고 있는 백군 어머니들 어머니 경기 '줄다리기'는 백군 어머니들이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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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으로 돌아가는 것은 즐겁다. 운동회에 참가한 학부모들이 달리기 경기에 참가했다. 유년시절 망아지처럼 잘 달렸다는 것을 뽐내기라도 하듯 총총 걸음으로 운동장을 내달렸다. 그러나 아이들이 지켜본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내친 걸음이 깨나 힘들어 보였다. 그렇지만 꼴찌를 하더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동심으로 돌아간 학부모들, 달리기에 앞서 기념 촬영을 했다.
▲ 달리기에 참가한 학부모들 동심으로 돌아간 학부모들, 달리기에 앞서 기념 촬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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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달리기 경기, 출발 선에 선 모습이 진지하다.
▲ 출발선에 선 학부모 학부모 달리기 경기, 출발 선에 선 모습이 진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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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오전 경기를 마감짓는 '점심탄 터뜨리기'. 4, 5, 6학년 청백팀이 콩주머니를 힘껏 던뎌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린 던 점심시간'이 되었다. 아이들 얼굴이 유난히 해맑았다. 오늘 운동회 경기 중 가장 돋보이는 경기였다.

오전 경기를 마감짓는 점심탄 터뜨리기, 4,5,6,학년 어린이들이 참가했다.
▲ 점심탄 터뜨리기 오전 경기를 마감짓는 점심탄 터뜨리기, 4,5,6,학년 어린이들이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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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즐거운 점심시간, 교정의 수령 3백년 묵은 팽나무 아래 도란도란 자리를 잡았다.
▲ 즐거운 점심시간 마침내 즐거운 점심시간, 교정의 수령 3백년 묵은 팽나무 아래 도란도란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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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부곡초등학교 가을운동회는 청군의 승리로 끝났다. 아이들은 물론 학부모 모두 흥겨운 하루였다. 이제 아이들은 찰랑찰랑 야물어 가는 알곡들처럼 야무지게 잘 자랄 것이다. 학교는 안녕하다.

"대한민국 만세!"
  "부곡초등학교 만세!"
  "부곡 어린이 만세!"

운동회 경기 결과 청군이 2점차로 승리했다.
▲ 운동회 경기 최종 점수 운동회 경기 결과 청군이 2점차로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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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미디어 블로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운동회, #부곡초, #청군, #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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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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