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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게 될 불교 문화유산에 대한 기대

상왕산 개심사 편액: 해강 김규진이 썼다.
 상왕산 개심사 편액: 해강 김규진이 썼다.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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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들어 기온이 조금 떨어져 내포지방을 답사하기로 했다. 내포지방은 일반적으로 서산 당진 예산 홍성의 충남 북서부 지방을 말한다. 그러나 좀 더 넓게는 아산과 태안 그리고 보령까지를 아우르는 광의의 개념이다. 포구 안쪽에 자리 잡은 땅(內浦)이라는 어원에 근거하면 이처럼 넓은 의미의 내포를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곳 내포의 문화유산 중에서도 서산과 예산의 경계를 이루는 가야산 주변 불교유산을 보기로 했다. 먼저 서산에 있는 상왕산 개심사를 보고 보원사지를 답사할 예정이다. 개심사는 현재 수덕사의 말사이지만 삼국시대까지 연원이 올라가는 유서 깊은 고찰이다.

이곳에 한때 조선 후기 선풍을 드날린 경허 스님이 주석하기도 했다. 이에 비해 보원사지는 고려 초에 번창했던 대단한 절이지만 현재는 폐사지가 되어 세월의 무상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는 현재 보물이 다섯 점이나 있다.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서산 마애삼존불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서산 마애삼존불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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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원사지를 보고 내려오는 길에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서산 마애삼존불을 볼 예정이다. 마애삼존불은 최근에 보호각을 철거했다고 하니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다. 이들 불교 문화유산을 보고 나서 우리는 가야산의 반대편 골짜기 예산군 덕산면에 있는 남연군묘를 찾아갈 예정이다. 옛날 가야사가 있던 자리에 만들었다는 조선 최고의 명당자리가 남연군묘이다. 절을 철거하고 묘자리를 쓸 만큼 흥선대원군의 세도가 대단했던가. 남연군묘 역시 답사 현장에 대한 기대가 크다.         

개심사로 향하는 길에서도 자연과 역사를 느낄 수 있다

서해대교
 서해대교
ⓒ 노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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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 고속도로 서해대교 아래 행담도 휴게소에서 잠깐 쉬고 나서 차는 서산 나들목으로 나온다. 이곳에는 벌써 이 지역의 문화관광해설사인 한건택 선생이 나와 있다. 우리에게 서산 지역의 문화유산을 안내해 줄 전문가다. 한 선생이 우리 지역을 답사할 때 안내를 맡은 분들이 있어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한다. 한 선생이 먼저 오늘 답사할 지역에 대해 개관을 한다. 한 선생 자신은 이번 답사지 중 가장 좋아하는 곳이 개심사라며 가장 열심히 설명을 한다.

차는 운산면 소재를 지나 647번 지방도를 따라 남쪽으로 향한다. 가면서 보니 높지 않은 산들 사이로 구릉이 잘 발달해 있다. 이곳에는 196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삼화목장이 있다. 삼화목장은 소를 방목할 목적으로 김종필씨에 의해 만들어졌으나 생각보다 그렇게 생산적이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 후 삼화목장은 여러 번 주인이 바뀌는 운명을 맞이했고 현재는 농협의 소유가 되어 있다.

차가 태봉리를 지난다. 태봉리라는 이름은 명종대왕의 태실이 이곳에 있어서 생겨났다. 중종 29년(1534) 5월 22일 중종과 문정왕후 윤씨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으니 그의 이름이 환(峘)이다. 그의 태가 1538년(중종 33) 이곳 서산군 운산 땅에 묻히게 되면서 태실과 비석이 생겼고, 그 때문에 사람들은 차츰 이곳을 태봉리라고 부르게 되었다.

목장의 소와 백로
 목장의 소와 백로
ⓒ 김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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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봉리를 지나 해미 방향으로 가다 보니 왼쪽으로 개심사 들어가는 안내판이 보인다. 이곳이 신창리로 남쪽의 가야산에서 석문봉, 일락산, 상왕산으로 이어지는 큰 산줄기의 서쪽에 위치한다.

이곳에서 차는 완만하게 산자락을 타고 올라간다. 옛날에는 이 길이 비포장도로로 구불구불해서 정말 운치 있었다고 한다. 왼쪽으로 목장 위에서 한가하게 풀을 뜯는 소들이 보인다. 누런 소들 사이로 하얀 백로가 보여 더욱 멋이 있다.

차는 신창 저수지를 왼쪽으로 끼고 돌면서 점점 산 속으로 들어간다. 서산 나들목에서 이곳까지 15분쯤 달렸을까, 개심사 일주문 앞에 도착한다. 평일이고 날씨도 조금 흐릿해서인지 사람도 없고 아주 한적하다. 벚꽃이 필 때나 한여름 피서철에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고 한다. 우리는 이곳에서 일주문을 지나 개심사까지 걸어 올라가야 한다. 15분쯤 걸리는 거리라고 하니 운동 삼아 아주 좋겠다.

개심사에서 만난 친근한 절집들

오솔길과 돌계단 그리고 소나무 가득한 산길을 지나 한참을 오르니 평평한 절집 마당이 나타난다. 그런데 이곳에는 경지(鏡池)라는 연못이 있다. 말 그대로 하면 거울처럼 맑은 못인데 그렇지는 못하고 꽤 탁한 편이다. 그 연못 위로 나무다리가 하나 걸려 있다. 이 다리를 지나며 자신의 마음을 거울에 비춰보고 깨끗이 하라는 뜻으로 만들어 놓은 것 같다.

경지 앞의 배롱나무
 경지 앞의 배롱나무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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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건너니 백 살은 넘어 보이는 배롱나무가 붉은 꽃을 피우고 있다. 배롱나무를 보고 경사진 길을 오르니 안양루 앞 마당에 서게 된다. 과거에는 안양루 아래로 계단이 나 있어 이곳을 지나 부처님의 세상에 이르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안양루 오른쪽으로 나 있는 해탈문을 통해 절마당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절 마당으로 들어가니 사방으로 당우가 둘러싸고 있다. 남쪽에 안양루가 있고 그 맞은편에 대웅전이 남향을 하고 있다. 대웅전은 이 절의 중심 법당답게 한 단 위에 세워져 있다. 그리고 대웅전 좌우에는 무량수각과 심검당이 남북으로 길게 자리 잡고 있다. 대웅전 앞에는 5층석탑이 세워져 있는데 종교적인 경건성이나 미학적인 예술성은 많이 부족하다. 만들어진 지도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 않는다.

안양루에서 바라 본 대웅전
 안양루에서 바라 본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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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먼저 안양루에 올라 전체 구도를 살펴본다. 안양루는 절집의 구조를 살펴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아래쪽으로 배롱나무가 있는 경지가 굽어보인다. 안양루 안에서는 보살님들이 기와불사 접수를 받고 있다. 다시 눈을 돌려 대웅전을 올려다본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아한 맞배지붕 건물이다. 조선 초기 다포계 건물로, 강진에 있는 무위사 극락전과 여러 가지 면에서 비교가 된다고 한다. 1941년 대웅전을 수리하면서 발견한 묵서명을 통해 대웅전이 1484년(성종 15) 세워졌고 1644년과 1710년에 중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대웅전 안에는 아미타삼존불이 모셔져 있고 그 뒤로 관경변상도가 그려져 있다. 아미타삼존은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왼쪽에 관음보살을 오른쪽에 지장보살을 모셨다. 그렇다면 이 전각의 명칭이 대웅전보다는 극락전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후불벽화로 그려진 관경변상도는 <관무량수경>의 내용을 표현하고 있다. 극락세계의 여러 모습을 16가지 다른 장면으로 그렸다.

심검당
 심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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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중요한 당우가 심검당(尋劒堂)이다. 심검당이라고 하면 칼을 찾는 집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칼이란 지혜를 상징하고 지혜를 찾기 위해서는 선정에 들어야 한다. 선정과 지혜는 바로 고려시대 이래 불가에서 닦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그러므로 심검당은 선정과 지혜를 닦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심검당 왼쪽문 위에는 설선당(說禪堂)이라는 또 다른 편액이 걸려 있다.

사실 선은 설할 수가 없고 이심전심으로 전수되는 것이어서 무설당(無說堂)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은데 설선당이라고 썼으니 어쩌랴. 어떤 면에서는 깨침과 가르침을 병행할 때 더 훌륭하게 깨칠 수도 있을 테니 당호의 명칭을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또 심검당은 현재 개심사 종무소로 쓰이고 있으니 이름에 너무 연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심검당 벽면에는 2008년도 대입 수능 백일기도라는 안내문이 걸려 있다. 기도가 8월6일 시작해 11월13일 끝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무량수각
 무량수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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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검당 맞은 편에 있는 무량수각은 정면 6칸의 팔작지붕 건물인데 특이한 양식으로 되어 있다. 가운데 세 칸이 법당이고 오른쪽에 한 칸 왼쪽에 두 칸은 다른 용도로 쓰이는 것 같았다. 왼쪽 끝의 한 칸은 부엌문 같은 것이 달려 있으며, 그 안에서 스님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곳 개심사의 당우들은 아주 현실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런 느낌이 든다.

명부전 돌아 산신각에 이르는 길

무량수각을 돌아 명부전으로 향하다 보니 왼쪽으로 요연선원(了然禪院)이 보인다. 목재 기둥에 유리창이 달린 미닫이문을 한 전형적인 일제시대 건물이다. 지붕도 양철지붕으로 되어 있어 사무실 같은 느낌도 난다. 이 건물은 일엽스님이 세워 비구니 스님들의 기도도량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당시에는 이곳이 비구니 스님들의 생활 근거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선원으로 바뀌어 스님들의 선방으로 이용되고 있다.

요연선원
 요연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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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요연(了然)이 무슨 뜻일까? 요연이란 분명하고 명백한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이 요연이란 말은 경허 선사의 참선곡(參禪曲)에 나온다. 그렇다면 이 요연선원은 경허스님의 가르침을 따라 선의 본질을 분명하게 깨닫는 곳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지옥과 천당이 본래 공(空)하고 생사윤회 본래 없다.
선지식을 찾아가서 요연(了然)히 인가(印可)받고
다시 의심 없앤 후에 세상만사 망각하고
인연 따라 넓은 세상으로 나가 빈 배같이 떠돌면서
인연 따라 중생을 제도하면 부처님 은덕에 보답하는 길 아닐런지."

요연선원을 지나면 명부전이 나온다. 명부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1646년(인조 24)에 세운 것으로 되어 있다. 안에는 지장보살과 시왕이 모셔져 있다. 건물 안쪽에는 천정의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 있으며 중도리에 봉황 그림이 그려져 있다.

명부전
 명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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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전 중도리의 봉황도
 명부전 중도리의 봉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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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은 두 날개를 펴고 긴 꼬리를 휘날리며 날아가고 있다. 나무 위에 먹선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붉은색, 노란색, 초록색을 칠한 것 같으나 현재는 퇴색되어 붉은색과 노란색만이 보인다. 그리고 봉황의 윤곽도 흐려져 생동감은 덜한 편이다.

명부전을 나와 산신각으로 가는 길은 또 다시 가파른 등산길이다. 사람들의 통행도 많지 않아 한적하기만 하다. 산신각은 소나무와 활엽수 사이에 퇴락한 모습으로 서 있다. 기둥이며 기와며 문짝이며 단청이며 뭐 하나 선명한 게 없다. 사람들의 때가 묻어있지 않아 조금은 쓸쓸해 보인다. 산신각 옆으로는 돌무더기가 쌓여있어 마치 서낭당처럼 보이기도 한다.

걸어 다녀야 자연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데

개심사 채마밭
 개심사 채마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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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각을 보고 산을 내려오다 보니 명부전 앞의 채마밭이 눈에 들어온다. 고추대가 보이고 그 옆으로는 김장을 대비해서 심은 배추가 조금씩 자라고 있다. 나는 해탈문을 지나 처음 올라왔던 길을 따라 내려간다. 다시 연못을 지나고 오솔길을 따라 일주문까지 한달음에 내려온다. 그리고는 이곳에 그려진 개심사 경내도를 보면서 답사한 것을 다시 한 번 정리해본다.

경내도를 통해 개심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유산이 대웅전(보물 제143호), 영산회괘불탱(보물 제1264호), 명부전(문화재자료 제192호), 심검당(문화재자료 제358호)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중 영산회괘불탱을 보지 못했다. 1772년(영조 48) 작품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그렸다고 한다. 자료 사진을 보니 석가모니 부처님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고, 그 주변에 협시불과 화불 그리고 제석천과 범천이 작게 그려져 있다. 전체적으로 붉은색과 녹색을 사용해 색의 대비가 분명하고 화려한 느낌을 준다.

개심사 경내도
 개심사 경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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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으로 내려오니 일부 사람들이 다른 길로 벌써 내려와 있다. 절까지 나 있는 자동차 도로를 따라 내려왔다고 한다. 나는 올라간 길로 따라 내려왔으니 고지식했던 셈이다. 일반적으로 산행은 올라간 길과 다른 길로 원점 회귀하는 것이 더 재미있다. 문화유산 답사도 가능하면 가는 길과 오는 길을 달리하는 게 좋다.

이제 다음 답사지는 보원사지이다. 개심사가 가야산에서 상왕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의 서쪽에 있다면 보원사지는 동쪽에 있다. 그러므로 이 둘 사이는 직선거리로 2㎞ 밖에 되질 않는다. 그러나 회원들 모두가 이 산을 넘을 수 없으니 차를 타고 돌고 돌아가야만 한다. 옛날에 스님들은 개심사와 보원사 가야사 그리고 좀 더 멀리 있는 수덕사까지 걸어 다녔을 것이다. 사람들은 걸어 다닐 때 진정으로 자연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데 아쉽다.

덧붙이는 글 | 9월 2일 서산과 예산의 경계를 이루는 상왕산과 가야산 주변 문화유산을 답사했다. 개심사, 보원사지, 마애삼존불 등 불교유산이 주된 관심사이고, 남연군묘가 부차적인 관심의 대상이다. 이들 문화유산 속에 담긴 역사적인 의미를 느낌과 함께 기록할 것이다. 5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태그:#가야산과 상왕산, #개심사, #대웅전, #명부전, #경허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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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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