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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듬까지 사진에 담아낼 수 있다면….
▲ 라틴 음악에 흠뻑 빠져보시라 리듬까지 사진에 담아낼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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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을 나가려는 때 숙소 앞에 한 아이가 마침 한바탕 살사판을 벌이고 마지막 모션으로 관객들을 향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아이의 세레모니 외출을 나가려는 때 숙소 앞에 한 아이가 마침 한바탕 살사판을 벌이고 마지막 모션으로 관객들을 향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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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이거 신나는데?"

트로바(Trova)에 들어서기도 전에 감각의 껍질을 깨는 음악소리에 고개가 흔들흔들, 어깨가 들썩들썩 거린다.

전문 밴드가 휘어감는 부드러운 재즈의 분위기, 밤하늘에 불꽃이 파팍 튀기는 듯 흥겨운 라틴음악.

내 비록 나이트클럽 문턱도 안 넘어본 몸치지만 리듬감을 잡기 위해 연주를 눈으로 귀로 따라갔다.

한참 후에 따라온 몸은 박자를 놓치고 분위기를 영 못 맞춘 채 우왕좌왕, 훗. 차라리 다른 여행자들처럼 테이블에 앉아 박수만 치면 중간은 갈 뻔 했다. 저리 가, 나의 몸치본능!

관광도시라 그런지 트리니다드는 저녁부터 네온사인 아래 사람들이 모여들고 활기가 넘친다. 우리는 가이드북에 나온 트로바로 향하기로 했다.

둘 다 술에 취미가 없어서 간단한 음료라도 시켜 음악 구경을 해볼 요량이었다. 제 딴엔 쿠바문화체험이지만 무료하게 숙소에만 틀어박혀 괴괴한 자태로 밤을 맞는다면 젊은 혈기가 감당치 못할 매서운 시련이리라.

"한국 좋아요, 재키 챈의 고향, 쿵푸의 나라죠"

트로바(입장료는 없는 대신 대부분 식사나 술을 주문한다)엔 약 10여명의 외국인이 테이블 세 개에 걸쳐 분위기에 취해 있었다. 주위 트로바에도 패키지여행으로 보이는 여행자들이 몇몇씩 나누어져 저만의 공간에서 이 밤을 즐겼다.

밴드는 관객 숫자와 상관없이 어찌나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이는지 의자에 접착제를 발라버린 듯 꿈쩍도 못하고 곡의 마법에 완전히 빨려 들어가 버렸다.

트로바에 밴드들은 음악 실력뿐만 아니라 손님들을 위한 재치 넘치는 무대매너 또한 탁월하다.
▲ 한국 손님을 위한 음악 선물 트로바에 밴드들은 음악 실력뿐만 아니라 손님들을 위한 재치 넘치는 무대매너 또한 탁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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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끝날 때마다 터지는 열렬한 박수소리가 열기로 가득 찬 공간을 다 메우지 못한 게 오히려 미안할 정도였다.

"자, 여러분. 저기 우리의 새로운 친구가 왔군요. 어디서 왔나요?"
"한국이요, 한국! 한국 아세요?"
"오, 한국? 잘 알다마다. 난 한국을 무척 좋아해요. 재키 챈의 고향이죠? 하하. 쿵푸는 멋진 거죠. 자, 그럼 이 곳을 찾아준 한국 친구들을 위해 선물로 음악 한곡 보내 드립니다."

재키 챈에 쿵푸라. 나름대로 우리를 띄워준다고 하지만 번지수가 영 안 맞는다. 뭐 어쨌건 그들은 그런 줄로만 알고 우리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걸쭉한 라틴 음악 한 마당 뽑아낸다.

이쯤에서 필요한 건 뭐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고 팁은 밴드를 춤추게 한다. 주머니를 뒤적거려 문지기에게 건넨다. 공연의 흐름을 깨지 않기 위해서다. '인 마이 포켓' 않고 잘 전달해 줬겠지?

엉덩이의 향연, 절묘하네

몇 곡을 더 듣고 자리를 빠져나왔다. 음악만 듣는데도 그만 땀이 삐질삐질 나올 정도였다. 심장 박동수가 격한 라틴 장단에 맞추다 보니 트로바를 빠져나오는데도 그 잔상이 강력하다.

"와우, 괜찮죠? 정말 대단했어요!"

사실 트로바에 오지 않고 숙소에서 그냥 쉴까도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나와 준호는 쿠바의 문화를 제대로 맛봤다는 생각에 꽤 만족했다.

하지만 겨우 밴드음악 하나 경험하고서 놀라워하기엔 감정이 너무 성급했다. 이건 본 코스 전에 에피타이저요, 정규시즌 전에 열리는 시범 경기일 뿐이었다.

숙소에 들어가기 바로 전 터진 엄청난 환호성. 그것은 '이만하면 즐거웠다'는 감정에 더 큰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자연히 홀린 듯 그 곳으로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농악놀이를 그대로 갔다 놨나.'

수백 명의 사람들이 이 열광의 도가니에 구경과 참여를 위해 모여 있었다. 벌떼처럼 사람들이 모여든 것도 개의치 않고 과감하게 인사이드에서 묻어가기 위해 인파를 뚫고 보니 또다른 세상이 열려 있었다. 이런, 믿지 못할, 몸이 언어가 되는 이 곳만의 세상이란!

윗마을 사람들이 다 모인 것 같다. 한밤중에 그야말로 인산인해.
▲ 축제 윗마을 사람들이 다 모인 것 같다. 한밤중에 그야말로 인산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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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딸이 파트너가 되어 춤을 추고 있다. 아버지가 리듬을 맞추려 스텦을 잠시 멈춘 사이 딸이 몸을 흔든다.
▲ 춤추는 부녀 아버지와 딸이 파트너가 되어 춤을 추고 있다. 아버지가 리듬을 맞추려 스텦을 잠시 멈춘 사이 딸이 몸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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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악기 소리가 고막을 맹렬하게 때려내고, 유일한 관악기인 트럼펫이 단조로운 음색을 입히지만 그 조화가 참으로 절묘하다. 거기에 맞춰 씰룩쌜룩 32비트로 흔들어대는 엉덩이의 향연들.

정신 사나울 것 같다? 그렇다면 당신의 편견을 가여워 할 수 밖에. 천만에! 정신 나간 사람은 그저 멀거니 지켜보고, 오히려 정신이 온전한 사람만이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몸을 흔드는 것, 이것이 진정한 '몸의 대화' 살사다!

이 곳의 풍경은 '쿠바란 이것이다'를 압축시켜 놓고 있었다. 좌우상하 어디로 시선을 돌려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몸을 흔들어 대는 난장판 같은데 정해진 질서에 따라 무리가 엉키지 않게 간격을 조절하며 춤을 춘다.

이 광경을 보노라니 나조차도 슬금슬금 리듬을 타는 듯했다. 뭔가 아주 극소한 움직임이 세포로부터 일어난 것만 같았다. 정신은 이미 분위기에 몰입해 있었다. 기분이 붕 뜬 느낌이었다.

그 때였다. 내 엉덩이로 뭔가 비벼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참 야리꾸리하게 터치하는 감촉이었다.

"총각! 왜 그렇게 멀뚱하게 쳐다보고만 있어? 왔으면 즐기라구. 자, 이렇게 흔들어 봐!"

유쾌하게 외치듯 웬 풍채 좋은 아주머니가 갑자기 내 뒤로 스텦을 밟고 와서 스물 여덟 평생 순결했던 내 엉덩이를 맞대고는 그 민망하다는 부비부비를 해대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 한바탕 웃는 모습이라니. 적극적인 대시에 깜짝 놀랐다.

내가 당황해하자 주변은 '저것 좀 보세'라는 듯 온통 포복절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말 덴덕스럽지가 않았다.

아주머니의 몸으로 하는 말에 나도 슬쩍 한 두 번 엉덩이를 털어내며, "아휴~ 아주머니가 아니라 스무 살 처자였음, 나도 저스틴 팀브레이크였소!"라고 마음속으로만 대꾸했다(정말 그랬는지 쿠바 여행기 마지막편에 적나라하게 공개된다).

그래도 아주머니의 넉넉한 웃음을 방패삼아 과감하게 동양청년에게 들이대 분위기를 업 시키는 퍼포먼스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긴 인파 속에서 멀뚱하게 혼자 분위기도 못 타고 사진만 찍어대는 내가 안쓰러웠을 수도 있었겠다.

미치도록 흔들고 싶었다

풍년을 기원하는 건 아니지만 그들의 연주스타일은 농악놀이와 크게 다를 게 없다. 참으로 신명난다.
▲ 쿠바판 농악놀이(?) 풍년을 기원하는 건 아니지만 그들의 연주스타일은 농악놀이와 크게 다를 게 없다. 참으로 신명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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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로 흥을 돋우는 아이들의 퍼포먼스도 감칠맛 난다.
▲ 우리도 주인공! 악기로 흥을 돋우는 아이들의 퍼포먼스도 감칠맛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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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 대한 즐기는 이들의 모습은 진정 최고였다.

아이들도 악기를 들고 무드에 젖고, 아버지와 딸이 함께 춤을 추며 흥을 고조시킨다. 구경하는 사람들도 저마다 탄력적인 엉덩이를 통통 튀겨가며 축제의 장에 어울린다. 나도 정말이지 미치도록 흔들어 대고 싶었다.

하지만 내 몸은 뜨겁게 경직되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아 "오빠, 오늘 저랑 살사 살풀이 한 번 하고 럼주나 땡기면서 쿠바 여행에 대한 이야기나 나누어요"하는 독특한 취향을 가진 여성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도 보는 눈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애처로운 순간이다.

이것은 '꼼빠르사'라는 카니발인데 이들이 연주했던 것은 아프리카와 쿠바의 음악을 믹스시킨 장르(Musica Afrocubana)이다. 산 후안(요한)과 산 페드로(베드로)를 기리기 위한 카니발인데, 본래 천주교 신자들이 복음을 들고 세계를 향해 나갔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란다.

이 축제는 쿠바인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플램보이언트(타는 듯한 '붉은 꽃'이란 의미)란 꽃이 만발하는 때에 열린다. 또 사흘 전인 산 안토니오 기념일에는 뱀을 밟아 죽이는 행사를 한다고. 지금은 거의 없어졌다는데 우리가 지난 금요일 날 산타클라라로 향하는 도로에서 우연찮게 본 3마리의 죽은 뱀은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런지. 아무튼 엄청난 기념행사였음은 두 번 말하면 입 아프다.

댄싱 혼 불사르러 다시 돌아오리라

숙소에 돌아와서는 내내 머릿속에서 그 영상이 떠나질 않았다. 어떻게 노인이나 아이가 하나같이 엉덩이를 그렇게 가뿐하게 털며 흔들어 댈 수 있는 건지.

그들의 음악, 그들의 춤은 쿠바의 근간인 사회주의나 이제 막 싹이 트는 자본주의나 모든 사회체제를 깡그리 무시한 채 피안의 세계에 도달한 듯 했다. 그들만의 대화를 한다, 대화는 몸으로 한다, 그 느낌 그 격렬한 액션…. 그 열정에 홀딱 반했다.

쿠바 문화를 잔뜩 기대하고 트로바로 향했을 외국인들은 그들이 원하는 만큼 만족하며 체험했을까? 우리는 운이 좋았다. 외국인이 우리 말고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후미진 곳까지 올 생각자체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트로바에서 정기적으로 공연하는 기교 넘치는 그룹의 연주를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처럼 현지인의 속살을 보여주는 열정적인 댄스는 감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느꼈다. 여행은 외부인의 시선을 거두고 현지인 속으로 파고들어야 한다는 것을. 그 때부터 이해가 시작된다. 다시 돌아온다면 그 땐 무대 중앙에서 꼭 파트너를 이뤄 미모의 여강사의 가르침으로 다져진 나의 댄싱 혼을 기어코 불사르고 말리라!

"그런데 총각, 그 파트너는 나야?"
"악, 아주머니!"

'연애의 춤'이라고도 한다. 솔직히 보고 있자면 정말 야한 춤이다. 하지만 무척 배우고 싶은 춤이기도 하다.
▲ 몸의 대화 살사 '연애의 춤'이라고도 한다. 솔직히 보고 있자면 정말 야한 춤이다. 하지만 무척 배우고 싶은 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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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듯이 연주하고 미친 듯이 흔들고 미친 듯이 즐긴다. 그들의 축제는 그랬다.
▲ 모두가 하나 미친 듯이 연주하고 미친 듯이 흔들고 미친 듯이 즐긴다. 그들의 축제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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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살사 2편, '연애의 춤, 살사' 기사는 쿠바 여행기 마지막 편쯤에 보내 드리겠습니다.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http://www.vision-trip.net



태그:#쿠바, #세계일주, #자전거여행, #살사, #체게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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