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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다. 아침 7시, 아즈메르에 도착했다. 푸쉬카르에 한 번에 가는 교통편이 없어서 아즈메르에서 갈아타야 한다. 델리로 돌아가는 기차표를 예약하기 위해서 아즈메르역에 갔더니 10시에 문을 연다는 것이다. 근처를 둘러보니 문을 연 음식점이 없어서 짜이에다 빵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였다. 그리고 예약사무소 앞에서 기다렸다. 장은 일기를 썼고 나는 주변을 돌아다녔다.

돌아오니 장에게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어느 인도인이 와서 장의 일기장을 뺏으며 돈을 달라고 했다. 장은 웃으며 잔돈 밖에 없다고 잔돈을 주려하자 그 인도인은 돈을 받지 않았다. 실랑이가 벌어지자 다른 인도인들이 와서 그 인도인과 말다툼을 벌이며 그 일기장을 빼앗아 돌려주었다. 이방인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는 인도인을 보는 게 인도인으로서 부끄럽고 화가 났었나 보다. 고맙다는 인사도 못했는데 둘 다 어디로 가버렸다.

거리에서 구걸하는 인도 아이들이 나타나 돈을 달라고 했다. 얼마씩 주어주자 좋아하면서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그러다 내가 쓰고 있던 밀짚모자를 낚아채더니 자기들이 번갈아 가면서 쓰는 거였다. 하는 행동이 당돌아 하면서도 귀엽고 푸쉬카르 가면 두건을 쓰고 싶었기에 미련 없이 아이들에게 밀짚모자를 줬다. 서로 자기 거라고 싸우는 듯 그러더니 그 무리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녀석이 썼다.

이 때, 깔끔하게 옷을 입은 인도인이 오더니 그 아이들을 쫒아 내버렸다. 그리고 자기는 버스표를 판다고 어디까지 가냐고 물었다. 우리는 이틀 뒤, 델리에 간다고 먼저 기차표를 알아보려고 기다린다고 했다. 기차표를 못 구하면 자기에게 와서 예약하라고 했다. 곧 기차표 예약사무소가 열렸는데 이틀 뒤 자면서 가는 표가 없다고 했다. 시간대가 안 맞아 할 수 없이 나와 버스표를 예약했다. 또 의자에 앉아서 잠을 자게 생겼다.

티를 선물하자 검을 사주며 순박하게 웃는 모습이 참 예뻤다.
▲ 인도 학생들 티를 선물하자 검을 사주며 순박하게 웃는 모습이 참 예뻤다.
ⓒ 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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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쉬카르로 가는 버스를 탔다. 오토 릭샤나 택시가 비싼 돈을 요구하면서 푸쉬카르까지 가자고 하는데 8루피에 정기 왕복하는 버스가 있다. 버스에 타서 출발하길 기다렸다. 사람이 가득 차야 출발한다는 거였다. 뭐 간다니까, 노 프라블럼! 버스에 타고 있던 십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 친구들은 학교에서 영어를 배웠다고 하면서 우리와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2002 한일월드컵 기념티를 선물로 줬더니 고마워하며 밖으로 나가더니 검을 사가지고와 줬다. 그 순진한 마음씨가 예뻤다.  

산 하나를 넘고 50분 정도를 달리자 푸쉬카르가 나타났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숙소를 구했다. 영어를 능숙하게 잘하고 친절한 청년이 안내하는 숙소를 갔다. 워낙 더운 날씨이기에 에어컨이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청년은 다정했으나 숙소 주인인 아버지는 조금 완고했다.

내일 낙타 사파리를 떠나 사막에서 1박을 하면 숙소를 이용하지 않게 되는데 돈을 다 받으려 하는 거였다. 짐을 갖고 사파리 가기도 뭐해서 계약을 했다. 낙타 사파리까지 밖에서 얘기한 가격보다 50루피 더 주면서 계약을 했는데도 할인 혜택이 없었다. 어차피 하루만 자고 둘째 날은 사막에서 자고 셋째 날은 씻고 다시 아즈메르로 나가고 델리로 돌아가야 하니 첫째 날만 크고 에어컨 있는 방에서 잤고 둘째 날 방을 옮기는 걸로 협의를 했다. 따로 나가서 계약하는 것도 귀찮아 방세와 낙타 사파리 가격까지 다 치렀다.

푸쉬카르는 푸쉬카르 호수 주변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이 호수는 신과 악마의 전쟁 때 브라흐마 신의 무기였던 천상의 꽃잎이 떨어진 자리에 생긴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브라흐마 사원이 있고 신성한 땅으로 고아와 마날리와 함께 3대 성지로 꼽히는 곳인 만큼 음주도 안 되고 오토 릭샤도 못 다니게 하여 깨끗한 환경을 유지하려고 하는 곳이다. 델리와 아그라의 뿌연 공기 속에서 있다가 푸쉬카르에 오니 마음까지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잔잔한 호수와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와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곳은 비쉬누, 쉬바와 함께 인도의 3대 신인 '브라흐마'를 모시는 사원이 있다. 창조의 신이라는 브라흐마는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 인도인이라서 인기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브라흐마 사원이 전 세계를 통틀어 여기 밖에 없다고 한다. 브라흐마 사원 입장은 무료라서 신발 벗고 들어가 구경을 했다. 뭐 건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기에 별 감흥은 없었다.

북적북적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인도 시장
▲ 푸쉬카르 시장 북적북적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인도 시장
ⓒ 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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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흐마 사원 앞에 서민식당에 들어가 인도 요리를 먹고 숙소로 돌아와 장은 잠깐 인터넷을 하고 나는 옥상에 올라가서 구름과 하늘을 마음껏 구경했다. 주인집 아들이 올라와서 옆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여행 가고 싶지 않냐고 묻자 자기는 대학까지 다니고 인도 이곳저곳, 네팔 여기저기를 여행 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숙소를 물려받아 성공하고 싶다고 꿈을 밝혔다. 능력이 좋아서 꼭 그럴 거라고, 친절한 태도를 계속 유지하면 성공할 거라고 얘기해 줬다. 옆 자리에 프랑스 가족이 여행 왔다. 한 여섯 살, 여덟 살 정도로 보이는 남매를 데리고 온 부부는 행복해 보였다. 짧은 불어로 몇 마디 걸고 일어섰다.

다시 밖으로 나왔다. 작은 곳이라 마을 끝에서 끝까지 걸어 다녔다. 인도 옷들도 몇 벌 사고 라시를 파는 곳이 여러 곳이 있었는데 두 곳에 단골이 되었다. 한 곳은 여러 과일을 섞어서 정성스레 만들어 주는 가게였고 한 곳은 거리에서 10루피에 함박웃음과 함께 파는 가게였다. 왔다 갔다 하며 질리게 사먹었다. 거짓말 안 보태고 인도 여행 와서 하루에 보통 3-4잔을 먹었다. 그 이상으로 물도 사먹었다. 아주 더운 날씨라 땀으로 물이 많이 뺏겨 자주 수분을 마셔 줘야 했다.

이 때, 황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구경하며 걷고 있는데 어느 여인네 집단이 앞에서 다가왔다. 인도는 종교 나라답게 보통 여인들은 정숙하게 말을 걸어오거나 그런 적이 별로 없다. 단, 한 번 아그라 성에서 악수를 먼저 신청한 여인이 있었을 뿐이다.

앞에서 다가오는 여인집단은 눈빛과 몸짓에서부터 뭔가 께름칙한 분위기였다. 아니나 다를까, 다짜고짜 나와 장의 손목을 낚아채더니 손금 좀 보자고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손바닥에다가 무언가를 뿌려댔다. 색깔도 이상하고 냄새도 이상해서 나는 바로 됐다고 하고 뿌리치고 나왔다. 하지만 착한 우리 장은 여인들과 옆 골목으로 들어가 끝까지 헤나를 손바닥에 그렸다. 그리고 100루피를 줬다고 하면서 짬뽕을 냈다. 손바닥에 그려진 헤나는 장이 입사 연수하고 나서 2주 뒤에 지워졌다고 한다. 

인도에서 많이 만나 볼 수 있는 아이들. 얼마만큼은 주는 게 서로에게 기쁜 일이다.
▲ 구걸하는 아이들 인도에서 많이 만나 볼 수 있는 아이들. 얼마만큼은 주는 게 서로에게 기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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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주변에는 무려 51개의 가트가 형성되어 있다. 가트는 호수 옆에 만들어져 호수를 구경하는 공원 같은 곳이었다. 다른 가트들을 기웃거려 봤다. 다른 곳은 전부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기에 신발을 벗지 않아도 좋은 자이뿌르 가트로 갔다. 호수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바라보는 데 구걸하는 어린 친구들이 와서 돈을 달라고 했다. 아이들에게 돈을 잘 나눠준 장은 지폐만 남아서 못 주었다. 인색한 내가 안 주다가 다른 친구들이 가도 혼자 남아서 계속 맴도는 친구에게 5루피를 줬다. 그러자 그 친구는 다른 애들에게 5루피 받았다고 자랑을 했는지 다른 친구들이 몰려와 왜 쟤만 주냐고 마구 달라고 요구했다. 더 이상 없다고 미안하다고 말하는데 난감했다.

앉아서 쉬고 있는데 하얀색 옷으로 깔끔하게 차려입고 선글라스를 낀 그 인도인이 왔다. 그 친구는 워낙 친근하면서 말을 잘했고 잘 생겼다. 선글라스를 벗자 신현준을 닮았다. 한국인이 워낙 많이 왔는지 한국인이냐고 물어 맞다고 하자 "안녕하세요, 언제왔어요?" 이러한 한국말을 했다. 꽤 잘해서 어떻게 한국말을 배웠냐고 물었더니 한국인 여행객들에게 배웠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 애칭이 '완수'라고 한다. 그만큼 세련되게 한국인들을 상대해온 듯하다.

자기는 '뿌자'라고 해서 호수가에 가서 꽃을 뿌리고 몇 마디 말을 따라하는 의식이 있는데 그걸 한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는 결코 한국말로 '양아치'가 아니라고 하면서 생각이 있으면 하라고 했다. 길을 오면서 여러 인도인들이 꽃을 쥐어주며 뿌자를 하자고 했는데 거절했기에 생각이 없다고 했다. 완수는 어떻게든 뿌자를 하게 하고 싶은 눈치였으나 하지 않겠다고 하니 다음에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오라고 하고 일어섰다. 그리고 호수 바로 앞까지 가 있는 다른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나오라고 가트를 관리했다. 자이뿌르 가트가 신발을 신고 들어가도 되지만 호수가 바로 앞까지는 가지 말아야 하나 보다.

경건한 기분이 들게 하는 일몰 장면. 호수와 어우러져 장관이었다.
▲ 푸쉬카르 호수에서 낙조 경건한 기분이 들게 하는 일몰 장면. 호수와 어우러져 장관이었다.
ⓒ 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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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떨어지는 푸쉬카르 호수는 참 멋졌다. 카페에서 라시와 과일주스를 시켜서 천천히 마시며 감상했다. 많은 외국인, 인도인들이 모여서 낙조를 쳐다봤다. 다들 경건한 표정이었다. 어두워지자 근처 뷔페식당을 가서 저녁을 먹었다. 가격이 비싸지 않았고 맛도 괜찮았다. 그런데 손님은 없었다.

다정하고 순수한 청년 아제. 한국 여행객들에게 잘해준다.
▲ 한국인 친구가 많은 아제 다정하고 순수한 청년 아제. 한국 여행객들에게 잘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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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하고 나왔는데 장신구와 향을 파는 인도인을 만났다. 그 친구에게서 장이 팔찌 하나를 샀다. 그 친구는 자기 이름이 '아제'라고 소개하며 한국인 친구들이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인 친구에게 이메일을 보내야 된다고 하면서 장을 데리고 옆에 있는 피시방을 갔다. 그리고 자기가 하는 말을 장이 한국말로 번역해서 이메일을 보내주었다.

난 뒤에서 방명록에 아제를 칭찬하는 얘기들을 읽었고 아제가 여행객들과 찍은 여러 사진을 구경했다. 그리고 'SK아저씨'라는 분이 나타났다. 그 피시방 주인이자 차표와 낙타 사파리를 관리하는 사람이었다. 아쉽게 우린 이미 차표와 사파리가 예약이 되어있어 SK아저씨는 입맛만 다셨다. 왜 SK아저씨인가 했더니 이름이 에스케이였다.

방에 돌아오는 길에 라시 한잔을 더 마시고 옥상에 올라갔더니 스웨덴에서 온 아버지와 아들 여행객이 스위스에서 온 중년 여성 여행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로 여행을 많이 다녔는지 여기저기를 말하였다. 스웨덴 부자는 라오스 얘기를 하며 정말 좋았다고 극찬을 했다. 사람들이 물건 사는 것에 상관없이 깊게 웃고 행복해 보였다고 한다. 라오스도 가고 싶었던 나라라 옆에서 귀가 솔깃해서 들었다. 밤이 깊어져 내일 낙타 사파리를 위해 방으로 들어가 눈을 감았다. 내일 사막으로 간다.


태그:#푸쉬카르, #인도여행, #일몰, #낙조, #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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