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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고사원, 하숙집, 양옥형 원룸, 일반 원룸
▲ 다양한 1인 주거지 건물들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고사원, 하숙집, 양옥형 원룸, 일반 원룸
ⓒ 김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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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기 참 외로웠는데... 다른 사람들은?

2008년 1학기, 대학생인 나는 처음으로 혼자 살았고, 지금도 그렇다. 보증금 500만원, 월세 35만원의 조그만 원룸. 그동안 집을 떠나 혼자 살아 본 적이 없다. 성인이 되기까지는 가족과 함께 살았으며, 대학교 입학부터 입대 전까지는 4인 1실의 학교 기숙사에서 살았다. 2년 간 군 생활이 집을 떠나 생활한 최장 기간이었으나 '혼자' 살았던 건 아니었다. 물론 이 시기에 '집을 떠나면 고생이다'라는 문장을 절실히 체감하긴 했다.

대학교가 집 근처인 학생 외의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원룸, 고시원, 리빙텔, 하숙집 등에서 혼자 산다. 그 중에는 혼자가 아닌 여러 명이 같이 살거나 연인과 동거를 하는 사람도 있다. '가정'이란 둥지를 떠나 새 둥지를 튼 셈이다.

나는 이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단언하건대, '처음'이란 말이 붙은 것 치고 쉬운 건 없다. 살림이란 게 만만찮은 게 아니었다. 겨울에 보일러가 고장 나도 어쩔 줄 몰라 냉방에서 밤을 지새기도 했고, 세탁기에 빨래를 돌릴 때 색깔 별로 옷을 분리하는 것을 몰라 물이 빠져 빨래감 전체를 버리기도 했다. 반찬은 쉬 상했고, 밥솥으로 짓는 밥인데도 잘 씹히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나처럼 외로웠을까?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증이 일었다. 누군가는 나와 같기도, 또 다르기도 했다. 한 학기가 끝나고 방학을 맞아, 각자의 방식으로 혼자만 삶을 이끌었던 첫 '싱글족'들의 삶에 돋보기를 댔다.

고시원서 고군분투  "나 집으로 돌아갈래"

다음 주면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 고시원을 선택했던 그녀 다음 주면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 김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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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은 1월부터 현재까지 고시원에서 6개월을 살았다. 집은 분당. 버스를 타고 집에서 학교까지 40분이 걸린다. 학교 공부와 공무원 시험 준비를 병행 중이다.

그 전까지 기숙사에서 살거나 집에서 통학했다. 그러나 '혼자만의 자유'가 그리웠던 최양은 부모님의 허락을 맡고 '홀로살기'를 시작했다. '자의적 싱글족'인 셈이다. 다음은 최양과의 인터뷰 전문.

- 학교와 집도 가깝고 굳이 나와서 살 이유가 있었는지.
"여러 가지 요인이 있어. 집에서 부모님 보면서 시험 준비 하는 게 부담됐어. 혼자 살고 싶었어. 새벽에 나가거나 밤 늦게 들어오는 생활이 필요한데 부모님이랑 있으면 아무래도 간섭받고, 눈치 보이지. 또 뭘 하든지 간에 부모님이 돌봐주시니 내 삶을 산다는 주체적인 기분이 안 들기도 했어."

- 고시원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나는 원래 자취를 하고 싶었어. 여자 혼자 산다고 집에서 반대했었지. 뉴스에서도 혼자 사는 여자 위험하다고 많이 나오잖아. 그런데 고시원은 찬성하시더라고. 엄마가 말하길 '고시원이나 자취나 한 끝 차이 같지만 살림 하는 입장으로 자취하면 손이 갈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고 하셨어. 실제로 고시원은 공동 세탁실, 공동 부엌, 공동 화장실을 쓰니까 내가 따로 청소하거나 설거지 할 일은 없잖아."

- 처음 고시원서 살아 보니 어떤지. 스스로에게 끼친 영향은.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이 질문에서 격앙된 듯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집이나 기숙사에선 안 그랬는데 고시원에 사니 몸이 자꾸 약해지더라고. 좁은 방이 알게 모르게 내 몸에 스트레스를 줬던 것 같아. 이제 반 년 살았는데 못 견디겠어서 집에 갈려고. 내가 갇힌 듯한 기분이 계속 들어서. 너무 답답하고 방음도 잘 안 되고. 보이지는 않는데 양쪽 방에서 소리가 나니 예민해졌어.

또 공부하는데 도움이 될 줄 알았는데 혼자 있으니 내가 받는 스트레스를 배출할 데도 없고. 집에 있었으면 간섭은 받았겠지만 위로도 받았을 텐데. 장기적으로 보면 집에 있는 게 내게 낫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집은 국어사전 찾아보면 나오잖아. '비바람 피하고 의식주를 해결하는 공간'이라고. 고시원은 아닌 것 같아."

인터뷰 말미에 그녀가 덧붙인 말이다. 누군가가 고시원에서 산다고 한다면 뜯어 말릴 생각이라고 했다. 집에서 자기관리가 안돼서 나오고 싶은 사람은 핑계일 뿐이란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다.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녀는 고시원 생활 초기엔 자유로움을 느꼈다고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제대로 된 삶'에 대한 욕구가 강해졌다고 한다. 최양은 다음 주에 방을 빼고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예비역이 말하는 독신남으로서 한 학기

한 학기 첫 '독신생활'을 경험했던 (右측 제외) 예비역 3명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예비역의 100분 좌담회 한 학기 첫 '독신생활'을 경험했던 (右측 제외) 예비역 3명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김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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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 명단 : 권달현(아주대 미디어공학부 3년. 24세.경남 창원 생. 2008년 2월 제대 후 복학. 자취 경력 6개월), 이승민(아주대 정보 및 컴퓨터공학부 2년. 24세. 2007년 8월 제대 후 2008년 복학. 경남 창원 생. 자취 경력 6개월), 백윤재 (아주대 신소재공학부 3년. 25세. 서울 생. 2007년 7월 제대 후 2007년 2학기 복학. 자취 경력 1년)                        

예비역 3명이 한 맥주집에 모였다. 그들은 원룸에서 혼자 산다. 쉴 새 없이 떠들었고 맥주잔은 비어갔다. 세 명 다 입대 전에는 기숙사에서 살았고, 백윤재 군을 제외하고 전역 후 복학 한 이번 학기에 자취로 '홀로 살기'를 시작했다.

다들 이번 주제에 대한 생각이 각양각색이었다. 백 군은 1년 간 혼자 산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번 좌담회에서 한껏 여유로운 기색이었다. 각자의 성격에 따라 주제를 바라보는 관점과 영향에 큰 차이가 있었다.

이 : "혼자만의 생활에 익숙해졌지. 학창시절에는 혼자 학교 가는 것도 싫어 몰려 다니고 밥도 같이 먹고 그랬는데, 이제는 혼자서 하는 게 편해. 처음에는 싫었는데…."

권 : "근데 어차피 나중에 졸업해도 결혼 전까지 집에서 나와 살면 혼자 있어야 되는 거 아니냐? 취직해서 혼자 살면 직장 일도 그렇고 자취하면서 받는 어려움도 있고 스트레스 이중으로 받을 것 같다. 그냥 지금 연습하는 셈이라고 생각해."

백: "남자는 제대 전과 제대 후 자취생활이 많이 달라진다고 봐. 나 처음에 자취할 때는 안 그랬는데, 내 돈 내고 생활하는 게 아니라서 그런지 각종 공과금 같은 건 내가 돈 벌어 내려고 노력해. 입대 전엔 절대로 안 그랬을 텐데, 군대 갔다 와서 그런가."

같이 울고 웃고 공감하며 이야기 중이다.
▲ 좌담 중인 예비역 같이 울고 웃고 공감하며 이야기 중이다.
ⓒ 김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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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 "평일엔 학교 다닌다고 왔다갔다 정신없는데, 주말에는 할 게 없다. 특히나 자다가 잠에서 깨면 얼마나 허무하고 외로운지. 기숙사는 항상 사람이 있어서 그런 건 잘 못 느꼈다. 자취하면서 5kg 빠졌어. 기숙사에서는 사람들끼리 끼니 때 되면 친구들 안 불러도 되니까 다 같이 밥 먹으로 가고 그랬지. 방 단위로 야식도 많이 시켜 먹고…."

권 : "그런데 사 먹는 건 다 똑같지 않나? 학기 중엔 아침 안 먹고 점심 사 먹고, 저녁은 대충 또 먹거나 술 먹으며 안주 먹고. 주말이 조금 문제지. 또 돈에 대한 스트레스가 생겼어. 자취하며 주소 이전을 하니까 한 달에도 몇 장씩 공과금, 보험료 고지서 날라오니까. 돈이 들어오면 미리 나갈 돈을 생각하게 되고 돈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백: "자취를 하면서 나만의 철학이 있다면, 집에서 간단한 술은 괜찮은데 술판은 안 벌이는 거야. 또 여자친구가 있는 경우는 문란한 생활을 할 가능성이 높지만 난 하지 않는다는 자존심이 있어. 매일 청소도 하고. 자취할 때 스스로만의 기준이나 마음가짐이 있어야 생활이 쉬운 것 같아. 그런 것이 없으면 자신의 의도와는 생활이 다르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해."

권 : "혼자살기는 '도박'이다! '모 아니면 도'! 잘 하는 애들은 자기 일 잘 챙기고 평소 집에서 지내는 거랑 비슷한데, 아니면 개판치고 사는 거지."

이 : "난 '동굴'인 것 같다. 한 번 방에 들어가면 나오질 않아.(웃음)"

백 : "'원래 집에서 몸만 나와 있는 정도'라고 생각해. 완전한 독립을 위한 준비단계인 셈이지. 지금은 이렇게 해야 하는 구나, 저렇게 해야 하는 구나. 사실 우리가 부모님께 기대는 부분이 있잖아."

지금은 연습일 뿐, 우리 약속 하나 해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여러 사무실을 다니며 원룸을 알아보고 있었다
▲ '혼자 살기'를 준비하는 모녀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여러 사무실을 다니며 원룸을 알아보고 있었다
ⓒ 김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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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중개사 사무실 앞을 서성대는 중년의 아주머니와 딸로 보이는 여학생을 만났다. 태풍 '갈매기'의 영향으로 비가 억수 같이 내리는 데도 불구하고 사무실 앞의 원룸 시세를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실제로 두 사람은 모녀지간이고, 딸이 살 원룸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딸애가 방학부터 혼자 살아보고 싶다고 해서 원룸 구하는 중인데, 참 쉽지 않네요. 학기 초가 아니라서 그런지 방을 구하기도 쉽지 않고…."

여학생은 "홀로 독립하고 싶어서 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허락은 하셨는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그래도 저는 좀 설레는 것도 있어요" 하고 웃음 지었다. 모녀는 곧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녀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시세가 천차만별이다
▲ 사무실에 붙어있던 광고들 시세가 천차만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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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보호가 필요한 유아기를 지나 자아가 성립되는 청소년기를 거치고 성인이 될 때 우리는 한 번씩 독립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나 독립을 한다는 것은 자기 인생의 새로운 국면전환이라는 것을 주지해야 한다.

취재 과정에서 혼자 사는 것이 편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실제로 최양은 고시원 생활이 힘겨워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고, 예비역 자취생들은 외롭지 않다고 해도 외로워 보였다. 특히나 자다가 잠에서 깨면 그렇게 허무할 수 없다는 이 군의 말이 떠오른다.

2008년도 1학기, 그들은 혼자 살았다. 학교와 집이 멀어서, 혼자 살고 싶어서, 기숙사 입사할 성적을 넘지 못해서 자의든 타의든 아침에 홀로 눈을 떴다. 소득이 없는 '대학생'으로 부모의 돈에 의지해 한 자리 수 제곱미터의 공간에서 한 달 한 달을 살았다.

'즐거운 나의 집' 노래가사처럼 '꽃 피고 새 우는 집'은 아니다. 때론 끼니를 넘기고, 외롭고, 답답해도 꿋꿋하게 살아왔다. 한 학기, 전국 혼자 사는 대학생들이여. 모두 다 고생 많았다. 다 같이 다짐 하나 했으면 한다. 밥은 굶지 않고 건강을 챙기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홀로 사는 자유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지자고. 그리고 지금은 앞으로 살아갈 삶에 대한 연습일 뿐이라고.


태그:#원룸, #혼자 살기, #1인 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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