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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주에게 마구 폭행당한 재중동포 세 노인. 이들은 약자의 인권을 외면한 경찰과 노동부에 대해 불신감을 표시하고 있다.
 농장주에게 마구 폭행당한 재중동포 세 노인. 이들은 약자의 인권을 외면한 경찰과 노동부에 대해 불신감을 표시하고 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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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7일 이영춘(63·심양시), 김장수(63·요녕성), 최기철(68·흑룡강성)씨 등 재중동포 노인 3명이 중국동포상담소를 찾아왔다. 농장주인에게 삽자루로 폭행당했다는 것이었다.

정부 당국에 인권침해 방지대책을 호소한 지 사흘 만에 또 다시 삽자루 폭행사건이 발생한 현실이 기가 막혔다. 사건 발생 사흘 전에 '재중동포 인권침해 고발 기자회견'을 가진 바 있다. 삽날, 쇠파이프, 소주병 등의 흉기를 사용한 폭행으로 인권침해는 물론 생명을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세 노인은 4월 16일 인력업체 소개로 G조경업체가 운영하는 농장을 찾아갔다. 이들로부터 농장에서 일하는 재중동포들과 하룻밤을 지내면서 ▲ 월급을 곧바로 준다고 했는데 한 달치 깔고 준다는 것 ▲ 밥값으로 5만 원 제한다고 했는데 12만 원을 공제한다는 것 ▲ 전기세 및 수도세로 1만 원을 공제한다는 것 ▲ 근로시간은 10시간(07:00-17:00)이라고 했는데 사실은 12시간(07:00-19:00) 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농장에는 동포 30여 명이 숙식하며 일하고 있는데 ▲ 작년 임금을 아직 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 아파서 병원에 가려고 해도 돈을 주지 않고 있다 ▲ 아파서 일을 그만두고 가려고 해도 돈을 주지 않아 곤란을 겪고 있다는 하소연과 함께 "돈을 받지 않더라도 여기를 떠나고 싶다"는 동포도 있다는 것이었다.

세 노인은 문제점을 전해 듣고는 농장을 떠나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농장주에게 가겠다고 통보하자 농장주는 "이 ×××들 가긴 어딜가, 가려면 어제 가지 왜 오늘 간다고 그래, 가려면 밥값 5만 원하고 손해배상하고 가라"며 위협했다. 이에 세 노인은 "우린 돈이 없다"며 주춤했다.

그러자 농장주는 삽자루를 휘두르며 이씨의 엉덩이, 등짝, 허벅지 등을 때렸으며, 김씨는 발로 차서 쓰러뜨린 뒤 삽자루로 허리를 때렸다고 했다. 삽날을 세워 최씨의 신장 부위를 찔렀는데 다행히도 안주머니에 휴대폰이 있어 큰 상해를 면했다고 했다. 농장주의 무자비한 폭행이 무서워 200m 가량 도망가자 농장주는 짐차를 몰고 쫓아와 또 다시 삽자루로 엉덩이와 등을 때렸고, 주먹으로 안면과 목 부위 등을 마구 폭행했다는 것이다.

세 노인은 30분 가량 폭행에 시달렸다. 이들은 일하지 않고 먹은 15일, 저녁 밥값 2천 원씩을 모아 식당 관리인에게 전하고서야 농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농장주 편드는 파출소 경찰... "보호 받지 못했다"

김장수씨는 "사장(농장주)이 발로 차서 넘어뜨린 뒤에 삽자루로 허리 등을 마구 폭행했다"고 말했다.
 김장수씨는 "사장(농장주)이 발로 차서 넘어뜨린 뒤에 삽자루로 허리 등을 마구 폭행했다"고 말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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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을 빠져 나온 이들은 곧바로 인근 파출소를 찾아가 농장주의 폭행을 신고했지만 헛수고였다. "일하지 않고 가는 바람에 일감을 처리하지 못해 손해 봤으니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농장주의 주장을 경찰이 거든 것이다.

세 노인에 따르면 "사장(농장주)에게 손해를 끼친 책임이 있다"고 경찰이 추궁하면서 "신고를 받아줄 수도 있지만 먼저 사장과 합의보라고 했다"면서 "사장이 손해배상을 요구해 맞은 게 억울했지만 손해배상을 할 수 없어서 신고를 철회했다"고 말했다.

파출소 관계자는 이날 중국동포상담소장과 전화통화에서 "사장과 조선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다가 서로 대화할 시간을 주었다"면서 "밖에서 이야기하고 돌아온 양측이 손해배상과 처벌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해서 사건처리를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농장주는 4월 19일 전화통화에서 "(농장 일자리가) 맘에 안 들면 오늘 가고, 일할 의향이 있으면 내일부터 일하라는 다짐을 받았는데 아침부터 간다며 가방을 짊어지고 온 것을 보고 열불 나서 그랬다"며 "그냥 잘못했다고 했으면 좋게 끝났을 텐데 대들어서 맞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 노인은 "아무런 죄도 없이 쫓기는 짐승처럼 맞아야 했고, 도망가다 붙잡혀 또 맞았다"면서 "한국 법은 잘 모르지만 폭행당한 게 너무 억울하다, 경찰에 찾아가도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니 믿을 수도 없고, 신고하고 싶지도 않다"며 중국동포상담소를 찾아온 이유를 말했다.

동포들의 신음소리 외면한 노동부... "빠른 시일 내에 처리 하겠다"?

농장주의 싸이월드 홈피에 실린 사진. 이들 중 상당수의 재중동포들이 임금체불 등의 피해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농장주의 싸이월드 홈피에 실린 사진. 이들 중 상당수의 재중동포들이 임금체불 등의 피해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G조경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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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5일 경인지방노동청 수원지청(이하 수원지청)에 농장주 J씨를 고소했다. 아울러 병원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는 동포들의 전언을 중심으로 작성한 진정서도 함께 접수시켰다. 하지만 고소는 취하해야 했다. 근로계약을 맺기 전에 발생한 폭행사건은 경찰이 처리한다는 것이었다.

용인경찰서에 접수시킨 고소 건은 빠르게 진행됐다. 농장주 J씨가 폭행 사실을 시인함에 따라 검찰에 기소했다고 담당 형사가 통보해 왔다. 아울러 농장주에게 치료비를 받으려면 '배상명령신청'을 해야 한다는 친절한 조언도 있었다. 현재 농장주에 대한 검찰의 처분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수원지청에 제기한 진정서 건은 깜깜 무소식이었다. 지난 6월 중순 경에 참다 못해 전화를 걸어 항의하자 담당 근로감독관은 진정서조차 챙기지 못한 듯했다. 진정서를 다시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사건을 접수한 지 두 달이 지난 6월 26일 진정서를 다시 보냈다. 재중동포 노동자들의 신음소리가 이들에겐 하품소리로 들렸나보다. 

7월17일 진정인 조사를 받았는데 어이가 없었다. 근로감독관 하는 첫 말이 "사업주를 조사했더니 임금체불이 없다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농장 재중동포들에 대한 임금체불과 인권침해 여부를) 조사했느냐"고 물었더니 하지 않았단다. 농장주를 먼저 불러 조사할 경우 현장이 훼손되지 않겠냐고 했더니 "설마 근로감독관에게 거짓말을 하겠느냐"고 답변하면서 "빠른 시일 내에 사업장 점검을 하겠다"는 것이다.

마구 짓밟아도 되는 사회... 무엇이 실용인지 아시나요?

진정한 지 3개월이 다 되는 시점에서 "빠른 시일 내에 처리하겠다"는 근로감독관의 말을 들으며 이주노동자의 인권 현주소를 생각한다. 

이 사건은 단순폭행 사건이 아니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는 노인들에게 삽자루라는 흉기를 휘둘렀으며 특히, 도망가는 사람을 쫓아가서까지 또 다시 폭행한 무자비한 사건이다. 따라서 검찰의 처분 결과를 지켜보면서 농장주에 대한 민사소송(손해배상) 등으로 폭행의 책임을 확실히 묻을 계획이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권침해가 끊이지 않는 배경에는 이주노동자들을 인권을 가진 사람으로 보지 않는 반인권·반이주노동자 정서가 팽배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을 마구 짓밟아도 법적·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인 인권 후진적 상황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와 인식전환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신속한 조사와 분명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을 확립하는 길이 궁극적으로 사회 갈등비용을 줄이는 길임을 실용을 앞세우는 정부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조호진 기자는 '외국인노동자의집/중국동포의집' 산하 '중국동포상담소' 소장입니다.



태그:#재중동포, #인권침해, #폭행, #경찰, #노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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