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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환율 정책과 가파른 유가 상승으로 경제 위기가 심화되면서 중소기업들의 위기감을 높아지고 있다. 경기도에 있는  한 중소기업의 공장 내부모습
▲ 영세 중소기업 고환율 정책과 가파른 유가 상승으로 경제 위기가 심화되면서 중소기업들의 위기감을 높아지고 있다. 경기도에 있는 한 중소기업의 공장 내부모습
ⓒ 성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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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군포에 있는 B테크 정아무개 사장은 7년째 운영 중인 회사를 정리하기로 했다. 계속 오르는 원자재 값을 버텨낼 방법이 없어서다. 제품 생산에 사용되는 원재료 가격이 폭등하면서 적자운영이 불가피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B테크 주 생산품은 컴퓨터 모니터의 받침대에 들어가는 부품. 국내 유수의 대기업에 납품하고 있어 생산량은 꾸준한 편이다. 하지만 "제품 단가는 제자리인 상태에서 원재료 상승으로 손해 보는 것이 보이는데, 계속 유지할 자신이 없다"는 것이 정 사장의 설명이다.

"원재료 값은 두 배 이상 오른 상태다. 생산단가는 10원도 인상되지 않는 현실에서 어떻게 유지할 수 있겠나!"

원재료 값은 오르는데 단가는 제자리, 결론은 공장 정리

정수기 부품을 생산하는 경기도 광주의 H화학은 그간 재료를 직접 구입해 제품을 생산해 왔으나 재료비 급등으로 생산원가가 상승하자 결국 원재료를 사급(발주처로부터 제공받음)하기로 하고 생산비만 받기로 했다. 이전에는 재료를 구입해 제품 단가에 원재료비를 포함했으나, 원자재값 폭등으로 인해 이 방식을 고수할 경우 대책 없이 손해를 봐야하기 때문이다.

이 회사 임아무개 사장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다달이 단가 조정을 해야 하는데 그럴 수는 없는 일이고, 결국 고심 끝에 원청업체에 협의해 동의를 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임 사장에 따르면 "지난해 kg당 1200원 정도 하던 원료가 5월에 1900원대로 가더니 6월 들어선 2100원으로 상승했고, 곧 2500원으로 오를 예정"이라는 것이다. H화학이 매월 소비하는 원료가 5톤 정도임을 볼 때 예년에 비해 매월 600만원 정도의 원재료비가 추가로 부담되고 있는 셈이다.

유가가 급등하면서 프라스틱 원료인 합성수지 가격도 폭등해 이를 사용하는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 원재료 유가가 급등하면서 프라스틱 원료인 합성수지 가격도 폭등해 이를 사용하는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 성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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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테크와 H화학은 플라스틱 원료인 합성수지를 원재료로 사용하고 있는 업체들이다.

고유가로 인한 경제 악화가 영세 중소기업들을 생사의 기로로 내몰고 있다. 특히 원자재가격이 유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합성수지 사용 업체들의 어려움은 그 강도가 훨씬 크다.

원자재비 상승이 자연스런 제품 단가의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는 현실이지만, 원청 대기업의 눈치를 보느라 쉽사리 단가 인상을 요구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먹이사슬 구조로 얽힌 구조적 문제 탓에 뭔가를 요구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고환율 정책으로 수출에서 이득을 보고 있는 업종들도 마찬가지다. 대기업들이 환차익 외에는 생산차익이 없다고 하는 형편이니 중소기업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고환율 정책의 기본 틀이 환율인상으로 수출기업의 이익이 늘어나면 이를 통한 투자가 확대되면서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다는 것이지만, 그것은 이론에 불과하며 현실적으로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중소기업 경영자들의 목소리다.  

이들에 따르면 "(고환율로 인한) 이득은 고스란히 대기업에게로 갈 뿐 중소기업들은 아무런 해당이 없다"고 말한다. 환율인상으로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다는 생각은 순진한 발상일 뿐이라고 것이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납품 단가를 인상해 주거나 설비투자비를 지원해 준다면 모르겠으나 단가 조정에는 인색한 상황에서 원가만 오르는 현실은 중소기업들에 배겨날 재간이 없게 만든다는 것이 이들의 지적이다.

고환율 정책으로 이득? 중소기업은 해당 없음!

대기업의 발주를 받아 중소기업에서 생산하고 있는 컴퓨터 모니터 받침대. 원재료비는 2배나 올랐지만 생산 단가는 전혀 올려받지 못하고 있다.
▲ 생산제품 대기업의 발주를 받아 중소기업에서 생산하고 있는 컴퓨터 모니터 받침대. 원재료비는 2배나 올랐지만 생산 단가는 전혀 올려받지 못하고 있다.
ⓒ 성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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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이 올라서 수출업종이 이득을 본다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말이다. 납품단가를 올려받는다면 혜택을 입는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단가야 올려 받고 싶지만 실제 올려달라고 하면 발주업체는 원래 단가나 그보다도 더 낮은 가격으로 제품 생산할 수 있는 업체를 바로 알아보기 시작한다. 단가 인상 요구는 사실상 일을 뺏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아무 소리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낫다."

군포에서 자동차 및 보일러 부품 등 수출되는 제품에 들어가는 품목을 생산하고 있는 G엔지니어링 황아무개 대표의 말이다.

황 대표는 "나도 선거 때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마음에 이명박 대통령을 찍었지만, 지금 하는 것을 보니 영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며 "(대통령이) 대기업에서만 있다 보니 중소업체들의 현실적 어려움은 전혀 모르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시화공단에서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고 있는 ㅅ테크의 한 임원도 "환율로 수출 쪽 이익이 늘어나는 곳이 있다고 하는데, 부품 단가 올려달라는 이야기 안 할 테니 제발 단가 인하한다는 소리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수출이 잘 돼서 대기업 수익이 늘어나는 것은 대부분인 중소기업인 협력업체들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일부 장점은 있을 것이지 않냐'는 물음에 "기존 물량은 유지돼 공장 가동에는 지장이 없을 뿐"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순익은 예전보다 더 떨어졌다"고 말하며 한숨지었다.

환율인상으로 인한 이익은 대기업이 얻을지 몰라도 중소기업에 돌아오는 것은 없다는 이야기다. 도리어 고환율로 강도가 높아진 고유가로 인한 피해는 여력 없는 중소기업이 일방적으로 떠안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팀이 주도하고 있는 고환율정책은 수출이 많은 대기업만 도움을 줄 뿐 중소기업들은 별다른 혜택도 못 받은채 가중되는 유가부담속에 생존을 고민하고 있다. 고환율 정책은 극소수 대기업만을 위한 정책이라는 것이 중소기업 현장의 목소리다.
▲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경제팀이 주도하고 있는 고환율정책은 수출이 많은 대기업만 도움을 줄 뿐 중소기업들은 별다른 혜택도 못 받은채 가중되는 유가부담속에 생존을 고민하고 있다. 고환율 정책은 극소수 대기업만을 위한 정책이라는 것이 중소기업 현장의 목소리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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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구미의 삼성전자 협력업체들이 납품을 거부했던 일은 대기업과 중소 협력업체들 간의 이런 구조적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 일이었다. 생산라인이 멈출 경우 클레임까지 물어야 하는 중소기업 입장에서 최소한의 단가 인상 요구가 묵살되자 '납품거부'라는 실천에 나섰던 것이다. 이익을 나누는 데는 인색하지만 원가절감을 중소기업에 떠넘기며 단가 인하를 압박하는 대기업의 모습에 중소기업들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안양에서 만난 한 영세업체 대표는 현 정부의 경제정책이 이런 측면을 더 강화하는 것 같다고 우려하며, 이런 행태가 더 심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정부가 친기업적 정책을 편다며 '비즈니스 프렌들리'라고 떠들지만 대기업 재벌그룹에 해당되는 사안일 뿐"이며 "진정한 친기업적 정책을 펴겠다면 중소기업인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대기업 사장 출신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중소기업에 대한 배려가 있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면서 "경제가 살려면 중소기업들이 탄탄해야 하는데, 현재의 정책기조를 볼 때 대기업 편중이 더 심화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따라서, 현 정부의 고환율 정책은 사실상 대기업 밀어주기일 뿐이라는 것이다.

MB 친기업정책은 오직 재벌그룹과 대기업만 해당

이러한 중소기업들의 피해의식에는 수년간 일부 대기업들이 보인 비자금 조성 사건 등 부도덕한 경영에도 원인이 있다. 고통분담을 요구하며 원가절감을 요구하더니, 결국에는 천문학적 액수의 돈을 비자금으로 쌓았던 행태에 불신감이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경기도 시흥에서 자동차용 전자부품을 생산했던 한 사장의 말이다.

"(대기업에서) 내려오는 공문에는 '고통분담' 어쩌고저쩌고 한다. 그리고 결론은 같이 살기 위해서는 단가를 인하해야 한다는 거다. 거래를 끊을 수는 없는 형편이라 그렇게 해마다 깎아줬다. 그런데, 비자금 사건 발생했을 때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고통분담하자더니 결국 그 돈 몰래 비밀금고 만들어 쌓아두지 않았나? 협력업체들에게 1억원씩만 저금리로 융자해 줘도 중소기업들 운영이나 경제에 큰 도움이 됐을 텐데…."

"지금은 시설 확충을 할 여건이 안돼 거래가 끊겼다"고 말한 그는 "대기업들의 부도덕하고 잘못된 모습이 쉽게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분위기 안 좋을 때야 당연히 몸을 사리겠지만, 기회를 봐서 또 되풀이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비즈니스 프렌들리로 대기업 기 살려주고 있는 현 시점에서는 더욱.

수출을 늘려 경제를 살리겠다던 정부의 고환율 정책은 이렇듯 생산현장에서는 1% 대기업만을 위한 정책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었다. 상생이나 공존이 아닌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현실, 정부의 어설픈 경제정책은 고유가로 압박받는 중소기업들의 시름만 깊게 만들고 있었다.

수출증대를 통해 경제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는 고환율 정책은 유가 상승을 부채질하며 경제에 큰 압박을 가하고 있다. 사진은 수출제품이 담긴 컨테이너를 선적중인 모습.
▲ 부산항 수출증대를 통해 경제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는 고환율 정책은 유가 상승을 부채질하며 경제에 큰 압박을 가하고 있다. 사진은 수출제품이 담긴 컨테이너를 선적중인 모습.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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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료값 상승, 순익 하락, 단가 압박에 괴로운 중소기업
경제여건 불안정 속에 상대적 박탈감만 늘어날 뿐

"일거리는 줄어들고 원자재는 올라가고 순익은 떨어지는데 단가는 낮춰야 한다니…."

중소기업 경영자들의 넋두리는 영세한 업체로 내려갈수록 더 크게 나왔다.

시화공단의 S테크는 "최근 발주업체에서 이미 10%선을 상회하는 단가 인하 요구가 있었다"고 밝히고, "적당한 선(대략 5~7% 생각 중)에서 단가 인하가 이뤄질 것 같다"고 전했다.

이 업체의 관계자는 "단가 인하야 피할 수 없는 일이고 그보다 신제품 오더를 받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추가 오더라도 받아야 단가 인하로 인한 손실을 조금이라도 만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쟁의가 있다고 하면 불안해요. 단가 인하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겠구나 싶거든요."

취재과정에서 만난 대기업 협력업체 관계자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비슷했다.

대기업의 노동쟁의가 발생하면 양쪽이 어느 정도 실랑이를 벌이다 타결되고, 임금 인상분 보전은 협력업체들이 책임져 주는 것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얼마 안 있다가 단가 인하하자는 이야기나 나오고, 결국 일정한 선에서 단가가 조정되기 때문이란다. 대기업과 노조가 겉으로는 티격태격 하는 것 같아도 중소협력업체들 압박해서 자기 회사 노동자들 임금인상 해 주고 자신들은 별 손해를 안보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덕분에 중소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대기업과 대기업 노동자들에 비해 상대적 박탈감만 더 심해진다는 것이다.

현대자동차 협력업체 M사의 한 관계자는 "90년대 인력 안정이 안돼 작업자들이 수시로 바뀌던 시절이 있었는데, 불량도 많이 나고 현장도 불안정했지만 그때가 지금보다 회사 순익 면에서는 훨씬 좋았다"며 "지금은 인원도 늘어나고 장비도 많이 증설됐지만 계속되는 단가 인하 때문에 실익은 없다"고 말했다.

협력업체 입장에서는 납품 단가가 인하되는 상황에서 대기업들처럼 종업원들 처우 개선 요구에 충실히 응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대기업들 파업할 때는 꽤 손실 많은 것 같지만, 그렇다고 연말에 연 목표치 못 채웠다거나 큰 손해 봤다는 뉴스는 못 들어본 것 같아요. 파업 타결되면 노조에서 앞장서 특근하고 철야하고 하면서 생산량 맞춰주고, 그러면 회사에서는 연말에 다시 성과급 주고 하는 것 같던데…."

대기업이나 노조나 모두 한통속이라고 본다는, 그래서 상대적으로 비애감만 더 느껴진다는 한 협력업체 관계자의 푸념이었다.


태그:#경제, #환율, #중소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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