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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훑었다. 인적이 드문 섬에서부터 육지와 다를 바 없이 사람들이 북적이는 섬까지, 보잘 것 없는 섬에서부터 풍광이 빼어난 섬까지도 사람이 살고 있는 섬이란 섬은 다 찾아다녔다. 그리고 섬의 현황과 자원, 문화, 역사에 이르는 자료를 수집하고 기록했다.

 

화제의 주인공은 이재언(55)씨. 지난 2004년부터 최근까지 직접 배의 키를 잡고 전국의 유인도 446개 섬을 하나하나 찾아다녔다. 섬 탐험을 한 셈이다. 처음도 아니다. 벌써 두 번째다. 배가 고장 나 몇 번이나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했다. 해양경찰에 붙들려가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가 별난 사람은 아니다. 직업은 전라남도 여수 백야도교회에서 목회활동을 하고 있는 목사다. 단지 어느 누구보다도 섬에 대한 진한 애정을 갖고 있을 뿐. 자신이 섬(완도 노화도)에서 나고 자란 탓도 있지만 섬에서, 섬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고 싶은 게 그의 소망이다.

 

그의 오랜 섬 탐험 역사에는 소외되고 단절된 섬사람들의 이야기가 오롯이 살아 있다. 섬의 애환과 아픔도 그대로 녹아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천혜의 자연경관을 지닌 섬의 풍광과 때 묻지 않은 인심, 섬사람들의 씩씩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이유다. 직접 보고 들은 섬사람들의 삶과 애환 그리고 그들의 사랑도 흥미진진하면서도 애틋하게 그려진다.

 

다음은 이재언 씨와의 일문일답이다.

 

- 섬에 대한 애정이 특별한데요. 무슨 계기가 있는지?

"제 자신이 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이후 서울에서 살면서 차별대우를 많이 받았죠. '섬놈'이라는 이유만으로. 섬과 섬사람들이 모난 것도 아닌데 속이 많이 상했죠. 뭍사람들에게 섬과 섬사람들의 진솔한 모습을 그대로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고유한 문화와 역사를 지닌 섬과 섬사람들의 삶도 연구가치가 충분하다고 봤습니다. 육지와 섬사람들의 간격을 조금이라도 좁히고 싶었습니다."

 

- 섬이란 섬은 다 돌아보셨는데. 대체 무엇이 섬으로 유혹하던가요?

"제 직업이 목사이거든요. 지난 1991년부터 선교를 위해 완도 노화도 주변 14개 섬을 배를 타고 다녔습니다. 모두 교회가 없는 섬들입니다. 그때 느낀 게 섬과 섬끼리 단절돼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섬에 대한 책자나 정보도 없었고요. 가난하면서도 소외받는 그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 그렇게 해서 시작한 게 1차 답사네요.

"처음 전국의 유인도를 모두 돌아본 게 1992년부터 4년 동안입니다. 해도(海圖) 하나 달랑 들고 진도 조도를 시작으로 유인도 탐사에 나섰죠. 그때는 지금보다 몇 배 어려운 모험이었습니다. 주변의 모든 사람이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다'고 반대했었으니까요. 이혼 당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습니다."

 

- 답사 결과를 책으로 묶어냈다면서요.

"1차 순회는 말 그대로 수박 겉 핥기였습니다. 전문성이 없었죠. 책이라기보다는 돌아본 섬의 현황과 실태를 기록한 자료집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1996년에 <낙도선교>라는 이름으로 묶어서 냈는데, 분량이 680쪽에 이릅니다."

 

- 이번 2차 답사는 그 속편인가요?

"<낙도선교>를 펴내면서 약속을 했었습니다. 10년 주기로 돌아보고 변화돼 가는 모습을 다시 담아내겠다고. 그런데 워낙 방대한 작업이다 보니 10년을 넘겨버렸습니다."

 

- 예전 1차 답사와 비교해서 다른 점이 있다면?

"처음에 비하면 '누워서 떡먹기'라고 봐야죠. 1차 때는 나침반과 해도(海圖)만 달랑 들고 떠났는데요. 지금은 장비 면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했지 않습니까. 핸드폰이 있죠. 바닷길을 안내해 주는 위성항법장치(GPS)도 나와 있죠. 섬을 찾아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워낙 섬이 많아서 힘들었을 뿐이죠. 하지만 보람도 크고 의미도 있었습니다."

 

- 의욕만 가지고 하기엔 버거웠을 텐데요. 시쳇말로 돈도 많이 들고.

"물론 어려웠죠. 지리적으로나 시간적·경제적인 제약 외에도 봄이나 여름엔 안개와 무더위, 폭풍과 싸워야 했습니다. 겨울엔 살을 에는 찬바람과 높은 파도가 적이었습니다. 숙식은 섬에 있는 교회에서 해결했습니다. 배의 연료와 정비는 한국교회에서 지원했습니다. 배가 고장 났을 때 무료로 고쳐준 후원자도 있었습니다. 빚도 늘었습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습니다. 꿈과 비전만 잃지 않으면 못할 게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했다면서요.

"1차 때도 여러 번 그랬었는데, 이번에도 고비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2006년 11월 신안 임자도에서 각시도에 들렀다가 나오는 길에 파도에 밀려 모래톱에 걸렸었는데요. 기적적으로 빠져 나왔죠. 대개 모래톱에 걸리면 빠져 나오지 못하고 침몰하거든요. 지난해 2월엔 진도 맹골도에 다녀오는데 파도가 어찌나 높던지 진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작년 11월에는 무안 복길앞바다에서 또 한번 배가 침몰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슴 아팠던 것은 배가 침몰하면서 수집하고 기록한 자료들이 바닷물에 젖어버린 것이었습니다."

 

- 정말 고생 많이 하셨겠습니다. 그 결과를 책으로 묶어내신다면서요.

"모두 일곱 권의 책으로 엮을 것입니다. 제목이 <1박2일로 떠나는 웰빙여행, 섬>인데요. 며칠 전에 제1권이 나왔습니다. 1권에는 인천과 경기지역 섬 40곳을 소개했습니다. 금명간 나올 2권에는 충남과 전북, 3권은 전남 신안, 4권은 진도와 영광·목포·해남지역 섬을 묶습니다. 5권은 완도와 제주, 6권은 여수와 고흥·보성, 7권은 경남과 울릉도지역 섬을 소개하는데요. 섬에 관한 모든 정보를 담은 섬 여행 길라잡이가 될 것입니다. 선교목적의 책자도 따로 낼 예정입니다."

 

- 섬을 다 돌아보셨는데. 생활편의시설이 잘 돼 있는 곳은 어디던가요.

"큰 섬들, 대략 40∼50개 섬은 육지와 같은 문화혜택을 받고 있었습니다. 흑산도와 울릉도, 백령도 이런 섬들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거리가 워낙 멀어서 겨울엔 유배지나 다름없습니다. 신안 안좌도·팔금도처럼 뭍과 가깝거나 연륙교로 연결돼 있는 섬들은 환상의 섬여행을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이런 섬에 도시민들의 휴식공간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 휴가철입니다. 올 여름 여행지로 추천하고 싶은 섬이 있다면?

"일반인들에게 덜 알려졌지만, 절해고도인 신안 만재도와 바닷길이 갈라지는 여수 추도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목포항에서 105㎞ 떨어진 만재도는 뱃길로 5시간 걸립니다. 국토의 최서남단 가거도보다도 더 먼 섬이죠. 그러나 풍광은 홍도, 백도보다도 더 빼어난 것 같습니다. 갯바위 낚시꾼들 사이에서는 이미 소문 난 곳입니다.

 

목포항에서 여객선 요금이 편도 4만3000원하는데, 진도 팽목항에선 차도선으로 1만8700원이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연도교로 연결된 신안 안좌도와 팔금도·자은도·암태도도 차를 가지고 들어가면 섬여행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곳입니다. 전라북도 하왕등도와 말도도 그렇습니다. 경상남도 국도, 충청남도 외도와 내파수도도 교통이 불편하지만 꼭 한번 가볼만한 곳입니다. 인천과 가까운 세어도와 측도도 좋습니다."

 

- 섬 여행의 매력을 꼽는다면.

"대개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들은 섬 여행을 꺼려합니다. 섬이 주는 신비감이나 아름다움은 잠시일 뿐, 금세 단절감에 사로잡힌다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사람들에게 섬 여행을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섬은 외로운 영혼의 본질을 볼 수 있는 여유와 다소 낭만적인 외로움, 묵상의 기회를 부여해 줍니다. 이를 통해 보다 강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 개인적인 포부나 계획은.

"섬의 가치는 무한합니다. 영토적인 측면에서나 자원, 관광 면에서도 그렇습니다. 독도와 백령도, 연평도, 가거도 등을 보면 알 수 있잖아요. 이 섬들을 독립적으로 총괄하는 전문단체가 꼭 있어야 합니다. 일본의 이도(離島)센터가 그 모델입니다.

 

일본은 1956년에 지자체 출연금으로 이 센터를 설립한 이후 섬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며 발전방안을 찾고 있어요. 우리나라도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이런 단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모여서 섬의 개발과 발전, 보존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누구나 살고 싶고, 가고 싶은 섬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제가 섬 답사에 나선 것도 섬과 섬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고 미력하나마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태그:#이재언, #유인도, #섬탐험, #섬여행, #백야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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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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