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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Korean Boxer

- 사진 : 佐藤ヒデキ

- 펴낸곳 : リトルㆍモア(little more) / 2003.3.10.

 

겉그림 한국 권투선수 모습을 차곡차곡 담아낸 사진책입니다. 일본 사진작가는 한국땅까지 애써 찾아와서 이런 책까지 꼼꼼하게 펴냅니다.

 지난달 끝무렵, 모처럼 서울 회기역 둘레에 자리한 헌책방까지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올 첫머리에 가 본 뒤 넉 달 만에 찾아갔습니다. 다른 일로 바쁘기도 했지만, 요즈음은 주머니가 몹시 후줄근해서 새로운 책을 장만하러 다니기가 어렵습니다.

 

그래도 그날 하루 돈 이만 원을 벌었기에 이 돈을 들고 찾아가서 꼬박 이만 원어치 책을 사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헌책방 책맛을 모르는 분들로서는 이만 원밖에 안 되는 돈으로 인천 왼쪽 끄트머리에서 서울 오른쪽 거의 끝에 붙은 데까지 먼길을 적잖은 찻삯을 들여서 찾아가느냐고 나무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헌책방 책맛을 알고 있는 저로서는 먼 나들이길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돈 이만 원이면 새책 한 권 장만하기에도 빠듯할 수 있습니다만, 여느 헌책을 장만할 때에는 열 권이나 열다섯 권까지도 장만할 수 있습니다.

 

또한, 언제 어디서나 셈틀을 켜고 인터넷으로 살 수 있는 새책과 달리, 제가 다리품과 손품과 눈품을 팔아서 살펴보고 찾아내고 캐내는 헌책은 무척 남다릅니다.

 

새책방 창고와 파주 물류창고에 재고가 가득한 책도 그 나름대로 값이 있습니다. 헌책방 헛간에 재고 하나 없으며 오직 책꽂이에 달랑 한 권 꽂혀 있는 책도 이 나름대로 값이 있습니다. 저는 몇 해에 걸쳐서 돌아다녀도 한 번 만나기 어려울 만한 ‘묻혀 있는’ 책, 또는 ‘숨어 있는’ 책을 찾으려고 우리 나라 곳곳에 조용히 깃들어 있는 헌책방을 찾아갑니다.

 

 히데키 사토라는 분이 펴낸 사진책 <Korean Boxer>도 우리 나라 헌책방에서 만났습니다. 저한테 무슨 돈이 있어서 일본까지 다녀오겠습니까. 도서관 달삯 대기에도 빠듯한데, 비행기삯이든 배삯이든 마련하지 못합니다. 밥도 먹어야지, 또 사진책만이 아니라 여러 갈래 책을 두루 읽으며 마음을 살찌워야지, 또 뜻있는 시민단체 뒷배도 해야지, 주머니가 남아나지 않습니다.

 

 중얼거림은 이만 접고, 히데키 사토라는 분은 권투 사진만 즐겨찍는 분이라고 느낍니다. 헌책방에서 이분 사진책을 처음 만났을 때, 책에 달린 띠종이를 보니, <Korean Boxer>를 내기 앞서 <MEX BOX 拳鬪旅行>과 <PHILIPPINES ★ BOXER>라는 사진책을 펴냈다고 나옵니다. 책이름 사이에 넣은 ‘★’은 필리핀에서 ‘별’과 같았던 권투선수들을 만났다는 이야기인 듯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필리핀에서 권투선수가 되는 일은 ‘별이 되는’ 일이라고 느낀다고 하는지 모릅니다.

 

 지난달 찾아간 헌책방에서는 ‘캐나다 자연을 담아 1967년에 캐나다에서 펴낸 크고 두툼한’ 사진책 하나를 만났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우리 자연을 담은’ 사진책은 제법 많기는 한데, 사진감은 자연이지만, 찍은 사람 개성이나 다양성은 그다지 느끼지 못하곤 합니다. 책으로 묶어낸다고 할 때에는, 사진쟁이 한 사람 발자취를 보여준다는 뜻도 있을 터이지만, 사진쟁이 한 사람이 일구어낸 땀방울을 우리들이 두루 맛보고 나눌 만하다는 뜻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퍽 안타깝다고 생각합니다만, 저는 아직까지 한국땅에서 자연 사진을 담는다고 내세우는 수많은 내로라하는 분들 작품에 100점 만점에서 20점 넘는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참말로 이런 사진을 왜 그렇게들 찍으시는지. 김영갑 님만큼 한삶과 한목숨을 고이 바치면서 땀만이 아닌 피와 눈물까지도 담아내지 못하는 사진을 왜 그렇게들 쏟아내시는지. 이런 우리네 사진 흐름을 돌아볼 때, 나라밖 훌륭한 ‘자연 사진책’을 헌책방 책꽂이에서 만날 때마다 가슴이 북받쳐 눈물이 납니다.

 

여기에, <Korean Boxer>처럼, 한국 사진쟁이 어느 누구도 건드리지 않은 사진감을 이웃 일본(어떤 분한테는 미운 나라 일본) 사진쟁이가 꼼꼼하면서 빈틈없으면서 애틋하기까지 한 느낌을 담아서 펴낸 모습을, 한국땅 헌책방 책시렁 한 귀퉁이에서 만날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고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좋은 핑계를 대자면, 필리핀 사진쟁이들도 아직까지 ‘필리핀 권투선수 삶과 발자취’를 안 담아냈을 수 있고, 일본 사진쟁이는 제 나라에서 더 찍을 만한 사진감을 못 찾고 세계 여러 나라를 누비며 거들먹거린다고 할 수 있지만.

 

 헌책방 골마루 한켠에서 ‘가볍지 않고 큰’ 사진책을 들고 꺼이꺼이 울고 있는 저를 보는 헌책방 일꾼이 슬그머니 다가와 묻습니다. “왜, 무슨 책을 보는데 그렇게 울어?” “아저씨도 보셔요. 이런 책을 우리 나라 사진쟁이들은 아무도 못 찍고 있는데, 나라밖 사람들이 우리 나라에 와서 이토록 훌륭하게 담아내니, 고마워서 울고 슬퍼서 웁니다.”

 

 속으로 다짐합니다. 그렇다면, 저는 제가 아는 한 가지 사진감, 또 저한테 늘 깊고 너른 가르침을 베풀어 주기도 하는 사진감인 ‘헌책방’을 꾸준하게 사진으로 담아서 남겨 놓자고.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사진잡지 <포토넷> 2008년 6월호에도 함께 싣습니다.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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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사전을 새로 쓴다.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우리말 꾸러미 사전》《우리말 글쓰기 사전》《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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