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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국에서는 한 국회의원의 돌출(?) 행동이 여론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이 의원은 시민의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며 국회의원직을 전격 사퇴하고, 영국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맹공을 펼치고 있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고 그에 따른 심판을 달게 받겠다며 국민 속으로 뛰어들고 있는 것. 보수당의 핵심 인물인 이 의원의 행보가 영국 시민들의 지대한 관심을 끌고 있다.

 

다름 아닌 데이빗 데이비스(David Davis) 의원(MP)이다. 데이비스 의원은 지난주에 갑자기 국회의원에서 사직한다고 발표했다. 이 유명한 국회의원이 갑자기 사직할 것을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그의 사직 기사는 주요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신노동당의 고든 브라운 총리의 연속적인 실정으로 인해 차기 총선에서 보수당이 정권을 되찾아올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그의 사퇴는 그야말로 의외였다. 그는 보수당 예비내각의 내무 담당 장관(Home Secretary) 내정자로, 보수당이 정권을 잡을 경우 유력한 장관 후보였다. 더욱이 그는 보수당의 당수 감으로 거론되기도 했던 중량감 있는 인물이다.

 

'기소 없이 42일 구금' 법안에 반발·사퇴한 보수당 데이비스 의원 

 

그런 그가 의원직에서 물러난 이유는 신노동당 정부가 최근 하원에서 통과시킨 '기소 없이 피고인을 최대한 42일간 구금할 수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테러방지법(Terrorism Act)을 결코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국은 지금도 세계에서 유례없이 최장 28일간 피해자를 구금할 수 있다. 테러 대응 법안은 높아지는 테러의 위험으로부터 자국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이를 42일까지 늘린 것이었고, 데이비스는 "영국에서 인권 침해가 교활하고 집요하게 이뤄지게 됐다"며 법안을 비판하고 의원직에서 물러난 것.

 

백인 등 본래 영국에서 살던 사람들은 이 법안에 동의하는 의견이 많은 편이지만, 이민을 온 무슬림 등 외국인들과 시민단체들은 이 법이 너무나도 인권 침해적이라며 강력히 반대해왔다. 보수당도 개인의 신체적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며 반대 당론을 채택했다.

 

하지만 최근 지지율이 추락한 고든 브라운 총리는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최대한의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9표 차이로 간신히 이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30명이 넘는 노동당 국회의원들도 이 법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데이비스 의원은 정부가 이 법안을 계속 강행할 것이므로, 자신이 사퇴해서 이 법안을 국민적인 이슈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다음 달에 실시되는 보궐선거에 나서 이 문제를 선거 이슈로 삼아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는 것. 그는 그동안 영국에 무수한 CCTV와 신분증 카드(ID)를 만들려는 일련의 반인권 정책을 비판하면서 국민의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데이비스 "선거에서 심판받겠다"... 노동당 의원들, 지지 유세 나서기로 

 

그러나 고든 브라운 총리는 데이비스의 행보에 대해 "웃기는 일"이라고 일축하고, 데이비스가 출마할 예정인 지역구에 후보를 내지 않는 방식으로 '무대응'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데이비스는 "비겁하다"며 총리를 몰아붙였다.

 

데이비스의 갑작스런 사퇴에 사람들은 많은 찬사를 보냈다. 인권단체들은 이번 사퇴가 그의 오랜 철학과 신념에 바탕을 둔 행동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시민단체 운동가인 샤미 차크라바티(39)는 일간 <데일리 텔레그라프>와 한 인터뷰에서 "그가 신념에 따라 이런 결단을 내렸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그는 수년간 자유를 위해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

 

이뿐이 아니다. 데이비스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영국 곳곳에서 후원금을 보내 불과 며칠 사이에 2만5000파운드가 모였다는 소식도 들린다. 더욱이, 고든 브라운의 이번 정책을 비판하던 노동당 의원들이 제명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보수당인 데이비스의 지지 유세를 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반대 여론도 적지 않다. 순수하지 않은 다른 목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즉 보수당의 당권에 도전하는 발판을 만들기 위한 '정치적 쇼'가 아니냐는 의심 어린 시선도 있다.

 

보수당 내부에서도 비난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정권을 잡아야 할 보수당이 일치단결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데이빗 캐머런 당수의 리더십에 치명상을 입혔다는 비판이다. 이와 관련, 캐머런 당수는 데이비스의 행동이 당 차원이 아닌 "개인의 결정"이라고 밝혔고, 보수당은 데이비스의 보궐선거 운동에 재정 지원을 하지 않을 방침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에 대해 데이비스는 인터뷰에서 "나는 보수당의 당수가 될 야망이 결코 없다(absolutely not), 데이빗 캐머런이 훌륭한 총리가 되기를 바란다"며 "내가 하려는 것은 정부 법안에 도전해서 다른 시각으로 민주적인 정통성을 세우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쇼' 비판도... '보수란 무엇인가' 돌아보는 계기

 

'정치적 쇼'가 아니냐는 논란이 있지만, 데이비스의 이번 의원직 사퇴는 이른바 '보수'라는 세력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관해 생각해볼 계기로 삼을 만하다. 각국의 역사적 상황에 따라 조금 차이가 있긴 하지만, 개인의 자유권을 지키기 위해 국가 권력의 간섭을 최소화한다는 것이 보수 이념의 본령이다.

 

그러한 보수 신념에 따라 국회의원이라는 현재의 영광과 장관이라는 보장된 미래를 던지는 모습을 한국의 이른바 '보수'에게 기대할 수 있을까. 국민들이 거리에서 촛불을 드는 동안 복당 등을 두고 권력 다툼에 몰두하고,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기본적인 시민권을 옹호하기보다는 '불법' 혹은 '반미' 딱지를 붙이려 드는 '보수'에게 그런 모습을 기대하는 건 애초부터 무리일까. 아울러, 보기 민망할 정도로 지리멸렬한 '자칭 진보' 야당도 한국의 '보수' 만큼이나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태그:#보수, #데이빗 데이비스, #테러방지법, #고든 브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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