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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민속박물관 건너편에 있는 소격동 국제갤러리 입구 조덕현전 포스터전(왼쪽)이 보인다.
 경복궁 민속박물관 건너편에 있는 소격동 국제갤러리 입구 조덕현전 포스터전(왼쪽)이 보인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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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현(51)초대전이 '리컬렉션(recollection, 과거로 현재 돌아보기)'이라는 부제로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오는 7월 6일까지 회화, 설치, 사진, 영상작품 등을 선보인다.

그는 처음부터 미술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 문화인류학이나 고전문헌학을 공부한 후 다시 그림을 시작한 작가 같다. 왜냐하면 개인이나 가족의 사적 이야기나 사건을 복원시켜 미술작업에 도입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일상적 삶에서 시대의 맥락과 구조를 조망하는 프랑스의 아날역사학파를 닮았다.

그의 작품은 얼핏 보면 흑백사진 같지만 사실은 콩테(프랑스과학자 콩테가 만든 연필모양의 크레용)나 연필로 그린 것이다. 요즘 한참 유행인 극사실주의 풍이나 즉물적이지 않고 정겹고 따뜻한 리얼리티를 보여준다. 그의 드로잉솜씨는 우리의 눈을 의심할 정도로 정교하고 섬세하다.

전시 속 두 주인공, 밖의 여자와 안의 여자

이번 전의 주인공은 화려하지만 우여곡절이 많았던 '두 명의 한국여성'이라 할 수 있다. 한 여성은 '데일리 메일'지 회장이었던 영국출신 헤럴드 로더미어(H. Rothemere)자작부인(58·본명 이정선)이고 또 한 여성은 국내 여자패션디자이너 1호인 노라노(80·Nora Noh 본명 노명자)여사다.

'레이디 로더미어(Lady Rothemere)' 132×162cm 캔버스에 목탄과 흑연 광목. 가변설치 2008
 '레이디 로더미어(Lady Rothemere)' 132×162cm 캔버스에 목탄과 흑연 광목. 가변설치 2008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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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을 전시장 입구에서 처음 본 관객들은 뜻밖이라 놀란다. 무명한복을 단정하게 입은 이 여자가 과연 누구일까? 관객들은 궁금한 표정이다.

그녀는 1950년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동포로 미국과 프랑스에서 공부한 적이 있고 영국귀족 로더미어 자작과 사랑에 빠져 1993년 결혼하였다. 그러나 1998년 남편과 사별한 후엔 문화후견인, 빈곤층을 위한 자선사업 등을 하면서 살고 있단다.

고인이 된 남편이 자신의 유골의 반을 무주 백련사(이정순의 어머니가 묻힌 곳)에 불교식장례로 묻어 달라고 부탁한 것을 보면 아내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던 모양이다.

로더미어 부인은 눈빛은 형형하고 기품이 있고, 엄격함 속에 부드러움도 넘친다. 한국어는 전혀 못하고 한국에 산적은 없지만 한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그 누구 못지않단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그녀가 우리를 보는 눈초리에 뭔가 아쉬움이 있어 보인다.

거울효과, 공간의 무한확대

'레이디 로더미어(Lady Rothemere)' 194×130cm 캔버스에 목탄과 흑연. 거울. 가변설치 2008
 '레이디 로더미어(Lady Rothemere)' 194×130cm 캔버스에 목탄과 흑연. 거울. 가변설치 2008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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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이번 전에서 즐겨 쓰는 기법은 '거울활용'과 '좌우대칭'이다. 이 둘은 서로를 비추어 본다는 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미술에서 거울은 공간 속에 이미지를 무한히 확대시킬 수 있는 효과가 있다. 서양미술사에서 베르메르나 벨라스케스의 작품에서도 그런 기법이 보인다.

거울 속에 한 사람이 거울이라는 가상공간 속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으로 복제되는 것은 인간의 사무치는 자신의 핏줄에 대한 그리움에서 나온 것인지 모른다. 이 작품을 보면 한 여자의 계보, 그 조상의 조상, 또 그 조상의 조상을 찾아가는 긴 여정을 쫓는 것 같다.

작가는 모 일간지에서 "역사 속에서 사라진 사람과 사건을 현실로 되돌리는 작업을 하게 된 것은 어쩌면 아버지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작가가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계보를 발굴하는 것은 결국 그가 어려서 일찍 여윈 아버지에 대한 못다 한 그리움의 발로가 아닌가싶다.

한국 최초의 여자디자이너, 노라노 여사

'노라 컬렉션(The Nora Collection)' 캔버스에 목탄과 흑연. 가변설치 2008
 '노라 컬렉션(The Nora Collection)' 캔버스에 목탄과 흑연. 가변설치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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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노(1928~) 여사는 80인데도 아직 정정하시다. 위 그림은 노라노 여사의 어머니 모습인데 모녀가 너무 닮았다. 그녀는 재력가의 딸로 태어났다. 부친은 경성방송국 설립자였고 모친은 최초의 여성아나운서였다. 일제말기 긴박한 상황에서 결혼은 파경에 이루고 19살 나이로 패션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미국뉴욕으로 유학을 떠난다.

귀국 후 전통한복이 주였던 우리나라에 서양식 패션개념을 도입하여 큰 충격을 준 셈이다. 여성으로서 정체성을 가지기 어려운 시대에 인형처럼 살기를 거부한 입센의 여주인공을 닮고자 노라라는 이름을 차용할 정도로 시대에 앞선 당찬 여성이었다.

작가는 노라노 여사의 그림액자 밖으로 옷자락을 연결시킨 독창적 발상으로 관객들의 눈길을 확 끈다. 또한 한 여성을 통해서 쉽게 묻혀버릴 수 있는 과거에서 벗어나 이를 현재화하고 더 나아가 미래적 비전까지도 확장시켜 보려는 의도인지 모른다.

1층 노라 컬렉션, 이야기를 낳는 회상의 기억창고

'노라 컬렉션(The Nora Collection) 연작' 캔버스에 목탄과 흑연(Charcoal and graphite on canvas) 2008
 '노라 컬렉션(The Nora Collection) 연작' 캔버스에 목탄과 흑연(Charcoal and graphite on canvas) 2008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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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노라 컬렉션(The Nora Collection)에 들어서면 대부분 좌우대칭으로 된 많은 작품을 볼 수 있다. 이런 대칭은 문신의 조각들을 연상하게 한다. 하여간 위 천장에는 샹들리에가 환하게 빛나고 파노라마형식으로 균형감 있게 좌우로 쌍을 이루고 있어 보는 재미를 더한다.

왼쪽 벽에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어깨를 반쯤 드러낸 패션모델의 모습도 볼 수 있고 또한 일본 강점기에 강제로 끌려간 사람, 장교복을 입고 당당한 포즈를 취한 남자, 상류층과 서민층의 자녀들, 머리에 쓰개치마를 한 여인과 갓을 쓴 남자들 등 다른 시대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눈에 띈다.

이런 거울 방 같은 곳을 잊어버린 옛 추억들을 회상시키는 기억창고로 비유해도 좋을 리라. 이런 분위기는 관객들이 마치 소설가나 드라마작가가 된 듯 그렇게 머릿속에 많은 이야깃거리를 떠오르게 하는 것 같다.

한복을 입은 여자의 단아한 아름다움

'노라 컬렉션(The Nora Collection) 연작' 캔버스에 목탄과 흑연(Charcoal and graphite on canvas) 2008
 '노라 컬렉션(The Nora Collection) 연작' 캔버스에 목탄과 흑연(Charcoal and graphite on canvas)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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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에 많은 사람이 소개되지만 그 중 한 여자를 살펴보자. 그녀가 풍기는 분위기는 단아하고 청순하고 덕스럽게 보인다. 꽉 다문 입이 무거워 보이고 삶의 어떤 난관도 다 감당할 것 같다. 옷은 수수하고 단정하나 눈빛은 빛나고 돈으로 바꿀 수 없는 어떤 위엄까지 갖추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여인의 표정에서 정확한 시기는 모르지만 그 시대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이 무명의 여성도 노라노 여사나 로더미어 부인처럼 조덕현의 손을 거치면서 현존하는 인물로 부활하여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이 여인은 우리에게 그동안 경제적으로 많은 것을 얻었다고 하나 그만큼 문화적으로는 기록과 유산에 대한 기억상실 등 많은 것을 잃었다는 점을 거울처럼 비춰준다. 하긴 물질의 풍요가 꼭 정신의 풍요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 또한 인생의 아이러니다.

누구나 작품 속 주인공 되는 거울작품 

'노라 컬렉션(The Nora Collection) 연작' 캔버스에 목탄과 흑연(Charcoal and graphite on canvas) 거울액자 2008
 '노라 컬렉션(The Nora Collection) 연작' 캔버스에 목탄과 흑연(Charcoal and graphite on canvas) 거울액자 2008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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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작품은 액자 속 거울밖에 없다. 작가는 이 액자 속에서 누구나 주인공이 되어 각자의 독특한 이야기를 그릴 수 있게 했다. 여기 백지 같은 거울에 그릴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하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물으며 각자가 경험한 추억의 그림을 거울 속에 담아 펼쳐나갈 수 있게 하였다.

이 작품은 비디오아트의 특징이기도 한 '인터렉티브 아트(Interactive Art)'의 정신이 담겨 있다. 다시 말해서 작가가 관객을 그림 속에 끌어들여 서로 소통하는 방식이다. 작품에서 이야기를 시작한 건 작가지만 그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것은 바로 관객의 몫이기 때문이다.

2층 로더미어부인 컬렉션과 설치작품

'레이디 로더미어(Lady Rothemere)' 연작 '조각연꽃' 가변설치 2008
 '레이디 로더미어(Lady Rothemere)' 연작 '조각연꽃' 가변설치 2008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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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2층 전시장으로 올라가면, 로디미어자작부인을 주제로 한 비디오, 설치, 회화작품 등을 볼 수 있다. 마치 우물 속에 얼굴을 비춰보는 것 같은 '조각연꽃'이 멋지다. 이것은 로디미어부인을 상징하는 꽃이리라. 이국에 살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온 한국여인의 빛나는 정신력이 잘 형상화되었다.

이제 끝으로 조덕현의 작품세계를 마무리해보자. 그는 옛사진의 인물이나 사건을 서사의 거울로 재조명하면서 역사적 사실만이 아니라 여기에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현대적 조형언어를 더하여 사실보다 더한 진실이 담긴 작품을 일궈냈다. 바로 이런 점이 우리가 그를 기억해야 하고 그에게 찬사를 보내야 할 이유가 아닐까싶다.

조덕현(曺德鉉)은 사진 같은 그림으로 이야기 하는 화가?


노라노 여사와 그의 작품 앞에서 작가 조덕현
 노라노 여사와 그의 작품 앞에서 작가 조덕현
ⓒ 조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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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조덕현은 1957년 강원도 횡성 태생하여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동대학 대학원 서양화과 졸업.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교수. 일본 도호쿠예술대학 객원교수로 있다.

최근 개인전으로 2003년 '우연한 만남', 호르컴박물관(네덜란드) 2002년 '이서국(伊西國)으로 들어가다'(아트선재미술관, 경주). 2000-2001년 '아슈켈론의 개-낯선 신을 향한 여행'(주드 폼 미술관, 파리) 2000년 '역사적 교훈, 알에치에이갤러리(RHA Gallegher, 더블린) '겹'(국제갤러리, 서울) 등이 있다.

그의 작품은 호린험시청(Gorinchem City Hall, 네덜란드). 허시혼미술관(Hirshhorn Museum, 워싱턴). 히로시마 미술관(일본). 후쿠오까미술관(일본). 국립현대미술관, 호암미술관(서울). 선재미술관(경주). 토탈미술관(서울). 성곡미술관(서울). 아라리오 미술관(천안) 등에 소장되어 있다.

덧붙이는 글 | 국제갤러리 본관 종로구 소격동 59-1 전화 02)733-8449 http://www.kukjegallery.com
전시시간 월요일~토요일 : 오전10시~오후 6시. 일요일, 공휴일 : 오전10시~오후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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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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