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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앞바다의 절벽에서
▲ 갯괴불주머니 서귀포 앞바다의 절벽에서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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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괴불주머니는 바닷가 근처의 모래밭이나 바위틈에서 자라는 꽃입니다. 바다는 늘 잔잔하지 않습니다. 태풍이 오기도 하고, 파도가 바람을 타고 넘어오기도 합니다. 간혹 태풍이 지나고 나면 바람을 타고 온 바닷물에 까맣게 타들어간 이파리를 달래며 서있는 해안가의 식물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갯괴불주머니는 본래 고향이 그 곳이니 그럴 염려도 없고, 여느 괴불주머니보다도 강인한 모습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파도와 친구처럼 지냅니다.

숨은그림을 찾아보시겠어요?
▲ 갯괴불주머니 숨은그림을 찾아보시겠어요?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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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해안가 어디에나 흔하게 있는 꽃이지만 이번에 만난 곳은 서귀포 바다의 절벽에서 만난 꽃이라 더 의미가 깊습니다. 바닷가의 모래밭이나 바위틈도 만만치 않은데 절벽에 뿌리를 내리고 피어있으니 어쩌면 더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모든 꽃이 그러하듯 갯괴불주머니도 고난이 깊을수록 더 향기롭고, 더 진한 꽃으로 피어났습니다. 고난의 의미를 되새겨봅니다.

고난은 우리의 친구입니다. 바다가 늘 잔잔할 수 없듯이 우리 삶에도 고난이 없을 수 없지요. 그러나 태풍이 있어 온 바다가 뒤집어지고 다시금 생명의 바다가 되는 것처럼 고난도 우리 삶을 더 깊게 만드는 것이지요.

함께 피어있어 더 아름다운 들꽃들
▲ 갯괴불주머니 함께 피어있어 더 아름다운 들꽃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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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불주머니, 갯괴불주머니, 자주괴불주머니, 염주괴불주머니, 산괴불주머니, 눈괴불주머니. 이것이 제가 알고있는 괴불주머니의 종류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자주괴불주머니와 눈괴불주머니를 제일 좋아하지요.

맨 처음 꽃의 세계로 빠져들었을 때 자주괴불주머니를 만났습니다. 식물도감을 통해서 이름을 익혀가던 때였는데 꽃모양이 영락없이 현호색입니다. 그래서 '현호색'이라고 했는데 어떤 분이 자주괴불주머니같다고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식물도감 몇 쪽을 참고하라고, 분명하다고 했지요. 그리고 두 해 정도지나 내가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지적을 해주신 분에게 미안합니다.

바닷가에 피어나 더욱 강인해 보이는 갯괴불주머니
▲ 갯괴불주머니 바닷가에 피어나 더욱 강인해 보이는 갯괴불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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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불주머니는 국어사전에 '어린 아이의 노리개'라고 되어있는데 순 우리말로는 '복주머니'라고 합니다. 꽃은 작아도 하나하나가 주머니를 닮았으니 그런 이름을 붙여주었나 봅니다. 그 작은 주머니마다 꿈이 하나씩 들어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꿈이 하나씩만 들어있어도 꽃송이가 풍성하니 수많은 꿈들이 펼쳐질터이니까요.

저는 갯괴불주머니를 보면서, 작은 꽃 한송이마다 꿈이 가득한 것을 상상하면서 어두운 역사를 밝히기 위해 밝혀진 수많은 촛불들을 떠올렸습니다. 촛불 하나마다에 담겨있는 꿈, 어둠 속에서 곱게 피어난 꽃과도 같습니다. 그 꽃들이 하나 둘 모여 지금 우리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꽃보다 더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 어두운 역사를 밝혀가는 현재를 살아가면서 부끄럽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갯괴불주머니에 의지해 사랑을 나누는 모기, 저 순간만큼은 숭고해 보인다.
▲ 모기의 사랑 갯괴불주머니에 의지해 사랑을 나누는 모기, 저 순간만큼은 숭고해 보인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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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괴불주머니에서 사랑을 나누는 모기를 만났습니다. 지난 밤 모기에게 원하지 않는 헌혈(?)을 하고, 아침에 잡아보니 그 놈의 몸에 내 피가 잔뜩 흐르고 있었습니다. 조금 밉고 성가신 놈이죠. 그런데 차마 이 순간만큼은 그들도 소중한 생명의 고리에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가끔 미운놈도 예뻐보일 때가 있는 법인가 봅니다. 

아침이슬에 더욱 영롱한 갯괴불주머니
▲ 갯괴불주머니 아침이슬에 더욱 영롱한 갯괴불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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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하면 미운 것도 예쁘게 봐줄 수 있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데, 아무리 예쁜 구석을 찾아보려고 해도 예쁜 구석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냥 미운짓을 하거나 푼수짓을 해서 자기만 망신살이 뻗친다면 제 잘난 맛에 산다고 하겠지만, 그 하는 짓으로 인해 다른 사람 혹은 내가 같이 피해를 봐야한다면 가만히 있을 사람이 없겠죠.

사태파악을 하는가 싶으면 또 다른 말을 하고, 이제 정신이 들었나 싶으면 또 헛소리를 합니다. 정말 몰라서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약 올리려고 그러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런 사람들의 주머니 속에는 아름다운 꿈과는 다른 욕심들만 들어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소중한 꿈이 가득한 괴불주머니가 아니라 욕심과 아집만 가득한 괴물주머니같은 기형의 꽃을 피운 것 같습니다.

갯괴불주머니, 그와 눈맞춤을 한 날 아침의 햇살은 맑았습니다. 해무가 걷히면서 드러난 하늘과 바람이 잔잔하여 풀잎에 맺힌 이슬, 이제 충분하다며 풀들이 내어놓은 이슬(일액현상)이 영롱한 보석처럼 빛나는 아침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 꽃 안에는 소중한 꿈이 가득한 것만 같습니다. 저 꽃안에 꿈이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갯괴불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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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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