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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47주년이었던 지난 4월 19일, 삼성특검이 90일간의 수사를 마치고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성과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이날 발표된 내용은 그동안 '삼성문제'에 천착해온 시민사회의 기대에 훨씬 못미치는 수준이었다. 

 

이어 삼성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이건희 회장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 등을 핵심으로 하는 '쇄신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삼성이 내놓은 '쇄신'안은 '나쁜 폐단이나 묵은 것을 버리고 새롭게 한다'는 사전적 의미의 '쇄신'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런 가운데 14명의 교수·기자·사회운동가·노동운동가 등이 최근 펴낸 <한국사회, 삼성을 묻는다>(후마니타스)는 삼성의 실체를 다각도로 해부하며 삼성의 진짜 쇄신이 무엇인지를 차분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국사회, 삼성을 묻는다>는 총 4부 17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는 삼성에 던지는 4가지 화두와 17가지 물음이라고도 할 수 있다.

 

[화두1] 삼성은 한국사회를 어떻게 지배하나?

 

2005년을 기준으로 할 때, 삼성은 5대 재벌 일반자산의 50.8%, 자본 총액의 45.9%, 매출액의 39.5%, 당기순이익의 46.2%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삼성의 경제력은 우리나라 전체 GDP와 부가가치 생산액의 20%에 해당한다. '슈퍼재벌'이나 '재벌 중의 재벌'이라는 평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삼성은 무역업→금융업→전자산업→중화학공업→첨단기술산업→자동차산업→정보통신산업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며 '슈퍼재벌'로 성장했다. 하지만 삼성의 성장의 뒤에는 ▲그룹 계열사 간의 내부거래 ▲순환출자 ▲금융계열사 동원 ▲무노조 경영 ▲불법상속 등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삼성의 지배력은 '경제분야'에만 머물지 않고 정치·사회분야로까지 확장돼왔다. 삼성은 '비서실→구조조정본부(구조본)→전략기획실'로 이어져온 통제탑(control tower)이 주축이 돼 주요 정책의 입법·집행과정 등에 적극 개입해왔다. 이는 특히 정부 관료들의 장악을 통해 가능해졌다.

 

그런 점에서 "삼성이 '룰-메이커'가 되려고 한다"는 지적은 의미심장하다. '삼성제국' 혹은 '삼성공화국'이라 불리우는 현상이 한국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도 삼성의 지배력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는 40년간 <중앙일보>의 편향보도와 6개월간 지속된 '시사저널 사태'가 극명하게 보여준다. 특히 '시사저널 사태'는 삼성의 대언론로비가 편집권까지 유린할 수 있다는 '참혹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을 바탕으로 '삼성의 정·관계 로비의혹' 등을 보도하자 '광고거부'로 대응했다는 점도 삼성다운 언론 길들이기라고 볼 수 있다. 

 

[화두2] 삼성은 사람들을 어떻게 관리하나?

 

삼성은 흔히 '관리의 삼성'으로 불린다. 그만큼 노동자를 비롯한 인적자원 관리가 철저하다는 얘기다.

 

이병철 선대회장의 유훈이었던 '무노조 경영'이 가장 대표적인 인적자원 관리방식이다. 삼성은 '무노조 경영은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할 결과'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금품 회유 ▲강제 납치 ▲강제 억류 ▲해고 등을 통해 노조 설립 시도들을 막아온 사례들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삼성의 주장은 억지에 불과하다. 이 정도라면 '무노조경영'이 아니라 '반노조경영'이라고 부를 만하다. 

 

삼성의 무노조경영은 국가기관의 협조 아래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하다. 구청에서 노조설립 신고서를 반려하거나, 사업장에서 이루어지는 부당노동행위를 무혐의 처리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또한 삼성은 공식적인 노무관리 외에 비공식적인 점조직을 통해 노동자들을 관리(통제)해왔다. 그래서 삼성의 노동자들은 '원형감옥의 죄수'에 비유된다. 결국 삼성의 노동자들은 늘 감시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삼성이 원하는 대로 사고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다.     

 

흥미로운 점은 삼성이 사무직 노동자와 생산직 노동자의 관리에 차별을 둔다는 사실이다. 사무직은 '동의에 기반한 통제'를 하는 반면, 생산직은 '물리적·위계적 통제'를 한다는 것. 이에 따라 사무직은 '소극적 저항'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반면, 생산직은 노조 설립 등을 시도하다가 퇴사하는 경우가 많다.

 

1993년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 이후 관리의 방향이 성과주의와 효율성을 중심으로 재편됐다는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이는 과거에 비해 구성원들의 '삼성 귀속감'을 급격히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화두3] 삼성은 축적된 자본을 어떻게 세습해왔나?

 

삼성은 계열사 간의 내부거래 등을 통해 기업을 확장해왔다. 내부거래는 상품·용역·자본에 걸쳐 광범위하게 이루어져왔다. 신생기업의 경우 내부 상품·용역 거래의 비중이 높은데 이는 "신생기업들이 타계열사들의 구매 지원을 통해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계열사 간의 자본거래는 이건희 회장 일가의 경영권 방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금융·보험 계열사의 지분 보유를 통해 주요 계열사들은 물론 나머지 계열사까지 지배함으로써 이 회장 일가의 경영권을 방어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거래는 금융자본에 의한 산업자본 지배를 심화시킨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 삼성은 기술경쟁력 대신 '전근대적 하도급 관계'를 유지하면서 덩치를 키워왔다. 삼성SDS가 협력업체들을 상대로 제조위탁을 취소하거나 하도급 대금을 부당하게 감액하고 지급하지 않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뿐만 아니라 삼성의 자금줄인 삼성생명의 경우도 "자산운용능력보다는 기업운영에 필요한 사업비를 과다하게 책정"해 부당이득을 챙겨왔다.

 

'삼성의 세습자' 이재용 전무(삼성전자)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44억원을 10년 만에 2조원으로 불렸다. 삼성에버랜드 등을 포함한 삼성 계열사들이 헐값으로 발행한 전환사채를 '의도적으로' 이재용 전무에게 판 결과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이 전무는 삼성 핵심기업들의 지배주주가 되었고, 결국 이건희 회장은 3세대 경영세습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하지만 계열사들이 전환사채를 헐값으로 발행한 것은 '업무상 배임죄'이고, 이러한 일들이 구조조정본부의 치밀한 기획과 지시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그룹차원의 조직적 범죄'라는 목소리가 높다. 삼성 특검의 수사에서 이러한 불법세습 과정이 확인돼 이건희 회장 등이 불구속 기소됐다.    

 

[화두4] 삼성을 어떻게 개혁해야 하나?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은 마지막 남은 성역 삼성을 개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런데 부실한 삼성 특검의 수사는 그 기회를 날려 버렸다. 하지만 한국민주주의의 위기와 관련 '삼성문제'는 절대 외면할 수 없다. 삼성을 개혁하는 일은 "한국의 민주주의 그리고 시민사회운동의 함량을 다는 저울추"이다.

 

'삼성문제'는 이건희 회장에서 시작해 이건희 회장으로 끝난다. 결국 삼성개혁의 핵심은 "총수 일가의 이해관계를 최우선시하는 총수가치 경영을 폐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총수 일가의 퇴진과 지배경영권 세습 포기"가 선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삼성이 최근 발표한 쇄신안에는 이건희 회장의 퇴진만 포함돼 있을 뿐 편법과 불법으로 경영권을 승계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재용 전무의 퇴진은 언급되지 않았다. 이것이 삼성의 쇄신안이 의심받는 이유다.

 

좀더 구체적인 개혁방향으로 ▲지배주주의 지배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조치 ▲지배 경영권 독점과 상속을 위한 불법행위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 ▲계열사간 순환출자 금지 ▲금융 계열사들의 의결권 약화 ▲노동자 등 이해당사자들 중심으로 기업지배구조 개편 등이 제시된다. 이는 삼성은 물론 한국의 재벌을 개혁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한편 이 책에는 아주 특별한 보너스가 숨어 있다. 부록의 이름으로 실린 '삼성그룹 관련사건 일지'가 그것이다.

 

24쪽에 이르는 이 부록에는 1936년 이병철 선대 회장이 정미소를 설립하고 1938년 삼성상회라는 무역회사를 설립했을 때부터 2008년 4월 23일 삼성 특검이 해체될 때까지 삼성과 관련된 사건들을 잘 정리해놓았다. 여기에는 삼성의 빛과 그림자가 모두 들어 있다. 


한국 사회, 삼성을 묻는다

조돈문 외 엮음, 후마니타스(2008)


태그:#삼성 해부서, #한국사회, 삼성을 묻는다, #이건희, #이재용, #김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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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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