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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스승이자 영원한 스승'

 

스승의 날에 제 부모님께 바치고 싶은 상장이요 명예요 영광이요 그리고 고백입니다.

 

스승의날에 부르는 어버이날 노래는 참 색다릅니다. 흔히 스승의 날 노래를 부르다가 어느덧 어버이날 노래를 태연하게 불러 본 경험을 하신 적이 있을 겁니다. 노랫가락이 비슷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여하튼 스승의날은 희한하게 어버이날과 함께 생각나곤 합니다.

 

스승의날과 어버이날이 함께 생각나는 이유가 단지 비슷한 노랫가락에서 생기는 우스운 결과 때문일까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에게 첫 스승은 분명 부모님이 아니던가요. 그래서, 저는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부모님께 '첫 스승이요 영원한 스승'이라는 당당한 이름을 달아드렸습니다.

 

어버이날, 저는 부모님께 꽃을 드렸습니다. 어버이날 꽃 문화가 달라져서 그런지, 왼쪽 가슴에 달아드리던 꽃을 이번에는 바구니에 담아 드렸습니다. 아쉽게도 어릴 때와 달리 돈으로 산 꽃을 드렸지만 말입니다. 어버이날 저는 그 꽃에 '아버지, 어머니 늘 건강하게 사세요'라는 편지를 달아드렸습니다. '첫 스승이요 영원한 스승'들께 말입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스승, 부모님께

 

 

<군대 입대 후 부모님께 드린 첫 편지>

 

사랑하는 부모님께

 

할렐루야! 그 동안도 평안하셨습니까? 어떻게 지내시는지 너무너무 궁금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교회 식구들도...입대하는 날 의정부로 와서 훈련부대는 여기 강원도 철원으로 왔습니다. 역시 춥습니다. 정말 춥습니다.

 

훈련이 끝나고 퇴소하는 날 뵈고 싶은데 이 먼 곳까지 오실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누구라도... (중략) ...못 오시면 누구에게 간곡히 부탁해서라도 꼭 사람을 보내주세요. 너무너무 힘듭니다. 육체적으로 힘들다기보다는 마음이 힘듭니다. 제가 원래 울음이 많잖습니까.

 

늘 건강하시고 특별히, 아버지의 믿음과 건강 위해 늘 기도합니다. 또 편지하겠습니다.

 

1997. 2. 2

잠시 시간을 빼내어 씁니다.

아들 종원 드림

 

 

뭐가 그리 힘들었으며 무어 그리 추웠을까요? 바라는 것 없는 듯하면서도 부모님 마음을 갖은 방법으로 애타게 만드는 기술도 참 대단합니다. 지금 보니 참 '철면피'다 싶네요.

 

교회를 다닙니다. '할렐루야'는 인사 정도에 해당할 뿐 당시로선 그 다음부터 시작되는 말들이 중요했죠. '힘들다, 보고싶다, 보내달라' 등등 뭐 원하는 게 그리 많았는지요. 부모님께 안부편지로 건강하시냐고, 또 건강히 지내시라고 묻는 말은 마지막에 살짝 집어넣고 편지 내내 부탁하는 말만 적었습니다. 믿음있는 자식이 그랬답니다. 철없이.

 

입술 바르는 약이며 생활용품 몇 가지를 보내달라고 말하는 김에 결국에는 본심을 드러냈습니다. '사람을 보내달라'고. 부모님이 못 오시더라도 누군가 '사람을 보내달라'고. 거의 협박 수준이죠? 그렇게 저는 아양도 아니고 부탁도 아닌 반(半) 협박성 편지를 썼습니다. 그게 군 신병교육대에서 부모님께 보낸 첫 편지였습니다.

 

'잠시 시간을 빼내어 씁니다'라는 마지막 말까지 철저하게 제 위주로 써 보낸 부끄러운 편지, 그 편지를 들고서 지금 새로 편지를 쓰려는 중입니다. 차라리 그때 보냈어야 더 잘 어울릴 편지를 말입니다.

 

 

불러봅니다, 아버지! 어머니!

 

부모님께!

 

두 분은 제게 '첫 스승이자 영원한 스승'입니다. 다른 부모님도 다 그러시대요. 다 지난 일이라고. 고생하신 얘기 들려달라면 다들 그렇게 말하신답니다. 지금은 그것도 추억이라고.

 

자식된 저에게는 부모님이 사신 삶이 그 누구의 삶보다 더 아리고 서글펐다고 생각합니다. 남의 집에 내버려지다시피 한 어린시절 식모살이도 해보시고 우여곡절 끝에서 낳은 두 아들 아니 '큰아들'까지 세 아들을 감당하느라 집 앞에서 장사도 많이 해보신 어머니.

 

여느 아버지들이 다 그렇듯이 배운 것도 없고 머리도 잘 안 돌아가서 몸으로 때우는 일을 할 수밖에 없으셨던 아버지. 그마저도 남이 도와주지 않으면 못하셨죠. 지겹게 했던 경비일.

 

성숙해서 돌아오겠노라고 말하며 떠났을 아들이 군대에 들어가자마자 갖은 부탁을 다 했습니다. 이것도 보내달라 저것도 보내달라 했었죠. 신병 퇴소식에 오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갖은 방법으로 협박 아닌 협박도 했었죠. 죄송합니다.

 

지금도 제 주머니에 돈이 가득한 것 아니라서, 부모님께 못다 한 효도를 여전히 다 못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해야 할 효도는 갈수록 쌓여만 가는데 말입니다. 어찌해야 할는지...

 

늘 건강하게 사세요. 부탁하고 싶은 건 그것 뿐입니다. 좋은 아들, 자랑스런 아들이 되겠습니다. 성공하는 아들이 되겠다는 말보다는 자랑스런 아들이 되겠다고 약속합니다.

 

2008년 5월 어느날

장성하지만 늘 부끄러운 아들,

그래서 꼭 언젠가는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픈

종원 드림

 

 

 

당연한 얘기지만, 부모님은 제 어린 시절을 저보다 더 많이 알고 계셔요. 그것만으로도 저는 부모님께 함부로 제 생각을 주장할 수 없더라고요. '저것이 뭘 몰라서 저러지' 하실까봐요. 그래도 화 낸 적 많고 토라진 적 많고 심지어 '탈출'한 경험도 갖고 있죠. 어설프게 딱 한번 그랬었지만.

 

가끔 동생과 달리 저를 유치원에 못 보낸 것을 두고 '미안하다' 하시더군요. 지금 같으면 보냈을 거라고 하시면서요. 동생에겐 많은 유치원 사진이 제겐 없는 게 가끔 미안하신가봐요. 전 전혀 기억도 못하는 시절 이야기인데 말입니다.

 

꼭 어머니께서 밥을 차려주셔야 한다는 건 아닌데, 저는 지금도 밥 하는 거 외에는 특별히 할 줄 아는 반찬이 없습니다. 저희 어머니도 그래서 가끔 한 마디 하시죠. '남자들이란 하여튼... 손 뒀다 뭐해' 하십니다. 그러게요, 멀쩡한 두 손 두었다 뭐에 쓰려는지. 나중에 자식 입에 밥은 먹여줄 수 있을는지...

 

부끄러움 때문인지 어린 시절에서 그리 즐거운 경험을 많이 찾지 못해서인지, 저는 스승들께 보낸 편지도 적고 찾아간 적은 더더욱 없습니다. 그런데, '첫 스승이자 영원한 스승'이신 부모님께는 더더욱 제대로 한 게 없습니다. 물론, 어깨도 주물러드려봤고 어설프게나마 밥도 해드려봤고 병원에도 같이 간 적 있습니다. 헌데, 그것으로 무슨 효도를 말한답니까.

 

그 많은 그런데 지금은 기억도 제대로 못하는 '스승'들께 보내고 싶은 편지들을 부모님께 모아 보냅니다. 나중에 다시 그 '스승'들께 한 분 한 분 정성껏 편지들을 드릴 것을 제 자신에게 약속하면서 말입니다.

 

'첫 스승이자 영원한 스승'

 

스승의 날에 부모님을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스승의 날을 맞아 '첫 스승이자 영원한 스승'이신 부모님께 이 글을 드립니다.


태그:#스승의날, #어버이날, #부모,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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