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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선생님!

안녕하세요! 불러도 대답없는 선생님께 참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이렇게 보내지도 못할 편지로나마 인사드립니다. 잘 지내시죠? 5월이어서 그런가요, 참 많이 보고 싶습니다.

왜 그렇게 제게 많은 답장을 주셨는지 늘 궁금했습니다. 초등학교 마지막 학년인 6학년 담임선생님이서 그랬나봐요. 초등학교와는 전혀 다른 환경인 중학교에 가게 되면서 초등학교 마지막 담임교사셨던 선생님을 기억하고 싶었나 봅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한동안 선생님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는데, 그 후 어느 날 선생님께서 유학차 계시던 일본 주소를 알게되었죠. 제 기억으론, 한국에서 만났을 때 선생님의 일본 주소를 알게 된 듯합니다.

편지쓰는 걸 좋아하는 문학소년이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사랑에 목마른 시절이라 그랬는지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에 국제편지를 띄운다는 건 여간 흥미로운 게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편지를 좋아하기 때문에 저는 이렇게 선생님께 편지를 씁니다. 지금도 어딘가 멀리 계실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선생님, 또 일본 가신 건... 아니죠?

바닷물 건너 오직 나를 위해 찾아온 편지들

그랬습니다. 오직 저를 위해서 보내신 편지들이었습니다. 지금이야 그리 신기할 것도 없지만, 편지 곳곳에 담긴 외국 냄새며 풍경이 어리디 어린 소년의 두 눈을 사로잡았죠. 편지 내용은 둘째치고 외국에서 온 편지라는 사실만으로도 저는 항상 기뻐했습니다.

저를 지금도 기억하시나요? 그때처럼 지금도 저를 기억하며 마음 속 편지를 쓰고 계시나요? 지금 제가 선생님께 하듯이 말입니다. 그 마음 서로 연결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아 참, 선생님과 제가 바다를 사이에 두고 편지를 주고받았던 일을 기억하고 계시나요? 선생님께서 오로지 저만 생각하며 일본생활을 하셨으리라 믿고 살게 만들었던 그 따뜻한 편지들을 기억하고 계시나요? 선생님 마음이야 어쨌든 상관없이, 저는 지금 그 편지들을 다시 읽으며 혼자 살포시 웃습니다. 짝사랑도 아닌 오랜 추억을 곱씹으면서요.

스승과 나눈 편지1-1 일본에서 온 편지1-1
▲ 스승과 나눈 편지1-1 일본에서 온 편지1-1
ⓒ 민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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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나눈 편지1-2 일본에서 온 편지1-2
▲ 스승과 나눈 편지1-2 일본에서 온 편지1-2
ⓒ 민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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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1

종원에게
그동안 잘 있었니?
지금쯤 기말고사 준비에 바쁘겠구나.
한국은 중학교, 고등학교 입학시험이 없지만 일본은 사립중학교,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이 대단하단다. 물론 대학교의 입학시험도 어렵고 경쟁도 우리나라와 별 차이가 없단다.
경제면의...

편지2

종원에게
그동안 잘 있었니? 지금은 방학중이라 조금 한산하겠구나.
6개월간 있었던 대학은 오오사카(大阪) 외국어대학이므로 외국어를 공부했단다. 외국어 중에서도 일본의 말(日本語)을 공부했단다.
지금은 나루또(鳴門) 교육대학에서 교육행정학을 공부하고 있단다. 더 훌륭한 선생님이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 거지.
선생님은 제자들이 편지를 쓰면 거의 답장을 보냈단다. 그런데 종원이의 편지를 받았을 때는...

스승과 나눈 편지2 일본에서 온 편지2
▲ 스승과 나눈 편지2 일본에서 온 편지2
ⓒ 민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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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나눈 편지3 일본에서 온 편지봉투
▲ 스승과 나눈 편지3 일본에서 온 편지봉투
ⓒ 민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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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요. 그랬네요. 제 편지를 받았을 때는 일본에 가기 며칠 전이었군요. 그렇게 써 있네요, 지금 보니. 그러고보니, 첫 번째 편지가 실제론 두 번째 편지인가 봅니다. 잠깐, 엽서도 두 장이 있으니 어느 게 처음 것인지 좀 헷갈리네요.

이젠 정말 '타임머신'이 아니고서는 그날을 정확히 찾기 어려운 오래 된 편지들입니다. 잘 보관했는데도 날짜를 확인하기가 어려워요. 우체국이 남긴 커다란 흔적들도 너무 흐릿해졌거든요. 선생님 기억마저 더 흐릿해질까싶어 이렇게 수신지 없는 편지를 써봅니다.

어린 저에게 꿈을 심어주려고 그러셨는지 아니면, 선생님도 유학생활에서 겪는 힘든 생활을 조금이나마 털어놓고 위로받고 싶으셨는지 편지마다 일본 사회며 교육환경이며 유학 생활이며 온갖 이야기들을 참 많이도 들려주셨습니다.

정성만으로도 여전히 제겐 그 가치가 대단한 편지들을 읽으며 다시 그때로 돌아갑니다. 처음에는 옛 스승께 안부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는 재미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신기한 외국 냄새를 맡으며 저 나름대로 꿈을 갖기 시작했죠. 어떤 일을 하며 살게 되든 외국을 가보고 싶다고.

지금은 다른 일을 하지만, 그때 제가 외교관 꿈을 갖게 된 건 아마도 선생님 편지에서 받은 영향이 꽤 컸으리라 짐작합니다. 분명 그랬을 겁니다. 지금도 그 때 편지들을 고이 간직하고 있을 정도니 말이죠.

스승과 나눈 편지5 일본에서 선생님이 보내신 엽서1. 겨울 배경이네요.
▲ 스승과 나눈 편지5 일본에서 선생님이 보내신 엽서1. 겨울 배경이네요.
ⓒ 민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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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나눈 편지6 일본에서 선생님이 보내신 엽서2. 봄 배경입니다.
▲ 스승과 나눈 편지6 일본에서 선생님이 보내신 엽서2. 봄 배경입니다.
ⓒ 민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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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요, 늘 영어공부해요. 혼자서 책 읽을 정도는 됩니다. 물론 사전이 항상 필요해요. 게다가 아직 외국인이랑 실제로 대화한 적은 없어요. 아니다, 한번 있네요. 지하철 안에서 내릴 곳을 묻는 젊은...나이든... 하여튼 흑인과 나눈 짧은 대화가 생각나요. 전 어설프게 들은 영어에 손가락으로 답했죠. '여기서 내리면 된다고' 그리고 뭐라고 묻길래 영어로 조금 말했죠. '학교영어 별로다'라고요. 그게 지금 생각나네요.

선생님 기분을 좀 더 맞춰드릴까요? 저, 일본어도 배워요. 혼자서요. 어머니의 어머니, 그러니까 할머니께서 일본에 계시거든요. 전 한 번도 못 봤어요. 어머니도 수십년 간 못 보셨답니다. 어릴 적에 헤어지셨대요. 자세한 건 저도 아직까지 잘 몰라요. 언제고 이런 저런 옛일들을 다시 여쭤봐야겠습니다.

아차, 딴 생각 할 뻔 했네요. 저요, 일본어 공부한 지도 오래되었어요. 늘 수준이 고만고만해서 걱정입니다. 어쨌든, 어머니를 위해서또 저를 위해서 일본어도 가끔(!) 공부합니다. 언어 배우는 걸 좋아하거든요. 어릴 적 꿈 영향이 꽤 남아있나봐요. 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꾸벅! 인사드립니다.

선생님!

편지란 참 묘한 힘이 있어요. 저를 어린이처럼 만들거든요. 잠시나마 착한 어린이로 돌아가는 듯하답니다. 선생님은 이 기분 잘 모르실거예요. 일본처럼 어딘가 먼 곳에 계실 것이라고 상상하면서도 선생님 얼굴을 떠올리며 편지를 쓰는 이 기분 말이에요.

저를 가르치셨던 교사이셨는데 또 배우려고 노력하셨던 선생님을 추억합니다. 굳이 그렇게 자세하게 써주실 필요는 없었을텐데 일부러 그러셨는지 정성을 담아 자세히 써주셨던 답장 편지들을 다시 읽어봅니다. 이제는 가끔이나마 아이들에게 편지로 대화를 나누곤 하는 제 모습도 옛 추억인양 떠올려봅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지만 가장 많이 기억하는 선생님. 지금 생각해보니,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지내면서 학년별 담임선생님 중 가장 뚜렷하게 기억하는 분은 오로지 선생님 뿐입니다. 좋으시죠? 사실 제가 더 좋습니다. 선생님을 이렇게 기억할 수 있는 물건들 아니 편지들이 있어서 말이죠. 선생님 필체며 손때며 정성이 깃든 편지들 말이에요.

저는 선생님처럼 교사가 되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가르치는 일'을 하는 셈입니다. 또 한가지 닮은 구석을 찾았네요. 되도록 선생님과 연결시킬만한 것을 계속 찾고 싶습니다. 아마도 다시 볼 수 없을지 모를 선생님을 세월을 넘어 기억하자면 옛 편지만으론 부족할테니까요.

열심히 살리라 다짐합니다. 알게모르게 제게 꿈을 심어주셨고 저를 격려해주셨고 또 사랑해주셨던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사실, 선생님을 다시 만나보고 싶습니다. 어느 방송물 제목처럼 '꼭 한번 만나고 싶습니다'. 그때 만나게 되면 이 편지 꼭 보여드릴게요. 제 손으로 직접 다시 써서 제 필체며 손때며 정성을 담아서 선생님 두 손에 안겨드릴게요. 제 품도 드릴게요. 그동안 건강히 지내셔야 합니다.

선생님,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세요.

2008년 5월 15일
스승의 날에, 88년 인천 구월초등학교 6학년 6반
민종원 드림

덧붙이는 글 | 1988년 인천 구월초등학교 6학년 6반 친구들과 전** 담임선생님을 추억합니다. 우리나라 모든 '제자' 여러분도 선생님과 나눈 추억거리와 사랑을 고이 간직하며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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