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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5월 12일)는 음력으로 4월 8일, 석가모니 탄생일이었다. 매주 함께 등산하는 산벗들과 절에 가서 연등도 달고, 기도도 하고, 등산을 하기로 약속했다. 나도 독실한 불자가 아니고 산벗들도 비신자들이지만, 기도는 누구나 다 하는 거라고, 산행길에 만나는 절에 연등을 달기로 했다. 

 

사실 해마다 돌아오는 석가모니 탄생일은 독실한 불자가 아니라도, 누구라도 환한 연등을 하나 밝히고 싶어지지 않을까.

 

일행은 새벽 일찍 물소리가 시원한 폭포사 앞에서 만났다. 새벽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장산의 폭포사는 해운대의 8경 양운폭포가 있어서 많이 알려진 절이다.

 

절마당에 들어서니, 신자들이 불상에서 물을 끼얹는 세례 의식을 하고 있었다. 얼핏 그리스도교의 침례 의식을 떠올리게 하는 불교의식이었다. 함께 온 일행들뿐만 아니라, 연등 행사에 참가 한 불자들도 여간 신기해 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나도 일행들과 차례를 기다려 정성껏 바가지에 물을 떠서, 부처님을 목욕시켜 드렸다.

 

진분홍빛, 진노랑빛 등 색깔이 고운 연등에다 소원을 비는 사람들의 이름들이 적힌 알록달록한 연등 행렬을 구경하니, 그동안 세속에 찌들었던 마음이 나도 모르게 화사한 연등빛에 깨끗하게 정화되었다. 문득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에 연등 점화를 종무소에 부탁하니, 일행들도 덩달아 절 처마 밑에 연등을 마음의 등불로 달았다.

 

정말, 이제 사월초파일의 부처님 오신 날은 불자 만의 날은 아닌 것이다.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의 모습도 보였다. 초등학교 학생들이 탑돌이 하면서 기도를 올리는 모습도 보였다. 아기를 업은 아주머니 한 분은 정말 정성스레 기도를 올렸다. 그 모습이 너무 성스럽고 거룩해 보였다. 정말 기도 하는 마음만큼 사념 없는 마음은 없는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는 마음이야말로,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의 마음이 아닐까. 

 

꽃등 환한 산행로

 

산악회 벗들과 예불을 마치고, 등산하기로 목표한 장산을 향했다. 산행로에는 여느날과 달리 잿빛 승복 차림의 노 보살분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일행은 물소리 왁자한 양운폭포를 지나서, 수풀이 우거진 깊은 산길로 접어 들어 안적사로 향했다. 산길에는 녹색의 윤기나는 잎새가 돋은 나뭇가지에 환한 꽃등이 연등보다 환했다. 유달리 돌탑이 많은 장산 산행로에도 부처님 오신날이라고, 곳곳에 촛불을 밝히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사실 우리의 조상만큼 기도를 좋아하는 민족도 없을 것이다. 돌아가신 어머님은 불교신자이시면서도, 산에 가시면 산신령께 비셨고, 바다를 보면 해신께 비셨고, 비가 안 오면 보름달에게 비셨다. 집안 구석 구석 촛불과 향을 켜두고, 조왕신, 측신 등에게 두 손 모아 비셨다. 새벽마다 정화수를 떠놓고, 가족 모두의 건강한 하루와 일상을 365일 비셨다. 

 

 

안적사 산문에 기대어

 

이따금씩 휙휙 휘파람새 소리가 들리는 앵림산의 안적사는 기장군의 천 년의 사찰이다. 이 안적사는 신라 30대 문무왕 때, 원효조사와 의상조사, 두 분이 명산을 순방하다가, 동해가 환히 바라보이는 장산기슭을 지나갈 때, 숲속에서 꾀꼬리 떼들이 모여 들며 두 스님의 앞을 가로막았다고 한다. 

 

이 두 대사께서 이곳이 보통 상시로운 곳이 아니라는 것을 간파하고, 이에 원효대사가 가람을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두분 중에 먼저 도를 깨우친 원효대사를 정중하게 사형으로 모셨다는 이야기가 안적사에 전해지고 있다.

 

안적사는 여느 절보다 조용하다. 스님들의 도량을 닦는 사찰이라서 절의 건축도 단아하다. 안적사의 산문의 계단은 마치 불교에서 말하는 적멸보궁의 계단처럼 신비롭다. 그 계단의 숫자도 인간세에서 말하는 백팔번뇌의 상징처럼 백팔개의 계단이다. 

 

산문에서 절마당까지 이어진 연등아래 많은 불자들이 부처님 오신날을 기념하고, 자신의 안녕과 또 가족들의 건강 등 많은 소원의 이름으로 손 모아 기도했다. 일행들도 처음에 데면데면 하더니, 내가 기도를 하자, 모두들 숙연한 얼굴로 기도했다. 나도 오랜만에 진심으로 기도했다. 올해는 정말 그 누구에게도 절대 교만하지 않고, 겸손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야 겠다고.

 

옛날 사람들은 산의 바위마다 부처를 새겼다지만

나는 내 마음 속에 부처를 새기겠노라.

이 세상에서 제일 작은

너무 작아서

알아 볼 수 조차 없는 부처를.

 

10년이고 20년이고 나는 부처를 새기겠노라.

마음 속 깊이 깊이

마음 속에도 후미진 곳이 있다면 그곳에.

 

설령 내가 새긴 부처가

나를 배반하고 나를 죽일지라도

나는 부처를 새기겠노라.

 

오직 한 생각으로.

 

- 김형영 '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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