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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독일 잘츠베르크베르크 행 버스를 탔다. 잘츠베르크베르크는 우리나라와 달리 땅 속의 소금을 캐는 독일 소금광산이 있는 곳이다. 버스는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알프스 줄기를 따라 달리다가 잘츠베르크베르크 소금광산 방문자 센터 앞에 멈춰 섰다.

독일 바바리안(Bavarian) 지방 베르체스가덴(Berchtesgaden)에 자리 잡은 소금광산, 잘츠베르크베르크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도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나는 오스트리아에서 독일 국경을 넘어 이곳에 왔지만 언제 독일로 들어왔는지도 알 수 없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독일어를 쓰는 같은 민족인데다가 EU 통합으로 국경의 의미가 많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젊은 안내원 아가씨가 우리에게 짙은 감색의 광부복을 나누어 주었다. 두툼한 광부복을 입는 것은 여행자들에게 광부생활을 더 현실적으로 체험하게 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광산 안의 기온이 12℃ 정도여서 보온의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내와 딸은 광부복이 몸에 잘 맞았지만, 내게는 좀 작았다. 동양 남자라서 조금 작은 사이즈의 광부복을 나에게 준 것이다. 나는 조금 더 큰 사이즈의 옷을 달라고 해서 바꿔 입었다. 광부복은 깨끗이 세탁되어 풀냄새가 나는 듯 깨끗했다. 모두 감색 광부복을 입은 다양한 여행자들은 앞으로의 땅 속 여행에 설레고 있었다.

상당한 스피드에 스릴을 만끽할 수 있다.
▲ 소금광산 광부 기차. 상당한 스피드에 스릴을 만끽할 수 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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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앞에는 어린이 테마파크의 청룡열차 같은 광산 열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나의 가족은 독일병정 같이 생긴 안내원의 지시에 따라 광산 열차 위에 올라탄 후, 발을 열차의 발판에 고정시키듯이 붙였다.

예상과 달리, 광부들의 열차는 상당한 속도로 땅 속을 향하여 돌진해 들어갔고, 나와 나의 가족은 땅속으로 향하는 스피드를 만끽했다. 잊을 수 없는 여행이 시작되고 있었고, 우리는 신비로운 세계로 들어서고 있었다.

우리는 열차와 함께 산의 깊숙한 곳으로 인도되고 있었다. 나는 수백만 년 전 이 지역을 뒤덮고 있던 바다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수천 년 전의 사람들이 소금을 캐기 위해 들어왔던 똑같은 길을 빠른 속도로 내려가고 있었다.

이 잘츠베르크베르크 소금광산은 그 이름이 유사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역사에 있어서도 큰 위치를 점했던 광산이다. 보물 같은 소금광산이 국경 근처에 있어서 오스트리아와 독일은 이 소금광산을 두고 분쟁과 싸움이 잦았다.

황금 같은 소금광산에 분쟁의 역사는 끝이 나고 이제는 각국에서 온 남녀노소의 여행자들이 등산열차를 즐기고 있었다. 수많은 외국 여행자들 속에서 나는 눈을 감고 소금을 찾아 시간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땅을 파들어 가던 갱도의 종착점이 보였고, 열차는 이내 멈춰 섰다. 지하에 자리한 광부 기차의 종착점은 땅 속의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 땅 속 세계는 사람이 만들어 놓은 빛 속에서 소금의 빛깔처럼 빛나고 있었다.

젊은 독일 청년 안내원은 여행자들을 독일어 그룹과 영어 그룹의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그는 독일, 오스트리아 여행자들에게는 직접 독일어로 설명해 주었고, 우리 가족을 포함한 영어 그룹에게는 영어 설명 스위치를 켜 주었다. 우리는 독일어 그룹의 설명이 끝난 후에 스피커에서 나오는 영어 설명을 듣고, 독일어 그룹을 열심히 쫓아갔다.

소금을 파던 지하공간은 마치 미로처럼 길게 연결되고 있었다. 지하의 더 깊숙한 아래쪽에 큰 공간이 보였다. 그런데 그 넓은 공간으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광부들이 이용하던 나무 미끄럼틀을 타거나 미끄럼틀 옆의 계단을 이용해야 했다.

아찔한 높이에서 지하 광장으로 떨어져 내려간다.
▲ 소금광산 미끄럼틀. 아찔한 높이에서 지하 광장으로 떨어져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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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끄럼틀 높이는 아찔할 정도로 높지만, 안전장치 없이 목제 미끄럼틀 양쪽을 다리로만 끼고 내려가게 되어 있었다. 아내와 딸은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가는 여행자들의 비명과 환호에 약간 겁을 먹고 있었고, 나도 미끄럼틀의 높이에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뭐든지 할까 말까 망설일 때는 하는 것이 좋은 법이다. 나는 가족을 설득해서 미끄럼틀 위에 올라탔다.

미끄럼틀에는 총 5명이 줄을 지어 탔고 내가 맨 앞, 그 뒤에 신영이, 그 뒤에 아내가 앉았다. 미끄럼틀은 순식간에 지하의 광장으로 떨어져 내려갔고, 신영이는 내 등에 얼굴을 묻고 소리를 질러댔다. 여행자들을 촬영해주는 사진기에서 강력한 플래시 불빛이 터져 나왔다. 나는 중심을 잘 잡기 위해 순간적으로 미끄럼틀 가를 손으로 잡았다가 손에 불이 나는 줄 알았다. 어린이, 어른 모두 미끄럼틀에서 내리면서 웃음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미끄럼틀을 이용해 힘차게 내려온 열린 공간에는 소금 성당이 우리를 환영하고 있었다. 하늘을 향해 뻗어나가는 지상의 거대한 성당과 달리, 소금광산 지하에 자리 잡은 성당은 사람 몇 명이 겨우 들어갈 정도의 작은 방이었다. 땅 속의 갱도 속에서 위험한 작업을 하던 광부들에게 이 성당은 마음 속의 공포를 가라앉히던 곳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소금 성당에서 영어 설명을 듣고 얼른 독일어 그룹을 쫓아갔다. 우리가 발걸음을 옮기는 땅속의 굴은 계속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땅굴 속에 걸린 전구에서 나오는 노란 빛이 우리의 길을 인도하고 있었다. 나는 순간, 이 전구의 불빛이 사라진 지하공간을 생각해 보았고, 독일의 광부들이 왜 광산 안에 성당을 만들어 놓았는지 이해가 되었다.

산속에 남은 바다 속 소금이 신비하기만 하다.
▲ 소금광맥. 산속에 남은 바다 속 소금이 신비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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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통과하는 소금길. 광산 터널의 벽면을 이루는 바위에는 소금광맥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내 머리 속의 예상과 달리 암염은 갈색과 짙은 회색을 띠고 있었고, 소금의 성질상 반짝거렸다. 나는 이 지구의 신비한 역사를 두 손으로 만지며 감상하다가 일행의 가장 뒤에 처지게 되었다. 나는 뛰다시피 하면서 일행을 따라갔다.

소금의 기원과 중요성이 설명되어 있다.
▲ 소금 전시실. 소금의 기원과 중요성이 설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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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광산 여행 중간 길에는 소금과 소금광산을 설명해주는 현대적인 전시실이 있다. 이 공간은 소금에 관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는 과학박물관이다. 어린이들에게도 이해가 쉽도록 간결하게 설명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 소금 광물과 그림이 예시되어 있다.

지구의 선물인 소금이 어떻게 생겨나고, 자연의 창조물인 인류에게 왜 소금이 본질적으로 중요한지 설명되어 있었다. 나와 신영이는 소금 광산의 지질학적 구조와 소금의 화학적 성질을 유심히 읽어보았다.

나는 산속 깊은 지하공간에 자리한 인류의 보물창고 속에 있었다. 이 보물창고는 소금광산 내부를 보존하기 위해 소금 채굴이 중지되어 있었고, 새로운 디자인 속에서도 역사적인 소금광산의 오랜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유럽의 역사에서 백금만큼 중요시 되었던 암염 샘플은 그 당시 모습 그대로인 채굴장비와 함께 전시되고 있었다.

전시실의 LCD 화면에는 이 소금광산의 구조와 소금 광산의 채굴장면이 방영되고 있었다. 광산 내부의 거미줄같이 수없이 얽힌 갱도는 미니어처로 보여지고 있었다. 이 미니어처에서는 빛을 따라 채굴된 소금이 이동하고 있었다. 미니어처에서 소금의 움직임을 보고 있으니, 굳이 말로 된 설명을 들을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소금 광맥의 샘플을 지상으로 보내는 기계실. 땅속에 깊이 박은 철제 파이프가 터널의 천장을 뚫고 지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이 어지러운 장비들이 1900년대 초까지 실제로 소금 바위를 채굴하던 장비라고 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전시를 위해서 리모델링은 되었겠지만, 워낙 기계들이 정밀하고 튼튼해 보였기 때문이다. 

조명이 꺼지면 환상의 세계 여행이 시작된다.
▲ 소금광산 거울호수. 조명이 꺼지면 환상의 세계 여행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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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지하의 터널 속에 호수가 있었다. '거울 호수' 위에는 작은 유람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조명이 꺼지고 어둠이 우리를 찾아오자, 작은 유람선이 호수 위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거울호수의 작은 배는 환상의 세계로 우리를 실어 날랐고, 호수 옆 벽면의 하얀 소금 결정은 네온사인 조명같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지구 표면 아래 깊은 곳에서 나는 피안의 환상적인 경치를 감상하며 몽롱해졌고, 아내와 신영이는 탄식을 내뱉고 있었다.

배에서 내리면서, 아쉽게도 1시간 20분의 땅속 여행이 끝나가고 있었다. 우리는 땅속에 광범위하게 퍼진 갱도의 여행을 마치고 지상으로 연결되는 작업용 엘리베이터에 탔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공갈 젖꼭지를 물고 있는 갓난아기도 타고 있었다. 소금광산 여행에 어린이 연령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광부열차를 타고 다시 지상세계로 나왔다.

여행자들이 떠나려는 순간, 안내원이 손가락만한 작은 병에 담긴 소금을 나누어 준다. 그가 소금병을 건네면서 여행자들에게 독일어로 무언가를 이야기하자, 여행자들이 한바탕 유쾌하게 웃어댔다. 그는 모자를 들고 여행자들 사이를 다니면서 소금병을 나누어 주었고, 그 모자 속에는 여행자들이 넣어준 동전이 쌓였다. 그는 지하광산 여행이 즐거웠으면 팁을 달라는 말을 했던 것이다.

소금광산 여행은 세계적으로도 독특하고 매력적인 여행일 것이다. 게다가 이 여행은 살아있는 체험여행이었다. 신영이는 유럽여행 중 이 소금광산 일정이 가장 즐거웠던 경험이라고 늘상 말을 한다. 이 이상적인 여행은 어린 딸의 머리 속에서 강인한 기억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여행은 2007년 7월에 다녀왔습니다.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독일, #잘츠베르크베르크, #소금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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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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