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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파쇄기 안에 파기된 문서가 가득 차 있었다."

 

지난 25일 삼성화재 본사 압수수색에 참여했던 특검팀 관계자의 말이다.

 

증거인멸을 염려해 단 6시간 만에 전격 진행된 야간 압수수색이었지만 이미 삼성 측이 단단히 준비하고 있었음을 암시해주었다. 

 

파쇄기 안에 가득한 파기 문서

 

삼성 비자금 의혹을 수사 중인 조준웅 특별검사팀은 지난 25일 삼성화재가 미지급 보험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보도된 지 6시간 만에 기습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빠른 조치였다.

 

비록 비밀금고는 찾아내지 못했지만 특검팀은 압수수색 후 100개가 넘는 압수물품용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 대다수 기자들은 성과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속사정은 달랐다.

 

특검팀은 미지급 보험금 관련 자료들이 사무실에서 치워진 상태라 지하 4층의 문서 저장고까지 뒤졌다. 또 2003년 6월 이후 고객 계좌 입출금 내역이 담긴 데이터베이스는 확보했지만 삼성화재 측은 그 이전의 자료들은 폐기됐다며 협조하지 않았다.

 

비밀금고가 있다고 지목됐던 삼성화재 본사 22층 끝 방의 상황도 미심쩍다. 새로 벽을 세워 급하게 공사한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지난 26일 MBC <뉴스데스크>의 보도에 따르면 "방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벽은 최근 공사로 생긴 듯 흙이 묻어있고, 바닥의 양탄자도 무거운 것에 짓눌려 있었던 자국이 선명했다"고 한다.

 

이미 삼성화재가 특검의 수사를 대비해 증거인멸을 꾀한 정황이 속속 발견된 셈이다.

 

임원이 전산자료 챙겨 도주하기도

 

삼성그룹이 조직적인 증거인멸을 한 정황은 이뿐만이 아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 참여연대는 지난 23일 "비자금 조성 의혹 등에 대한 검찰 및 특검수사에 대비해 삼성그룹이 관련 증거를 조직적으로 인멸 · 은닉했다"며 삼성 전략기획실 및 삼성전자 경영지원총괄본부 임직원들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이들은 그 근거로 삼성전자가 모든 사업장에 2001년 이전 작성문서 및 구조조정본부가 실시한 경영진단문서 등의 파기를 지시한 '보안지침' 관련 보도와 이건희·이재용·이학수 등의 이름이 들어간 문건을 모두 파기했다는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의 한 간부의 증언을 그 근거로 삼았다.

 

또 지난 22일 <한겨레>는 삼성SDI 공문을 입수, "삼성SDI가 1월 초 개인용 컴퓨터에 저장돼 있던 문서를 모두 별도의 서버로 옮기고 개인용 컴퓨터의 자료를 모두 삭제하도록 지시했다"며 "특검의 압수수색에 대비해 자료 관리를 일원화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검찰 특별수사 감찰본부가 지난 11월 삼성증권 본사를 압수수색하는 현장에서 삼성증권 임원이 검찰이 출력한 수천 장의 증권계좌 거래 내역 관련 자료를 통째로 들고 도주해 검찰은 다음날 압수영장을 재발부 받아 해당 전산자료를 다시 출력하는 일까지 있었다.

 

사법권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였다. 민변과 참여연대 등은 삼성 측의 증거인멸 시도를 "단순한 개별 기업의 단발성 위법행위가 아니라, 권력화한 자본이 국가시스템을 자신의 이해관계에 굴복시키고자 하는 시도"로 규정했다.

 

이와 관련해 <세계일보>는 작년 12월 24일 "수사팀은 해당 임원을 증거인멸죄로 입건하기 위해 삼성에 통보까지 했지만 해당 임원이 잘못을 인정하고 선처를 호소해 일단 반성문을 받는 선에서 마무리했다"고 전했다. 

 

국가시스템을 굴복시키려는 시도... 검찰 나서야

 

그러나 반성문 정도로 끝날 사안이 아니었다. 이번 비자금 의혹 등의 수사에 앞서 삼성은 여러 차례 공권력에 정면 대응했다.

 

경제개혁연대에 따르면 ▲지난 98년 삼성자동차 직원들이 공정위 조사관으로부터 증거자료를 빼앗아 파기한 적이 있고, ▲ 1999년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가 '공정거래 조사 관련 문제점 및 대응방안'이라는 지침을 통해 내부 자료 폐기를 지시한 적도 있으며, ▲ 2000년 4차 부당내부거래 조사 당시 자료은폐를 지시한 문건이 공개된 적도 있다.

 

이번 삼성화재 압수수색 현장에서도 특검은 삼성화재 경리파트장 김모씨를 증거인멸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그러나 김씨가 혐의를 전면 부인해 25일 저녁 석방하고 출석시켜 조사 중이다.

 

타인의 형사사건 등에 관한 증거를 조직적으로 인멸, 은닉하거나 이를 교사하면 형법 155조 3항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특검이 삼성그룹의 증거인멸 및 인멸교사 혐의를 따로 조사하기는 힘들다.

 

특검법상 수사 대상과 범위가 확정되어있고, 수사할 수 있는 인력 역시 부족하다. 결국 해답은 검찰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민변과 참여연대의 고발과 관련해 검찰의 특별한 조치는 없다.

 

지난해 검찰 특별수사 감찰본부는 "특검의 취지를 존중해야 할 입장"이라며 "'긴급성을 요하는 수사', '누가 보더라도 해야 하는 수사'를 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 결과 삼성그룹은 차근차근 증거를 인멸해나가고 있다. 소환된 참고인들은 입을 맞춘 듯 차명계좌에 대해 자신의 계좌라고 진술하고 있다.

 

검찰이 특검의 취지를 정말 존중하고 있다면 사법권에 대한 삼성의 도전을 엄중히 경고해야 한다. 


태그:#삼성특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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