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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족산(423.6m) 정상. 정상에는 봉황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계족산(423.6m) 정상. 정상에는 봉황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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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계족산(423.6m)은 회덕의 진산이다. 예로부터 가뭄이 심할 때 이 산이 울면 비가 온다고 전하여 비수리, 백달산이라 부르기도 하였고, 또 이 산의 모습이 봉황처럼 생겨서 봉황산이라 불렀다고 하지만, 계족산이란 이름만 놓고 보면 미륵신앙의 영향을 받은 산 이름인 것만은 틀림없다.

높이에 비해 능선이 긴 편인 계족산은 산자락 안에 사적 355호인 계족산성을 비롯하여 이현산성과 장동산성, 질현성 등의 산성과 비래사, 용화사 등 전통사찰 등 많은 문화유적을 품고 있다. 마음의 무게를 덜어내고 싶거나 가벼운 산행을 즐기고 싶을 적엔 이 산을 즐겨찾곤 한다.

허물어진 옛 산성의 돌무더기들. 옛 사람들이 애써 쌓았던 작위가 세월이 흘러 무위(無爲)가 되어 흩어진 풍경을 바라보면 마음이 적이 평안해진다. 산 능선과 살짝 흘러내린 기와지붕의 곡선이 빚어내는 조화가 마음을 절로 고요하게 한다.

고적(孤寂)한 곳에 터잡음으로써 속됨을 벗어나다

게족산 능선에서 내려다 본 죽림정사 전경.
 게족산 능선에서 내려다 본 죽림정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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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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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족산 서쪽 기슭엔 죽림정사라는 아담한 절집이 있다. 1988년 지어진 이 절집엔 아무런 문화재도 없다. 그럼에도 내가 가끔 이 절집을 찾는 이유는 인적이 드문 고적(孤寂)한 곳에 자리잡음으로써 스스로 속됨을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19일, 모처럼 계족산 정상까지 올랐다. 서쪽으로 뻗은 줄기를 타고 내려오다가 산 아래 절집에 저절로 눈이 멎었다. 저만치 바라다보이는 죽림정사가 홀로 선정에 들어 있다. 방만하지 않으면서, 적당히 아담한 규모의 절집이다. 근래에 지은 절집치고 이만한 절제미를 갖춘 곳이 드물지 않을까 싶다. 어디 오랜만에 죽림정사에나 들러볼까.

천천히 산을 내려가 경내로 발을 내딛는다. 가까이에서 바라봐도 죽림정사는 여전히 고즈넉하고 아름답다. 탐방객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는다. 오후 3시, 겨울 햇살이 전각과 탑에서 빚어낸 그림자가 아름답다. 그림자들은 아직도 적멸이 무엇인지 깨우치지 못하는 둔감한  탑이나 전각들에 적멸의 아름다움을 설(說)하는 중이신가.

사적기에 따르면 죽림정사는 이 절의 주지인 도영 스님이 신도들의 시주를 받아 2년간 공사 끝에 1990년에 완공한 절이라 한다. 도영 스님은 김제 금산사의 주지를 역임하신 분이다. 25년 동안이나 전북 김제 금산사에서 머물렀지만, 1985년, 금산사 대적광전을 덮친 화마는 스님을 더는 주지직에 머물 수 없게 만들었다.

이후 김제 흥복사에서 한거하던 스님은 대전으로 옮겨왔다. 평소 불교대중화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대전 시내 대화동에 포교당을 열었다. 그러나 도심 포교당은 불자들이 수행 정진하기엔 불편한 점이 많았다. 새로운 신앙공간을 찾던 스님은 마침내 이곳에 죽림정사를 짓게 되었다.

대웅전 우측에 나란히 자리잡은 종각.
 대웅전 우측에 나란히 자리잡은 종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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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우측에 있는 극락법보전.
 대웅전 우측에 있는 극락법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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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의 구조는 비교적 간단하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인 대웅전과 극락법보전, 선원 겸 요사채와 종각이 전부이다. 터의 크기를 감안해서 지은 알맞은 규모가 이런 짜임새 있는 절집의 분위기를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싶다.

대웅전과 나란히 지어진 종각도 크기는 작지만, 기둥과 기둥 사이에 낙양각을 조각했으며, 범종에는 상원사 동종 비천상을 닮은 비천상도 새겨 넣었다. 종각과 극락법보전 사이엔 배롱나무를 심어 새것이 풍기는 촌스러움을 중화하고 있다.

대웅전 정면에는 전북 익산 호남 채석장에서 가져온 돌로 세웠다는 5층 석탑이 서 있다. 겨울날 오후의 낮은 햇살을 받은 석탑이 빚는 그림자가 마당을 장엄하고 있다.

겨울햇살이 빚어내는 적멸의 아름다움

좌측 오솔길에서 바라본 대웅전.
 좌측 오솔길에서 바라본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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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층탑 석탑의 그림자와 강아지.
 오층탑 석탑의 그림자와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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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층석탑과 우측에 나란히 배치된 천진동자상.
 5층석탑과 우측에 나란히 배치된 천진동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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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절집을 결정적으로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절집을 병풍처럼 에워싼 대숲과 전각들과 탑, 석등 등 여러 가지 조형물들이 빚어내는 그림자와 5층 석탑 옆에 구김살 없는 웃음을 짓고 있는 천진동자상이다.

절 뒤 대숲은 은둔과 고적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그림자들은 적멸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천진동자의 웃음은 탐방객의 마음에 드리운 삶의 업장을 걷어낸다. 이 모든 것이 원융조화를 이루어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절집을 평화스럽고 청량한 암자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삶에 찌든 사람들이 절집에서 맛보고 싶은 것이 청량함과 마음의 평화라면 이 절집은 자신의 모습을 성곡적으로 연출해내는 데 성공한 셈이다.

  오대산 중대에 이르러서도 보지 못한 적멸보궁을
여기 와서 본다

위도 아래도 훌러덩 벗어 던지고
삐걱대는 맨 뼈다귀에 바람소리나 들이고 있는 저
적멸

생각나면 들러서 誠心을 다하여 목청껏 진설하는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저 소리의 고요한 일가친척들


  세상에 남루만큼 따뜻한 이웃 다시 없어라
몰골이 말이 아닌 두 塔身이
낮이나 밤이나 대종천 물소리에 귀를 씻는데

텅 빈 물상좌대 위,
저 가득가득 옮겨앉는
햇빛부처, 바람부처, 빗물부처
오체투지로 기어오르는 갈대잎 덤불

밤 내린 장항리,
폐사지 자욱한 달빛 眞身舍利여!


  - 김명리 시 '적멸의 즐거움' 전문

가을에 오대산 적멸보궁에 갔다 온 적이 있다. 나 역시 김명리 시인처럼 그곳에서 적멸을 느끼지 못했다. 적멸보궁이란 허명이, 그 헛된 이미지에 이끌려서 밀려드는 인파로 하여 그곳은 이미 적멸보궁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고 있었다.

적멸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번잡함이었다. 도시의 번잡함이라는 늑대를 피하려다 범을 만난 셈이라고나 할까. 괴이함이나 신기함만을 쫒아 다니는 사람에겐 적멸의 즐거움은 깃들지 않는 법이다. 오대산 적멸보궁에서 적멸을 맛보지 못한 시인은 결국 장항리사지에 가서야 비로소 적멸의 즐거움을 맛본다.

난 때때로 이 죽림정사에 이르러 적멸의 즐거움을 맛본다. 그것이 내가 문화재 한 점, 이렇다 할 볼거리 하나 없는 이 절집을 찾는 이유다. 오후 4시. 길고 희미해진 내 그림자를 이끌고 죽림정사를 나선다. 길을 걷다가 문득 생각나듯 내 그림자를 들여다본다. 내 그림자 역시 고색창연한 적멸보궁이었던가.


태그:#죽림정사 , #적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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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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