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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독립운동의 근거지였던 '북간도 용정'을 아십니까? 스물아홉 인생 동안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애원했던 윤동주가 태어난 시인의 땅, 그 용정 말입니다.

 

그 먼 나라 북간도 용정에서 온 가난한 어머니가 한국 법무부 출입국 단속반에 쫓기다 추락사했습니다. 이 어머니는 독립운동가도 아니었고 시인도 아니었지만 하나밖에 없는 딸에게는 천하보다 귀한 어머니였는데 말입니다.

 

헤어진 지 수천 년이라도 되는 것처럼 제 민족을 외국인으로 분류해 강제 추방하는 지구 상의 유일한 나라를 아십니까? 동포의 임금을 마구 떼어먹는 임금체불의 나라, 노예처럼 부려 먹으면서 욕설과 폭행까지 일삼는 동족 인권유린 국가를 아십니까? 아, 대한민국입니다.

 

시인 윤동주가 환생해서 이 땅을 밟는다고 해도 불법체류자 처지라면 환영은커녕 출입국 단속반원들의 저인망식 단속망에 걸려 강제추방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안중근 의사인들 예외일 리가 있겠습니까.

 

물론 그렇게 말할 순 있을 것입니다. 서푼 어치도 안 되는 민족 감정으로 중국동포 문제를 봐선 안 된다고, 추락사한 중국동포 여성은 불법체류자였을 뿐이며, 단속반원들의 법집행은 정당했다고 강변할 것입니다. 

 

260만 중국동포들이 한국에 밀려와 노동시장이 교란되고, 안보가 위협되는 사태가 발생하면 그 책임은 누가 지겠느냐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이해해야 하며, 그러려면 불법체류자 단속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지로 내모는 단속... 쥐만도 못한 불법체류 중국동포의 운명

 

중국동포 권봉옥(여·50·중국 길림성 용정시)씨가 지난 15일 오후 법무부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의 단속을 피하려다 자신이 일하던 모텔 8층에서 추락해 숨졌습니다.

 

김아무개 팀장 등 출입국 단속반원 5명은 불법체류자가 청소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서울 종로구 연지동 L모텔에 진입했습니다. 8층 복도에서 이들과 맞닥뜨린 고인은 객실 문을 잠그고 나서 창문으로 빠져나가려다 변을 당한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한 언론에 따르면 단속반원들은 "신분증을 제시할 것을 요구했을 뿐 무리하게 단속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궁색한 변명을 할 수밖에 없겠지만 한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그렇게 주장해선 안 됩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8층 복도에서 청소하던 고인은 단속반과 마주치자 객실로 피했고, 단속반원들은 모텔 관계자에게 비상키를 가져오라고 요구했습니다. 객실 문을 걸어 잠근 고인은 단속반원의 집요한 추적을 피하려고 창문으로 탈출하다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쥐도 도망갈 구멍을 주고 쫓아야 한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미등록 중국동포들의 운명은 쥐만도 못했습니다. 단속반원들은 도망갈 어떤 구멍도 내주지 않은 채 목숨을 조였던 것입니다. 벼랑 끝에 선 연약한 인간의 마지막 동아줄을 끊어버리기 위해 비상키를 요구한 그들은 정당한 법집행자가 아니었습니다.

 

실적에 쫓기는 단속반원들의 직업적 고충을 전혀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 실적을 위해 목숨마저 요구한 행위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절박하고 위급한 상황에 내몰린 한 생명의 처지를 조금이라도 고려했다면 일단 퇴각을 한 뒤에 안전한 단속방법을 모색했어야 옳았습니다.

 

차디찬 조국 영안실에 누워 계시는 어머니!

 

고인은 지난 99년 무렵 한국에 입국하려는 과정에서 브로커에 속아 수천만원을 사기당했다고 합니다. 또한 외동딸(오정화)이 큰 병에 걸리면서 집마저 팔아야 하는 등 어려운 처지였다고 합니다.

 

고인은 2000년 1월 17일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왔지만 연수생의 쥐꼬리 월급으로는 빚을 갚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비자가 만료됐어도 딸 곁으로 돌아갈 수 없었고, 빚을 갚고자 아픈 몸에 약을 먹어가며 청소원으로 일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강제추방의 공포와 두려움에 떨던 미등록(불법체류) 중국동포의 날개 없는 '코리안드림'은 저승사자 같은 단속반의 집요한 추적에 떼밀려 추락사한 것입니다.

 

용정의 한 공장에서 함께 일할 때부터 자매처럼 지냈다는 김옥선씨가 고인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언니는 자존심이 워낙 강해서 빚이 많았어도 주변 사람들에게 일체 말하지 않습니다. 어제(15일) 용정에 있는 친언니(권선옥)에게 전화했더니 '빚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고, 남편도 빚 독촉에 쫓겨 다니고 집도 없는 형편'이라고 했습니다. 빚도 갚지 못하고 강제추방되면 평생 빚에 쫓겨 살 수밖에 없으니 단속반에 잡히지 않으려다가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고인에게는 스물다섯의 외동딸 오정화씨가 있습니다. 16일 정화씨와 통화를 한 김씨는 "정화는 엄마가 의식불명인 줄로 알고 있다"면서 "엄마의 상태를 자꾸 묻는 정화에게 이 비극적 상황을 말할 수 없어 '서류가 갈 테니 그것을 보고 오라'고만…"라며 말끝을 잇지 못합니다.

 

엄마의 지극한 사랑으로 병을 극복한 어머니의 딸은 베이징에 있는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딸의 어머니였던 고인은 학비를 대느라고 타국보다 더 차디찬 땅 조국에서 차별 때문에 흘려야 할 쓴 눈물을 삼켜야 했을 것입니다.

 

용정을 떠나올 때 열여덟이었던 딸은 어느덧 스물다섯의 곱디고운 처녀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자란 용정의 딸은 어머니의 생명을 앗아간 조국 대한민국을 증오하며 살지도 모릅니다. 고인과 같은 용정 사람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의 한 구절을 빗대면서 참담한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조국의 영안실에 차디차게 누워 계십니다.

 

동포들 애도와 함께 분노의 눈물... "너무 불쌍해요"

 

서울 구로구 가리봉1동 '외국인노동자의집/중국동포의집'(대표 김해성 목사) 쉼터에 거주하는 중국동포 60여 명은 16일 밤 11시 고(故) 권봉옥씨가 안치된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을 찾았습니다.

 

빈소는 급히 마련돼습니다. 유족들이 모두 중국에 있기 때문에 '중국동포'들이 상주를 대신했습니다. 고인의 증명사진이 담긴 여권이 영정을 대신한 가운데 동포들이 헌화를 하면서 단속과 강제추방, 임금체불과 폭행 등 지옥 같은 조국에서 하직한 고인이 천국으로 인도되길 바라며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했습니다.

 

이선희(목사) '외국인노동자의집/중국동포의집' 서울센터 소장은 고인이 '중국동포교회'에 다녔던 교인이라고 밝히면서 "냉대와 차별로 한 생명을 앗아간 조국을 용서해주세요, 단속의 공포와 두려움에 떨던 고인이 너무 불쌍합니다, 이주노동자들을 짐승처럼 몰이하는 정부의 비인간적 단속방법을 멈추게 해주세요, 억울한 죽음이 더 이상 없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이어 김해성 목사는 "제 민족을 불법체류자로 낙인찍어 체포하고, 강제추방하고, 추락사시키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가?"라고 항의하면서 "고인의 죽음을 마지막으로 동족을 불법체류자로 낙인찍는 비극은 끝나야 한다"라고 정부당국과 국민들에게 부탁했습니다.

 

이날 장례예배에 참석한 50~60대 중국동포들은 고인의 죽음이 남의 일이 아니기에 애도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어 냉대의 나라 조국에서 당하면서 억눌러야 했던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왔습니다.

 

"우리가 거저 돈 달라고 했는가요. 정당하게 일을 해서 돈 벌겠다는 것이 무엇이 잘 못됐는가요!"
"일을 시키고도 돈을 주지 않는 데 이게 무슨 법인가 말입네까! 청와대는 임금을 떼어먹는 것을 방치하고, 동포를 죽이면서까지 단속하게 한 데 대해 책임져야 합니다."
"불법(체류자)을 쓰지 않는다면 우리도 돌아가겠습니다. 자기들이 필요해서 불법을 써 먹고는 돈을 주지 않으려고 경찰에 찌르는 게 말이나 됩니까!"
"한국 사람들은 교포를 동족은커녕 사람 취급도 하지 않습니다. 이래 가지고는 통일 없습네다!"
"언제까지 이리 죽고 저리 죽어야만 합니까. 시신을 떠메고 행진이라도 합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중국동포, #추락사, #출입국 단속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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