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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사람들에게 받은 많은 카드들

영국의 크리스마스는 먼저 '카드'에서 느낄 수 있다. 막스앤스펜서, 세인즈베리 등 대형유통점에 크리스마스 카드가 하나 둘씩 진열되기 시작한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올수록, 영국 사람들은 카드를 구입하는 데 여념이 없다. 물론 가족과 친척들에게 줄 선물을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카드를 사는 일도 그에 못지 않다.


카드에 집착하는 영국 사람들... "아휴~ 카드 쓰기 힘들어!"


회사 동료, 친구 등에게도 크리스마스 연휴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카드를 돌린다. 카드를 주면서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을 빼놓지 않고 한다. 가족, 친척 등에게 선물을 줄 적에도 카드 쓰는 것은 빼먹지 않는다.


이 곳에 처음으로 왔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교회를 다니는 데 교회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서로 경쟁하듯이 카드를 줘서 한국에서 평생 받았던 것보다 그 해 받았던 카드가 더 많았다고 하면 과장일까. 영국 사람들이 그토록 카드에 집착하는 이유는 왜일까. 아마도 글 읽기를 매우 좋아하고 글에 대한 어떤 숭상 같은 문화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카드를 받은 이상 그냥 쓱 입을 씻을 수 없는 한국 사람 정서상, '최소한 받은 사람만이라도 답장 카드를 쓴다'는 각오로 카드를 쓴다. 하지만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어디 카드를 받은 사람이 우리 가족 중에 나 뿐이랴. 아내에 또 딸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받은 카드까지 생각하면 수십 장이 된다.


아내는 "이 많은 카드 다 언제 다 쓰지"라고 푸념을 하곤 한다. 올해에도 여지 없이 교회의 할머니, 할아버지께 드릴 카드를 쓰느라, 또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딸 아이의 카드 작업을 돕느라 나보다는 아내가 2, 3주 동안 바짝 신경 쓰며 고생을 해야 했다. '한 명이라도 빼먹으면 얼마나 서운할까' 하며 긴장하면서 말이다.


성의 없는 카드(?)와 윤리적인 카드 소비

 

 너무 짧게 받는 사람과 보내는 사람의 이름만 쓰는 영국의 카드들.

그렇게 많은 카드를 쓰다 보니, 카드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이름 있는 카드 회사에서 만든 카드는 1파운드(약 2천원)로는 턱도 없이 부족하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무슨 내용을 영어로 써야 할지도 참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이곳에 온지 첫해에는 일일이 그럴 듯한 표현을 찾으려 노력하고 힘들어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영국 사람들이 주는 카드를 보면 때로는 너무 싶을 정도로 짧고 간결하다. "Dear 아무개"라고 쓰고는, 카드 내용은 그냥 이미 카드에 프린트 된 내용으로 대체한다. "Love from 아무개"라고만 '띡' 쓰면 땡이다.


처음에는 황당했다. '이렇게 카드 쓰려면 왜 써? 카드가 아깝다'라고 그들의 무성의함(?)이 불만스러웠다. 그런데, 요즘은 오히려 그렇게 짧게 카드를 쓰는 게 오히려 감지덕지할 지경이다. 왜냐하면 너무 쓸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사람은 아니지만, 일부 사람들은 사회의 공익적인 일을 하는 자선 기관(charity) 등에서 발행한 카드를 구입하곤 한다. 자신들의 카드 구입을 중요한 '소비'로 보고, 그 돈이 사회의 좋은 곳에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 중에는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돈을 지원하는 단체, 지체 장애인에게 도움을 주는 기관, 새를 보호하는 단체 등 그야말로 다양하다.


내가 일하는 곳의 매니저인 제인 아네스는 아예 올해에는 카드를 구입하지 않고, 그 비용으로 자선단체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그녀는 "카드를 쓰는 것도 좋지만 그 돈이 루게릭 환자를 도우는 데 가면 더 의미가 있지 않겠냐"고 직원들에게 설명을 했고, 다들 "좋다"고 흔쾌히 동의했다.


한국의 추석을 연상시키는 귀경 러시

 

 요크 시내의 한 거리에서 연주나 율동을 하면서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사람들.

이곳의 크리스마스는 한국의 추석명절이라고 보면 딱 맞을 것 같다. 다들 자신의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 앞으로!'를 외치며 집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대학생들은 크리스마스가 시작하기 약 10일 전에 방학에 들어가자마자, 큰 가방을 싸고 후딱 고향으로 간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폴과 캐롤 부부는 크리스마스 때마다 영국 반도의 남북을 왔다 갔다 횡단해야 한다.


남편인 폴의 부모님은 반도의 북쪽 끝 부분인 에딘버러(Edinburgh)에 계시고, 아내인 캐롤의 어머니는 남쪽 끝에 가까운 바쓰(Bath)에 계시기 때문. 한국으로 치면 '서울-부산' 거리보다 훨씬 멀다. 캐롤은 "기차 타는 것만도 한참 가야 하는 너무 긴 여행"이라며 "그래도 행복하다"고 웃었다.


교회 목사님으로 은퇴한 말콤과 알리스터 부부는 그야말로 글로벌한 국제 가족이다. 큰 아들은 탄자니아에서 돌아오고, 작은 아들은 룩셈부르크, 딸은 미국 워싱턴에서 날아온다고 한다. 말콤은 "손주, 손녀들을 보면서 보내는 것이 너무 즐겁다"고 말했다. 하지만, 올해 영국의 크리스마스는 심한 안개와 일부 공항에서의 파업 등으로 인해서 이동에 많은 불편을 겪어야 했다.


칠면조 요리... 여왕의 크리스마스 연설

 

 영국의 대표적인 크리스마스 음식인 칠면조 요리

이처럼 영국의 크리스마스는 전형적인 가족 행사로 선물을 서로 주고 받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크리스마스 날 꼭 먹는 음식은 바로 '칠면조 요리'로, 칠면조를 구워서 갈색 소스를 뿌려서 먹는다. 거기에, 건포도와 과일이 들어간 검은 색의 케익인 '크리스마스 푸딩'도 빼놓을 수 없다.


영국 사람들은 뭘 하며 놀까. 주로 게임과 놀이를 하면서 논다. 크래커라는 것을 서로 잡아당기면 그곳에서 종이로 만든 왕관과 수수께끼 문제가 쓰인 종이가 나온다. 그러면 나이를 막론하고 가족들이 모두 그 종이 왕관을 쓰고, 서로 수수께끼 문제를 내고 풀면서 즐겁게 논다. 처음에는 이 게임을 하면서 놀 적에는 호기심에 즐거웠는데, 할수록 어떻게 보면 참 아이들 놀이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크리스마스 날, 또 빼놓을 수 없는 영국의 전통은 여왕님이 전국에 생방송으로 크리스마스 연설을 한다. 사람들은 이를 시청하곤 하는데, 올해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텔레비전을 통해서 크리스마스 연설을 한 지 50년이 되는 해다. 그녀는 올해 연설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데 사람들이 더욱 힘쓸 것을 촉구할 것"이라고 BBC는 보도했다.


복싱 데이 쇼핑!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사람들

크리스마스가 끝난 다음날인 26일은 '복싱 데이(Boxing Day)'(참고로 영국 사람들은 Box를 '복스'라고 발음한다). 이 날의 기원은 중세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사람들이 가난하거나 하급계층의 사람, 종업원 등에게 크리스마스를 맞이해서 선물, 복스(Box)를 주는 관행에서 비롯됐다.


그 의미가 이제는 퇴색되어서, 복싱 데이는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쇼핑의 날이다. 크리스마스 때 팔리고 남은 물건들을 50% 이상 대거 세일하는 등 그야말로 '완전 떨이'로 판다. 그러다 보니, 아침부터 쇼핑거리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크리스마스가 끝났지만 값싼 물건을 사람들로 거리가 그득하다.


알뜰한 한국 아줌마들은 크리스마스 날 선물을 안 사고, 오히려 이날 쇼핑을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미 좋은 물건들은 다 팔려나가고 질이 떨어지는 것들만 남아서 허탕을 치기도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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