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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세요.”


달리던 자동차를 가로막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의아하여 경찰관에게 물었다. 차가 밀려서 갈 수가 없다는 말만을 한다. 밀려드는 자동차를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는 경찰관에서 더 물어볼 수 없었다. 도리가 없었다. 차를 돌려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증이 커지고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지만, 짐작만 할 뿐이었다.

 

 

선운사 단풍을 즐기기 위하여 나선 여행길이었다. 옛날부터 선운사 단풍은 곱기로 이름이 나 있다.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내장산 단풍이 밖으로 화려하다면 선운사 단풍은 안으로 내실이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단풍 구경을 속 깊게 할 수 있는 곳이 선운사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다. 깊어가는 가을 정취에 푹 빠지고 싶은 마음으로 달리고 있는데, 앞을 가로막고 있으니 불평이 터져 나왔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흥덕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지점이었다. 우회하면서 조우하게 된 농촌의 가을 풍광이 불만의 마음을 흡수해 버렸다. 한적한 농촌 길을 달리는 기분 또한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텅 비어 있는 들판의 넉넉함이 마음에 여유를 심어주고 있었다. 들녘에도 가을의 마법은 그대로 통용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흥덕에서 선운사로 직접 들어갈 수 있는 도로가 개통되었지만, 우회하였기 때문에 고창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고창읍을 돌아 아산면을 지나 선운사로 향하였다. 차창을 통해 지나가는 풍광들은 옛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되살려주었다. 추억과 함께하며 달리는 길은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생각에 잠기다 보니, 선운사에 도착하였다.

 

선운사는 자동차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멀어지고 있는 가을을 즐기기 위한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도솔산 전체에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사람들 속에서 사람들 구경하는 일도 여행의 또 다른 맛이다. 조용하게 홀로 즐길 수 있는 기쁨도 크지만 사람들과 함께 부비면서 즐기는 기쁨 또한 크기 때문이다.

 

 

선운사는 백제 시대 때 검단 선사에 의해 창건된 아주 오래된 사찰이다. 불교 조계종 제24 교구 본사로서 전라북도의 서해안 지방을 대표하는 고찰이다. 역사가 깊은 만큼 백파 율사를 비롯한 훌륭한 고승들도 많이 배출되었다. 추사 선생님이 직접 쓴 백파 율사비가 부도전에 서 있었는데, 다른 곳으로 이장이 되어 아쉬움이 컸다.

 

선운사 대웅전을 비롯한 보물(금동 보살 좌상, 도솔암 지장보살상, 마애석불) 등이 보관되어 있고 송악, 동백나무 숲, 장자송 등 아름다운 나무들이 천연기념물도 지정되어 있어 학술적 가치도 매우 크다. 역사의 향에 취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재와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찾는 이의 가슴을 넉넉하게 해주는 아름다운 곳이다.

 

 

눈 안으로 들어오는 도솔산이 감동이었다. 온 산이 곱게 물들었다. 어디 하나 빼놓은 곳 없이 구석구석까지 단풍이 들어 있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삼천리금수강산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을 정도다. 시선을 따라 들어온 도솔산 선운사의 풍광이 몸 안으로 고스란히 들어와 내 안의 우주도 곱게 단풍물이 들어버렸다.

 

선운사로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단풍에 취할 수 있었다. 도로 양옆의 단풍들이 어찌나 곱게 물들었는지, 현란하다. 어디를 보아야 할지 난감할 정도였다. 앞을 보아도 옆을 보아도 온통 불이다. 활활 타오르고 있는 단풍의 열기에 온몸이 속절없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온 우주가 화려한 색깔로 타오르고 있었다.

 

 

사천왕문에 이르는 길은 오래된 단풍나무들이 즐비하게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선운사 단풍을 대표하는 곳으로도 이름을 날리고 있는 명소다. 흐르는 물에 비춘 단풍은 또 하나의 세상이 존재하는 것이다. 땅 위에는 물든 단풍으로 화려한 화엄 세상이 있고 물속에는 또 하나의 불붙은 세상이 존재하는 것이다.

 

선운사를 지나 도솔암 쪽으로 향하는 계곡도 얼마나 고운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묵은 나무들은 아니어서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 선운사 앞의 고목에서는 그 나름대로의 독특한 향이 배어나고 있는 데 반해, 계곡의 나무들에서는 힘을 느낄 수 있다. 싱그러움에서 뿜어내고 있는 산뜻하고 활기 넘치는 희열을 맛볼 수 있다.

 

 

마음이 가라앉고 불만이 터져 나올 때에는 다른 구실을 찾곤 하였었다. 마음이 불편한 것은 나의 탓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외롭고 허전하게 만드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하였다. 그럴 리가 없다고 믿었고 굳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불붙어 있는 단풍의 아름다운 모습에 취하다 보니, 그것이 모두 다 내 탓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곱게 물이 든 것은 단풍이지만, 그것에 취하는 것은 바로 나였다. 단풍이 나를 취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단풍에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단풍을 쫓아 선운사에까지 왔고 스스로 빠지고 있는 것이었다.

 

 

오는 길을 가로 막고 있어도 포기하지 않은 것은 단풍에 취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다. 돌아 섰다라면 아무 소용도 없지 않은가? 선운사를 찾은 것은 나 스스로의 욕구 때문이었다. 몸과 마음까지도 곱게 물들여지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사유해본다. 결국 모든 것이 내 안에서 사랑을 갈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곱게 물든 단풍이 환하게 웃으면서 말하고 있었다. 사랑은 사유하게 만들고 사유는 지혜를 가지게 해준다. 곱게 물든 우주 속에서 결국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 마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고찰 선운사에서 단풍에 젖어 참 나를 사유한다. 결국 무아(無我)라는 사실을 되새기면서 탐진치 삼독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소원해본다. 단풍이 불붙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사진은 전북 고창 선운사에서 촬영한 것입니다.


태그:#가을여행, #선운사,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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