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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산에서도 흙길이 차츰 사라져가요. 퍽 안타까운 일이에요. 온종일 산에 다니는 사람 발도 편하고 포근한 흙길이 자꾸만 시멘트로, 아스팔트로 뒤덮이고 있어 안타깝답니다.
▲ 흙길 요즘은 산에서도 흙길이 차츰 사라져가요. 퍽 안타까운 일이에요. 온종일 산에 다니는 사람 발도 편하고 포근한 흙길이 자꾸만 시멘트로, 아스팔트로 뒤덮이고 있어 안타깝답니다.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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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가랑잎 사각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왠지 기분이 좋아요. 이 멋진 가을엔,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했던가요? 요즘 몇 주 동안 남편과 함께 구미 둘레에 있는 '국유 임도'라고 하는 산길을 자전거로 돌아다녔어요. 산길로 다니면서 보고 느끼는 게 퍽 많았어요.

이 멋진 가을엔,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했던가요? 구미시 산동임도인데요. 흙으로 덮인 산길이 퍽 멋스럽죠?
▲ 아늑한 산길 이 멋진 가을엔,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했던가요? 구미시 산동임도인데요. 흙으로 덮인 산길이 퍽 멋스럽죠?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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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참에 산길에서 찍은 사진과 어설프지만 제가 몇 해 앞서 쓴 시, 세 편과 곁들여 산길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가을 사랑


산길 가에 들국화가 활짝 핀 날엔
짙은 그리움 일렁이게 하는 그대
생각나서 좋은 날

차가운 이슬 맺히는 날엔
찬 손 꼭 잡아주던 따뜻한 손
그리워서 좋은 날

바람 부는 날엔
바람결에 그리운 사람 향긋한 내음
실어 와서 좋은 날

가랑잎이 거리를 뒹구는 날엔
이별 아닌 헤어짐 가슴 아프게 한 그대 등
서러워서 좋은 날


시/손현희


산에 올라가면

산에서 만나는 사람은 무척 정겹지요. "안녕하세요", "수고하십니다" 한마디 인사에도 퍽 살가운 정이 느껴진답니다. 땅에서 만나는 사람한테서는 느끼지 못한 따듯함이 배어 있어요.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요?

서로 땀을 흘리면서 힘든 길도 마다 않고 산에 올라가고 있을 때, 누군가 만나기라도 하면 눈인사라도 나눌 줄 알아요. 산 아래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지요. 땅에서는 모르는 사람한테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하면 아마 이상한 눈빛으로 볼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모두 얼굴이 굳어 있어서 (길가는 사람을 보면, 이상하게도 그래요) 감히 인사를 건네기도 어렵지요.

호젓한 산길에서 만나는 사람은 한결같이 정겨워요. 산 아래 땅에서도 그렇게 따듯하고 살가운 모습이면 좋으련만….
▲ 산길 호젓한 산길에서 만나는 사람은 한결같이 정겨워요. 산 아래 땅에서도 그렇게 따듯하고 살가운 모습이면 좋으련만….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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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올라가면


산에 올라 만나는 사람들
하나 같이 정겹다.
서로 힘든 길을 오르며
솟아나는 땀 맛을 알기 때문일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방긋 웃으며 인사를 나눈다.

발밑에서 뿜어내는 흙내음과
푸른 나무가 안겨주는 맑은 숨
저절로 마음 비우고
깨끗한 공기로 채우니
마음마저 너그럽다.

옳아!
이래서 산에 오르는구나!
자기를 비우고 너그러움을 채우는
보약을 마시러…….

그 마음 그대로
산 아래에서도
너그러울 줄 알면
얼마나 좋을까.


시/손현희

산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욕심이 사라져요

땀 흘리며 산꼭대기에 올라본 사람들은 잘 알 거예요. 꼭대기에 서서 내가 올라온 길을 되돌아보거나, 또 산 아래 마을을 내려다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거예요. 확 트인 앞, 저 산 아래에는 키 큰 아파트도, 넓은 공원도, 넓고 반듯한 길도 모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성냥갑처럼 보인다는 걸요.

또 저 아래에는 내가 날마다 누군가와 앞다투며 아옹다옹 살아왔고 조금도 뒤돌아보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것을….

누군가를 이겨야 내가 살고, 누군가를 짓밟거나 딛고 일어서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 그러다 보니, 늘 무언가에 쫓기듯 발버둥치며 살아야 하고, 하나라도 더 가지려 쌓으려고만 하는 삶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지요. 산 아래를 내려다 보면, 이렇게 내 욕심을 채우며 살았던 걸 뉘우치고 되돌아보게 된답니다.
  
내가 살던 마을도, 한낱 작은 성냥갑처럼 작게 보여요. 작은 점들이 모여 아옹다옹 앞다투며 살고 있지요. 자기를 비우고 참된 것들로 살찌우면 좋을 텐데….
▲ 산위에 올라 보면 내가 살던 마을도, 한낱 작은 성냥갑처럼 작게 보여요. 작은 점들이 모여 아옹다옹 앞다투며 살고 있지요. 자기를 비우고 참된 것들로 살찌우면 좋을 텐데….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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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산 사이

아옹다옹
내 것 네 것, 선 그어
점 찍어놓고 욕심을 쌓는다.

허기진 갈증,
헛된 욕심으로 채우니
언제나 목이 마를 뿐
해갈은 없다.

산에 올라 보라!
정상에 서서
너의 장막을 내려다보라!
오직
산과 산 사이,
골짜기 안에서
작은 점들이 모여
아귀다툼 하고 살았으니

이젠,
거두어라.
비워내고 만족하며
참된 점을 살찌우라!


시/손현희

이젠 산에도 흙길이 사라지고 있어요

칠곡군 송정휴양림 들머리인데요. 지난봄만 해도 이 길이 시멘트 길이었어요. 어느새 아스팔트로 새길이 깔렸더군요. 이러다가 흙길은 이제 보기도 어려울 듯해요.
▲ 아스팔트로 깔린 길 칠곡군 송정휴양림 들머리인데요. 지난봄만 해도 이 길이 시멘트 길이었어요. 어느새 아스팔트로 새길이 깔렸더군요. 이러다가 흙길은 이제 보기도 어려울 듯해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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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자주 다니면서 한 가지,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스님 말씀대로 흙길이 시멘트 길로, 또 아스팔트로, 더 나아가 산을 뚫어 놓을 테니, 사람 편하자고 흙길은 자꾸만 사라져가니 매우 안타까워요.
▲ 충남 서산 보원사 정경 스님 스님 말씀대로 흙길이 시멘트 길로, 또 아스팔트로, 더 나아가 산을 뚫어 놓을 테니, 사람 편하자고 흙길은 자꾸만 사라져가니 매우 안타까워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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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를 만들 때에도 흙길로 두면 좋을 텐데, 시멘트 길로 바뀌고 또 그러다가 아스팔트를 깔고 더 나아가 산을 뚫어 놓을 테니까 차츰 흙길이 없어져요. 그리고 사람 편하자고 주변 환경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그런 길이 되어갑니다."

지난 여름, 휴가를 얻어 충남 서산 보원사에 들렀을 때, 내가 가야산 임도가 참 좋더라고 얘기했더니, 정경 스님이 들려줬던 이야기입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산길도 이젠 차츰 흙길이 사라지고 있답니다. 그래서 매우 안타깝지요. 그나마 산에서는 흙을 밟을 수 있었는데, 시멘트가 깔리고, 그러다가 다시 아스팔트가 깔리고, 또다시 큰길을 낸다고 산을 깎고 있습니다. 아스팔트가 깔린다는 건, 아마 틀림없이 이 길로 차가 다니겠다는 얘기겠지요?

안타까운 마음 가득하지만 나라님들이 백성들 편하자고 한다는 일인데, 어쩔 도리가 없네요. 산짐승이나 또 산에서 숨 쉬고 맑은 숨을 내뿜으며 살아가는 나무들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칠곡군 328고지 임도에서 낙동강 쪽을 바라보면, 멀리 금오산이 보여요. 이곳에선 금오산 모양이 부처님 얼굴을 닮았다고 해요.
▲ 칠곡군에서 바라보는 구미 금오산 칠곡군 328고지 임도에서 낙동강 쪽을 바라보면, 멀리 금오산이 보여요. 이곳에선 금오산 모양이 부처님 얼굴을 닮았다고 해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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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소중한 건, 그 산을 찾아가는 사람한테는 정말 곧고 반듯한 시멘트나 아스팔트가 좋은 길인지…. 쉬는 날이면 어김없이 산에 올라간다는 내 동무는 온종일 산에 다니다 보면, 흙길이 가장 편하고 좋대요. 시멘트 길은 딱딱해서 발이 아프고 훨씬 빨리 지친다고 하더군요. 말할 것도 없이 자전거를 타는 우리도 흙길이 훨씬 더 편하고 좋답니다. 무엇보다 이 산길마저도 차들이 다니고, 맑은 공기를 오염시키는 건 정말 안 될 일이에요.

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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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현희


태그:#산, #산길, #흙길, #정경스님, #가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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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자전거는 자전車다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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