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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에서 모든 인민이 잘 사는 사회의 건설은 가능할까. 우룸치에서는 민족단결과 조화사회 건설을 강조하는 선전판을 흔히 볼 수 있다.
 신장에서 모든 인민이 잘 사는 사회의 건설은 가능할까. 우룸치에서는 민족단결과 조화사회 건설을 강조하는 선전판을 흔히 볼 수 있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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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각 지방 성시의 수도(省都)들은 역사가 깊다. 북으로는 14개의 고대 왕국이 흥망성쇠를 거듭한 산시(陝西)성의 수도 시안(西安)부터, 남으로는 한나라 때부터 외국과의 무역항으로 이름을 떨친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까지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신장위구르(新疆維吾爾)자치구의 수도인 우룸치(烏魯木齊)는 다른 곳과 달리 젊은 도시다. 우룸치는 1759년 신장을 손아귀에 넣은 청나라 군대가 '디화'(迪化)라는 중국 양식의 성을 처음 축조하면서 건설됐다.

우룸치는 몽골어로 '좋은 목초지'란 뜻이다. 톈산(天山)산맥의 북쪽 기슭, 준가리아 분지의 서단 초원지대에 위치한 우룸치는 해발 915m의 고지대 도시다. 7세기 당나라가 중국 왕조로는 처음으로 톈산산맥 일대를 지배했지만, 당시 설치한 북정도호부는 우룸치에서 130㎞ 떨어진 곳이었다.

19세기 이전까지 주변 투르판(吐魯蕃)보다 더 작고 낙후한 도시였던 우룸치. 오늘날 중국 서북지방의 중심도시로, 중앙아시아 무역의 메카로 발돋움하는 우룸치 발전의 역사는 중국이 신장을 지배한 역사와 연관이 깊다.

우룸치 국제바자르 상가의 한 위구르인 상점. 지난 5년 사이 신장을 찾는 외지 관광객과 외국인은 2배를 훨씬 넘어섰다.
 우룸치 국제바자르 상가의 한 위구르인 상점. 지난 5년 사이 신장을 찾는 외지 관광객과 외국인은 2배를 훨씬 넘어섰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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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거리에서 위구르어로 된 신문을 파는 한 위구르 청년. 위구르어로 된 각종 출판물은 위구르인들의 민족 정체성을 지켜주고 있다.
 민족거리에서 위구르어로 된 신문을 파는 한 위구르 청년. 위구르어로 된 각종 출판물은 위구르인들의 민족 정체성을 지켜주고 있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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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신장 지배와 함께 발전한 도시, 우룸치

18세기 중엽 준가리아 일대의 서몽골 제국을 무너뜨린 청나라는 그 여세를 몰아 톈산산맥 남쪽으로 진격했다. 청나라는 단숨에 몽골인과 위구르인의 연합정권인 카슈가르(喀什) 칸국을 병합하고, 우룸치에 안서제독부를 두어 신장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청나라의 신장 통치는 혹독했다. 가혹한 조세 수탈에 더해, 14~16세기 동안 신장의 전체 민족들에게 받아들여져 확고히 뿌리를 내린 이슬람교를 철저히 탄압했다. 청의 신장 지배 직후부터 간헐적으로 지하드(성전)를 벌인 위구르인들은 19세기 들어 본격적인 반청 투쟁에 나섰다.

42차례에 걸친 격렬한 투쟁 끝에 1864년 위구르인들은 청나라 세력을 몰아내고 동투르키스탄 왕국을 건설했다. 당시 위구르인들의 왕국은 러시아, 영국, 오스만투르크 등 주변 강대국으로부터 국가 인정까지 받은 당당한 독립 국가였다. 그러나 1876년 태평천국을 압살한 좌종당은 군대를 이끌고 신장을 침공, 동투르키스탄 왕국을 멸망시켰다.

1884년 청나라는 '새로이 넓힌 영토'라는 뜻의 신장성을 설치, 신장을 중국영토화 했다. 그로부터 신장의 심장지가 된 우룸치는 톈산산맥 교통로의 관문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20세기 전반 국민당 정권 시기 디화현이라 불리기도 했던 우룸치는 1955년 지금의 신장위구르자치구가 성립되면서 본래 지명으로 복원됐다.

우룸치의 유일한 이슬람교 경전학교. 최근 중국 정부는 이슬람권 국가와의 관계증진을 위해 신장 무슬림의 이슬람교 연구 활동을 눈감아주고 있다.
 우룸치의 유일한 이슬람교 경전학교. 최근 중국 정부는 이슬람권 국가와의 관계증진을 위해 신장 무슬림의 이슬람교 연구 활동을 눈감아주고 있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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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민족에서 외국인들까지... 인종 전시장 방불

1955년 준가리아 북부 커라마이(克拉瑪依)에서 대규모 유전이 발견되면서 우룸치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1958~59년부터 생산에 들어간 석유 외에 우룸치 부근과 톈산산맥 기슭에 석탄이 광범위하게 매장된 것으로 확인되자, 중국 정부는 우룸치에 대한 대규모의 투자에 나섰다.

화력발전소부터 제철소, 제강 공장, 농기계 공장, 시멘트 공장, 화학비료 공장, 정유 공장, 면방직 공장까지…. 하루가 다르게 들어서는 산업시설과 함께 우룸치는 사람들이 들끓는 대도시로 변모해갔다. 특히 1962년 간쑤(甘肅)성 란저우(蘭州)와 우룸치를 잇는 란신(蘭新)철도의 개통은 우룸치의 발전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사통팔달로 뚫린 교통로를 통해 사람들이 밀려 들어와서 오늘날 우룸치는 인종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거리에는 한족부터 위구르·카자흐·타지크·몽골·회족 등 각기 다른 피부색과 옷 모양을 한 여러 민족이 활보하며 살아간다. 1906년 3만9000명에 불과했던 우룸치 인구는 2005년 현재 208만 명으로 53배나 늘어났다.

우룸치에는 한족과 소수민족만 있는 것이 아니다. 러시아·카자흐스탄·키르키스스탄·파키스탄 등 신장 인접 국가 상인들부터 멀리 한국·일본·미국·유럽에서 온 사업가들로 공항과 기차역, 시외버스터미널은 항상 북적댄다. 신장을 찾은 외국인 수가 2000년 758만 명에서 2006년 1670만 명으로 2.2배나 증가한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우룸치 대외경제무역상담회장에 전시되어 있는 굴삭기. 중앙아시아 국가에서 온 상인들을 위해 러시아어와 카자흐어로 판촉물과 설명서를 비치하고 있었다.
 우룸치 대외경제무역상담회장에 전시되어 있는 굴삭기. 중앙아시아 국가에서 온 상인들을 위해 러시아어와 카자흐어로 판촉물과 설명서를 비치하고 있었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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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의 화폐를 즉시 환전해주는 암달러상. 볜장시장은 중국에서 암달러상의 활동이 가장 많은 곳이다.
 각국의 화폐를 즉시 환전해주는 암달러상. 볜장시장은 중국에서 암달러상의 활동이 가장 많은 곳이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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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의 꿈 좇아 우룸치 찾는 중앙아시아 상인들

우룸치가 21세기 국제무역 실크로드의 중심지로 각광받는 것은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우룸치 남쪽에 위치한 볜장(邊疆)시장은 신장 최대의 국제도매시장이다. 볜장시장은 중국에서 암달러상이 가장 많이 활동하는 곳이기도 하다. 신장 각지는 물론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온 상인들이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자국 화폐를 중국 돈으로 환전하기 때문.

볜장시장에는 오피스텔 형태의 기다란 건물에 가게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신발, 여성용 의류부터 핸드폰, 전자제품까지…. 볜장시장에서 외국 상인들에게 팔린 제품은 바로 세관통관 절차를 거쳐 우룸치발 유라시아 국제열차에 실려 국경을 넘어간다.

카자흐스탄에서 온 라함(34, 가명 )도 마찬가지다. 중국산 브랜드의 핸드폰을 대량 구매하여 자국으로 가져가 되파는 그는 "중국 제품은 가격 경쟁력이 세계 최고라서 카자흐스탄에서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라함은 "카자흐스탄도 석유 개발로 인해 경제가 발전하면서 중산층의 구매력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면서 "외국산 제품을 선호하지만 아직 넉넉지 않은 소비자에게 싼 가격과 쓸 만한 품질의 중국산은 딱 알맞은 제품"이라고 말했다.

대외경제무역상담회장에서 만난 카자흐스탄 상인(28)도 "건설 경기가 일대 붐을 일으키면서 중국제품의 인기가 아주 높다"고 말했다. 중국산 굴삭기를 구매하려는 그는 "우룸치는 수출입 절차가 간단하고 타지로 나가는 교통시설도 잘 되어 있다"면서 "카자흐어에 능숙한 사람도 많아서 사업하기 편하다"고 말했다.

2005년도 신장자치구의 국가별 수출비중. 신장과 카자흐스탄의 무역거래가 빈번함을 알 수 있다.
 2005년도 신장자치구의 국가별 수출비중. 신장과 카자흐스탄의 무역거래가 빈번함을 알 수 있다.
ⓒ 한국무역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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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룸치에는 중국 내륙의 낙후된 여느 도시처럼 구두닦이의 숫자가 유난히 많다. 위구르 젊은이와 청소년은 좋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단순 노동직에 몰리고 있다.
 우룸치에는 중국 내륙의 낙후된 여느 도시처럼 구두닦이의 숫자가 유난히 많다. 위구르 젊은이와 청소년은 좋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단순 노동직에 몰리고 있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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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못하는 위구르 젊은이들, 일자리 찾아 고향 떠나

무궁무진한 신장의 지하자원도 우룸치의 발전을 촉진한다. 중국 내 171종 광물자원 중 신장에만 138개가 묻혀있다. 그 중 석유는 210억t, 천연가스는 11조㎥, 석탄은 2조2000억t으로, 모두 중국 최대의 매장량을 자랑한다. 신장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경제가 발전한 동부와 남부 지역으로 보내는 서기동수(西氣東輸) 프로젝트의 시발도시가 바로 우룸치다.

금세기 들어 우룸치는 연평균 10%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구가하지만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소수민족인 위구르인들은 일자리 찾기가 쉽지 않다. 신장대학 4학년생인 아무라함(가명, 22)은 "신장 최고의 대학을 나와도 위구르인이 좋은 직장을 얻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라고 푸념했다. 그는 "중국어가 서툴고 외국어 구사력이 떨어지는 위구르인이 웬만한 중견기업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졸업 후 중앙아시아 국가로 가서 외국어를 배운 뒤 무역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신장대학의 한 교수는  "일부 학생들은 눈이 높아 문제"라면서도 "언어적인 장벽과 중국기업의 보이지 않은 차별 때문에 한족 학생들에 비해 위구르인들의 취업이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번듯한 직장에 취직이 안 되자 타지로 나가거나 아예 외국으로 떠나려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고 걱정했다.

이에 대해 김한성(가명)씨는 "중국과 카자흐스탄의 경제교류가 밀접해지면서 중국정부나 기업이 카자흐족을 우대하고 있다"면서 "그로 인한 위구르인의 상대적 박탈감이 늘고 소수민족 간의 미묘한 알력도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경제발전에서 소외된 위구르 젊은이들의 불만이 급증하고 있다"면서 "성장의 파이를 한족들이 독점하는 이상 위구르인들이 중국 정부에 품는 반감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위구르인 전용식당에서 춤을 추는 위구르 젊은이들. 우룸치에서는 한족과 위구르인의 활동공간이 확연히 나뉘어 있다.
 한 위구르인 전용식당에서 춤을 추는 위구르 젊은이들. 우룸치에서는 한족과 위구르인의 활동공간이 확연히 나뉘어 있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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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기사 내 대부분 인명과 지명은 위구르어 현지 발음대로 적었습니다.



태그:#우룸치, #위구르, #신장, #서기동수, #카자흐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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