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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 우리동네 경노잔치 큰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 김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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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경노잔치는 올해도 북적입니다. 다양한 출장뷔페 음식들이 깔끔하고 맛있습니다. 이웃 어르신이 불고기가 더 먹고 싶다고 해서 주방에 가서 한 접시 받아들고 테이블 사이로 들어서는데 어르신이 종이컵에 소주를 가득 따르고 있습니다.

나는 말없이 불고기 접시를 이웃 어르신 앞에 놓고 돌아섰습니다. 어르신들 거의가 맥주나 소주를 종이컵에 따라 마시고 있고 설렁탕과 흰쌀밥, 불고기, 생선전, 잡채, 녹두묵무침, 느타리버섯볶음, 부추전, 인절미, 백설기 등등 안주거리도 많고 풍부해서 소주 한 컵이든 맥주 한 컵이든 괜찮을 듯 싶었습니다. 

“화장실서 울어 봤어?”

돌아보니 이웃 어르신 눈에 물기가 어렸습니다. 내게 한 말이 아니라 그 옆에 미색 윗옷을 입은 어르신에게 하는 말입니다. 나는 무슨 일로 그러는지 짐작이 갑니다.

이웃 어르신의 아들은 작년 여름에 이혼했습니다. 이혼한 아들이 어린 남매를 데리고 남편과 단출하게 살고 있는 어르신 집에 들어와 살고 있습니다. 그런 아들의 모습은 어르신 가슴에 대못인 것입니다.

마침 어르신 맞은편에 앉은 친구가 나를 보고는 ‘이제 봉사 그만하구 뭐라도 먹어. 우리도 노인이라구’라면서 옆에 빈 자리를 가리킵니다. 나는 식혜 한 컵을 따라서 들고 인절미를 집어 먹습니다.

어르신들이 즐거워하였습니다
▲ 흥겨운 민요를 부릅니다 어르신들이 즐거워하였습니다
ⓒ 김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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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오래 건강하세요
▲ 91세 어르신이 노래를 부릅니다 오래 오래 건강하세요
ⓒ 김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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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쪽에서는 한복을 곱게 입은 여자들이 흥이 철철 넘치는 민요를 부르고 있습니다. 어르신들은 음식을 먹으면서 친숙한 그 노래들을 따라 부르기도 하고 오랜만에 만난 얼굴들과 웃음꽃들을 나누는 등 사방이 온통 즐거운 큰 잔치 분위기입니다. 우리 테이블만 분위기가 조금 어둡습니다.

“난 새색시 적에 울었어, 뒷간에서. 시어머니 잔소리가 어지간했어야 말이지.”
“요샌 아들이 허겁지겁 퇴근해서 애들 숙제 봐주는 것만 봐두 눈물이 나.”

“그래서 화장실 가서 울었어?”
“그럼 아들 보는 데서 울어? 노망 든 줄 알게.” 

친구가 조그맣게 내게 말했습니다.

“나두 화장실서 운 적 있어. 큰애가 대학에 떨어졌을 때. 근데 그건 아무것두 아냐. 남편의 추석 보너스가 50%만 입금 되었을 때, 그땐 배반감에 죽고 싶었어.”
“그 돈 뭐했대?”
“용돈이 모자라 찔끔찔끔 꿔 쓴 돈을 갚았다는 거야. 말 안 되지. 분하고 억울하고 이혼하구 싶었지.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배반감에 아주 꼴도 보기 싫어.”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10년 전인 그때만 해도 친구는 시어머니와 같이 살고 있었습니다. 시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사는 터라 친구는 성질대로 크게 싸우지도 못하고 훌쩍 집을 나가지도 못하고 화장실에 가서 분통을 삭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수돗물을 세게 틀어 놓고 머리를 감는 척, 샤워를 하는 척 하면서 눈물이 안 나올 때까지 울었는데도 시원치가 않더라는 것입니다.

“보복 안 했어?” 
“했지. 부부 모임에서 유럽여행 갈 때 나 혼자 껴서 갔다 왔지. 비용이 보너스 50%보다 더 많이 들었어. 그래두 응어리가 안 풀려.”

그러면서 친구는 환한 얼굴로 소주를 따라 어르신들에게 권하기도 하고 자신도 마십니다. 불고기 접시를 어르신들 앞에 바짝 가져다 놓기도 합니다. 불고기가 인기입니다. 얼마든지 더 가져다가 먹을 수 있습니다.

친구가 내 앞에 소주컵을 놓았습니다. 컵을 비우면서 보니까 친구는 또 한 컵을 따라 마시고 있습니다. 10년이 흘렀지만 그때 그 분함과 억울함이 가슴 속에서 송곳같이 살아났나 봅니다.

나는 화장실에서 가족들 몰래 운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조용한 밤에 혼자서 거실에 앉아 장수 프로인 TV 가요무대를 보다가 가슴이 뭉클했던 적은 많습니다.

흘러간 노래가 무심한 내 가슴을 툭 칠 때, 나는 눈이 시어지고는 했습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추억 속으로 걸어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가요무대 시간이 끝날때까지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했습니다.

“재혼 시켜야겄는데 애들 때문에 쉽지가 않아.”

이웃 어르신이 어두운 눈으로 말합니다. 그러자 중매를 해서 성사 시킨 경험이 몇 차례 있는 친구가 진지한 얼굴로 장담을 하고 나왔습니다.

“걱정 마세요. 아드님 심성이 착하니까 좋은 사람 만날 거예요. 제가 알아볼게요. 재혼해
서 잘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다구요.”

이웃 어르신이 반짝 눈에 빛을 담았습니다. 그러더니 얼른 주름진 손으로 생선전 중에서 제일 큰 것을 집어 친구에게 내밀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습니다.

“요거 뇌물야. 제발 알아봐 줘.”
“그럼요. 근데 뇌물이 너무 적네요.”

그러자 옆에 어르신들이 모두 웃음을 물고 너도 나도 이것 저것들을 집어다가 친구 코 앞에 들이댑니다. 친구는 장난치는 아이같이 아~ 소리를 내며 입을 크게 벌리더니 일부러 눈까지 껌벅거리며 꾸역 꾸역 받아 먹습니다. 어르신들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웃음 소리에 옆 테이블 어르신들이 부러운 눈으로 우리 쪽을 바라 봅니다. 조금 전만 해도 우리 테이블 분위기는 걱정스러울 정도로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 테이블이 제일 즐겁고 화기애애 합니다.

나는 생선전이 담겼던 빈 접시를 챙겨들고 슬며시 일어났습니다. 가득 담아와야겠습니다. 어르신들과 같이 있으면 마음이 따듯해집니다. 순수한 정감이 소리없이 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어르신들을 좋아합니다.


태그:#경노잔치 , #어르신 , #흘러간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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