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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언제 오스트리아 국경을 통과해서 독일로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분명히 국경을 통과했지만, 국경 관련 아무 표식도 없고 아무런 절차도 없으니 정확히 언제 독일 땅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버스는 독일 알프스 남동쪽 500~1,100m 높이에 달하는 고지의 계곡을 따라 계속 이동하고 있었다. 오스트리아와 독일 국경에는 알프스 산맥의 지맥들이 계속 버스를 따라오고 있었다.

 

유럽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독일의 베르체스가덴(Berchtesgaden)이 어떤 곳인지 전혀 몰랐고, 어떠한 여행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는 내가 묵던 잘츠부르크의 호텔에서 우연히 베르체스가덴 여행을 광고하는 리플릿을 집어 들었다. 그 리플릿에는 독일의 알프스가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자유여행을 한다는 것의 장점은 내가 가보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선택한다는 것. 나는 주저 없이 잘츠부르크 여행 일정을 수정하여 인근 독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자동차 외에는 중세시대와 다를 바 없는 곳

 

베르체스가덴은 오스트리아 국경에서 매우 가까운 독일 도시다. 버스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남쪽으로 30km를 달리자 베르체스가덴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독일 바바리아(Bavaria)주의 남동부에 자리 잡은 베르체스가덴은 오스트리아 국경에 3면이 둘러싸인 독일의 작은 도시다.

 

베르체스가덴에 들어서자, 독일 알프스의 높은 산들에 둘러싸인 작고 그림 같은 도시의 거리가 펼쳐지고 있었다. 명성이 널리 알려져 있을 듯한 식당 앞에는 독일의 단체여행자들이 몰려있다.

 

베르체스가덴을 포함한 인근 지역은 1978년에 베르체스가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데, 내가 버스를 타고 지나는 이 도시는 베르체스가덴 국립공원의 북쪽에 자리 잡은 베르체스가덴 시이다.

 

1810년부터 독일 바바리아 왕조의 지배를 받았던 이 도시는 바바리아 왕족들에게 인기 있는 명승지였다. 이 도시에 사냥용 별장을 마련해 두었던 왕족들은 이 주변에서 사냥을 즐기고, 인접한 쾨니그제(Kőnigssee) 빙하 호수의 풍광을 만끽하였다고 한다.

 

버스가 시내 거리를 지나칠 때마다 핑크빛 건물 사이로 독일의 명산인 왓츠만(Watzmann, 2,713m)과 켈스타인(Kehlstein, 1,835m)의 가파른 봉우리들이 시야에 들어왔다가 사라지고는 한다. 독일의 신비한 전설을 간직한 왓츠만 산은 독일에서 세 번째로 높은 봉우리로 암벽 등반 마니아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는 곳이다.

 

나는 가족과 함께 버스에서 내려, 시내 중심부로 이어지는 횡단보도를 건넜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살이 상가의 벽면을 따스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지대가 높은 곳인 데다가 점심시간이 지나서, 건물의 긴 그림자가 인도를 덮고 있었다. 우리는 식사를 미루고 우선 이 역사적인 도시의 거리와 상가를 둘러보기로 했다.

 

이곳에는 유럽 여행지에서 흔히 마주치는 한국인도 없고, 동양인의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다. 내 여행 가방에는 잘 읽지도 못하는 독일어로 된 이 도시의 간단한 리플릿 하나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독일 남부의 이 바바리아에서 오랜만에 진짜 유럽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만끽했다. 시내를 굴러다니는 자동차 외에는 중세시대와 다를 바 없는 이 도시의 거리를 보면서, 나는 오늘 오후 베르체스가덴 여행을 결정한 나의 선택에 흡족해 하고 있었다.

 

 나는 석재로 넓게 깔린 인도를 걸으면서 베르체스가덴 도시의 예쁜 가게들을 구경하였다. 한 도시의 특색 있는 가게들을 열심히 살펴보는 것은 미술을 공부했던 아내와 함께 다니는 여행에서 터득한 또 하나의 기쁨이다.

 

유럽의 여러 나라가 탐을 내던 도시

 

이곳의 가게들에서 눈에 띄는 것은 베르체스가덴의 역사를 고스란히 알려주는 암염과 광물들이다. 나무 상자에 가득 담겨진 주먹만한 하얀 암염들이 가게 밖에 전시되어 팔리고 있었다. 이 암염들은 이 도시가 발생하게 된 근원이 되는 자원들이다. 1102년에 베르체스가덴의 지명이 독일의 역사 기록에 최초로 나오는데, 당시 베르체스가덴이 풍부한 소금 퇴적물로 유명하다고 언급되어 있다.

 

나는 암염이 신기하기는 했지만, 구매해서 들고 다니기에는 암염의 부피가 너무 컸다. 우리는 암염이 녹아 있고 부피가 더 작은 암염 제품을 사기로 했다.

 

암염 제품들은 제품명과 사용설명서가 모두 독일어로 되어 있었다. 나는 제품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그 제품의 용도도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암염으로 만든 제품 몇 가지를 샀다. 소비자들이 꼼꼼한 선진국 독일에서 사는 제품에 품질 이상이 있거나, 비싸게 바가지를 쓰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그 암염 제품이 로션과 화장품임이 분명한 것 같다고 했다.

 

베르체스가덴의 부유함은 이 암염에서 생산되는 소금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다. 이 도시의 소금광산은 나폴레옹 전쟁 당시에 몇 차례나 지배자가 바뀔 정도로 유럽의 여러 나라가 탐을 내던 곳이었다. 당시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가 이 베르체스가덴을 지배하기도 하였고,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이 잠시 동안 이 도시를 점령하기도 했다.

 

나는 암염 제품을 눈여겨보다가 옆 가게에도 들어가 보았다. 암염 제품 가게 옆에는 독일의 바바리안 알프스(Bavarian Alps)에서 생산되는 광석들이 작고 예쁘게 가공되어 팔리고 있었다. 이 작은 광석들은 작은 자갈돌 모양으로 가공되어 있는데, 돌의 모양과 색깔이 각양각색에다가 매우 이국적이었다.

 

독특한 가게들과 노천식당이 아름다운 인구 9천명의 이 도시는 매우 조용했고, 스위스나 오스트리아와는 또 다른 알프스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독일 바바리아의 주도인 뮌헨에서도 남동쪽으로 180km나 되는 곳에 있는 도시이니, 남부독일의 다른 도시들과도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나는 발걸음 닿는 대로 걸었다. 예쁜 분수대가 나오면, 그 앞에 잠깐 앉아서 오후의 따스한 햇살을 만끽했다. 베르체스가덴의 분수대에는 독특한 동상이 서 있었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나온 등신대의 한 여인이 물 바구니를 들고 있는데, 그 바구니에서 분수대의 물이 계속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위인이나 유명 신화에서 동상의 소재를 구하지 않고 평범한 한 여인을 소재로 삼고 있는 분수대가 독일 어느 도시와도 구분되는 듯 했다.

 

나는 노천 좌석이 참으로 편안해 보이는 한 식당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식사는 잘츠부르크에 돌아가서 하기로 하고, 나, 아내, 딸이 각각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을 주문하였다.

 

나는 독일 알프스 낙농제품의 맛을 진하게 느낄 수 있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주문하였다. 아이스크림에서는 담백하고 진한 우유의 맛이 났다.

 

  우리는 오스트리아로 돌아갈 버스 시간을 기다리면서 모처럼 한가로운 여유 시간을 가졌다. 햇살의 그림자는 건물을 담아 점점 더 길어지고 있었다.

 

독일 내에서도 사람이 붐비지 않고 자연친화적인 관광지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찾는다는 베르체스가덴. 시내는 평화롭고 고요했다. 나는 독일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의 예술가들이 왜 이 도시를 방문하는지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었다.

 

 한국에 돌아온 후, 아내는 암염으로 만든 로션 때문에 고생을 조금 했다. 로션을 팔에 발랐는데, 팔이 계속 벌겋게 부어올랐던 것이다.

 

이 암염 로션이 피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우리는 며칠 후 놀라운 발견을 하였다. 암염 로션을 바른 팔에 물이 닿으니 거품이 일었던 것이다. 이 암염 제품은 로션이 아니라 액체비누였던 것이다.

 

말이 잘 통하지 않더라도 암염 제품 용도에 대해 궁금한 것은 확실히 물어 보고 확인해야 하는데, 그렇지 아니했던 것이다. 내 가족은 이 암염 비누를 보면서 그냥 웃어버리고 말았다. 아무튼 자연산인 이 베르체스가덴 암염 제품의 효능은 만족스러울 정도로 훌륭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7월말 여행의 기록입니다.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독일, #베르체스가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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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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