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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긴 유럽의 해가 지고 조금씩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나의 가족은 독일 뮌헨 마리엔 광장(Marien platz)에서 거리 공연을 보며 휴식을 취하다가, 뮌헨 신시청사에 자리 잡은 라츠켈러(Ratskeller)라는 식당을 찾아갔다. 마리엔 광장이 뮌헨 신시청사 앞 광장이므로 라츠켈러는 바로 눈에 띄었다.

독일 내에서 규모가 큰 도시의 시청사에는 많은 사람을 수용하는 라츠켈러가 있다. 라츠켈러(Ratskeller)는 시청이라는 뜻의 라츠하우스(Rathaus)와 술 저장고라는 뜻의 켈러(Keller)라는 단어가 합쳐진 합성어인데, 시청사에 부속된 식당을 말한다. 독일 어느 도시의 라츠켈러라도 여행자의 입맛을 만족시켜 줄 정도로 라츠켈러는 독일 음식을 즐기려는 여행자들에게 인기 있는 식당이다.

뮌헨의 라츠켈러는 독일 라츠켈러 중에서도 명성이 가장 높은 곳이다. 이 식당은 오랜 전통의 맛 좋은 식당임에도 가격이 저렴해서, 여행자들뿐만 아니라 뮌헨 현지인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뮌헨에서 정통 독일 요리를 즐기고 싶다면 꼭 들러볼 만한 곳이다.

라츠켈러 입구는 시청 건물 사방으로 나 있는데, 마리엔 광장에 있던 나의 가족은 시청 남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이 식당은 신시청사 지하에 자리한 큰 식당이라고 들었는데, 시청사 건물로 사방이 둘러싸인 1층 안마당도 라츠켈러였다. 우리는 굳이 지하로 내려가지 않고, 안내원의 지시에 따라 시원한 바람이 부는 야외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저녁 시간에는 예약된 테이블이 많다고 하는데, 다행히 안마당 안쪽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우리가 이 식당에 들어온 이유는 정통 독일 식사 중에서도 뮌헨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 바바리안(Barbarian) 요리를 맛보기 위함이었다. 나는 이 식당에 들어서면서부터 정통 요리를 위해 적절한 선택을 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행히 이 식당에서는 친절하게도 영어 메뉴판이 제공되고 있었다. 종업원들의 서비스는 아주 절도있게 친절했고, 식당 분위기도 최고였다.

여인을 대동한 남자에게만 파는데 기꺼이 샀다.
▲ 뮌헨 신시청사 식당의 꽃 파는 아가씨. 여인을 대동한 남자에게만 파는데 기꺼이 샀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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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를 선택한 후에 꽃바구니를 든 젊은 독일여성이 찾아왔다. 이 아가씨는 나에게 대뜸,

"사랑하는 연인에게 사랑의 꽃을 선물하시지요!"

분위기 부드러운 정통 식당에서 수많은 뮌헨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상황이다. 이곳 분위기는, 이 꽃을 사지 않으면 마치 사랑하는 여인에게 꽃 한바구니조차 사주지 않는 무능한 좀생원이라고 느껴질 수밖에 없을 정도로 낭만적이다.

나는 얄밉지 않게 여러 색의 꽃바구니를 내미는 이 아가씨를 한번 쳐다보았다. 그 아가씨가 내민 꽃은 사랑하는 여인에게 갈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바가지를 쓰면 안 된다는 생각에 우선 이 꽃의 가격을 확인했다.

"여보! 이 보라색 꽃, 당신을 위해!"
"됐어, 괜찮아."

하지만 나는 이제 십여년이 된 결혼생활을 통해 아내가 꽃을 보면 좋아하고, 아내의 '괜찮다'는 말을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는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꽃을 사서 그녀 가슴에 안겼다. 딸 녀석이 옆에서 재미있다는 듯이 웃고 있다.

나는 이 식당에서 가장 유명한 돼지 정강이 요리인 슈바이네 학센을 주문하려다가, 독일 소시지를 먹고 싶다는 아내의 요구에 주문 요리를 바꾸었다. 독일산 소시지와 돼지고기를 함께 먹을 수 있는 요리를 주문하고, 닭고기 요리와 새우샐러드를 주문하였다.

부드러운 돼지고기와 쫄깃한 소시지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
▲ 소시지와 돼지고기 요리. 부드러운 돼지고기와 쫄깃한 소시지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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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주문한 요리 중에서 가장 먼저 나온 것은 삶은 돼지고기와 소시지 요리였다. 푸욱 삶은 돼지 살코기와 함께 바에리스첸 플레이트(Bayerischen Platte)라고 하는 독일 소시지, 그리고 감자와 야채가 함께 나오는 요리였다. 삶은 돼지고기 살은 더 이상 부드러울 수 없었다.

뮌헨의 명물은 역시 송아지 고기로 만든 소시지이다. 소시지를 어떻게 만들면 이런 맛이 나올까 감탄할 정도로 소시지의 맛은 최고였다. 데친 양배추 옆에 놓인 소시지의 가죽을 벗겨 보았다. 노린내가 전혀 나지 않는 이 소시지가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기름에 튀긴 닭고기와 크뇌델, 붉은 양배추는 독일의 전형적인 요리이다.
▲ 뮌헨 닭고기 요리. 기름에 튀긴 닭고기와 크뇌델, 붉은 양배추는 독일의 전형적인 요리이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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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다리 튀김 요리는 딸을 위해 시킨 요리였다. 닭튀김 껍질은 바삭바삭하고, 고기 속은 부드러웠다. 이 닭튀김에 독일의 유명한 크뇌델(Knoedel)이 함께 나왔다. 겉모양이 완전한 감자 모양이라, 감자 맛일 거라고 예상하며 크뇌델을 한입 베어 물었다. 그런데 모양과 그 향만 감자이고, 그 맛은 감자가 아닌 야채의 맛이었다. 크뇌델의 맛은 감자보다 더 심심하고 약간 버터 맛이 났다. 크뇌델은 감자 전분을 모아서 손으로 뭉쳐가며 감자 모양으로 만든 것이다.

나는 이 감자 전분을 나이프로 썰어보았다. 접착력이 강한 전분의 성질 때문에 단 칼에 잘리지 않는다. 뮌헨 지역 뿐 아니라 독일 사람들은 이 크뇌델을 우리가 김치 먹듯이 매 끼니마다 먹는다. 그래서 독일 아저씨들의 불룩한 배를 가리켜 '크뇌델의 무덤'이라고 한다. 감자 전분인 크뇌델을 과잉 섭취하면 비만으로 인해 배가 나오기 때문이다.

이 닭고기 요리와 함께 나오는 야채는 색상이 화려한 붉은 양배추이다. 이 자주색 양배추는 독일에서 고기 요리를 주문하면 항상 따라 나온다. 이 양배추는 우리가 고기를 구워먹을 때 쌈을 싸는 상추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이 양배추를 고기와 함께 먹으면 고기의 기름진 맛을 줄여주고 소화도 촉진된다. 맛은 약간 새콤하면서도 신 맛을 가지고 있다.

쾌적한 식당 분위기에 음식 맛도 감칠맛이 난다. 옆 테이블 요리에서도 감미로운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이곳 음식은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에도 전혀 거부감 없이 딱 맞는다. 독일 요리 3개에 물을 주문해 먹었지만, 음식을 남기지 않는 내가 모두 먹지 못하고 남길 정도로 음식의 양이 많다. 나는 배가 포만한 상태로 늦은 여름날의 추억 속에 있었다.

밤은 깊어간다. 나의 사진기는 빛이 모자람을 액정화면을 통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빛이 부족한 사진은 자꾸 흔들린다. 밤이 깊어가면서 노란 나트륨 조명등이 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했다.

뮌헨 신시청사의 식당으로 선택이 후회되지 않는 훌륭한 식당이다.
▲ 라츠켈러. 뮌헨 신시청사의 식당으로 선택이 후회되지 않는 훌륭한 식당이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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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는 밤의 문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은 나의 일천한 여행 경험 때문이었다. 시간은 지나가고 밤이 깊어가지만 주변에는 맥주와 음식을 즐기는 독일인들로 가득했다. 방금 마신 독일 흑맥주의 알콜 속에서, 뮌헨 시청 안마당이 괜히 흥겨웠다.

덧붙이는 글 | 이 여행기는 2007년 7월의 기록입니다.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독일, #뮌헨, #라츠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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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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