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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열혈독자는 종종 훌륭한 취재원이 되기도 한다.

 

최근 한 독자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는 격한 목소리로 한 경제지의 칼럼을 언급하면서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칼럼도 칼럼이지만 이 독자를 열받게 한 것은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인 듯 했다. 대체 어떤 칼럼이길래 그를 그토록 흥분케 한 것일까? 결국 그 칼럼의 내용이 궁금해 평소 거의 찾지 않던 한 경제지의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이명박 후보, 서울시장 시절 개발정보 흘렸다?

 

문제의 칼럼은 '큰 성공을 거둔 비결(9월 7일자)'이란 제목을 달고 있었으며, 필자는 김세형 <매일경제> 편집국장이었다. 김 국장의 칼럼은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는데, 박 회장이 최근 펴낸 <돈은 아름다운 꽃이다>에 대한 서평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칼럼은 박현주 회장에 대해 "그는 많은 연구를 했고 상상을 했으며 그것을 현실화시켰다"며 "상상력을 현실로 바꿔 자신의 손에 황금으로 바꿔 움켜쥘 수 있게 하는 실천력"을 가진 CEO 중의 한 명으로 높이 평가했다.

 

그리고 칼럼의 끝부분에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느냐의 갈림길은 현실로 구체화하는 방식에 달렸다"며 "큰 부자가 되려면 상상력의 힘을 키우라"고 주문했다.

 

이러한 '성공신화 예찬론'이야 친재벌 성향의 경제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내용이라서 그리 흥분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정작 그 독자를 분노케 한 대목은 다른 데 있었다.

 

칼럼은 박현주 회장과 함께 '상상을 현실로 구체화'한 인사로 이명박 후보를 언급했다. 이 후보가 성장론자이자 개발론자라는 점에서, 경제지가 그에게 우호적인 글을 쓰는 것이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칼럼에는 '깜짝 놀랄 만한 정보'가 언급돼 있다. 이런 것을 '천기누설'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는 서울시장 재직 때 기자들에게 팁(tip)을 하나 주겠다면서 '뚝섬을 잘 봐라'고 힌트를 자주 줬다고 한다. 심지어 세상물정에 어두운 편인 필자도 그런 얘기를 바람결에 들은 적이 있다."

 

한 마디로 이명박 후보가 기자들에게 뚝섬의 '개발정보'를 흘렸다는 얘기다. 그것도 개발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서울시장 시절에 말이다.

 

 

국장의 칼럼 내용 증명하듯 '뚝섬 대해부' 기획기사 내보내

 

여기서 흥분하지 말고 칼럼을 좀더 들여다 보자. 이어 칼럼은 "그러나 그 때까지만 해도 모두 강남제일주의에 빠져 '흥! 좀 웃기는 말씀이네'라고 흘려들은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이 후보가 흘린 "뚝섬을 잘 보라"는 얘기는 정말 따끈따끈한 개발정보였다. 뚝섬에는 조만간 초고층 주상복합단지 등 '강남을 대체할 부촌'이 조성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3.3㎡(1평)당 4000만원을 호가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을 정도다.

 

이는 <매일경제>의 '뚝섬 대해부'라는 기획기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지난 21일 <매일경제>는 김세형 국장의 칼럼 내용을 증명이라도 하듯 '뚝섬 개발'과 관련된 기획기사를 네 꼭지나 내보냈다. 그 기사들의 제목만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뚝섬은 '보물섬'…명품 주거단지로 변신 예고"

"江上江南 …강 위에 자리잡은 또다른 강남"

"氣가 강해 큰 인물 태어날 터"

"초고층 주상복합, 서울의 지존 뚝섬에 선다"

 

현재의 개발계획대로라면 뚝섬은 <매일경제>가 밝힌 것처럼 "강상강남"(강 위에 자리잡은 또다른 강남)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런 점을 미리 염두에 두고 있었던지 김세형 국장은 칼럼에서 "두바이를 일으켜 세운 셰이크 무하마드와 MB(이명박)는 상상력 면에서 닮은 데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이명박 후보를 추겨세웠다.

 

문제는 이 후보가 개발의 인허가권을 쥐고 있던 서울시장 시절 뚝섬의 개발정보를 기자들에게 흘렸다는 점이다. 후보검증 국면에서 터진 차명재산 의혹을 헤아려 보건대, 이 후보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런 개발정보들을 흘렸을지 모른다.   

 

또 우리는 기자들이 개발정보에 아주 민감하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서울시장이 흘린 개발정보라면 당연히 'A급'이다. 기자들은 이 후보가 흘린 이 'A급 개발정보'를 어떤 형태로든 유통시켰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이 개발정보를 바탕으로 뚝섬에 상당한 투기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개발정보를 기자들에게 흘린 이명박 후보를 '상상을 현실로 구체화한 영웅'으로 치켜세운 <매일경제> 편집국장도 낯뜨겁다.

 

앞서 흥분했던 독자는 기자에게 "서울시장이 얘기하는 그런 정보를 누가 흘려 듣겠냐"며 "분명히 그 정보를 들었던 기자들 중에 뚝섬에 투자한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추적취재'를 제안하기도 했다. 

 

"땅의 정의가 어떠해야 하는지 숙고하라"

 

이명박 후보와 그 가족의 '땅 투자 경력'은 검증국면을 통해 어느 정도 드러난 바 있다. 이 후보를 비판하는 진영에서는 "호남을 제외한 전국 곳곳에 어떻게 그렇게 땅, 땅, 땅이 많으냐"고 꼬집기도 했다.

 

이 후보가 서울시장 시절 기자들에게 뚝섬의 개발정보를 흘린 것도 이런 땅투자 경력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그 역시 개발의 최전선에 서 있었던 현대건설 사장·회장 시절 그런 식으로 땅 투기를 직접 했거나 부추겼을지 모를 일이다.

 

'체제내 리버럴리스트'라는 별칭을 가진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은 최근 월간 <헌정>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충고한 바 있다.  

 

"미국의 빌 게이츠는 전세계적으로 최고인 액수를 자선사업에 기부하여 신선한 화제가 되고 감동을 자아냈다. '새로운 자본주의' 운운하며 그의 역량을 빈곤 해결에 쏟겠다고 방향을 잡았다. 이 후보도 연령, 재력, 위치 등 모든 것을 고려할 때 이제 통 크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그러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며 하등 어색할 것이 없다고 본다. 특히 땅, 누구의 말마따마 '그놈의 땅'을 그렇게도 많이 갖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 한국사회에 있어서의 '땅의 정의'가 어떠해야 하는 것인가를 숙고하여 모범을 보일 필요도 있을 줄 안다. '땅의 정의'라 말할 때 땅 과다 소유의 결과적인 대중 수탈구조를 염두에 두고서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태그:#이명박, #매일경제, #김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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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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