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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일흔세 살 할머님이 쓴 생활글을 모은 책입니다.

- 책이름 : 지는 꽃도 아름답다
- 글 : 문영이
- 펴낸곳 : 달팽이(2007.6.5.)
- 책값 : 7000원



 〈1〉 내가 발딛고 있는 삶터


태어나고 자란 인천을, 지난 1995년 4월 5일에 떠났습니다. 그리고 2007년 4월 15일, 열두 해 만인지 열세 해 만인지 돌아왔습니다. ‘텔레비전 소리 시끄러운 집안 분위기’ 탓에 인천 부모님 집에서 더 살기 싫어지기도 했지만, 새로 지은 널따란 아파트 방 한편에서 지내는 일은 꼭 옥살이와 같다고 느꼈습니다.

 

사람 사이에서 살고 싶었고, 이웃과 어깨동무하고 살고 싶었습니다. 아버지는 넓은 집으로 옮겨 가고 싶어하셨지만, 저는 ‘이렇게 넓지 않아도 좋다’고, 마흔여덟 평짜리 새 아파트보다는, 연탄 때는 낡고 조그마한 5층짜리 아파트였어도, 열세 평짜리 헌 아파트가 훨씬 낫다고 느꼈습니다.

 

이곳에서는 옆집과 윗집과 아랫집 모두 사촌과 다름없는 이웃이었고,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가 모두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았고, 동네 아이들은 모두 제 동생이었으며, 동네 형들은 제 친형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 나도 어릴 때는 어른들 새벽잠 없는 내력도 몰랐고, 번개같이 움직이는 칼날 밑에서 실같이 이어져 내리던 실고추 내력도 몰랐다. 그리고 고단한 잠 깨워 이른아침 대참에 찬이슬로 얼굴 씻기시는 어머니 마음은 더더욱 몰랐다 ..  〈13∼14쪽〉


나이 어린 사람한테 열 몇 해는 얼마나 긴 세월일까요. 키가 우쑥우쑥 자라고 몸집이 덩실덩실 커집니다. 나이든 사람한테 열 몇 해는, 늙은 나이에 숟가락 몇 번 더하는 세월일까요.

 

인천을 떠나기 앞서 보았던 그 골목길이 그대로인 곳에서는 ‘그동안 햇볕에 조금 더 바래고 먼지와 차방귀에 조금 더 까매졌을’ 뿐, 이제나 그제나 다름없는 집과 길과 나무를 만납니다. 그동안 좀더 많은 사람과 일을 겪었을 뿐, 이제나 그제나 다름없이 허리 구부정하고 얼굴에 주름살 가득한 어르신들을 골목길에서 만납니다.


.. 그런데 지난해부터 남편이 조청을 못 만들게 한다. “사서 먹는 것보다 돈도 더 들고, 욕보고” 하지만, 내 건강이 예전 같지 않음을 걱정해서란 것을 안다. 슬며시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떡방앗간에 가 보면 설탕가루나 당원 봉지를 툭툭 터서 쌀가루에 섞는 것을 보면서, ‘우리 입맛을 버려 놓는 곳이 바로 이곳이구나’ 생각했다. 우리 집 떡을 할 때는 고명이나 떡가루에 그런 잡스런 것을 못 넣게 지킨다. ‘요즘 사람은 다 단것을 좋아한다’고 떡을 하러 온 사람이나, 방앗간 주인이 말리지만, 나는 그 고집을 꺾지 않는다 ..  〈160쪽〉


문득, 나고 자란 이곳에서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좁고 자그마한 집이기는 해도 마당이나 텃밭 딸린 집에서 오순도순 지내셨다면 당신들께서 인천을 떠나셨을까 싶은 생각(부모님은 인천을 떠나 용인에서 살다가 음성으로 옮기셨습니다). 덧붙여 제가 인천집을 싫어하며 떠났을까 싶은 생각.

 

 마당이나 텃밭 딸린 집이었다면 마땅히 나무 한 그루를 어린나무로 심거나 씨앗으로 심었을 테지요. 그 나무가 여태껏 자랐다면 나즈막한 지붕을 훌쩍 넘어 담벼락 바깥 골목길까지 그늘을 드리우거나 열매 달린 가지를 내어주었겠지요.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저는 저대로 기둥 굵게 자란 나무를 보며 집구석을 애틋하게 돌보았겠지요.

 

 창영동, 금곡동, 송현동, 송림동, 화평동, 만석동, 인현동, 송월동, 전동, 북성동, 송학동, 내동, 용동, 답동, 율목동, 신포동, 신생동, 신흥동, 유동, 항동, 선화동, 숭의동, 도원동, 도화동, 주안동, … 4월부터 다섯 달 동안 두 다리와 자전거로 골목골목 누비고 다니면서 동이름을 하나하나 읊어 봅니다.

 

어머니 손을 붙잡고 신흥동에서 신포동까지 장보러 걸어오던 일, 북성동을 지나 신생동 은행에 들렀던 일, 답동과 율목동을 가로지르는 싸리재를 넘나들던 일, 국민학교가 있던 신흥동 둘레 숭의동과 선화동과 도원동에 사는 동무네 집에 뻔질나게 드나들던 일, 기찻길로 석탄이 들어오면 연탄공장에서 연탄 찍어서 기찻길로 다시 서울 쪽으로 빠져나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일, 기차가 안 다닐 때면 하나부터 천까지 헤아리며 기찻길을 밟고 주안동까지 걸어서 오가던 일을 곰곰이 되짚습니다.

 

신포동 골목길 초중고등학교 다니던 때, 뻔질나게 돌아다녔던 신포동 골목길을, 비맞으면서 걸었습니다.

 재개발과 도심정비사업과 구시가지정화라는 달콤쌉싸름한 이름을 내건 막개발로 사라진 조그맣고 지붕 낮은 한 층짜리 집들을 떠올립니다.

 

아직까지 골목집으로 꿋꿋하게 남아 있으면서 해가 뜨면 빨래나 이불을 내놓아 말리고,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해바라기를 하는 골목길을 생각합니다. 당신들은 예나 이제나 골목길 한쪽에서 일을 합니다. 잠깐잠깐 쉬는 가운데에도 두 손은 재게 놀려 굴이나 조개를 까거나 나물을 다듬어 저잣거리에 내다 팔 준비를 합니다.


.. 나는 무슨 먹을거리든 주된 재료 맛을 살리는 것을 으뜸으로 삼는다. 모든 떡을 소금간만 하듯, 김치도 무배추가 지닌 단맛을 살리려 많은 양념을 넣지 않는다. 올해는 통깨 넣는 것도 그나마 잊어버렸다 ..  〈155쪽〉


 머잖아 재개발로 쓸려나갈 주안동, 수봉공원 옆쪽 구석진 동네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서 감나무를 사진에 담을 때입니다. “거, 뭐하시오?” “네, 감나무가 좋아서 사진으로 담으려고요.” “허, 감나무는 뭐하러 찍나?”

 

 왜 사진 찍느냐고 말을 건 아저씨네 집에서 자라는 감나무도 찍을 걸 그랬나요. 아저씨네 감나무를 사진으로 담았다면, 그 아저씨는 무어라 대꾸를 하셨을까요.

 

 지난 일요일, 송림동 달동네에 있는 꽃집(꽃을 파는 집이 아니라, 꽃을 많이 키우는 집입니다. 꽃그릇 숫자가 쉰은 훌쩍 넘을 듯하고, 온 집이며 마당이며 남새밭으로 가꾸어 놓아서, 꽃집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았습니다)에서 사진 몇 장 찍고 있으니, 집임자 아주머니가 2층 난간에 기댄 채 물끄러미 내려다봅니다. 잘 자란 까마중을 살짝 쓰다듬고 지나갑니다. 까마중을 따먹었다면 아주머니가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나.


.. 어차피 살림은 정성이다. 물을 쓸 때도 무엇을 먼저 씻을까 차례를 잡아서 씻고, 불을 쓸 때도 불을 한 번 지펴 차례를 잡아 잇달아 쓰다가, 시간이 맞지 않을 때만 옆 불구멍을 잠깐 열고 쓰면 좋을 것을 ..  〈148쪽〉


 지난 수요일, 자전거로 광명에서 구로를 지나고 대림동을 지나고 당산동을 지나 신촌까지 달렸습니다. 한참 도림동을 지나갈 무렵에는 일부러 오르락내리락하는 달동네 안쪽 골목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서울 도림동 골목집도 조금 묵은 집마다 크고작은 꽃그릇을 계단이며 난간이며 담벽 위며 조그마한 틈이라도 있으면 한둘이든 몇몇이든 올려놓습니다.

 

좀더 오래 구석구석 돌아보지 못해서 고추 말리는 집까지 보지는 못합니다. 요즈음 인천 동구 골목집들은 고추 말리기가 한창이거든요. 다 말리고 거두어들인 집도 있으나, 웬만한 골목길마다 ‘차 못 다니는 좁은 길’이면, ‘차 뜸한 길’이면 으레 한쪽으로 길게 고추를 펼쳐놓습니다. 비가 오면 비닐이나 천막을 씌워 놓습니다.


.. 옥수수밭을 매고, 나머지 덩굴콩도 심었다. 덩굴콩이란, 빛깔이나 모양이 제비콩 같으면서 동글동글한데, 맛은 그보다 훨씬 좋은 콩이다. 이름을 몰라, 유난히 덩굴져 오르기를 좋아해서 내가 붙인 이름이다..  〈120쪽〉


 어제는 항동에서 집으로 걸어옵니다. 우산이 없어서 택시나 버스를 탈까 싶었지만, 가방에 든 것은 비닐로 꽁꽁 싼 다음 걷기로 합니다. 장대처럼 쏟아지다가 멎고, 가늘게 내리다가 이내 굵어지고, 그러다가 다시 멎는 비.

 

답동성당 옆으로 지나갈 때 뒤따르던 차가 빵빵거립니다. 10초만 기다려 주면 빵빵거리지 않고도 우리 옆으로 스쳐 지나갈 틈이 나오는데. 골목길 한쪽에 함부로 대놓아 길을 좁게 하는 자동차를 보며 빵빵거리지 않는 차들입니다. 꼭 사람한테만 빵빵거립니다.

 

인현동 골목길 인현동 골목길을 걷습니다. `주차금지'를 노란빛으로 그려놓은 자리에 세운 걸상은, 차를 막는다기보다, 아주머니나 할머니가 앉아서 해바라기하려는 걸상입니다.


.. 옛 방식대로 버려지는 쌀뜨물로 그릇을 씻고, 빨래는 환경친화비누로 쓰는 일을 철저한 사명으로 지킨다면 맑은 냇물이 간직되고, 떠났던 가재와 물고기들이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시냇물이 살아나 예전같이 아무 데서나 손으로 물을 움켜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산을 찾는 배낭 속에서 물병을 빼고 그것을 돈으로 셈해 보면(플라스틱 물병까지) 엄청나리라 ..  〈101쪽〉


 국민학교 다닐 때에는 비가 와서 물이 차거나 넘치는 곳에 가서 헤엄을 치며 놀았습니다. 옛 시외버스터미널 앞길은 비가 조금만 와도 물이 찰방찰방. 곱고 멋진 옷 차려입은 어른들은 이제나저제나 버스가 물살을 가르며 와 주나 걱정하며 처마 밑 계단짬에 주루루 서 있고, 저를 비롯한 꼬맹이들은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가슴까지 물이 찬 터미널 앞길에서 신나게 놉니다.


.. 거름으로 쓰이는 쓰레기는 밥상에 올려지는 밥만큼이나 정갈하게 골라낸 다음이라야 쓸 수 있다. 비닐조각은 없느냐? 유리조각이나 건축폐기물은 아니냐? 화학약품이나 많은 소금기는 없느냐? 건전지, 깡통, 수은, 쇠붙이는 섞이지 않았느냐? …… 땅도 땅 나름대로 깨끗한 정성을 쏟아야 소화해 내고 살이 된다 ..  〈88쪽〉


 제가 중학생일 때 형은 고등학생. 형은 우산을 거의 안 가지고 다녔습니다. 내리는 비를 그예 맞고 다녔습니다. 어머니는 나한테 우산을 둘 쥐어 주면서 형한테 주라고 하지만, 형은 우산을 받지 않습니다. 저는 우산을 들어 형한테 씌워 주지만, 형은 발걸음을 빠르게 놀리며 비를 맞고 가겠다고 합니다. 비오는 날이면 늘 되풀이되는 실랑이였는데, 오래지 않아 저도 형을 따라 우산을 접고 비를 맞으며 학교를 오갑니다.

 

저잣거리 고양이 신포동 저잣거리에 살고 있는 살진 고양이.

.. 자연을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겠다는 말은 언제 들어도 가슴이 철렁하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일 때가 가장 아름다워서이다 …… 그리 높지도 깊지도 않은 그런 곳에 아스팔트길이 왜 있어야 할까? 몇 십 몇 백 년을 자란 숲을 어떻게 그리 쉽게 벨 생각을 했을까? ..  〈79∼80쪽〉


 아무 걱정도 생각도 근심도 마음도 없이 비를 맞고 걷던 적이 언제였을까.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맞으며 걷기로 하니, 빗방울이 튀어 옷을 적셔도 괜찮습니다. 비가 쏟아지는 길에서 사진기도 비를 맞히며 걷습니다. 골목길 사진 몇 장 찍고 있으니, 옆지기가 “또 흑백으로 찍어요? 비오는 날은 칼라로도 찍어 줘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네, 알았어요.” 대꾸하고는 렌즈 앞에 끼운 필터를 빼고 흑백으로 맞춥니다.

 

 비오는 날 구름을 흑백으로 찍으면 빛도 구름 그림자도 한결 또렷합니다. 빛깔있는 사진으로 찍으면 빗물에 촉촉히 젖어드는 계단이며 골목집 꽃그릇이며 알록달록한 느낌이 살아납니다.


.. ‘요새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바쁜 내 아들딸을 생각하여 고생을 마다하지 않듯이, 늙은 사람도 할 수만 있다면 고단한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마음도 있어야겠다. 자리를 양보 받고 마땅히 받아야 할 자리를 받은 것 같은 마음은 없었는지? 그리하여 건성인 인사치레는 없었는지? 나를 돌아보았다 ..  〈70쪽〉


 예배당에서 나온 듯한 아주머니들이 우산을 쓰고 골목을 걷습니다. 이 가운데 한 분이 신을 벗고 양말발로 걷습니다. 쏟아지기도 하지만 골목길을 줄줄줄 흐르는 빗물 때문에 신을 신으나 마나겠지요.


.. 오빠는 내게 가벼운 심부름 한 번 시키는 일이 없었지. 삼촌들이 어쩌다, “영이야 물 한 그릇 다오.” 하면, “삼촌, 영이도 삼촌하고 똑같은 학생이여. 왜 그 애한테 심부름을 시켜.” 하고 오빠보다 두 살 아래인 삼촌에게 싫은 눈치를 보냈지 ..  〈41쪽〉


 집에 닿습니다. 젖은 옷을 벗고 젖은 가방을 풀어 놓습니다. 가방을 열어 비닐봉지에 담긴 책을 꺼내어 펼쳐놓습니다. 몇 권이 살짝 젖었네요. 비닐봉지에 작은 구멍이라도 나 있는 듯합니다. 가방 빨아 본 지 꽤 되었구나 싶어, 이 김에 함께 빨아야겠다 생각합니다.

 

고추잠자리 우리 살림집 창가 전깃줄에서 비를 긋고 있는 고추잠자리.

 

 젖은 옷가지와 가방을 들고 살림집이 있는 4층으로 올라가며 창밖을 잠깐 내다봅니다. 어,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전깃줄을 붙잡고 앉아 있네요. 흔하디흔한 고추잠자리가 이제는 찾아보기 아주 어렵게 되었다는데. 요 고추잠자리가 우리 집 창가 전깃줄에서 비긋기를 하고 있군요.


.. ‘이제 나도 벌레먹은 옥수수가 내 몫이구나.’ 지금 딸아이는 이런 내 모습이 얼마나 아득한 딱한 일로 보일까? 그 마음 이렇게 잠깐인 것을……. “오늘은 벌레먹은 것까지 어렵지 않게 다 팔고 왔다”며 어린 아들딸 앞에서 즐거워 할 그 옥수수장수를 떠올리며 나도 덩달아 즐거워지는 것은 무슨 마음일까? ..  〈31쪽〉


 밤새, 새벽내, 또 아침나절까지 해가 났다가 비가 쏟아졌다가 가랑비로 바뀌었다가 갰다가 되풀이됩니다. 바람은 몹시 붑니다. 뒷집 너머로 있는 전철길에서는 5분에 한 대쯤 지나가는 전철 소리가 꾸준히 이어집니다. 때때로 석탄 실은 짐열차가 지나갈 때면 구르르릉 하면서 건물이 조금조금 흔들립니다. 1958년에 지은 건물인데, 여태껏 저 짐열차 구르르릉에도 잘 견디며 서 있군요.


.. 식혜가 검은빛이 나는 것은 밥이 적게 들어간 것이고, 따라서 달지 않아 설탕을 많이 넣은 억지 맛이다 ..  〈160쪽〉

 

할머니 모습 세상을 고운 마음으로 살아오면서, 당신 매무새도 곱게 추스르셨겠지요.

 〈2〉 일흔세 살 할머님 이야기


 이야기책 <지는 꽃도 아름답다>를 너덧 번 읽습니다. 우리 할머니는, 또 우리 어머니는 어떻게 살아오셨는가 돌아보면서.

 

 책읽을 틈이 없이 바쁘게 산다는 동무나 선후배한테 이 책을 사서 선물해 줍니다. “너희 할머님이 살아온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 읽어 봐” 하고 말하면서.

 

 남편바라지에다가 딸아들바라지로 젊은 날을 다 바친 문영이 할머님은, 마지막 아이가 제금을 난 다음, ‘이제부터는 내 하고픈 일을 하나 해 볼라요’ 하고 남편한테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 그러면 그렇게 하시오’ 하고 선선히 받아 주는 말을 듣고, 예순세 살이던 1997년에 문학강의를 처음으로 들어 봅니다. 그 뒤 당신이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서 띄엄띄엄 짤막한 글을 쓰셨고, 2003년 8월에 이오덕 선생님 책 <우리 글 바로쓰기>를 읽으며, ‘내가 참 바른 말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왔구나’ 하고 깨달으면서, 당신이 썼던 글을 ‘우리 글 바로쓰기’에 알맞게 추슬렀습니다.

 

 머리가 허옇게 된 ‘흰바가지’가 되었으나 “동네에 불이 나면 물지게를 지고, 물동이를 이고, 자배기를 안고 저마다 오직 불을 꺼야 한다는 한 생각으로 뭉치던 사람들”처럼 자그마한 글 하나를 써서 나누면서, 말이며 삶이며 사람이며 땅이며 곡식이며 살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지는 꽃도 아름답다

문영이 지음, 달팽이(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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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사전을 새로 쓴다.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우리말 꾸러미 사전》《우리말 글쓰기 사전》《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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