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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다시 나와 보고 싶던 유럽이던가? 나는 프랑스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베르사이유 궁전을 향했다. 뜨거운 햇살이 머리 위에 이글거리고 있었다. 나는 궁전 입구에서 가족과 함께 줄을 섰다. 뜨거운 햇살을 피할 길이 없었다.

한낮의 햇볕이 따가웠다.
▲ 베르사이유 궁전 가는 길 한낮의 햇볕이 따가웠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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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내와 딸을 따라 거울의 방에 들어섰다. 사진을 찍으며 베르사이유 궁전(Palais de Versailles)을 감상하는 나는 아내와 딸에게 항상 뒤쳐져서 걸어가고 있다. 거울의 방은 장기간의 수리를 마치고 올해 5월에 재개장함으로써 다시 많은 사람들의 사람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최근에 새로 복원된 거울의 방 내부는 황금빛 내부 장식과 밝은 유리로 온통 반짝거린다.

거울의 방은 수많은 인파로 가득 차 있고, 방과 방 사이의 통로는 관광객들이 서로 부딪힐 정도로 복작거린다. 거울의 방 입구 사람 무리 속에서 팔을 높이 들어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보인다. 거울의 방에서는 대형 거울에 자신의 전신이 모두 비친다. 대부분 우리나라 관광객들은 이 대형 거울 앞에서 대형거울에 비친 자신의 전신을 사진으로 찍는다.

거대한 물결을 이룬 사람들이 관람 동선을 따라 한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다행히 바깥의 더운 날씨에 비해 실내가 덥지는 않았지만, 나는 이러한 상황에서 제대로 된 관람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머릿속에 그리던 문화유산을 직접 눈 앞에 대하면 감흥이 커지는 법인데, 수많은 관광객들에게 치이다 보니 흘러간 세월의 무상함만이 느껴진다.

거울의 방은 베르사이유 궁전의 여러 개 방 중에서도 가장 화려한 백미다. 베르사이유 궁전의 거울의 방(Galerie des Glaces)은 루이 14세 당시 프랑스 전제왕권의 힘이 느껴진다. 루이 14세는 1678년~1688년에 건축가 망사르(Mansart)에게 지시하여 베르사이유 궁전 증축공사를 시행하였다. 이 공사를 통해 정원 쪽 2층에 기둥이 받치고 있던 이탈리아식 테라스를 거대한 회랑 모양의 방으로 만들었고, 이 호화로운 방이 현재 거울의 방이라고 불리고 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고 있는 둥그런 돔 형태의 천장에 시선을 옮겼다. 높이 12.3m, 길이 73m, 폭 10.5m에 이르는 천장이 온통 프랑스 왕실의 최고화가였던 샤를르 르브룅(Charies le Brun)의 프레스코 천장화와 금박의 화려한 내부 장식으로 도배되어 있다. 그 그림의 세밀함이야 베르사이유 궁전의 모든 방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지만, 나는 천장에까지 하늘의 세계를 묘사한 화려함에 기가 질렸다.

유리를 통해 방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이 아름답다.
▲ 거울의 방 유리를 통해 방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이 아름답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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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울의 방은 프랑스 왕실의 대연회장과 가면무도회장으로 사용되었고, 이 거울의 방에서는 외국의 특사를 맞이하는 등 왕이 주도하는 수많은 궁전의식이 거행되었다. 나는 눈앞의 수많은 관광객을 걷어내고 이 아름다운 방에서 움직였을 사람들을 상상해 보았다.

프랑스 왕권이 내리막길을 걷던 루이 16세 당시,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가 이곳에서 화려한 파티에 참석하고 있었다. 그녀는 앞으로 다가올 자신의 운명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 거울의 방에서 풍성한 음식의 향연과 향기로운 와인 속의 연회를 즐기고 있었다.

거울의 방에는 프랑스의 역사가 흐르고 있다. 다시 또 역사의 세월이 흘렀다. 1871년 1월 29일, 프랑스는 유럽 대륙에서 패권을 겨루던 프로이센과의 전투에서 패해 항복하고 말았다. 유럽 역사의 주인공으로서 영국과 프랑스 외에 독일이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이곳 베르사이유 궁 거울의 방에 독일 프로이센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다. 독일 프로이센 사람들은 이 거울의 방에서 독일제국 선언을 하게 된다. 거울의 방에서 이루어진 프랑스 치욕의 날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의 6월 28일, 프랑스 땅, 거울의 방에 다시 독일인들이 모여들었다. 이번에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독일이 프랑스 등 연합국에게 항복하는 순간이었다. 당시 거울의 방은 독일 등의 전제국가들이 패퇴하고 자유 민주주의가 확산되는 역사 흐름의 중심에 있었다.

태양왕의 권위가 살아 숨 쉬던 방에 뜨거운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방 안은 온통 대형 거울에 둘러싸여 있었다. 대형 거울에 햇빛이 반사되면서 빛의 크기는 더욱 증폭되고 있었다. 긴 회랑 천장에 긴 줄로 매달린 샹들리에는 그 빛이 영롱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방 전체를 눈부시게 하는 것은 샹들리에의 조명보다는 창으로 들어오는 강렬한 햇빛이다. 나는 대낮에 불을 밝힌 샹들리에가 저녁이 되어야 아름다움을 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거울의 방 정원 쪽으로 무려 17개나 되는 아치형의 대형 창문이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받고 있었다. 사각형 격자 창문에는 수많은 유리들이 박혀 있었다. 지금이야 이런 대형 유리 창문이 많이 보급되었지만, 당시 중세 유럽에서 이런 대형 유리 창문은 후기 바로크 양식의 가장 호화롭고 획기적인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정원 반대쪽 벽면에도 17개의 커다란 아치형 거울이 반짝거리고 있다. 대형 17개 거울은 총 578장의 거울을 이어서 벽면 전체를 구성하고 있다. 나는 금빛 찬란하고 영롱한 거울이 반짝이는 이 방이 보석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대단히 인기가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정원의 풍경이 시원하다.
▲ 거울의 방에서 바라본 베르사이유 궁전 정원 정원의 풍경이 시원하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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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명성이 자자한 방답게 이 방에서 바라보는 창밖의 정원 풍경도 압권이다. 정원 너머로는 호수와 왕의 사냥터가 보인다. 거울의 방은 베르사이유 궁전 내에서도 정원을 바라보는 가장 좋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고, 창문도 시원하게 커서 눈으로 보이는 정원의 풍경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

그런데 방이 너무나 화려하다. 아내는 방이 너무 커서 질린다고 했다. 이곳 거울의 방은 아름다움이 과한 곳이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치 못하다. 아름다움이 과하게 넘치면 아름다움이 부족함만 못한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 여행기는 2007년 7월말의 여행 기록입니다. 유럽의 여행정보와 여행지에 관련된 내력을 알아보고, 올바른 여행문화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유럽 여행기는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 독일 등을 계속 이어쓰기 할 계획입니다.



태그:#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 #거울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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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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