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6일, 충남 연기군 금남면 황용리에 위치한 황용보건진료소를 찾았다. 황용보건진료소 25주년 기념 및 삼성노인복지관 개소 4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날 이곳에서 열린 행사는 단순한 기념식이 아니다. 이곳 황용보건진료소 관할지역의 반 이상이 신행정중심복합도시 수용지역으로 포함되어 이주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신행정중심 복합도시 건설로 인해 정들었던 고향을 떠나야 하는 주민들을 위한 주민위안잔치의 일환으로 열린 기념식장에는,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많은 사람들이 천막이 쳐진 마당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번 행사를 위해 천막이 무려 20여개가 세워졌다고 한다. 곧 고향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는 듯 하늘에서는 쉴 사이 없이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11시가 되자 기념식이 시작되었다. 이기봉 군수를 비롯하여 이순옥 보건소장, 각 기관장들, 안근혁 전국 보건진료소 운영협의회장, 충남 보건진료소 회장단, 김승회 연기군보건진료소 운영협의회장을 비롯한 각 운영협의회장, 도 및 군의회 의장 및 의원 등 내외 귀빈과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며 가족처럼 지냈던 많은 지역 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시작된 기념식에서 국민의례, 축사, 격려사에 이어 보건진료소에 대한 경과보고가 있었다.

 

 

보건의료취약지역 주민에게 일차보건의료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제공함으로써 보건의료서비스의 균형 발전과 건강수준향상도모를 목적으로 설립된 황용보건진료소(소장 최을순)는, 1982년 개소식을 갖은 이후 지금까지 벽오지 농촌을 지키며 주민들과 함께 생활해왔다.

 

그 당시 아무도 가려하지 않던 농촌마을에 보건진료소장으로 부임한 최을순 소장은 주민들에게 건강증진 및 일차진료,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사업, 보건진료소 자체특수사업 등을 통하여 주민들에게 우리소장님, 최고! 라는 칭송을 들으며 지역민과 한가족처럼 지내왔다.

 

 

초창기 보건진료소는 농촌에서 유일한 의료기관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주민들의 건강을 돌보며 지내야했다. 그 당시에는 발령을 받았음에도 대부분 건물이 세워지지 않아 마을회관에서 거주하며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의 농촌마을이 그렇듯 교통수단도 발달하지 못했고, 마을에 살기 때문에 아무 때나 이용해도 된다는 주민들의 잘못된 인식으로 인하여 언제 찾아올지도 모르는 주민들로 인해 늘 긴장을 하며 살아야 했다.

 

보건진료소에 근무하면서 보람이나 어려웠던 점, 에피소드가 있으면 말해달라고 했다.

 

"열악했던 환경에서 근무해야 했기에 그동안 겪었던 어려움이야 수없이 많았어요. 그래도 잊혀지지 않고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새벽 2시에 벌에 쏘여서 방문한 환자로 놀랐던 일과 아들을 원하는 집에 분만을 도우러 갔다가 딸을 낳는 바람에 축하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건강한 아이의 출산을 보고 기쁘다 말할 수도 없었던 상황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가장 큰 보람이라면 농촌이 갈수록 노인인구가 많아지는데 지역의 노인들을 위해서 뭔가를 할 수 있었다는게 큰 보람이지요. 보건진료소가 새로 지어지면서 노인복지관이 생겨, 자녀들이 모두 도시로 떠나고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한자리에 모여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었고 또 따스한 밥 한끼를 나눠먹을 수 있는 무료 중식을 하게 된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 생각해요.

 

이주로 인해 주민들이 가장 걱정하는게 뭐냐고 질문하자 보건진료소가 세종특별자치도 법안이 국회에 상정됨에 따라 세종시로 편입될 경우 내집처럼 편하게 이용하며 많은 도움을 받았던 보건진료소가 없어지면 어떡 하느냐고 많은 걱정을 하셔요. 결과에 따라 3년이내에 주변지역으로 묶이면 더 이상 보건진료소를 이용할 수 없게 되는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요. 모든게 주민들이 바라는 대로 잘 되리라 생각해요.

 

앞으로도 보건진료소가 없어지지 않고 주민들의 염원처럼 유지되고 계속 발전되어 그들과 함께 행복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남은 평생 정들었던 주민들과 헤어지지 않고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주하여 사랑을 나눌수 있기를 바랍니다."

 

초창기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면서도 주민들에게 늘 환한 웃음을 선물하며 건강을 돌보는 등 마을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해결하는 만능 해결사로 활동해온 최을순 소장은 주민들로 부터 칭찬이 그치지 않았다. 그로 인하여 보건복지부 장관상은 물론, 도지사, 군수상, 면장감사패, 노인회 감사패 등 많은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03년도에는 연기군의 지원으로 100평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였다. 보건진료소와 노인복지관이 함께 지어진 것이다. 이곳에서 보건진료소 사업과 노인복지관에서 자원봉사자들을 이용한 무료급식을 실시함은 물론, 은빛 건강 체조 교실을 열어 건강한 노후생활이 되도록 힘쓰며 오늘에 이르렀다.

 

물론 지금은 시대도 변하고 농촌도 발전을 거듭하며 교통도 많이 좋아지고 환경과 주민들 인식의 전환도 빠르게 변하며 발전하고 있다. 그래서 근무시간을 준수하게 되었고 나머지 시간을 보건진료소장 자신을 위한 취미생활 등을 할 수가 있게 되었다. 또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개발하여 더 나은 건강증진사업으로 주민들에게 환원하고 있다.

 

최을순 황용보건진료소장은 경과보고를 들으며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돌이켜 보면 연탄불로 밥을 지어 먹으며 좁은 공간에서 밀려오는 주민들과 자라는 아이들로 인해 어려움도 많았으나 오늘 뜻깊은 행사를 맞이하고 보니 지나온 시간이 감사하고 주민들이 감사할 따름이라며 겸손해 한다.

 

오늘 기념식장에서는 그동안 공로를 인정받아 연기군수로부터 공로패를, 마을 주민들을 대표하여 황용보건진료소 운영협의회장으로부터 감사패를 수여받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큰 박수로 최을순 소장을 축하해 주었으며 이어 주민위안 잔치가 시작되었다.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나눠먹으며 전문 진행자의 사회로 본격적인 주민위안잔치가 시작되었다. 초청된 가수들의 열띤 공연과 주민들의 노래자랑이 흥겹게 펼쳐졌다. 머지않아 고향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은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도 되는 듯 상기된 모습으로 즐거운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어느 누구랄 것 없이 언제 또다시 이런 자리에서 함께 만날 수 있겠느냐며 펼쳐진 축제의 마당에서, 삶의 보따리를 풀어놓고 맘껏 즐기고 있는 그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타향을 애써 외면하려는 듯 음악에 맞춰 할머니, 할아버지의 몸놀림이 가볍기만 하다. 노인들을 위해 젊은이들은 음식을 나르며 나름대로의 보람찬 시간을 보내고 있다. 주민위안잔치는 그렇게 빗속을 뚫고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며 무르익어 갔다.

 

 
머지않아 이곳은 역사의 한 페이지로 넘어가고 추억속에서나 떠올리는 현장으로 기억될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일어나 멋진 삶을 가꿔갈 주민들과의 헤어짐이 못내 아쉬운듯 흥에 겨워 춤을 추는 주민들을 바라보는 최을순 소장의 얼굴에 쓸쓸한 미소가 감돈다.
 
삼성노인복지관 이종희 노인회장과 양수직 황용보건진료소운영협의회장, 그리고 가족처럼 오손도손 모여살던 관할지역 주민들 모두 아쉬운 마음이야 오죽하겠나마는, 오늘 이자리에서 만큼은 서로를 위해 내색하지 않고 축제분위기와 어울려 음식을 나눠먹으며 흥겨운 노래와 춤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비록 신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로 정든 고향을 떠나 뿔뿔이 헤어질 수밖에 없으나, 그동안 함께 했던 마음과 이웃사랑을 잊지 말자는 이주민들의 염원이 풍물소리와 함께 깊은 메아리로 울려퍼지고 있다. 아름답게 펼쳐질 또 다른 내일을 꿈꾸는 주민들의 소망처럼.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세종뉴스 인터넷 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신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 #보건진료소, #이주민, #주민위한잔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