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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잡이 오수정>에서 주인공 오수정(엄정화)은 사랑하는 남자에게 속았다는 사실에 크게 슬퍼한다.
 <칼잡이 오수정>에서 주인공 오수정(엄정화)은 사랑하는 남자에게 속았다는 사실에 크게 슬퍼한다.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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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에 있어서 '신뢰'라는 단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크다. 드라마는 우리네 삶의 일정부분을 브라운관으로 투영해 보여주기 때문에 드라마 속 인간관계를 통해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일에 방영된 SBS 주말드라마 <칼잡이 오수정> 12회에서 오수정(엄정화)과 고만수(오지호) 사이를 갈라놓는 극적갈등의 도구로 사용된 것이 바로 '신뢰'라는 양날의 칼이다. 이날 방송에서 "만수는 자기를 절대 못속인다"며 입버릇처럼 말하는 수정과 자신을 철썩 같이 믿고 있는 수정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만수의 모습이 극적대비를 이루었다.

만수는 수정에게 사실을 털어놓으려 마음먹지만 사실대로 말한 후에 수정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신뢰'를 깨어버린 자신을 그녀가 과연 용서해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어 차마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다. 정우탁(강성진)은 만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수정이 다치는 게 싫어 만수와의 계약에 대한 이야기를 묻어두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육대순(박다안)이 고만수와 우탁의 거래를 수정에게 알리기 위해 수정과 우탁을 우탁의 집 앞에서 만나게 해 마침내 그들의 비밀스러운 거래가 탄로나고 만다.

'세상에는 비밀이 없다', 아니 '드라마에도 비밀이 없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들의 해피스타트를 향한 행로는 해피엔드, 즉 행복의 끝으로 치닫게 된다. 만수를 만나 도저히 믿기 힘든 사실이 진실임을 알게 된 수정은 배신당한다는 것이 얼마나 아픈지를 이제야 알겠다면서 펑펑 운다. 무릎까지 꿇고 만수에게 용서를 빌지만, 자신을 속인 만수를 용서하지는 못할 꺼 같다며, 이제 어떡하느냐며, 크게 울부짖는다. 자신의 믿음을 저버린 남자는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일까?

'신뢰'라는 단어는 대체 얼마만큼의 무게를 지니고 있나?

존 맥스웰은 저서 <신뢰의 법칙>을 통해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리더십'이나 '실제적 가치'가 아닌 바로 '신뢰'라고 주장했다. '신뢰'는 다른 말로 '신용'이나 '믿음'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살아 생전에 사업은 망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지만 신용(믿음)은 잃으면 그것으로 끝임을 강조하고 신용제일주의를 경영정신으로 삼았다.

말 많고 탈 많은 정치도 마찬가지다. 정치인들은 다 거짓말쟁이라고 말들을 하곤 하지만, 높은 지위에 있을수록 그 거짓말이 가져다주는 파장은 크고 그만큼 감당할 책임도 커지기 마련이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도 보면 특정 대선후보의 거짓말 한마디에 대선경쟁의 판도가 순식간에 뒤바뀌는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대선이니 정치니 거창한 것들과 결부시키지 않아도 '신용'이라는 것은 우리 실생활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경제적 의미에서 '신용'을 잃은 '신용불량자'는 생활전선에서 이탈한 병사와 같다. '신용불량자'는 회사에 취직하기도 어렵거니와 각종 신용거래에서 크나큰 제약을 받는다. 그만큼 현대사회에서 신용을 잃는다는 것은 크나큰 걸림돌인 것이다.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도 남녀주인공 앞에 '신뢰'라는 훼방꾼이 나타난다.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도 남녀주인공 앞에 '신뢰'라는 훼방꾼이 나타난다.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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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종영한 MBC 인기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도 붉은 태양과 같이 뜨겁던 최한결(공유)과 고은찬(윤은혜)의 애정전선을 일시적으로 꽁꽁 얼어붙게 만들어 버린 스토리 전개도 '신뢰'라는 훼방꾼의 작품이다. 은찬이 여자임을 숨기고 자신을 줄곧 속여왔다는 사실을 알게된 한결이 분노의 감정을 폭발시키는 것으로 둘 사이의 갈등은 격화된다.

한결은 은찬과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인식하면서도 심장은 멋대로 요동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내내 괴로워하며 정신병원까지 들락날락했던 자신의 바보 같던 과거의 모습들을 떠올리며 배신감에 몸부림친다. 이처럼 한결의 과도할 만큼의 냉정한 감정연기가 극의 해피앤딩을 원하는 시청자들을 잠시 당황케 했지만 그것도 이미 예상했던 범주안의 스토리라 크게 걱정하는 이는 없었을 것이다.

이때 한결의 반응만을 놓고 봐서는 그토록 험난하기만 할 것 같았던 둘의 관계도 시청자들의 마음을 헤아려서인지, 아니면 배신의 상처보다 사랑의 무게가 훨씬 더 무겁기 때문이었는지, 저울추는 싱겁게 해피모드로 기울고 만다.

사랑이란 놈을 신뢰의 밧줄로 동여매야..  

로망 롤랑의 명언 중에 "사랑은 신뢰의 행위다. 신이 존재하느냐 않느냐는 아무래도 좋다. 믿으니까 믿는 것이다.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것이다. 대단한 이유는 없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사랑에 있어서 신뢰라는 것이 얼마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인지 알게 해주는 말이다.  

연인관계에서 둘 중 하나가 믿음을 저버리는 행동을 해 상대방의 절대적인 신뢰를 배신한다면 배신당했다고 생각하는 만큼 신뢰가 증오로 변하게 되고 신뢰 속에 이루어진 사랑이라는 감정도 온전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설사 불꽃같은 사랑에 휩싸인 커플이라 할지라도 신뢰에 금이 가는 순간 그 불꽃은 금세 사그라 들 수 있다.

신뢰라는 굳건한 반석위에 지어진 사랑이라는 이름의 집은 쉽게 무너지지 않지만 기초가 부실한 집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감을 안겨주는 것처럼 믿음이 사라진 사랑은 거친 파도위에서 한없이 요동치는 배와 같다.  

'신뢰'가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어디서든 분명히 생겨나는건 <커피프린스 1호점>과 같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현실에서도 드라마처럼 관계회복이 쉬이 가능하리라고 믿는 것은 극히 위험한 발상이다. 한번 깨어진 그릇은 다시 붙여놔도 표가 나기 마련이고, 아무리 노력해도 원래대로는 되지 않는다. 깨어진 그릇이 칼날이 되어 서로를 상처입히지 않도록 '신뢰'라는 조심스럽고도 무서운 존재를 '사랑'이라는 완충제로 포장해 놓아야 한다.  

이쯤 되면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드라마 속 교훈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외면할 게 아니라 '신뢰'라는 단어를 마음속 깊이 인식하고 '신뢰'를 지키고자 하는 개개인의 노력들을 통해 서로서로가 믿음으로 굳건해 질 수 있다면 좀더 나은 사회로 가는 지름길을 찾은 셈이다. 

덧붙이는 글 | '2기 티뷰기자단 응모'. 이기사는 다음블로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드라마, #커피프린스1호점, #칼잡이오수정, #신뢰,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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