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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루 라라--."

 

흥얼거리는 노래 소리에 눈이 떴다. 조금만 더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있게 할 정도의 자극이었다. 눈을 뜨니, 새벽 6시가 아직 안 된 시간이었다. 방안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여명으로 희미하게 사물을 분간할 정도였다. 새벽부터 무슨 노래 소리인가 의아하여 살펴보았다.

 

집사람이었다. 아침 식사 준비를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부르고 있는 노래 소리였다. 나지막한 소리로 부르는 노래는 본인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였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내면에서부터 솟구치는 흥을 주체하지 못하여 나오는 결과였다. 그것은 분명 신바람이었다. 즐거움을 주체하지 못하여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소리였다.

 

집사람은 한결 같다.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을 준비한다. 출근하고 학교에 가는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는 서두르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늦지 않게 준비를 해왔다. 그런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일이 년도 아니고 20여 년 이상 그렇게 지속적으로 가족들을 위하여 헌신하고 있다.

 

큰 아이가 오전 7시에 출발해야 하고 막내도 오전 7시 30분에 집을 나서야 한다. 출근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집사람은 늦어도 새벽 5시 40분에는 일어나야 아침을 준비할 수 있다. 전날 밥을 해놓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식은 밥을 아침으로 내놓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 집사람의 정성을 잘 알고 있었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콧노래를 부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잠을 깨울 정도로 낯선 것이었다. 그러니 이상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물론 집사람의 기분이 좋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같은 일의 반복으로 단조로움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좋다. 그러니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호기심이 발동하였다.

 

"무엇이 그렇게 기분을 좋게 만들었을까?"
"예?"
"콧노래를 부르게 한 원인이 무엇이냐고?"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요?"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화들짝 놀란다. 얼굴이 붉어지는 것이 분명 기분을 좋게 하는 것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었다. 집사람은 아무 일도 아니라고 우겼고 태연을 가장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그렇게 보기에 좋았다. 늘 저런 기분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분이 가라앉는 일이나 우울증은 들어올 틈이 없을 것이 분명하다.

 

우울증.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무서운 병이다.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젖어버리기 때문에 무섭다. 시나브로 찾아온 우울증은 정신을 황폐화하고 다시 일어설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손으로 만지면 사그라져버릴 정도로 무섭고 심각한 병이다. 그런데 삶의 신바람은 이런 병을 멀리 차버리게 한다.

 

손으로 만지면 잎사귀가 나래로 내려앉는 식물이 있다. 자극하면 잎은 처지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신기한 나무다. 그 이름은 알았었는데, 가물가물하다. 우울증도 그렇게 원상 복귀를 할 수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될지 않는다. 그러나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면 그럴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분주하게 손이 움직이고 있는 집사람을 추궁하니, 바빠서 그렇단다. 자신도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서두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답을 듣고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일주일 전에 통계일로 출근을 시작하기로 한 날이었다. 이미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집사람에게 그런 흥을 불러일으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일하는 일이 즐거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힘들고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해내야 하기 때문에 짜증나는 일이 한둘이 아니다. 그래도 돈을 벌기 위해서는 감수해야 한다. 순간의 고통을 감내하게 되면 식구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책임감으로 일을 해내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기쁨을 자아내게 하다니, 믿기 어렵다.

 

집사람은 일하고 싶었던 것이다. 일하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가족들 때문에 그런 욕구를 억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면에서 솟구치는 일하고 싶은 마음을 식구들을 위하여 참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진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저려왔다.

 

겨우 열흘간의 짧은 기간이지만 일하게 되었다는 그 사실에 기뻐하는 집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면서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하고, 그렇지 못하면 최소한의 욕구라도 충족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집사람의 모습을 통해서 감사하는 마음이 앞선다. 작은 일에 기뻐하는 아내가 대견스럽고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준 사람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알 수가 있다. 일하게 되어 즐거워하는 아내를 바라보면서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내 마음까지 일신시킬 수 있었다. 가을 하늘이 보고 싶어진다.


태그:#일, #즐거움,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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