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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수덕여관
ⓒ 이승철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는데 괜찮을까?"

지하철역에서 모인 일행들이 승용차를 타기 위해 밖으로 나서자 장맛비가 주룩주룩 쏟아진다. 그러나 일기예보를 믿어보기로 했다. 이날 충남지방은 약간의 비가 내린 후 그칠 것이라는 기상청의 예보였다.

7월 4일 아침, 그렇게 쏟아지는 빗줄기 속을 뚫고 우리 일행들이 탄 승용차는 충남 예산에 있는 덕숭산을 향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비가 이렇게 계속 내리면 등산은 아무래도 어렵겠는 걸."

역시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그런데 승용차가 경기도를 벗어나 충남도계로 접어들었을 무렵에는 거짓말처럼 비가 내리지 않았다. 도로가 보송보송한 것이 이곳에는 아직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은 것 같았다.

"어! 정말 충청도는 비가 내리지 않네. 오늘 등산은 문제없겠군!"

걱정하던 친구가 쾌재를 부른다. 그는 2년 전엔가 폭우가 쏟아지는 강화도의 마니산을 흠뻑 젖으며 올랐던 기억이 새로운지 그때의 이야기를 일행들에게 들려준다.

"아니, 이게 뭐야, 이곳도 비가 쏟아지잖아!"

그러나 좋아했던 것도 잠시였다. 해미지역이 가까웠을 무렵부터는 이곳도 역시 비가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

"오늘 등산 못하면 어디 운치 좋은 바닷가에서 생선매운탕에 날궂이 술이나 한잔하고 가지 뭐."

일행 중에서 술을 가장 즐기는 친구는 벌써 술 생각이 나는지 입맛을 다신다. 비는 수덕사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내렸다. 주차장에서 내린 일행들은 할 수 없이 우산을 하나씩 받쳐 들고 사찰 쪽으로 향했다.

▲ 돌탑을 머리에 인 것 같은 모양의 석불
ⓒ 이승철
▲ 만공탑
ⓒ 이승철
"아직도 초가집이 있었네. 저 왼쪽에 보이는 저거 초가집이잖아?"

옛 수덕여관이었다. 이곳에 몇 번인가 왔었다는 이 친구는 그러나 수덕여관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니 수덕여관에 얽힌 이야기도 모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저 수덕여관 아주 유명한 곳이야. 어쩌면 오늘 우리들이 오르려고 찾아온 저 덕숭산보다 더 유명할 걸."

수덕여관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세상에 많은 이야깃거리가 되었던 곳이다. 이야기의 중심은 단연 비구니 일엽이었다.

그녀는 일제치하에서 일본에 유학한 신여성이며 기자이고 문필가였다. 이미 결혼한 유부녀였지만 일본에 유학하여 일본인 남자와의 사이에 아들까지 낳았다. 귀국한 그녀는 서울에서 다시 염문을 뿌리다가 1928년 33세의 나이에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다.

비구니가 된 일엽이 수행하며 머물렀던 곳이 이곳 수덕사의 환희대인데 언젠가 헐리고 지금은 견성암으로 바뀐 곳이다.

그런데 당시 일엽과 더불어 신여성으로 대표되던 또 하나의 여성이 있었으니 그녀가 바로 파리유학파 화가였던 나혜석이었다. 그녀도 3명의 자녀까지 낳은 몸으로 이혼하고 일엽을 찾아와 만공선사의 문하에 들고자 6년 동안이나 묵은 곳이 바로 이 수덕여관이었다.

나혜석이 이 수덕여관에 머물고 있던 시기에 일본에서 낳은 일엽의 어린 아들 김태신이 몇 번이나 어머니를 찾아와 머문 곳도 이 수덕여관이었다. 그러나 김태신은 어머니 일엽으로부터 따뜻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김태신은 나혜석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지 화가로 성공했지만, 67세의 늦은 나이에 결국 출가하여 지금은 직지사에서 수행 중이라고 전한다.

그런데 얼마 전 그가 어머니 일엽을 그리는 마음을 담은 <어머니 당신이 그립습니다.>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그 책에는 "나는 어머니가 뿌리치는 옷자락에 엉겨 붙은 눈물 같은 존재였습니다"면서 "나의 고독과 절망, 나의 기쁨과 소망은 모두 어머니로 인한 것이었습니다"라고 어머니 일엽에 대한 심정을 토로해 놓았다.

▲ 정혜사 뒷담에 있는 쪽문
ⓒ 이승철
▲ 정혜사 아래 오솔길의 석문
ⓒ 이승철
수덕여관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또 다른 두 사람이 있으니, 그들은 소위 동베를린사건으로 강제소환 되어 옥살이를 했던 이응로 화백과 그의 부인이었던 박귀옥 여사다. 이응로 역시 일본 유학파였지만 이곳 수덕여관에서 나혜석을 만난 후 그녀의 영향 때문이었던지 본부인인 박귀옥을 버리고 20여 년 연하의 젊은 여성과 파리로 훌쩍 떠나 버린다.

그러나 이응로 화백이 파리로 떠나기 전 이 수덕여관은 이화백 부부가 아예 구입하여 부인이 운영하고 있었다. 박귀옥은 이곳에서 여관을 운영하며 다른 여자와 파리로 떠나버린 남편 이화백을 평생동안 기다리는 외기러기 슬픈 인생을 살았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김일엽과 그의 아들 김태신, 그리고 만공선사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아 다른 절에 잠시 머물렀다가 결국 서울에서 외롭게 객사한 나혜석, 이응로와 박귀옥 부부 등 이들과 얽힌 사연만으로도 이 수덕여관은 애증이 뒤얽힌 역사적인 장소라고 할 만하다.

지금은 충남도에서 관리하고 있다는 수덕여관은 보수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모습이었다. 공사가 끝나면 어떤 용도로 쓰여 옛 이야기들이 새롭게 조명될지 자못 궁금하게 하는 풍경이었다.

수덕여관을 지나 이야기를 하며 걷다 보니 어느 듯 수덕사 경내를 지나 산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사이 비는 그쳤다. 산길은 대부분 돌계단길이어서 힘들고 다리가 팍팍했다.

"여기서 잠깐 쉬어 가자고."

돌계단길이 힘들어 쉬어가자고 멈춘 곳은 만공탑 앞이었다. 일엽은 받아주고 나혜석은 문하로 받아주지 않은 고승의 안목이 서린 탑이었다. 가까운 곳에는 아직 초가인 소림초당이 자리 잡고 있으니 만공선사가 수행하던 곳이다.

▲ 덕숭산 정상
ⓒ 이승철
▲ 덕숭산 정상에서 바라본 가야산
ⓒ 이승철
만공탑을 지나 올라가노라니 돌탑을 머리에 인 것 같은 모습의 석불이 나타난다. 만공선사가 세웠다는 석불이다. 석불 가까이에 돌로 쌓은 담장 안에 날아갈 듯 서 있는 기와집은 향운각이다.

향운각을 지나 잠깐 올라가니 정혜사다. 그러나 정혜사는 기도 중이라고 일반인들의 출입을 금한다는 안내문이 가로막은 장대에 걸려 있었다. 정혜사 마당 가에서 바라보는 멋진 전망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 정혜사 뒤 돌담장에 열려 있는 쪽문으로 나온 승려가 옛 절터에 만들어 놓은 텃밭으로 내려간다. 아마 상추라도 뜯으러 가는 모양이었다.

"이제부터 돌계단은 없을 거야. 거의 더 올라왔으니 힘내."

높지 않은 산인데도 조금 전까지 내린 비 때문인지 습도가 높아 모두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쏟아진 비 때문인지 등산객은 우리 외에는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서부터는 정말 쉬운 길이었다. 경사도 완만하고 힘들어하던 돌계단도 없기 때문이다. 계단 길을 오르며 힘들어하던 일행들이 평탄하고 좋은 길에 힘이 솟는지 걸음이 빨라졌다. 잠깐 만에 정상에 올랐다.

"벌써 정상이야? 이거 너무 낮은 산이구먼."

높지 않은 산인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너무 싱거운 모양이다. 해발 495m. 덕숭산 정상에는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비가 그친 하늘은 아직 찌푸린 얼굴인데 골짜기 건너 가야산 중턱으로 흘러가는 흰 구름 한 무리가 아련한 풍경이다.

"아니 벌써 정상이야? 이거 너무 싱겁잖아?"

우리가 잠깐 땀을 식히고 있을 때 떠들썩한 소리와 함께 30여 명의 남녀 등산객들이 떼 지어 올라왔다.

▲ 국보 49호인 수덕사 대웅전
ⓒ 이승철
▲ 두눈을 무섭게 부릅뜬 사천왕상
ⓒ 이승철
"이 산이 100대 명산 중의 하나라고? 100대 명산이라는 것, 그거 누가 어떤 기준으로 정한 거야?"

그들 중에 또 한 사람이 주변을 둘러보며 하는 말이었다. 산이 크거나 높지도 않고 특별한 볼거리가 없는 산이어서 몹시 실망스러운 모양이었다.

"저 사람들 말이 맞는 것 같은데, 저 건너 저 가야산이 오히려 훨씬 높고 멋있을 것 같은데, 저 산이 아니고 왜 이 덕숭산이 100대 명산에 들어갔지?"

우리 일행들도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수덕사 때문이겠지. 아니면 유명한 수덕여관 때문이거나."

이 낮고 작고 볼품없는 산이 전국 100대 명산에 포함된 이유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어쩌면 다른 등산객이나 우리 일행들의 말처럼 수덕사나 수덕여관이 변수가 되었을 개연성은 충분히 있을 것 같았다.

"내려갈 때 수덕사와 수덕여관을 다시 한 번 찬찬히 살펴봐야 되겠는 걸. 허허허."

우리 일행들은 빗속에 찾은 산이 별로여서 산이 품고 있는 사찰과 옛 사연이 많은 여관이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른 모양이었다. 그 사이 의정부 지역의 산악회에서 왔다는 등산객들은 막걸릿잔을 주고받고 있었다.

내려오는 길은 정말 잠깐이었다. 비가 그쳐서인지 수덕사 경내에는 몇 사람의 등산객들과 신도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단아한 모습의 대웅전 앞에서 불교신자인 일행 한 명이 두 손을 합장하며 머리를 숙였다.

단청을 하지 않아 더욱 단아한 자태로 서 있는 대웅전은 국보 49호로 지정된 건축물이다. 이 건물은 백제시대의 사찰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며, 영주 부석사무량수전과 함께 현존하는 최고의 목조건물이다. 대웅전 앞 돌계단을 내려와 주차장으로 향했다.

"무섭다기보다 웃기는 얼굴인 것 같은데."

내려오는 길에서 바라본 사천왕상들의 모습을 보며 어느 것이 제일 무서운 얼굴이냐고 물으니 모두 무서운 얼굴이 아니라고 한다. 사천왕상들이 얼굴 표정에서 힘을 빼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었다.

▲ 정혜사 텃밭에 활짝 핀 꽃들
ⓒ 이승철
"인적 없는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흐느끼는 여승의 외로운 그림자. 속세에 두고 온님 잊을 길 없어. 법당에 촛불 켜고 홀로 울적에. 아∼∼ 수덕사의 쇠북이 운다."

저만큼 앞서 걷는 남자가 흥얼흥얼 노래를 부른다. 오래전에 가수 송춘희가 불러서 인기를 끌었던 '수덕사의 여승'이라는 노래였다. 오른편 숲 속에서는 박자라도 맞추듯 수덕여관의 보수공사를 하는 망치 소리가 퉁! 탕! 거리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참고사항: 전국 100대 명산은 2002년 10월 18일 '2002 세계 산의 해'를 기념하고 산의 가치와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기 위해 '산의 날' 및 '100대 명산'을 산림청에서 선정 공표했다. 학계, 산악계, 언론계 등 13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선정위원회가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추천받은 150개 산과 산악회 및 산악 전문지가 추천하는 산,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선호도가 높은 산을 대상으로 산의 역사, 문화성, 접근성, 선호도, 규모, 생태계 특성 등 5개 항목에 가중치를 부여하여 심사 후 선정됐다. 

100대 명산에는 국립공원(16), 도립공원(17), 군립공원(11), 지역에서 44개, 백두대간에 인접한 산 중에서 34개가 선정되었다. 또 대암산 백운산 점봉산 등 생태적 가치가 큰 산과 울창한 원시림을 자랑하는 울릉도 성인봉, 섬 전체가 천연보호구역인 홍도 깃대봉 등도 100대 명산에 포함되었다. (산림청 홈페이지에서 발췌)

*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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