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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흥 해수욕장..가장자리에만 물이 있다
ⓒ 이현숙
범바위에서 나와 우회전, 5분쯤 달리니 해송이 있고 해수욕장 같은 해변이 나온다. 그런데 물이 없다. 물이 없어도 해수욕장 맞나? 해송 앞에 서 계신 어르신께 묻는다. 이곳이 바로 '신흥해수욕장' 맞단다. 물은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네. 여기가 무슨 서해도 아닌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물이 들어오면 여까지 차여."

노인이 증명이라도 해 보이듯 손짓으로 해변을 가리키며 말한다. 아직 해수욕할 철이 아닌고로 주변은 너저분하게 삭막. 우리 차는 해송을 지나 찻길 반대편으로 달린다. 해수욕장을 잘 조망할 수 있는 언덕으로…. 사륜구동 자동차 우리를 따라 온다. 우리는 언덕에 차를 세우고 길로 나간다. 그런데 우물쭈물 따라 오던 그 자동차 뒤로 후진한다.

우리 기사, 의리의 사나이 그 차로 달려간다. 이리로 해서 올라오시라고, 말하려고. 그러나 그 차는 그냥 간단다. 차 돌릴 곳도 만만찮을 것 같아 그냥 가시겠단다. 우리가 가는 곳에 보물이라도 있을 줄 아셨나. 꽤 실망하신 눈치.

▲ 신흥 해수욕장과 연결된 바다와 길...
ⓒ 이현숙

▲ 방파제로 연결된 작은 섬, 항도
ⓒ 이현숙
그러거나 말거나, 우린 언덕에 앉아 이중창을 뽑아낸다. 아! 아름다운 우리나라. 해수욕장엔 아이가 낀 가족팀이 모래 바닥을 탐하고 있다. 발등으로 뭉클하게 차오른 부드러운 고운 모래를 밟으며 이리저리 걸어다닌다.

조개껍데기라도 하나 발견하면 소리를 지른다. 어린애가 어른과 사이가 벌어지자 해찰을 하고 주저 앉는다. 아이를 향해 달려오는 어른의 몸짓. 발이 모래에 잡혀 허둥거리기만 한다. 우리는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자리를 깐다. 남창장에서 산 참외나 먹고 가자며. 경치 좋고 참외 맛있고, 지금 이 순간 아무것도 부러울 것 없어라.

차를 후진하고 싶지는 않고 여태껏 버텨온 배짱으로 앞으로 나간다. 설마 차 돌릴 데 없겠어. 300m나 될까. 길은 짧게 끝이 난다. 지도를 보니 항도라는 섬과 방파제로 연결된 것 같은데 아무리 둘러봐도 차가 들어가는 길은 없다. 갯바위 낚시하기에 좋은 곳인지 지도엔 물고기 그림과 낚시 표시가 돼 있다. 길 끝이니 당연히 차를 돌릴 공간은 있다.

▲ 진산리 해수욕장... 친절하게 동네 연혁이 써 있다
ⓒ 이현숙
다시 찻길로 돌아와 고개를 넘으니 진산리 해수욕장. 해가 뜨는 마을이란다. 나는 화장실을 찾다가 노인정으로 들어갔다. 해수욕철이 아니어서 그런지 공중화장실 문도 굳게 닫혀 있었던 것.

그런데 노인정은 꼭 가정집 같았고, 살며시 방문을 열어 보았더니 노인들이 한 방. 나더러 들어와 놀다 가란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요" 했더니 몹시 아쉬워 하신다. 에구 혼자 왔다면 30분이라도 놀다 갔을 텐데….

이젠 한 군데 남았다. 청산도에만 있다는 초분을 찾아가는 것. 고개를 넘고 또 넘으면서 길가는 사람에게 묻는다. 노인인데 아주 자세히 가르쳐 주신다. 미심쩍어 또 묻고 마을길로 접어든다. 마을길은 산으로 올라가고 거기 밭에서 일하는 분들께 또 묻는다.

그런데 꼬부랑길을 아무리 더듬어 가도 없다. 어쩐다. 또 아슬아슬한 길로 왔으니 후진해서 가기엔 너무 길고 초분은 찾지도 못하고. 역시 길 끝에 가자 차 한 대 겨우 웅신할 만한 공간이 나온다. 다시 서로 한 쪽씩 맡아 자세히 훑으며 간다.

▲ 초분과 모델이 되고픈 까만 염소...
ⓒ 이현숙
아, 저기다. 차를 세우고 길을 더듬어 올라간다. 풀이 무성하고 벌이 날아다닌다. 벌도 무섭고 뱀이 나올까봐 무서운데 초분 앞에 서 있는 까만 염소(흑염소라고 해야 하는데 그러면 흑염소 중탕이 생각나서 까만 염소라고 함)가 자꾸 앵앵거린다. 하도 시끄러워 내가 '기다려 너도 찍어 줄게' 해도 막무가내 앵앵, 초분을 찍고 까만 염소도 한 방, 그제서야 잠잠. 이놈 모델이 꽤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길이 좁아 기사는 매 번 긴장, 그리고 나는 조마조마했지만 그래도 우리의 애마 에스엠 쓰리는 잘 달려 주었다. 덕분에 청산도는 거의 둘러보았다. 초분을 보러 오는 길에 도보 여행자들을 보았다. 세 팀이나. 부럽기도 했지만 안타깝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도로는 보행자 중심이 아니고 자동차 중심이다. 그래서 마음 편하게 걸을 수 있는 보도가 거의 없다. 청산도도 범바위는 걸어서 가는 게 가능하지만 화랑포는 쉽지 않을 거다. 그러나 그들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하면서 도보 여행을 꿈꿔본다.

도청항에서 점심을 먹고 가고 싶어 일단 뱃시간을 알아본다. 이제 바야흐로 행락철. 게다가 토요일이다. 이런 날은 여객선이 비정기적으로 뜬단다. 배 시간은 20분 후, 결국 1박 2일을 머물고도 청산도에서는 밥 한 끼 사먹지 못하고 배를 탄다. 배삯은 정말 들어올 때보다 싸다. 기사를 포함한 자동차는 1만9000원 그리고 한 사람당 6700원. 합해서 2만5700원이다. 점심은 완도에서 매운탕을 먹자고 합의.

들어올 때는 금요일인데다 6시 막배여서 그런지 통학생이 많았는데, 나갈 때는 거의가 관광객이다. 아침 일찍 들어왔다가 나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청산도에서 나가면 서울로 갈 예정이었는데, 마음이 바뀌었다. 일요일을 꽉 채우고 가잔다. 목적지는 화순. 화순은 운주사만 보면 되니까 내일 일찍 떠날 수 있을 거라나. 정말 그럴 지는 의문이지만.

▲ 압핀이 박힌 우리의 애마, 자동차 바퀴...
ⓒ 이현숙
완도 항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는데 차를 둘러보던 기사의 표정이 어째 심상치 않다. 앞바퀴에 바람이 많이 빠져 있다며 아주 심각해한다. 우리의 장한 애마, 눈길, 자갈길, 산길.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다녀도 별 탈이 없었는데. 정말 사륜구동도 못 올라가는 눈길도 거뜬히 올라 휘파람을 불며 칭찬해 주었는데, 너무 힘들어 병이 난 건지, 심통이 난 건지, 아무튼 대단히 큰 걱정.

차를 몰고 나가면서 연신 두리번 두리번. 그리 흔하던 카센터도 필요하니까 눈에 띄지 않는다. 시내를 벗어나서야 겨우 한 집 눈에 들어온다. 바퀴를 이리저리 둘러보던 카센터 주인 바퀴에 박힌 압핀을 발견한다. 에구, 고생한 차를 보니 마음이 다 짠하다.

그래도 우리 애마 잠시의 치료로 잘 달린다. 완도를 벗어나기 전 우리 눈에 들어온 건 신라방 촬영지. 시간이 없어 건너 뛰었는데 딱 걸렸다. 거침없이 그리로 들어간다. 그런데 우리의 관심은 영화 세트보다는 그 위 희한하게 생긴 산봉우리에 머물러 있다. 저, 무슨 산이지? 한참을 바라보지만 알 수가 없다.

▲ 신라방 촬영 셋트장
ⓒ 이현숙

▲ 신라방 촬영 셋트장...위에 기묘한 산봉우리가 삐죽 솟아 있다
ⓒ 이현숙
나중에 어렵게 알아낸 그 산봉우리 이름은 오봉산 숙승봉. '숙승봉'이란 이름은 중이 앉아 명상하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잘 숙(宿)자. 중 승(僧)자를 합쳐 '숙승봉'이라고. 세트장을 걸으니 제법 신라 때, 아니 중국 영화에 나오는 거리를 걷고 있는 기분이다.

다시 나와 화순가는 길로 달린다. 길옆 하나로 마트에 들러 일용할 양식을 좀 사고, 또 달린다. 그런데 화순에 접어들자 우리 눈길을 끄는 게 있었으니 다름아닌 고인돌 축제 현수막이다. 날짜를 읽어보던 기사, 아, 내일까지다. 춘양이라는 지명 아래 고인돌축제장 이정표도 있다. 물을 것도 망설일 것도 없이 무작정 그 길로 접어든다.

해는 얼마 남아 있지 않고 갈 길은 바쁘다. 그런데 금방 나온 축제장은 엉성하기 짝이 없다. 벌써 파했나 실망하려는 순간 차가 내처 달린다. 앞을 보니 서너 대의 자동차가 앞에서 달리고 있고 우리 차가 그 차 뒤를 이어 달리고 있다. 뒤를 보니 우리가 끝이 아니다. 줄줄이 따라 오고 있다. 해는 기울고 있고 산은 꼬부랑 길, 반대편에서 차가 와도 비켜줄 길이 없는 으슥하고 좁은 길이다.

그러나 그건 아무 상관 없다는 듯 차들은 줄줄이 숨차게 달린다. 이건 산속에서 벌이는 자동차 랠리 같다. 앞뒤를 바라보던 나, 얼핏 옆사람을 바라본다. 긴장한 탓인지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 있다. 마치 앞차를 놓치면 지옥에라도 떨어질 것처럼 그저 열심히 따라 달리느라 눈코 뜰 새 없는 얼굴이다. 하하, 웃음이 나온다.

누군가 달리기 시작한다. 그러자 그걸 본 사람도 달린다. 그 다음 사람도 또 달린다. 줄줄이 따라 달리다 한 사람이 천신만고 끝에 앞사람을 붙잡아 묻는다. '도대체 어디를 가는 거요, 왜 달리는 거냐구요? 예, 저 사람이 달리길래 따라 달리는 건데' 지금이 꼭 그런 모양새다.

그렇게 한 20분은 달린 거 같다. 겨우 고개 위에 올라섰는데, 오페라 가수의 힘찬 음성이 들려온다. 주무대는 여기인 셈. 그러니까 우리는 29번 국도를 타고 오다가 춘양면 대신리에서 들어와 도곡면 효산리로 고개를 넘어 온 것이다. 그렇게 긴 거리는 아닐 텐데, 마음이 급한데다 초행길이라 자꾸 산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으로 길게 느껴졌던 것.

▲ 고인돌 축제장 선사체험 학습마당
ⓒ 이현숙

▲ 화순군 도곡면 효산리 고인돌과 석양빛을 받아 붉게 물든 축제장 주무대
ⓒ 이현숙
축제는 거의 파장분위기지만 무대 위는 열정으로 폭발할 지경, 나도 덩달아 배에 힘이 들어간다. 관객은 3분의 1도 안 돼 보이지만, 꼭 양이 질을 대변해주지 않듯 한 막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온다.

해가 바이바이를 하면서 고개를 떨구기 시작한다. 석양을 받은 축제장이 온통 붉은 기운에 휩싸인다. 잘자리나 찾으려던 우리에게 한 가지 수확이 보태지고, 이제 운주사 입구를 향해 달린다. 거기서 잘자리를 찾고 내일 운주사를 보고 서울로 올라 가려고.

운주사 앞 농가에 민박을 잡았다. 새로 지어 깨끗하긴 한데 시설은 별로다. 방에 냉장고도 없고 그다지 깨끗하지도 않다. 하지만 아이스박스 얼음은 주인집에 부탁하고 저녁을 준비한다. 여행자가 하룻밤 지내는데 이 정도면 충분하지, 하는 심정으로. 방값도 이번 여행 중에서 제일 싼 2만 5천원.

그런데 저녁을 먹고 난 한 남자, 축제장에서 가져온 관광지도를 펼치더니 눈동자가 휘둥그레진다. 그러면서 하는 말, 아유 내일도 일찍 올라가긴 틀렸네. 화순에 뭔 볼거리가 이렇게 많아. 그러나 화순의 볼거리는 내일로 미루고 나는 오늘을 결산할 차례. 배삯, 2만5700원. 점심, 2만원. 타이어 펑크 때우는데, 5000원. 일용할 양식, 8200원. 숙박비 2만5000원. 오늘 지출의 합은 8만3900원이다.

덧붙이는 글 | 청산도행 여객선 시간
* 완도 발 : 08:00시 11:20분 14:30분 18:00
* 청산도 발 : 06:30분 09:50분 13:00시 16:20분
* 성수기에는 비정기적으로 늘어납니다
* 전라남도 화순군에는 고인돌이 춘양면 대신리에서부터 도곡면 효산리까지 있습니다.
* 이 여행기는 4월 28일 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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