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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행기에서 바라본 제주도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제주도가 14일 그동안 논란이 되어온 해군기지 수용 입장을 공식 발표했다. 제주도는 수용 입장을 결정한 근거로 여론조사 결과를 들었고, 민주적 절차에 의한 것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벌써부터 여론조사에 근거한 결정의 정당성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그로 인한 갈등이 형성되고 있다.

공공갈등해결 연구자 입장에서 제주도의 해군기지 수용 의사 발표로 향후 어떤 상황이 전개될 지, 그리고 현재 상황에서 갈등이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어떤 방법을 고민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갈등 표출이 꼭 나쁜 일은 아니지만...

첫째로, 이번 발표로 그동안 잠재적으로 존재했던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다. 갈등이 표출되는 것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니다. 창조적으로 갈등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면 오히려 제주도민 전체가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연구하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려되는 일은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역량과 정부의 행정 절차를 볼 때 그런 이상적인 방향으로 갈등이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정부와 국방부는 제주도지사의 발표를 공식 입장으로 수용하고 그에 따른 절차를 진행시킬 것이고,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의 반대 주민들은 이에 맞서야 하는 중압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현재처럼 복잡한 갈등을 다룰 아무런 방안이 없는 상황에서는 과거 다른 공공갈등에서 나타났던 것처럼 첨예한 찬-반 대결로 치달아 제주도 전체가 커다란 갈등의 현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둘째,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짐작을 하고 있지만 제주도의 문제는 전국적인 논쟁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미 제주 시민단체들은 물론 중앙 시민단체들이 이 문제에 심각하게 대처할 준비를 하고 있다.

문제가 되는 정책에 대해 시민단체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주민들의 이해를 높이는 역할을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제주도의 발표로 갑작스럽게 뒤통수를 맞은 상황이 되어버린 지금 제주도 시민단체들은 전국의 시민단체들과의 연대를 통해 전략적 대응을 꾀하게 될 것이다.

이럴 경우 갈등은 더욱 심해지고 대화보다는 대결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이 되면 일반 주민들은 물론 시민단체들도 여유를 가지고 문제를 연구하고 입장을 숙고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된다.

갈등이 심화되면 주민들은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할 수 있는 기회보다는 찬성과 반대 중 한 쪽을 선택해야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된다. 물론 갈등이 이 상태로 심화되면 먼저 냉정하게 찬성과 반대 입장을 재검토하고 이해를 넓히자는 중립적 목소리도 점점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 제주도 해군기지 최우선 대상지로 서귀포시 강정지역이 결정되자 도민대책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 제주의 소리
셋째, 가장 우려되는 것은 공동체의 파괴다. 한국사회 공공갈등의 경우 결국 가장 심한 피해를 보는 것은 특정 정책 집행지로 선정된 공동체 주민들이다.

정책을 계획하고 집행하는 행정기관이 공공갈등이 생길 경우 주로 목소리 큰 반대 집단을 상대하는 것에만 몰두하고 공동체 내에서 소리 없이 증폭되는 주민들 사이의 갈등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주민들은 공동체 내에서 찬-반 입장이 가열돼 공동체가 파괴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최우선 대상지로 선정된 강정지역이 있는 서귀포 대천동의 경우 여론조사 결과는 '찬성 56.0%' '반대 34.4%' '중립/모름 9.6%'였다. 주목할 것은 '중립/모름'이라고 응답한 주민들이 거의 10%에 달한다는 것이다. 즉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해군기지 문제를 자신들의 상황에서 정확히 파악하고 입장을 정리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주도와 전국 차원에서 첨예한 갈등이 심화되고 반대 캠페인이 확산될 경우 이들 주민들도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할 압력을 받게 될 것이고 결국 주민들은 찬성과 반대로 공동체 내에서 첨예하게 대립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파괴된 공동체는 명분과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인의 정서상 다시 회복하기가 힘들다.

가장 우려되는 문제는 공동체 파괴

그러나 아직 희망은 있다.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전에, 갈등이 악화되기 전에, 그리고 제1 당사자인 주민들의 이해와 우려가 정치적 입장과 구호에 묻혀 버리기 전에 현 상태에서 고려해볼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를 중화시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찬성과 반대에 따른 대결 양상을 희석시키는 것으로 제주도가 지금이라도 양측 의견 모두를 포용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주민들이 자신들의 입장에서 그리고 제주도 전체의 입장에서, 그리고 나아가 국가 전체와 제주도의 관계 속에서 문제를 심사숙고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분명 찬성과 반대의 입장은 존재하고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이것을 옳고 그름의 문제로 몰아가지는 말아야 하며 주민들이 상황의 진전에 따라 찬성과 반대 입장을 오가며 자연스럽게 고민할 수 있는 심리적 공간을 마련해줘야 한다.

둘째, 제주도는 공식 입장을 이미 밝혔다는 명분에 얽매이지 말고 지금이라도 주민들이 문제를 자세히 이해하고 자신과 제주도 전체의 입장에서 해석할 수 있도록 다양한 토론의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토론의 자리는 찬성과 반대 의견은 물론 중립적인 목소리까지 수용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어야 한다.

찬성주민들, 반대주민들, 시민단체 등등 다양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실질적 경제 효과, 개인적 사회적 득과 실, 제주도의 미래 등 다양한 문제에 대해 자신의 입장만을 고집하기보다 허심탄회하게 모든 상황을 토론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제주도가 이런 전향적인 태도와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제주도가 심각한 갈등의 현장이 되는 것을 막고 제주도 주민들이 서로 반목하게 되는 상황을 방지하게 위해서다.

누가 뭐래도 당사자는 제주도민

▲ 김태환 제주지사는 "갈등이 막을 내렸다"고 선언했지만, 반발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 제주의 소리
누가 뭐래도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한 우선 당사자는 제주도민들이다. 그러나 제주도가 전향적 태도로 주민들에게 집중 연구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이 문제는 결국 전국 차원의 정치적 문제가 되고 말 것이다. 이럴 경우 제주 주민들의 실질적 이해와 우려는 첨예한 대립 상황에서 제대로 관심을 받을 수가 없게 될 것이다.

제주도지사는 민주적 절차에 따른 여론조사에서 찬성표가 훨씬 많았으므로 찬성 입장을 정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다수결원칙은 아주 기초적인 민주적 절차일 뿐이며 이것이 성숙한 민주주의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우리보다 발달된 민주주의에서는 논란이 되는 정책의 경우 이런 기초적인 다수결 방법에 의존하지는 않는다.

특히 이번 경우처럼 논란이 되는 문제에 다수결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복잡한 갈등 상황을 만들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3분의 1이 넘는 반대 의견과 그리고 '중립'이나 '모르겠다'고 응답한 의견을 절대 무시해서는 안된다. 그들까지 문제 전체를 이해하고 난 후에 제주도민 전체의 의견을 물어야 제대로 된 민주적 절차에 의한 결정이 이뤄지는 것이다.

태그:#제주해군기지, #공공갈등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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