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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 영주 리 , c - 프린트, 31.6 x 48.3cm, 1996년
ⓒ 사라 영주 리

조승희씨의 총기난사 사건을 계기로, 재미동포 1.5세와 2세들의 삶의 모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미국에 자식이나 손주 혹은 조카 그리고 사촌 한두명이 없는 국민이 없을 정도고, 공부시키려고 미국으로 유학보낸 집이 워낙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신문에는 '정체성'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지만, 그 정체성 문제가 조승희씨 혹은 재미동포 1.5세나 2세들의 삶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막연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사실 그동안 해외동포 자녀들에 대해 관심을 가진 심리학자나 사회학자가 별로 없었으니, 정체성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 입니다.

재미동포들의 정체성 문제에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재미동포 자신들, 특히 1.5세와 2세들입니다. 직접 부딪치며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재미동포 화가들이 그린 작품에는 이런한 자신들의 정체성과 그 고민의 흔적이 나타나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 작품은 재미동포 2세화가가 만든 작품으로, 오른쪽은 한국인의 얼굴이고 왼편은 바비인형의 얼굴입니다. 한국인도 미국인도 될 수 없는 자신의 자화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재미동포 1.5세와 2세들의 고민인 것입니다.

오른쪽은 한국인 얼굴, 왼쪽은 바비인형 얼굴

▲ 문범강 <지켜보다-자아> 캔버스에 오일 175×231cm 1999
ⓒ 문범강
보는 사람을 섬칫하게 만듭니다. 이 작품은 재미동포 1세로서 현재 조지타운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문범강 화백의 작품입니다.

그는 한국에서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27세때인 1980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술대학에 들어가 화가의 길을 공부했습니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특별전에 참가했고, 1988년 국제판화공모전 1등상 그리고 대학 재학 중인 1983년에는 브랜다이즈미술전 판화부문 최고상 수상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활동하는 화가이기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세화가이기 때문에 작품이 한국미술사에 포함되어야하는데, 미국에서 활동하니 국내와는 멀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가 미국미술대학에서 교수를 한다해도, 그의 작품이 미국미술사에 포함되는 일 또한 간단치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머리를 떼어 '도대체 너는 누구냐"고 묻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 마이클 주 <눈에 보이는 Visible>, 우레탄, 나일론, 플라스틱, 철, 유리, 호두나무, 녹슨 철, 152.4×121.9×121.9cm 1999-2000
ⓒ 마이클 주
재미동포 2세 화가인 마이클 주의 이 작품에는 아예 머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뼈와 간이 훤히 들여다보입니다. 그가 목이 없는 투명한 불상을 통해 무슨 화두를 던지고 있는건지, 그 의미를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에 대한 평론가들의 평은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미술잡지에서 그의 작품을 논할 때도 이 작품은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되었고, 오직 <불교신문>에서 "영적인 세계와 물질계의 경계를 상호 흐름으로 전환시킨 것이다"고 언급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 설명 또한 난해합니다.

그러나 위에서 소개했던 두 작품처럼 정체성과 연결시키면 이해가 조금 쉬울 수도 있고, 아래의 사진을 보면 그 의미가 더욱 가까이 옵니다.

내 머리를 떼내 마주본다 "넌 누구냐"

▲ 자신의 작품 <헤드리스> 앞에 앉아있는 마이클 주 화백
ⓒ 월간미술
사진의 배경작품인 <헤드리스>를 보면, 그는 목없는 부처 위에 미국인형들의 머리를 올려 놓았습니다.

미국이라는 사회는 결국 이렇게 미국화된 얼굴로 살아가야 하는 것인데, 사진에서 보듯 그가 아무리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시민일지라도 그는 결코 백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위의 부처에서 간과 쓸개까지 보여주면서 머리를 표현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형태의 머리도 올려놓지 않은 이유는, 보는 사람들의 상상력에 맡기려는 의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체성이란 한 사람이 현재까지 해 온 경험의 총량이다. 이는 항상 욕망의 흐름과 반영 속에서 이루어진다. 불행하게도 정체성은 모든 것이 자신에게 달려있지 않고, 타인의 의견 속에서 알게 될 때가 많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코리안-아메리칸'이라는 말은 점점 사어가 되고 있다. (<월간미술> 07년 2월호)"

화가가 어떤 의도로 "코리안-아메리칸이라는 말이 사어가 되고 있다"라고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어쩌면 '코리안-아메리칸'이라는 정체성을 벗어버리고 그냥 한명의 화가로 존재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의 표현이 그런 의도였다면, 이것이 바로 2세들이 갖는 '정체성에 대한 대혼란'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광주비엔날레에 여러번 초대되었고, 베니스 비엔날레에 한국대표로 참석하면서 국제적 명성을 얻을 수 있던 이유가 '코리안-아메리칸'이기 때문이었는데, 그런 '코리안-아메리칸'이 사어가 되는 것 같다고 표현한 것은 뿌리와 정체성을 포기하겠다는 '선언'과 비슷한 맥락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5세와 2세들의 경우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가중되면, 아예 그 정체성을 버리고 겉은 노랗고 속은 흰 '바나나 족'의 길을 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외로운 유목민들... 조승희씨도 '혼자'였지

▲ 서도호 폴리우레탄 고무 63×95×2.5cm 2004
ⓒ 서도호
베니스 비엔날레에 한국대표로 참가했던 재미 1세화가 서도호의 작품으로, 혼자 있고 싶어하는 이방인의 심정을 표현했습니다.

화가뿐 아니라 조승희씨 경우에서도 보듯, 이방인들은 본인의 의지로 혹은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혼자라는 생각을 가질 때도 많고, 주변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혼자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만약 이번 조승희씨 사건이 없었다면 일반인들은 그 의미를 이해하기 힘들었을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서도호 〈서울 집/LA 집/NY 집〉 은조사 523×498×366cm 1999
ⓒ 서도호
서 화백은 이민 1세대 화가이기 때문에 본가인 한국집은 그의 정신적 고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뉴욕과 LA의 집은 그의 삶과 작업을 위한 공간입니다. 그런 그의 삶은 유목민적인 삶일 수 밖에 없고, 그래서 그의 집은 공중에서 부유합니다.

이렇게 세 곳의 집을 마치 모기장처럼 형태로 연결시킨 이 작업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유행하고 있는 설치미술의 한 전형을 보여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의미를 확실하게 전달해주기 때문입니다.

▲ 바이런 킴 <한점 부끄럼 없기를> 한지위에 수채화 병풍 45 x 195cm, 2000
ⓒ 바이런 킴
1961년 샌디에고 근교에서 태어난 바이런 킴 화백의 병풍 작품입니다. 그런데 병풍에는 아무런 그림이 그려져있지 않습니다.

작품의 명제가 윤동주의 서시의 한 귀절을 차용해 '한점 부끄럼 없기를'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아무런 그림을 그리지 않고도 어떻게 '한점 부끄럼이 없다'고 했는지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화가의 설명을 들으면 그 의미가 이해됩니다.

▲ 작품 앞에 앉아 있는 바이런 킴 화백
ⓒ 월간미술
"이번 전시는 한옥을 염두에 두고 한 것이며 윤동주의 <서시>로부터 기인한다. 예일대에서 시를 공부하고, 한때 시인을 꿈꾸었던 나는 윤동주의 시를 접하자마자 정치적인 현실을 초월적인 언어로 승화시킨 그의 능력에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시와 내 작품 사이에는 커다란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했다. 윤동주의 시가 하늘·바람·별과 같은 초월적인 언어를 통해 정치적 현실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면, 나는 초월적인 시각언어를 통해 살색, 어린 시절의 기억, 정치적 사건과 같은 특별한 주제를 그려내는 작업을 한다. (<월간미술> 2000년 6월호)"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면서 "미국에 있을 때는 한국인인 것 같지만 한국에 오면 또 미국인처럼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결국 그는 한국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어 병풍에다 물감만 칠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면서도, 결국에는 한국인일 수 밖에 없다는 자기고백과도 같은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병풍에 그려진 자기고백 "난 아는 게 없어"

▲ 강익중 <365 days of English> 부분, 3인치 나무토막들, 1996년
ⓒ 강익중
이제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강익중 화백의 '가로 세로 3인치' 나무토막 작품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강화백이 국내 전시회를 할 때 혹평을 받은 작품입니다. 나무토막에다 영어를 판게 무슨 작품이냐고? 그러나 미국에서 영어때문에 고생했던 강 화백으로서는 가슴으로 만든 작품입니다.

영어는 재미 한인 1세와 학생시절때 부모님을 따라 이민 간 1.5세들의 삶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줍니다. 그래서 김병현 투수는 얼마 전에, 영어부족 때문에 구단에 할 말을 제대로 못해 바보 취급과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며, 국내 스포츠 신문에 하소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영어란 1세와 1.5세들을 괴롭히는 그런 존재입니다.

▲ 김원숙 <무제>, 캔버스에 아크릴릭, 121 x 168cm, 1990년
ⓒ 김원숙
김원숙 화백은 이민 1세로, 이야기하듯 여성의 삶을 화폭에 옮겨 국내에 많은 애호가를 확보하고 있는 화가입니다.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외로움과 슬픔 그리고 아픔을 많은 여성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감정으로 승화시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거세게 흐르는 강물 위를 아슬아슬하게 건너가는 부부를 표현했는데, 이렇게 힘들고 위태로운 모습이 바로 재미동포들의 삶이라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조금만 균형을 잃거나 중심을 못잡으면 강물에 떨어지기에, 이방인들의 삶은 편안할 때보다 힘들 때가 더 많습니다.

이민 1세대들이야 본인이 원해서 왔으니 감수한다지만, 부모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온 1.5세 그리고 미국에서 태어난 2세들은 본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방인의 삶을 살아야 하기에, 국내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아픔과 갈등이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재미 한인동포 화가들의 작품을 통해, 그들이 겪고있는 정체성의 갈등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라고 참고가 되기 바라며 이번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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