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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하는 여성에게 육아문제는 가장 큰 고민거리다. 사진은 경기도 구리시 수택동에 위치한 한 어린이 집.(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 오마이뉴스 남소연
딸아이가 오후 2시에 퇴근한 지 2주째가 되어간다. 2시에 퇴근하니 정말 좋단다. 4시간 일찍 퇴근하는 것이 그렇게 크게 도움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고 하면서 목소리에 생기가 흐른다.

딸은 원래 오후 6시에 퇴근했다. 6시 40분쯤 손자들을 데리러 가서 집에 오면 저녁 7시가 조금 넘는 시간. 집에 와 부지런히 저녁을 한 뒤, 밥을 먹이고 나면 저녁 8시 안팎이다.

그러고 나면 딸은 몸이 나른해진다. 그래도 밀린 집안일로 아이들과 놀아줄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다. 또 아이들은 다음날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일찍 잠을 재워야 했다.

그러나 오후 2시에 퇴근하면서부터는 모든 것이 여유로워졌다.

"오후 2시까지 일하고 월급 조금 덜 주세요"

큰손자가 나날이 성장하면서 맞벌이인 딸아이의 고민도 커져만 갔다. 올해 6살인 큰손자는 2월생이다. 7살에 초등학교를 입학시켜도 되는 입장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요즘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할 끔찍한 일이 너무나 많이 생기는 무서운 세상이다. 하여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엄마의 손이 더욱 절실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그런 걱정을 벌써부터 하고 있는 딸아이인데 얼마 전부터 큰 손자는 "엄마 나 돼지갈비 안 먹어도 돼, 나 좋은 장난감, 멋진 옷 안 사줘도 돼, 그러니깐 나 좀 일찍 데리러 와"하며 절규에 가까운 주문사항을 계속 외쳤단다. 직장을 그만둔다고 해도 두 아이를 모두 하루 24시간 집에서 돌볼 수도 없는 것이 요즘 분위기이다. 고민하는 딸아이는 그렇다고 직장을 아예 그만두기 싫다고 했다.

딸아이는 결혼 전 큰손자를 낳고 7개월까지 외국인회사를 다녔다. 경험을 살려 영어학습지 교사를 해볼 생각으로 전화로 원어민과 영어 일대일 수업을 받고 있었다. 그것은 자유시간도 낼 수 있고 시간 조절도 가능하다고 하기에. 그러나 그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닌 듯 했다. 그러다 딸아이는 사장한테 이메일을 보냈다.

"큰 아이가 엄마가 일찍 오는 것을 무척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후 2시까지 근무를 하고 월급은 조금 덜 주시면 어떨까요? 불가능한 일이면 할 수 없고, 가능한 일이라면 제가 더 열심히 일해서 회사에는 지장없이 하겠습니다. 그 대신 월말 결산 때는 평소처럼 오후 6시까지 근무하겠습니다."

그런 메일을 받은 사장과 다음날 이야기를 했고 결과는 좋았다.

규모가 그렇게 큰 회사는 아니지만 탄탄한 회사라고 한다. 평소에도 대부분의 일은 오전 중에 끝낼 수 있단다. 또 사장은 주부인 딸아이를 많이 이해해주고 아이들이 아프다고 하면 조퇴도 잘해주는 너그럽고 이해가 많은 사장이라고 했다. 자신도 두 아이의 아버지라고 하면서.

나도 그런 사장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난 딸아이에게 "너희 사장 복 많이 받을 사람이다"하며 우스개 소리도 했다. 이렇게 워킹맘을 배려하는 직장이 늘어났으면 하는 희망도 가져본다.

젊은 엄마들, 고민 참 많겠다

오후 2시에 퇴근하는 딸아이는 집 청소하고, 빨래를 하고, 시장도 느긋하게 본다고 한다. 또 아이들을 데리러 1~2시간 일찍 가니까 녀석들이 너무나 좋아한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그 직장에서 사장이 편의를 봐줘서 2시에 퇴근을 하고 있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딸아이는 지금도 영어수업을 받고 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준비해 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니 말이다.

4일에는 아이들이 버스를 타고 싶다고 해서 차를 안 가지고 아이들을 데리러 간다고 했다. 그 역시 일찍 퇴근하니까 가능한 일이다. 제 엄마와 함께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가면서 좋아할 모습과 깔깔거리는 손자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딸아이처럼 맞벌이 부부일 경우, 집에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겼을 때에 직장을 그만둘지 고민하는 것은 아직까지는 여자의 몫으로 남아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딸아이와 같은 고민을 하는 젊은 엄마들이 꽤 있을 법하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지난 2월 23일 가족친화경영 확산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방안에 따르면 일정수준 이상 직장보육시설 등을 설치한 기업에게는 '가족친화경영 우수기업'으로 인증서를 부여하고,정책자금 지원시 가점부여 등 각종 인센티브 지급할 계획이라고 한다.

보다 살기 좋은 사회가 되어서 여자들이 마음놓고 직장생활을 할 수 있도록 '탄력 근무제'도입이나 '직장보육시설' 확충이 자연스럽게 논의되고 실현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여자들이 좀 더 마음 편하게 직장생활을 하고, 아이들도 잘 키울 수 있지 않겠는가.

태그:#여성, #퇴근, #육아, #맞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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