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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전 서울시장(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거침없는 화법으로 유명하다. 부동산 정책에 대해 자기주장을 펼칠 때도 이 전 시장은 거침이 없다.

2005년 6월 8일에는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군청 수준'이라고 비판했고, 이틀 뒤에는 "뒷다리가 긴 산짐승을 잡으려면 내리막길에서 길목을 지키고 있어야지 온 산을 무조건 헤맨다고 잡히는 것이 아니다"면서 "이처럼 전문적인 부분을 모르면 몇 날 며칠 온 산을 헤매도 사냥을 할 수 없는 법"이라며 정부 정책의 '전문성 부재'를 질타했다.

2006년 11월 21일에는 "정권이 바뀌면 무슨 수를 내서라도 젊은 부부들에게 집 한 채를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호언장담했고, 12월 7일에는 "1가구 1주택은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자신감 넘치는 태도와 거침없는 주장은 이명박 전 시장이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고 모든 국민의 주거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실제로 이 전 시장은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의 아마추어리즘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자신이 '프로'임을 강하게 시사한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전 시장이 밝힌 부동산 정책들을 하나하나 검토해 보면, 부동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이라 할 만한 내용은 보이지 않으며 그를 프로라고 부를만한 근거도 찾기 어렵다.

이명박 전 시장은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이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을 정책의 일관성 상실에서 찾는다. 그리고 "부동산 투기를 억제한다고 하면서도 행정수도 이전, 혁신도시, 기업도시 등의 정책을 펼쳐 결과적으로 전 국토를 부동산 투기장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비판도 한다. 모두 옳은 말이다.

부동산 시장의 특수성 이해 못해

그렇다면 그의 부동산 투기 대책은 무엇일까? 이 전 시장은 최근 <이코노미21> 인터뷰에서 "부동산 문제는 시장 개념과 복지 개념 등 이원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정부는 부동산 시장이 자율적으로 돌아가도록 하고 대신 복지적 측면에 전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2월에는 "가진 사람이 더 좋은 아파트로 가겠다는 것은 시장경제 원리에 맡기되, 집없는 사람들에게는 복지 차원에서 정책을 구사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투기가 일어나서 부동산값이 폭등하더라도 투기 대책 따위는 시행하지 말고 그냥 방임하라는 것 아닌가? 부동산 시장이 일반 재화 시장과 동일한 성격을 갖고 있다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지 않고 방임하는 것이 옳다. 가격이 상승하더라도 시장의 자기조절기능이 작동-수요는 감소하고 공급은 증가한다-해서 조만간 균형에 도달하고 가격은 안정세를 되찾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은 일반 재화 시장과 성격이 전혀 다르다. 투기가 일어나서 가격이 상승하더라도 공급을 증가시키기가 어렵다. 더욱이 일반 재화의 경우 가격이 상승하면 수요가 줄어드는 데 반해, 부동산에 대한 투기적 수요는 가격이 상승할 때 더욱 팽창한다. 투기가 가격 폭등을 부르고 가격 폭등이 다시 투기를 부르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요컨대 부동산 투기가 기승을 부릴 때 시장의 자기조절 기능은 작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투기는 시간이 지나도 자연적으로 소진되지 않고 가격을 계속 폭등시켜 경제의 다른 분야에 타격을 가한 후에야 비로소 사라진다.

이런 비정상적인 시장에 대해서는 정부가 정책을 통해 개입해야 한다. 정책의 초점은 투기 수요를 억제하는 데 두어져야 한다. 가격이 상승할 때 감소하지 않고 거꾸로 증가하는 속성을 갖고 있는 투기 수요를 제거하고 나면, 시장은 정상화되고 시장의 자기조절 기능도 비로소 작동한다.

투기 수요를 억제하는 방법으로는 세금정책과 금융정책이 있다. 보유세와 양도세를 강화하면 투기 수요는 억제된다. 금리를 인상하거나 주택 담보 대출을 규제해도 투기 수요가 억제된다. 그런데 양도세 강화는 동결효과를 낳고 금리 인상은 거시경제를 침체시킨다는 부작용이 있다.

따라서 가장 좋은 방법은 보유세 강화 정책과 미시적 금융대책(즉 DTI 규제 등을 통한 주택담보대출 규제)을 적절히 결합하여 이를 위주로 부동산 투기 대책을 시행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보유세 부담이 극도로 낮아서 투기적 이익의 획득이 제도적으로 보장되고 있는 곳에서는, 보유세 강화 정책이 제대로 추진될 경우 투기 수요의 억제에 상당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이명박 전 시장은 투기는 방임하되, 집없는 사람들에게는 정부가 집을 지어서 공급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는 "헌법이 일할 권리와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듯 국민이 집을 한 채씩 가질 권리도 보장돼야 한다"는 파격적인 주장까지 내놓는다.

문제는 부동산 시장을 방임할 경우 국민이 집을 한 채씩 가질 권리가 침해된다는 점이다. 집값 폭등은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을 어렵게 하는 최대 원인이다. 이를 그냥 두고 전 국민이 집을 한 채씩 가질 수 있도록 정부가 주택을 공급한다니 말이 되는가? 정부가 그럴 능력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세금정책에 대한 오해 심각

▲ 이 전 시장은 부동산 관련 세금정책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사진은 종부세 자진 신고납부가 시작된 지난해 12월 1일 라이트코리아 주최로 열린 '조세저항 국민운동' 결성 기자회견 모습.
ⓒ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 전 시장은 '부동산 시장 방임론'을 믿고 있어서 그런지, 세금정책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2006년 1월 20일자 <매일경제>에 보도된 대담 기사에서 그는 "세금으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고 말하고 있다. 2006년 11월 21일에는 "아파트 값을 세금으로 잡는 나라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단언했다.

이 전 시장이 세금정책만 가지고는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면,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부동산 투기 대책으로서 세금정책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건 완전히 잘못된 주장이다. "세금으로 부동산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문제를 더 키운다는 사실이 이미 현실로 드러났다"고 주장한 걸 보면, 그의 생각은 후자 쪽인 것 같다.

세금 정책만 가지고 투기를 근절할 수 없음은 물론이지만, 보유세와 양도세를 통해 투기적 이익을 차단·회수하지 않으면 투기 억제가 엄청나게 어려워진다. 우리나라에서 유독 부동산 투기가 기승을 부리는 것은 보유세 부담이 극도로 낮다는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세금정책은 투기 근절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지만 매우 중요한 필요조건이다.

"아파트 값을 세금으로 잡는 나라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는 말은 사실과 다르다. 투기 이익의 환수 장치가 취약해서 투기가 발생하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투기 이익 환수를 위한 세제 강화가 논의되거나 추진되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1967년 부동산투기억제세를 도입한 이래 우리나라의 부동산 정책이 그랬고, 1980년대 말 엄청난 투기 광풍에 휩싸였던 일본의 부동산 정책이 그랬다.

최근 몇 년 사이 부동산 투기가 기승을 부리는 중국에서 정부가 내놓은 강력한 투기대책도 부동산 조세 강화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2005년 미국에서도 대통령 산하 세제개편위원회에서 부동산 거품에 대한 대책으로서 양도소득세 강화를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보수 언론의 '보유세 전가론'과 '서민피해론' 답습

이 전 시장은 보유세 강화 정책의 무용성을 입증하고 싶었던지 그동안 보수 언론들이 즐겨 사용해 온 '보유세 전가론'과 '서민피해론'을 답습한다. 예컨대 그는 <이코노미21> 인터뷰에서 "급격한 세금 인상은 매매가격에 전가돼 부동산 시장을 끊임없이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전세가격을 부추겨 결국 '없는 사람들' 이른바 서민의 피해로 돌아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전 시장에게는 주택 소유자가 전능한 존재라고 여겨지는 모양이다. 보유세가 인상되면 그것을 바로 세입자에게 전가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으니 말이다. 만약 이런 가정을 따르면 주택 소유자들은 보유세가 인상되기 전이라도 전세금을 인상하는 것이 마땅한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일까?

보유세의 전가는 이 전 시장이 생각하는 대로 소유자의 의지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택 임대시장의 수요와 공급의 변화에 따라 이루어진다. 소유자가 보유세 인상분을 세입자에게 전가하므로 서민의 부담이 늘어난다는 식의 조악한 보유세 전가론은 보수 언론들이 국민들의 눈을 가릴 목적으로 개발한 억지 논리임에도, 그대로 답습하고 있으니 이를 어찌해야 좋은가?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은 특정 계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자세를 취해서는 안된다. 보유세 강화 정책은 우리나라 부동산 정책의 오랜 숙제였다. 이 정책이 그동안 시행되지 못했던 것은 부동산 부자들의 반대 때문이었다. 이처럼 국가적으로 중대한 과제임에도 기득권 세력의 반발로 인해 미루어져 왔던 정책에 대해 국가 지도자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나도 불평 안 하고 (종부세...인용자) 냈다"고 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태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복지적 주택 공급정책의 구체적 실행 방안 제시 안돼

▲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강남북 균형개발'을 내세워 25개 구별로 뉴타운 사업을 추진했다. 사진은 지난 2005년 3차 뉴타운 예정지인 종로구 창신동 일대에 붙은 플래카드.
ⓒ 오마이뉴스 박수원
이명박 전 시장이 집없는 사람에게 국가가 복지 차원에서 주택을 지어서 공급해야 한다는 주장을 처음 한 것은 지난해 11월경이었다. 엄청난 정책을 발설했으니 국민들이 구체적인 실현 방법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전 시장은 발설 당시에 "특별한 노하우이기 때문에 지금은 전략상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그 후 4개월이 지났지만 실행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아직도 전략상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것인가?

사실 집없는 서민들에게 주택을 공급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동안 공공임대 주택의 확충과 환매조건부 및 대지임대부 주택의 공급 등을 중심으로 활발한 논의가 있었고 이미 일정한 사회적 합의가 도출된 상태다. 이명박 전 시장이 이런 논의를 능가하는 비책을 마련해 놓고 있는지 매우 궁금하다. 아무튼 속히 실행 방안을 밝히기 바란다.

이 전 시장은 신도시 개발에 반대한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새로운 투기를 유발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 반대 이유다. 그 대신 강북의 재개발이나 강남의 재건축 규제 완화를 통해 서울 시내에서 주택 공급을 확대할 것을 주장한다. 신도시 개발과 기존 도시 재개발 중 어느 쪽이 더 나은지는 꼼꼼히 따져볼 문제다. 그러나 "시간이 많이 걸리고 투기를 유발할 우려가 있"다는 것은 기존 도시 재개발에도 해당되는 이야기 아닌가?

신도시 개발이든 기존 도시 재개발이든 중요한 전제조건은 개발이익을 철저하게 환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몇 차례의 집값 폭등은 모두 개발이익 환수장치가 미비한 상태에서 신도시 개발이나 재건축 규제 완화 등의 조치를 발표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 전 시장의 부동산 정책에서는 개발이익 환수정책은 찾아볼 수가 없다.

아직까지 공개하지 않은 정책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보면 이명박 전 시장의 부동산 정책은 '프로의 정책'이라 하기에는 너무 허술하다는 느낌을 준다.

"프로가 프로다워야 프로지!"

이명박 전 시장의 부동산 정책을 검토하는 중에 필자의 머리 속에 불쑥 떠오른 생각이다. 부디 지금부터는 감춰두었던 프로페셔널(professional)한 정책들을 국민들 앞에 펼쳐보이시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전강수 기자는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로 토지정의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태그:#이명박, #부동산 정책, #부동산값 폭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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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실련 토지주택위원장, 토지정의시민연대 정책위원장, 토지+자유연구소 소장, 지식인선언네트워크 운영위원장, 대구가톨릭대 교수 등을 역임했고, 현재는 헨리조지센터 대표,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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