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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9일 오전 서울 용산의 미8군사령부 밴플리트 홀에서 열린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 내외신기자회견에서 벨 사령관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최재구

보수언론이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을 칭송하고 나섰다. <동아일보>는 "한국 사람보다 한국 안보(를) 더 걱정하는 벨 사령관"이라고 칭찬했고, <중앙일보>는 "벨 주한미군사령관의 충고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동조했다.

도대체 그가 뭐라고 했기에 이렇게 찬양 일색일까?

벨 사령관은 지난 7일 미 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한국 정부의 군 복무기간 단축 시도를 비판했다. "한국군의 병력 감축과 징병제의 변화가 대북 전쟁억지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며 "북한군이 유사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이 같은 대규모 병력 감축은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보기에 따라서는 내정 간섭에 해당할 수도 있는 민감한 내용을 스스럼없이 말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조선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우리 국방부와 사전협의 및 통보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파장이 적지 않을 내용을 동맹국과 사전 협의 한번 없이 일방적으로 쏟아낸 것이다.

그런데도 보수언론은 벨 사령관을 감싼다. "한반도 방위를 맡고 있는 벨 사령관으로선 최악의 상황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중앙일보)"고 변호한다.

보수언론은 왜 벨 사령관을 감쌀까

따라가 보자. 벨 사령관이 우려하고 보수언론이 동조하듯이 군 복무기간 단축은 최악의 안보상황에 대처할 수 없게 하는 치명적 오판인가.

'그렇다'라는 대답이 쉽게 나올 법하다. 군 병력은 다다익선이다. 다른 요인을 모두 거세하고 오로지 머리수만 잰다면 그렇다. 한 명의 소총수보다 열 명의 소총수가 쏘는 총알이 더 많고, 그 만큼 더 많은 적군을 살상할 수 있다는 주장에 토를 달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문제는 이런 주장이 너무 단순하다는 데 있다. '다른 요인'을 첨가하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에둘러 갈 것 없다. 벨 사령관이 말길을 열었으니 미국의 주장을 기준으로 삼자.

미국은 주한미군 병력을 감축하고 있다. 전방에 배치된 미2사단도 평택으로 후방배치한다. 전시작전통제권도 한국에 넘기기로 했다. 군 복무기간 단축이 완료(2014년)되기도 전인 2012년에 완전 이양하기로 했다.

되묻자. "한반도 방위를 맡고 있는 입장으로서 최악의 상황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미국은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이런 조치들을 잇따라 시행하는 건가?

미국으로서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이제 클 만큼 컸으니 너희 안보는 너희가 지켜야 한다는 논리를 바탕에 깔고 있다. 우리로서는 피해갈 수도, 피할 이유도 없는 주장이다.

남는 문제는 신의성실이다. 미국은 방기가 아니라고 했다. 한국이 자주국방 능력을 갖춰가고 있기 때문에 조치를 취하는 것이라고 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벨 사령관 스스로 그랬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따라 주한미군을 해·공군 위주로 재편하면 한반도 방어에 문제가 없느냐는 질문에 "한국군은 경쟁력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대적인 군대 및 전투지휘능력과 좋은 장비를 구비하고 있(는)" 한국군과, "냉전 이후 중국 러시아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해 전투력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져 있(는)" 북한군을 대비시켰다.

주목하자. 벨 사령관은 군의 '경쟁력' 기준으로 군의 현대화, 탁월한 전투지휘능력, 좋은 장비를 꼽았다. 바로 이 점을 기준으로 북한은 전투력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했다.

스스로 군 현대화를 '군 경쟁력' 기준으로 꼽아놓고선...

▲ "한국 사람보다 한국 안보(를) 더 걱정하는 벨 사령관"이라고 칭찬한 <동아일보> 9일자 사설.

병력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시점에서 군 병력만 놓고 보면 남한은 북한의 비교대상이 되지 못한다. 북한은 110만명, 남한은 60만명이다. 그런데도 벨 사령관은 한국군은 경쟁력이 있다고 했다. 현대화 된 군과 탁월한 전투지휘능력, 좋은 장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오해의 소지가 있다. 벨 사령관은 결론 삼아 이렇게 말했다. "한국 지상군과 미국의 해·공군력을 합치면 북한군보다 훨씬 강하다고 확신한다"고 했다. 한국 지상군만 놓고 보면 북한군보다 강하다고 할 수 없다는 얘기로 연결될 수도 있는 발언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이후에도 주한미군의 해·공군력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유지한다는 게 한미 양국의 합의사항 아니던가.

예를 하나만 더 들자. 전시작전통제권 논란이 일기 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따라 주한미군을 해·공군 위주로 재편한다는 얘기가 나오기 전, 주한미군 병력 감축과 미2사단 후방배치 방안이 결정됐다.

자연스레 안보 논란이 일었지만 미국의 반박은 단호했다. 병력은 줄이지만 스트라이커 부대와 같이 주한미군을 첨단 무기로 무장시키기 때문에 전투력과 방위력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고 했다.

핵심은 머릿수가 아니라 장비

관건은 병력이 아니라 장비다. 핵심 전략은 인해전술이 아니라 현대전이다. 정부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국방부는 이미 '국방개혁 2020'을 통해 151조원을 들여 한국군의 장비를 꾸준히 첨단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너무 당연한 귀결 같다. 그래도 너무 당연한 게 께름칙하다. 함정은 없을까?

이런 가설이 성립한다. 벨 사령관이 그간의 미국 입장과는 다르게 한국군 복무기간 단축에 강한 우려를 표한 바탕에 '장삿속'이 깔려있을지도 모른다. 병력이 아니라 장비라는 주장이 당연시되면 군비증강은 당위가 된다. 그럼 누가 덕을 볼까? 물을 필요도 없다.

다른 가설도 있긴 하다. <중앙일보>가 내놓은 가설이다. <중앙일보>는 벨 사령관의 군 복무기간 단축 우려가 왜 나왔는지를 물은 뒤 스스로 답을 내려 제목으로 올렸다. "'노 정권 정치적 의도' 미국 판단 담긴 듯."

도대체 무슨 얘기인가 해서 기사 내용을 꼼꼼히 읽었더니 딱 한 문장이 나온다. "특히 노무현 정부의 병력규모 감축 등에 정치적 고려가 깔린 게 아니냐는 부시 행정부 일각의 우려도 반영한 언급이란 해석도 나온다."

정치적 고려가 뭔지, 부시 행정부 일각이 누구를 뜻하는지, 그렇게 해석한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그렇다고 해석 못할 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용으로 군 복무기간 단축을 들고 나왔다는 주장이 한두 번 나온 게 아니다. 아마도 이 걸 뜻하는 것 같다.

이렇게 읽으니까 더더욱 대비된다. 한국의 대통령은 안보마저 대선용으로 악용하는데 미국의 사령관은 충심으로 한국의 안보를 걱정한다. 이처럼 강력하고도 확실한 대비가 또 있을까? 정말로 "한국 사람보다 한국 안보(를) 더 걱정하는 벨 사령관"이다.

태그:#주한미군, #버웰 벨, #보수언론, #한미연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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