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 아메리카의 좌파 지식인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그의 책 <축구, 그 빛과 그림자>의 서문에 이렇게 썼다.

"이 글을 수년 전 칼레야 데 라 코스타에서 나와 마주쳤던 적이 있는 그 꼬마들에게 바친다. 그들은 축구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고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불렀다. '우리는 이겼다, 우리는 졌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즐겁다.' 본래 축구의 의미란 이런 게 아닌가 싶다. 경기 자체를 즐기는 것, 승패를 떠나 선수나 팬 모두 즐거운 것 말이다."

그런데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첫 한국 선수였던 이천수는 그렇게 즐겁게 축구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항상 이기는 것, 성공하는 것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있다. 승리욕도 좋다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도 있다. 2006년 10월 펼쳐진 인천 유나이티드 전에서는 심판에게 욕설을 퍼부어 구설수에까지 올랐다. 지금 그의 눈에는 독기가 서려있고, 여유를 찾아볼 수 없다. 그에게 축구는 정복의 대상인 것처럼 보인다.

▲ 이천수는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한국 선수들에게서 배울 필요가 있다. 사진은 2006년 6월 23일 저녁(현지시각) 독일 하노버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한국팀이 스위스에 0-2로 패하면서 16강 진출이 좌절되자 이천수가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장면.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난 7일 오전 5시 (한국시간 기준) 런던에서 열린 그리스와의 평가전에서 이천수는 우아하고 강력한 곡선을 그리며 휘어지는 프리킥으로 결승골을 작렬했다. 흡사 2006년 대 토고 전을 연상시키는 골이었다.

골의 가치에 대해선 이견이 없다. 그러나 이천수는 경기 후 인천공항으로 입국할 때 위건 행 좌절과 관련해 시종일관 어두운 표정으로 울산 구단에 대한 시위를 했다. 6개월 간 팀 훈련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초강수까지 두면서 말이다.

골을 넣었기 때문에 국민들이 자신을 지지해 줄 것이라 생각한 것일까. 순간적으로는 본인도 국민들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국가대표급 선수가 6개월이나 적을 두는 팀이 없다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손해다. 수원의 안정환이 그동안 얼마나 인고의 세월을 보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 때문에 그의 행동은 결과적으로 보면 참 성숙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BRI@14일 <마이데일리> 기사에 따르면 이천수는 소속팀 팀 훈련에 참가하면서 "공항에서의 발언은 내가 경솔했다"며 "향후 유럽 진출 여부에 관계없이 운동만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늦게나마 이천수가 마음을 추스른 것은 다행이다.

수많은 인고의 세월 참아내야

자고로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을 축구로 옮겨오면, '될성부른 선수는 유럽부터 보내야 한다'가 된다. 이천수가 외국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을 뭐라 할 생각은 전혀 없다.

본인이 한 번의 실패를 만회하고 싶은 마음도 충분히 이해하거니와 K-리그에서 보여준 폭발적 득점력, 지난 월드컵에서의 토고전 프리킥, 스위스전의 날카로운 중거리 슈팅 등을 고려해 봤을 때 그는 레알 소시에다드와 누만시아 때와는 다른 급의 선수가 되었다. 그 때문에 즐거웠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제는 국민 모두 그를 응원해줘야만 한다.

그러나, 이적, 더군다나 세계 최고의 리그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하는 것은 단지 한 두 가지 문제로만 해결될 일이 아니다. 위건과 울산 간에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실제 관계자들만이 정확히 알겠지만 어쨌든 실패로 끝났다. 과거는 잊어야 한다.

구단은 구단대로 선수는 선수대로 자기 생각만을 주장할 수밖에 없다. 설사 섭섭한 점이 있다 하더라도 사석에서 밝혔어야 할 문제다. 그의 행동을 보는 국민이나 동료 후배 선수들의 눈을 생각했다면 말이다.

감히 말하자면 81년생 이천수는 아직 2%가 부족하다. 그것은 실력보다는, 태도의 문제인 것 같다. 그래서 자기중심적이던 85년생 맨체스터의 C. 호날두가 이번 시즌 아버지의 사망, 월드컵 때의 루니와의 불화 등 악재들을 극복하고 정상의 자리에 서있는 것은 이천수에게 좋은 본보기가 된다.

이천수는 좀 더 차분해 져야 한다. 긴 호흡을 가지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 물론 아쉽겠지만 일희일비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는 것은 선수 본인이나 팬들에게나 좋을 것이 없다. 그가 유럽무대에 다시 진출하려면 그리고 진출해서 성공하려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은 바로 본인의 마음이다.

유럽에 진출한 한국 선수들은 항상 겸손하거나, 욕심 없이 우직하거나, 그저 축구 자체를 즐기는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다. 혹은 수많은 인고의 세월을 참아냈거나. 지금 그는 어느 곳에도 명함을 못 내민다.

▲ 2006년 5월 26일 저녁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의 축구대표팀 평가전에서 이천수를 상대 수비수가 잡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탈리아의 저명한 정치학자인 안토니오 그람시는 축구를 '야외에서 행해지는 가장 인간적 충실함의 완성본'이라고 했다. 의리를 지키며 격렬하게 경쟁하고, 때로는 서로를 속이고 비난하는 축구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운동이라는 것이다. 일견 맞는 말이다. 그만큼 축구는 현실 세상의 축소판과도 같다.

인생도 똑같다. 좀 더 겸손하고, 좀 더 우직하고, 좀 더 인생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이 성공하게 되어있다. 인생자체를 즐기는 것, 그렇게 축구 하는 자체에 감사하고 즐기는 것. 이천수가 다시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 반드시 기회는 다시 온다.

축구 안에서, 인생 안에서, 우리는 항상 지고, 이기고, 즐거운 법이다.
2007-02-14 15:33 ⓒ 2007 OhmyNews
이천수 인내하는법 이영표 박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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